경주지역에서도 ‘깡통전세’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가운데 경주시가 공인중개사들과 시민들의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공조키로 했다. 시는 지난 4일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북지부 경주시지회와 시청 영상회의실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최근 경주지역 전세가율 상승추이에 따라 전세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양 기관의 협약에 따라 경주시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위험 부동산에 대한 공동 조사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각종 홍보 △개업공인중개사를 통한 부동산 시장 모니터링 요원 운영 등을 통해 공조에 나선다. 주낙영 시장은 “전세사기는 개인과 한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 ‘경제적 살인’으로 비유되는 중대한 악성사기 범죄로, 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최근 공개한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경주지역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121.5%를 기록해 전세 계약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빌라·다세대주택의 최근 1년간(2021년 9월~2022년 8월) 전세가율은 80.5%였지만, 6월부터 3개월간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주지역 아파트의 전세가율도 최근 3개월간 전세가율은 80.6%였고, 최근 1년간은 84.9%로 각각 나타났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보통 전세가율이 70%를 넘으면 깡통전세 주의 지역, 80%를 넘으면 깡통전세 위험 지역, 90%를 넘으면 깡통전세 지역으로 보고 있다. <본지 1554호 1면 참조>
경주시 주민등록 인구가 10월 25만명선이 무너졌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경주시 인구는 24만9928명으로 집계됐다. 경주시 주민등록인구는 올해 1월말 25만1627명에서 출발해 10월말까지 9개월 만에 1699명 감소했다.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인구감소수가 1513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감소 속도가 빨라진 셈이 됐다. 성별로는 남자 789명, 여자는 910명 감소했다. 10월말 경주시 세대수는 12만4003세대로 1월말 12만3141세대 대비 862세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세대원수는 2.02명으로 1월말 2.04명 대비 0.02명 감소했다. -23개 읍면동 중 6곳 증가, 17곳은 감소 23개 읍면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황성동으로 2만7872명이었다. 이어 용강동 2만4021명, 안강읍 2만3601명, 외동읍 2만2273명, 동천동 2만1914명, 현곡면 2만1588명 순으로, 6개 읍면동이 인구 2만명을 넘었다. 1만명대는 선도동 1만4655명, 성건동 1만3803명 등 2곳이었다. 나머지 15개 읍면동은 1만명 미만이었다. 인구수가 가장 작은 곳은 보덕동으로 1689명이다. 지난 1월말부터 10월말까지 인구수가 증가한 지역은 6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17개 읍면동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은 불국동이 9911명으로 1월말 대비 165명 늘었다. 이어 매년 감소해오던 성건동이 149명 증가해 1만3803명을 기록했다. 외동읍이 2만2273명으로 129명, 천북면 5735명으로 57명, 양남면 6322명으로 42명, 산내면 3235명으로 8명 순으로 증가했다. 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든 지역은 안강읍으로 1월말 대비 433명 감소했다. 이어 황성동 351명, 동천동 230명, 황오동 197명, 황남동 158명, 중부동 140명, 월성동 102명 순으로 100명 이상의 인구가 감소했다. -50대 이하 줄고, 60대 이상 증가현상 여전 올해 들어 10월말까지 1699명의 인구가 감소한 가운데, 연령대별 인구 증감은 예년과 같이 50대 이하는 감소한 반면, 60대 이상은 늘었다. 20대가 1305명 줄어 가장 감소폭이 컸고, 이어 40대 795명, 10대 미만 712명, 30대 460명, 50대 297명, 10대 178명 순으로 감소했다. 특히 20대 감소폭은 지난해 1년간 1229명 감소수를 상회해 20대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60대는 10월말까지 1067명 늘었다. 70대 221명, 80대는 733명 증가했다. 연령대별 인구수는 50대가 4만6269명으로 전체 인구의 18.5%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60대 4만4576명(17.8%), 40대 3만4853명(13.9%), 70대 2만5228명(10.1%), 20대 2만4203명(9.7%), 30대 2만3890명(9.6%), 10대 2만명(8.0%) 등의 순이었다. 10세 미만은 1만4528명, 80대 1만4375명(5.8%), 90대 1959명(0.8%), 100세 이상은 47명(0.02%)이다. -10개월 간 자연감소 ‘1414명’ 역대 최대 올해 들어 10월말까지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은 ‘자연감소’는 1414명으로 나타났다. 1월부터 10월까지 출생등록 수는 846명인 반면, 사망말소 건수는 2260건으로 인구 자연감소는 1414명이었다.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인구 자연감소 1233명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 24.6% ‘초고령사회’ 10월말 기준 전체인구 24만9928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6만1478명으로 고령화비율은 24.6%였다. UN이 분류하는 ‘초고령사회’다. 지난해 말 고령인구비율이 23.7%보다는 약 1%p 증가했다. 23개 읍면동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 지역은 모두 18곳으로 나타났다. 그 중 산내면의 고령인구비율이 50.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서면(47.5%), 내남면(45.2%), 황남동(43.0%), 감포읍(40.8%)의 고령화비율이 40%를 넘어섰다. 반면 용강동은 11.4%로 고령인구비율이 가장 낮았다. 이어 황성동(12.1%), 현곡면(14.5%), 선도동(17.2%)은 10%대를 유지했다. 10월말 기준 경주시 인구의 평균연령은 48.4세였다. 남자 평균연령은 46.7세, 여자는 50.2세로 집계됐다.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지역은 산내면으로 61.1세였고, 이어 서면 57.8세, 내남면 57.5세, 강동면·감포읍 54.5세 등의 순이었다.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지역은 용강동으로 38.9세였고, 이어 황성동 40.1세, 현곡면 40.4세, 선도동 42.5세, 동천동 44.5세 등의 순이었다.
주차 공간 부족으로 주말마다 이용객 불편이 컸던 신경주역 주차난에 숨통이 틔였다. 경주시가 지역 관문인 신경주역 주차난 해소를 위해 추진해 온 ‘신경주역 공영주차장 확장 및 승강기 설치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완공된 신경주역 공영주차장(건천읍 화천리 1354-1)은 총면적 2만8623㎡에 주차공간은 670면 규모다. 총사업비는 82억원이 투입됐다. 한국철도공사 자회사 코레일 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주차장이 357면인 것을 감안하면, 주차면수만 2배 가까이 많다. 또 공영주차장 내 화장실, 장애인 겸용 15인승 엘리베이터, 무인 주차요금 정산 시스템 등 편의시설을 갖춰 주차장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외에도 기존 공영주차장 진출입로가 좁고 회전반경이 커 불편하다는 이용객들의 지적에 따라 진출입로 위치를 중앙부로 옮기고 차선도 왕복 4차선으로 확장했다. 다만 공용주차장 내 화장실은 상수도 급수 공사가 오는 12월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이용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요금은 1일 최대 6000원으로, 한국철도공사 자회사 코레일 네트웍스 주차장 1일 최대 1만 3000원 대비 절반 이상 저렴하다. 주낙영 시장은 “무궁화호 폐차로 5일부터 신경주역을 경유하는 ‘누리로’와 오는 2024년 12월 서울 청량리와 부산 부전역을 잇는 ‘KTX 이음’의 운영을 앞두고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주차난을 해소하는데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주시가 농림축산식품부 공모 ‘2023년 지역단위 푸드플랜 구축지원(지역먹거리계획 수립)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식품의 생산·가공·유통·소비 등 전 단계를 하나의 선순환 체계로 관리해 지역 내 안전한 먹거리 공급과 농어민 소득 증대를 목표로 한다. 여기에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 식품의 기획·생산부터 취약계층을 위한 먹거리 복지에 이르기까지 지역 먹거리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계획이다. 이번 공모는 지난 달 서면평가를 거쳐 전국 17개 자자체가 선정됐으며, 경북도내에서는 유일하게 경주시가 선정됐다. 공모에 선정된 경주시는 푸드플랜 계획 수립을 위해 1억원(국비50%)을 지원받게 된다. 향후 사업 비전과 추진전략에 따른 지역 맞춤형 먹거리 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경주시는 2023년부터 △생산자 조직화 △로컬푸드 인증시스템 구축 △공공급식 정착 및 먹거리통합지원센터 설립 △먹거리 기본권 보장 조례 제정 △민관 거버넌스 활동 등 먹거리 종합계획 수립 후 농림부의 다양한 푸드플랜 패키지 국비 지원사업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그려나갈 방침이다.
동국대 WISE캠퍼스 학생회관이 리모델링을 거쳐 ‘스페이스 위콤버’로 9일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스페이스 위콤버(Wicomvor)’는 동국대학교 교훈인 지혜, 자비, 정진의 영문 단어(Wisdom, Compassion, Endeavor)의 조합한 이름으로,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의미를 담았다. 스페이스 위콤버는 대학교육혁신지원사업으로 학생들의 복지증진과 교육인프라 개선에 중점 을 두고 기존 학생회관의 노후된 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오픈에 앞서 시범운영을 통해 학생들이 사용해 보면서 느끼는 의견을 수렴하여, 학생을 위한 체험활동 공간으로 만든다. 스페이스 위콤버는 학생회관 각 층을 동국대학교의 교훈인 지혜, 자비, 정진을 재해석한 테마로 공간을 조성했다. 3층 자비의 공간은 휴식과 긍정을 컨셉으로 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치유, 휴식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실외 데크에서는 야외 명상,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할 수 있어서 학생 힐링, 휴식, 야외전망이 함께하는 포토존으로 활용된다. 4층 지혜의 공간은 공유와 공감을 컨셉으로 한 창의형 학습공간으로, 가변형 세미나실과 무용실, 음악실 등이 있다. 5층 정진의 공간은 지속, 노력, 개발을 컨셉으로 아이디어팩토리 개념을 도입한 창의 학습 공간이다. 자유창작실과 공유주방, 체험공간을 조성하여 체험형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생들의 문화/예술/체육 활동/만들기 등의 체험 활동을 통해 ‘만들면서 노는’ 창작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경주시가 제11호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 TF팀을 지난 7일부터 본격 가동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9월 26일 NDMS(국가재난관리시스템)입력 기준 태풍피해는 총 1만1659건이다. 이중 공공시설 753건에 피해액 1115억원, 사유시설은 1만906건에 94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복구 예상액은 2110억원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시는 먼저 공공시설의 빠른 회복을 위해 토목 전담직원 9명으로 태풍피해 복구 TF팀을 구성해 7일부터 사업 완료 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TF팀은 지방하천 및 소하천과 소규모 및 수리시설, 도로 등 시설물 총 610건에 1374억원을 투입해 피해 복구를 전담한다. 특히 인사사고 및 주택침수, 소하천 매몰 등 문제가 심각했던 진현 소하천 개선복구는 86억원을 투입해 실시설계와 복구협의를 내년 12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이어 2024년 3월까지 토지보상을 마무리하고 6월 착공, 2025년 7월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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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 현상이 국내 곳곳에서 관측됐다. 개기월식은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날 개기월식과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달이 다시 천왕성<좌측 흰 점>을 가리는 ‘천왕성 엄폐’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사진제공 : 한국천문연구원 박영식 책임연구원 촬영>
경주시가 민선 8기 첫 조직개편을 단행한다.핵심 공약과 주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다. 경주시에 따르면, 본청은 현행 5국·41과·179팀에서 5국·41과·180팀으로 5개팀을 신설하고, 기존 8개팀을 4개팀으로 통합한다. 또 사업본부와 사업소 2개팀을 신설하고, 기존 4개팀을 2개팀으로 통합한다. 신설되는 팀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팀’ △학교급식 관리 ‘공공급식팀’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에 따른 ‘고향사랑팀’ △스마트관광사업 담당 ‘스마트도시팀’ △사업본부의 계약업무를 전담할 ‘계약2팀’ 등이다. 또 △맑은물사업본부 에코물센터 내 수질환경분야 특허출원 등 연구개발을 전담할 ‘수질연구팀’ 신설 △화랑마을 내 동학기념관을 유기적으로 운영할 ‘동학홍보팀’ 신설 등 사업소와 사업본부 등에 대한 조직개편도 단행한다. 이외에도 국·과·팀 명칭 변경안도 윤곽이 드러났다. 일자리경제국은 경제와 미래사업의 중요성을 반영해 ‘경제산업국’으로 변경한다. 또 시장직속기관인 공보관은 변화된 언론 홍보의 중요성을 반영해 ‘홍보담당관’으로 명칭을 바꾼다. 이어 △미래사업추진단은 미래전략실 △관광컨벤션과는 관광정책과 △투자유치과는 투자정책과 △일자리창출과는 일자리청년정책과 △시정새마을과는 총무새마을과로 총 6개 과의 명칭이 변경된다. 또 △미래전략팀은 총괄전략팀 △청년일자리팀은 청년정책팀 △노사지원팀은 노사협력팀 △원전사업팀은 원전지원팀으로 총 29팀의 명칭이 변경된다. 앞서 시는 지난 7일자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기구 설치 조례와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오는 15일 열릴 조례규칙심의위원회와 28일 개회하는 경주시의회 제272회 2차 정례회에서 이들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조직개편안은 모든 심의를 통과하게 되면 내년 1월 정기인사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경주대와 서라벌대 통합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지만 통합 선결과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교육부가 내년 2월까지 대학 활용 가능 자산 매각과 체불임금 해결 등 통합 선결과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원석학원은 이를 뒤로한 채 총장 인선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다. 원석학원은 지난 8일 서라벌대 정두환 총장을 경주대 총장(직무대리)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원석학원에 따르면 올해 이사회 출범 이후 통폐합 논의를 이어왔지만 최근 교육부의 대학설립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원석학원은 승인 부결 이유로 양 대학의 구성원 화학적 결합, 경주대 재정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석학원은 통폐합 완성을 위해 정 총장을 선임했다며 경주대와 서라벌대 가교 역할과 리더십을 발휘해 통폐합을 완성할 것이라 밝혔다. -미활용 자산 매각 등 임금 해결 ‘NO’ 원석학원이 통폐합 완성을 외치며 총장 선임에 나섰지만 정작 교육부가 제시한 선결과제 해결은 미온적이다. 학교법인 원석학원은 지난 4월 교육부에 경주대와 서라벌대의 통합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교육부는 통폐합 신청한 원석학원에 대학 활용 가능 미활용 자산과 차명 토지를 매각해 밀린 임금 해결 등 통폐합 선제조건을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기한은 내년 2월까지. 원석학원이 임금체불 해결을 위해서는 미활용 교육용 토지와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는 토지를 매각 방안이 유일하다. 이러한 토지를 팔기 위해서는 이사회 승인 절차를 비롯해 매각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교육부가 정한 기한까지 해결하기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대학 관계자는 “아직까지 매각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통폐합 선제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면서 “아마도 통폐합 기한 막바지에 자산 매각하겠다며 구성원들의 동의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결코 선제조건 해결없이는 동의서 작성은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학 정상화를 위한 방안으로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크다. 통폐합 신청당시 경주대 교직원 노동조합은 설립자 일가 사익을 위한 통합은 실패한다며 ▷교육부에 제출한 대학 통폐합(안)과 노조 동의서 공개 ▷원석학원 산하 양 대학 통폐합 가능 여부 확인 ▷대학 활용 가능 자산 미활용과 체불임금 해결 미이행에도 통합 강행 이유 공개 등을 요구했다. 학교 관계자는 “통합 추진에 진정성이 의심됐지만 학교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면서 “교육부가 내년 2월까지 명시한 기한 안에 통합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통합은 사실상 물 건너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결과제 해결은 고사하고 대학 통합의 비전도 없이 원석학원이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합을 추진 중인 경주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10년 동안 제한대학으로 지정돼 전국 최장 대학의 불명예를 얻고 있다. 경주대는 2012년 처음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후 2013년과 2014년 3년 연속으로 제한대학에 선정됐다. 2015년부터 대학구조개혁평가로 이름을 바꾼 평가에서 D등급(정원 평균 이상 감축, 정부재정지원사업 참여 제한)을 받았으며 2016년과 2017년 정부재정지원제한 평가에서 일부 제한 등급을 받는다. 2018년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명칭을 변경한 평가에서 대구·경북에서 유일한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Ⅱ를 받았으며 2019년에는 학자금대출 100%제한 7개교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20년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도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Ⅱ, 2021년에도 학자금 대출 및 국자장학금 전면 제한 대학으로 선정됐으며 올해도 학자금 100% 제한 대학에 선정된 상황이다. 경주대는 평가가 시행된 2011년 이후 2012년부터 시작해 2015년을 제외한 매년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면서 올해 최종 확정되면 전국 최장인 10년간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경주시가 하수처리효율을 자체적으로 대폭 개선한 신기술이 정부 인증을 받았다.경주시는 금호건설과 공동 연구·개발한 ‘GK-SBR공법’이 환경신기술 인증(제615호) 및 검증(제269호)을 환경부로부터 취득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GK-SBR공법(G: Gyeongju, K: Kumho, SBR: Sequencing Batch Reactor)은 하천이나 호수 내 존..
지난 2007년 5월 22일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엎어졌지만 원형을 보존한 채 발견된 마애불상은 세간에 화제가 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열암곡 석불좌상 보수정비 중 엎어진 채로 발견된 이 마애불은 오뚝한 콧날과 아래쪽 바위 사이의 간격이 5㎝에 불과해 ‘5㎝의 기적’으로 불렸다. 마애불은 경주시가 2017년 7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주변정비 방안 및 실시설계 용역’ 결과 축조시기는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쓰러진 시기는 1430년 조선 세종 때 지진이 발생해 넘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지난달 31일 남산 열암곡 마애불 앞에서 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고불식을 가졌다. 조계종은 진우 총무원장을 비롯해 새 집행부가 들어선 뒤 최우선 과제로 열암곡 마애불 바로 세우기에 나서기로 했고, 이날 그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마애불 바로 세우기를 위한 논의 과정을 보면 녹록치만은 않다. 이 마애불을 발견한 초기부터 문화재청은 불상 바로 세우기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길이 5.6m, 무게 80t에 이를 정도로 육중하고 산비탈 중턱에 엎어진 상태여서, 자칫 불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미끄러진다면 파손 우려가 있고 장비 반입도 어렵다. 그간 숱한 논의와 용역이 진행됐지만, 현재 주변정비만 완료한 채 입불 방안은 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경주시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 5일까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입불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해 결과를 구했다. 그러나 2017년 4월 문화재위원들은 지반이 연약해 작업 시 파손위험이 예상되므로 모의실험 뒤 입불작업을 할 것을 제시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당시 위원들은 현재 마애불 주변 지반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중량 80t의 암석을 설치하고 장비를 이용해 세우는 모의실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모의실험을 위해서는 약 24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되면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현재까지도 입불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용역이 다시 진행되는 등 제자리걸음만 걸으며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는 즈음, 조계종은 고불식을 통해 마애불 바로세우기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웠다. 문화재당국은 다시 피어 오른 조계종의 불상을 바로 세우려는 의지에 부응해 주길 바란다. 마애불 바로 세우기는 종교를 뛰어 넘어 경주시민과 국민들의 요구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여 넘게 공사로 출입이 통제됐던 경북산림환경연구원 동쪽 영역이 지난 1일부터 임시 개장해 일반에 공개됐다. 실개천 사이 외나무다리와 단풍이 든 메타세콰이어가 어우러지는 등 힐링명소로 떠오른 이곳을 임시 개장 형태라도 개방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정식 개장은 내년 4월경 이뤄질 전망이다. 명칭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경상북도 지방정원 ‘경북천년숲정원’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경북천년숲정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숲 속 풍경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품어내며 시민들의 힐링명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경북도 산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이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지방정원 조성공사에 들어가면서 방문객 출입이 통제됐다. 공사기간도 몇 차례 연기됐다. 당초 2020년 하반기 완공 예정이었지만, 2021년 초, 다시 2022년 5월로 몇 차례 늦어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관광객들과 지역주민들의 개방을 요구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4년 동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경주시민들은 ‘지역 내 관광명소를 잃어버렸다’, 관광객들은 ‘입구를 막아선 출입금지 안내판을 보며 헛걸음했다’는 등 각종 불만들이 겹쳐졌다. 이 같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이번에 임시 개장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경북천년숲정원에는 입구에 있는 가든센터를 비롯해 거울숲, 서라벌정원, 버들못정원, 천연기념물원 등이 조성돼 볼거리가 풍부하다고 한다. 다만, 분재원, 무궁화동산, 늘솔광장, 숲그늘 등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파손돼 완전복구 후 개방될 예정이다. ‘경북천년숲정원’이 임시 개장한 만큼 이제부터는 방문객들의 시간이다. 공식 개장까지 남은 시간 동안 방문객들과 소통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 빚어졌던 주말 교통체증 등과 같은 난제도 경주시와 함께 풀어내주길 기대해본다.
지난주 ‘도시재생’이 ‘도시혁신’으로 명칭이 바뀐 ‘도시혁신산업박람회’가 경기도 용인에서 개최되었다. 쇠퇴하는 우리 도시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공유하고 그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자리로 정부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기업, 그리고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참가하였다. 우리 경주시도 이번 행사에서 도시재생사업과 주민 활성화 프로그램 추진 등 ‘도시 경제·일자리 창출’ 부문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 지자체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진행해온 도시재생 그리고 혁신 노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부족한 점들을 뒤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올해 도시혁신사업박람회를 통해 본 타 도시의 정책추진사례를 바탕으로 진정한 도시혁신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도시재생의 테두리를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구역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은 재정투입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의 효과는 대상지 밖으로 확산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도시 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고려한 사업추진이 필요하다. 지금 성동동과 황오동의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주민의 삶의 질 수준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그 내부의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접한 지역의 여건 또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도시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업구역이 섬처럼 외부와 단절되어 운영되는 게 아니고 인접 지역과 지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다. 둘째, 내부적으로 협력의 시정이 필요하다. 도시혁신산업박람회를 둘러본 느낌을 정리해보면 대부분의 지자체가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특정 부서와 조직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이유는 도시재생이라는 사업 분야가 정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 요구되는 성과가 유사한 특성도 반영되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혁신을 위해서는 업무영역을 뛰어넘는 부서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부서와 스마트시티를 담당하는 부서가 협력하고, 환경을 담당하는 부서도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부서와 같이 일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 환경개선과 주민공동체 프로그램 중심으로 구성된 도시재생사업에 스마트시티 기술과 서비스가 접목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최근 ‘타실라’라는 공유자전거 서비스가 경주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스마트시티의 큰 가치 중 하나가 공유경제다. 스마트시티에서는 모두가 차를 가질 필요가 없다. 필요할 때마다 공유차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된다. 도시재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도시재생에 첨단 기술이 적용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어떠한 방법이든 혁신적인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으면 된다. 셋째, 과감한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이대로 가면 경주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일부 구역을 활성화한다고 해도 그 효과를 전 도시로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간판을 바꾸고 보행로를 정비하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해주는 것과 같은 잽을 날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큰 한 방을 노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 추세로는 인구는 줄고, 젊은이는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도심 내부 전체를 차 없는 곳으로 설정하고 보행과 자전거, 스마트모빌리티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지금 시내 중심상가 지역 일부를 주거지역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물론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이다. 여느 지자체에서도 시도되지 못했던 것을 경주시가 전국 최초, 세계 최초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 기고에서 자세한 방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경주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걱정이 있다. 원도심에 살던 이들은 대부분 시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빈 가게는 늘어나고 외지인만 넘쳐난다. 자꾸만 비어가는 과거의 번성했던 곳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느낌이다. 뭔가 혁신적인 것이 필요해 보인다. 내년도 도시혁신박람회에서는 도시재생에만 한정되지 않고, 여러 분야가 힘을 합친 성과로 전국을 놀라게 할 혁신적인 사례가 소개되는 순간을 개인적으로 상상해본다.
이태원 참사를 듣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에 착잡하다. 안타까운 현장이 반복되어 보도되는 만큼 그 현장에 있었거나, 혹은 변을 당한 이들의 부모나 형제, 친척의 마음들이 사무치게 다가와서 며칠 복잡하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에 대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동질감을 느끼는 대한민국으로 더더구나 남의 일이 아니다. 사후 약방문이라고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고, 사고 책임자를 색출하려는 시도 또한 만만찮다. 필자는 이 논의에서 좀 벗어나 핼러윈데이가 우리 문화로 정착되어 가는 듯한 분위기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생소한 듯하면서 생소하지 않은 핼러윈데이, 도대체 어떤 날이기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기쁨에 넘쳐 거리로 달려 나가게 했다는 말인가? 한 나라의 문화가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마음과 생각과 몸에까지 스며들어 무의식중에 그 문화 속에서 집단 혹은 자신만의 창조물을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그 문화 속에서 하나하나를 보면 매우 개성적이고 남과 다른 특별함을 느끼겠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공통분모를 이루며 거의 일치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문화다. 우리의 명절은 아름다운 문화로 기억되기보다는 어느 순간 제사, 노동, 시댁이라는 단단한 부정적인 키워드로 무장된 변화되지 못할 폐단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사고의 고착은 부부 갈등의 원천이기도 하다. 부부 즉 남녀 간의 존중과 평등이 아닌 한쪽의 희생으로 몰아갔던 구시대의 잘못된 사고가 결국 명절을 기점으로 갈등이 폭발되고, 급기야 기성세대를 비롯하여 MZ 세대들까지 긴 휴가로 변질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핼러윈데이는 북유럽 켈트족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미국으로 넘어간 켈트족 거주지역 아일랜드 및 스코틀랜드의 미국 이민자들이 벌였던 소규모 축제가 점차 미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정착되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나라의 청소년과 MZ세대들이 핼러윈데이를 축제로 여기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의 Z세대들은 유아기의 교육기관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교육받고 자란 세대이다. 게다가 조기 학습 열풍은 영유아기에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도입하게 했고, 그 언어에 묻어 영어권 문화가 유입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는 10월 31일, 핼러윈데이가 공식 축젯날이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퍼포먼스에 핼러윈데이의 가면은 매우 적합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짐작된다. 거의 13~4년 동안 핼러윈 문화에 노출되고 즐기도록 교육기관에서 공식적인 날로 만들었다. 또한 사설학원에서의 핼러윈 축제 분위기는 더욱 화려하다. 사설학원의 의존율이 높은 우리나라로 볼 때 우리 아이들이 핼러윈데이가 우리의 축제처럼 여기는 것은 매우 당연해졌다. 생각해보자. 전국이 같은 날에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날, 흥분되지 않았을까? 이것은 지역을 불문하고 공통된 주제가 되어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재미도 있다. 이는 축제로 정착되는 요소를 전부 포함하고 있다. 존중과 함께 참여하기는 힘들지도 모르는 노동조차 행복한 축제의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세계의 많은 축제는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행사의 준비와 마무리, 그리고 많은 양의 음식이 제공되어야 하므로 노동을 수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축제들은 왜 없어졌을까? 흥이 많아 일 년에 24절기를 만들고 명절을 만들어 마을 단위, 가족 단위로 함께 하는 축제를 즐겼던 우리의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지자체에서 보여주기로 이루어지는 행사로만 남아 있다. 축제와 행사는 다르다. 축제는 같이 준비하고, 같이 참여하고, 같이 마무리하는 것이지만 행사는 어떤 주관업체가 행사를 위해 대행하는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는 관객으로 동원되어야 하는 ‘사람들’ 일뿐이다. 우리의 축제가 사라지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기다려지고, 준비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축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슈만(R.A.Schumann/1810-1856)의 아버지는 출판업자였다. 그래서 슈만은 어릴 적부터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음악적 재능도 출중했다. 하지만 음악을 전공할 순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1826)하자, 어머니는 보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법학을 전공하길 원했다. 슈만은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법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수소문 끝에 비크(Wieck/1785-1873) 교수의 제자가 된다. 그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맹렬히 피아노 연습을 했다. 또래였던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른손에 마비가 왔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리한 피아노 연습이 그만 화를 부른 것이다. 슈만은 아쉽게도 20대 초반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는다. 그리고 작곡과 평론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슈만은 낭만주의 작곡가일 수밖에 없다. 그의 문학적 내공과 음악창작능력의 결합은 최고의 낭만주의 작품을 잉태해냈다. 그의 부친 덕분이다. 그리고 슈만은 음악신보를 창간(1834)한다(이 잡지는 현재도 발간되고 있다). 그는 이 평론지를 통해 신예음악가 발굴에 큰 공을 세웠다. 베를리오즈, 쇼팽, 브람스 같은 쟁쟁한 음악가들이 슈만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집경전(集慶殿)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한 전각을 뜻하며, 임금의 초상을 모신 공간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어용전(御容殿)․쉬용전(晬容殿)․태조진전(太祖眞殿)․집경전(集慶殿) 등으로 불렸다. 『연려실기술』을 보면, 태조의 어진을 모두 5개 장소에 봉안하였으니, 송경(松京)의 목청전(穆淸殿), 서경(西京)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동경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이다. 사가 서거정(1420~1488)의「경주부객관중신기(慶州府客館重新記)」를 보면, 세종 때에 태조의 영정을 집경전(集慶殿)에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경주읍성 내 경주여자중학교 자리에는 집경전 터와 비석 그리고 하마비 및 여러 석물이 산재하였다. 비석에는 [崇禎紀元後三戊午四月日立]이라 각석되어 1798년 4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고, 하마비(下馬碑)에는 [대소인원하마(大小人員下馬)]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경주읍성전도] 그리고 [집경전구기도]를 통해 그 위치와 규모를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 세종년간의 집경전 원형은 알 길이 없는 실정이며, 경주에 집경전이 설립된 배경은 아마도 역대 왕조의 도읍이었던 평양․개성․경주 등의 이점이 작용한 듯 보인다. 집경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동경통지]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하지만 조선후기의 기록이 지배적이며, 경주읍성의 객관 북쪽에 위치하였다는 것이 정론이다. 태조 7년(1398) 3월에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偰長壽,1341~1399)를 보내어 임금의 진영(眞影)을 계림부에 봉안하였다. 임금이 유후사(留後司)에서 형조전서 이귀령(李貴齡,1346~1439) 등에게 명하여 일을 보게 하였다. 태종 12년(1412) 11월에 계림의 어용전을 태조진전이라 고쳐 불렀다. 세종 24년(1442) 6월에 경주의 영전에 집경전 칭호를 내리고 각기 전직 2인을 두게 하고, 세종 25년(1443) 11월에 의성군(誼城君) 용(容)을 보내 태조의 수용(晬容:초상)을 경주 집경전에 봉안하게 하였다. 성종 25년(1494) 3월에 집경전 전사청(典祀廳)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임금의 초상을 관리하는 방식을 궁리하였으며, 이후 임진왜란에 강릉으로 옮겨 보관하였다고 전한다.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의 「용사일기(龍蛇日記)」를 보면, 8월 2일 참봉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1545~1607)과 함께 집경전에 모신 강헌대왕의 수용[초상]을 수운전에 임시로 봉안하였다(同參奉鄭士誠 權奉集慶殿康獻大王晬容于水雲亭). 8월 4일 수용을 모시고 예안으로 향하였다(陪晬容 向禮安). 8월 5일 죽장에서 묵었다(宿竹長). 8월 7일 봉사 이영도(자 성여) 서당에 도착해 오른쪽 방에 봉안하였다(到李奉事聖與詠道 書堂 奉安于西室). 이후 8월 14일 다시 수운정으로 돌아와 전투에 참가하였다고 전한다. 왜놈이 쳐들어와 경주부가 위태해지고 태조의 수용 역시 화를 당할 지경에 처하자 참봉과 부윤 등은 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강릉의 집경전도 화재가 발생해 영흥의 준원전으로 영정을 모사하여 다시 강릉에 봉안하였고, 임란 이후 경주를 떠난 태조의 수용 역시 고초를 겪는다. 이때 이후부터 경주의 집경전은 건물이 소실되고 기능이 상실되어 공허한 적막감을 안고 경주읍성의 한 곳에서 지금도 쓸쓸히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정조 20년(1796) 11월에 집경전의 옛터에 문소전(文昭殿)의 예대로 비석을 세워 기록하라고 명하고, 1798년 4월에 집경전의 비각 건립을 감독한 경주부윤 류강(柳焵.재임기간 1797.07~1798.06)에게 표피(豹皮)를 내려주고, 장교와 공장(工匠) 등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라고 명하였으며, 11월에 비각을 완성하였다. 미뤄보면 집경전은 태조년간에 임금의 초상[어진(御眞)]을 모셨고, 세종년간에 집경전이 개수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양좌동 수운정과 예안을 거쳐 강릉으로 옮겨진 역사적 사실은 경주시민들도 알아야 할 문화상식으로 판단된다. 황량(荒涼)히 돌구조물만 남은 지금의 집경전 터에는 근거 없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 태조의 초상화는 여전히 경주에 남아 있지 않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나 역시 아이들 교육에 관한 많은 공부를 했고, 고민을 거듭하고 생각했다. 조카들을 키울 때부터 시작된 고민은 엄마가 되면서 점차 깊어졌고 절박해졌다. 많은 책과 강연, 자료들을 찾아다니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린 나의 결론은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줌마의 결론이 생뚱맞은가?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창의성과 융합, 공감 능력은 사람(친구)들과 만나고 놀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람들과 밖에서 자유롭게 뛰놀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스마트 게임도 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놀이의 개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아줌마는 생각한다. ‘혼자 노는 게 노는 건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할로윈의 기쁨을 만끽하려 이태원을 방문했던 많은 젊은 친구들이 어이없게도 생을 마감한 일이었다. 십대의 젊음을 오롯이 책상 위에서만 보내는 것을 추구하던 삶에서 20대가 되었을 때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전, 나 역시 대입을 마쳤더니 어느 날 갑자기 20대가 되어버린 나이에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 즐겁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놀 줄도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이태원의 젊은 친구들 역시 그 놀거리의 목마름으로 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맞벌이 부부라서 돌봄 공백으로 인해 학원으로 시간 돌려막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의 불안감으로 인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학원을 몇 개씩 다니고, 놀 시간은커녕 잘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놀이는 창의적이다. 아이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놀이기도 하다. 어른은 최소한의 안전지킴이로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간혹 놀이터에서도 스마트폰을 갖고 게임을 하며 미끄럼틀을 장악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면 아줌마는 한소리한다. ‘놀이터에서는 몸을 쓰고 놀자, 하고 싶지 않으면 의자에 앉아서 하면 좋겠다. 이곳은 다른 친구들이 놀아야 하는 곳이니까’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다른 집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줌마는 믿는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같이, 어른들이 같이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한소리하는 아줌마로 살아간다. 또 그렇게 살다보니 쭈뼛쭈뼛하던 아이들도 선뜻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고, 미끄럼틀 터널 위를 위험하게 올라갔던 아이들도 아줌마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내려온다. 자전거를 위험하게 타는 아이들을 혀를 차며 못마땅하게 보던 다른 어른들도 이제는 아이들을 불러 조용히 타이르신다. 처음에는 남의 집 아이에게 괜히 한소리했다가 얼굴 붉히는 일이 있을까 주저하셨지만 아줌마의 오지랖이 여기저기 생긴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놀이터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위험한 행동을 주저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처음에는 기구를 이용해서 단순히 놀다가 아이들이 모이면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낸다. 한 어린아이가 울면서 소동이 일어나면 그 아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어린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게임을 한다든가, 돌아가면서 동생들을 따로 놀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 아이를 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것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두뇌를 쓰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점을 모색하고 약한 아이를 배려하는 것까지, 결코 책상 위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발전시켜나간다.
쉬웠다, “고품격 서평처럼 쓰지 마시고요. 좀 쉽게 써주세요”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근데 어려운 숙제였다. 쉽고 재미있게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처음부터 책을 읽는 일이 즐거웠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나보다. 여름 방학이라 공부는 뒷전이고 마을 개울가에서 노느라 얼굴 색깔은 까마귀와 비슷한 시절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멱감을 요량으로 보리밥을 미어터지게 넣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아침 먹었거든 같이 나가자며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학교로 갔다. 국민학교에서 근무하셨던지라 학교 도서관에 나를 내려주시며 집에 갈 때까지 책 한 권이라도 읽고 그 내용을 들려줘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고 고른 책이 앙드레 모로아의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였다.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같은 어린이 잡지, 그것도 만화로 된 별책 부록밖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는 거의 글뿐인 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재미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바위 구멍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세계인 뚱보 나라와 키다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며 겪는 뚱뚱한 형 에드몽과 날씬한 동생 체리의 모험담이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의 주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고나서야 이 책에는 타인을 보는 시선, 외모에 대한 집착, 자존감, 전쟁에 대해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이해관계 등 많은 풍자와 위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작가도 같은 문고집에 단편이 실렸던 아나톨 프랑스로 오해하고 있었을 만큼 에드몽과 체리에만 푹 빠져 있었다. 비슷한 재미를 찾아 도서관의 독서 카드 뒷면을 메워가던 나의 독서 습관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에 도통 취미가 없다는 아이들을 만나면 지금도 이 책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불행히도 절판되어 운 좋아야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이 되어버렸다. 사람에게는 몇 개의 필터가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불리하고 나쁜 것은 걸러버리는 필터, 걸러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세월의 필터 등등. 신영복 선생님은 ‘마지막 강의 담론’에서 설득하거나 주입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므로, 남을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설령 설득한다 치더라도 그 생각이 언제나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강의의 상한은 공감이라고 한 것 같다. 선생님이 담론에서 언급했던 노인 목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분 성함이 문도득입니다. 길 도자, 얻을 득자입니다. 이름 때문에 도둑이 되었다고 불평했습니다. 왕년 목수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집을 그렸습니다. 땅바닥에 나무 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놀랐습니다. 집 그리는 순서 때문이었습니다. 주춧돌부터 그렸습니다. 노인 목수 문도득은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는 순서가 지붕이 먼저건, 주춧돌이 먼저건 그리는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나도 모르게 지붕부터 그리면서 다른 이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지붕부터 그려야 한다고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내 인생에서 생각나는 한 권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고품격 서평처럼 쓰지 마시고요” 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책을 아주 논리적으로 써보리라는 나의 엄큼함을 기자는 알고 있었던 걸까? 처음으로 돌아가 봤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게 된 계기는 그저 재미였다. 감동도 지식도 무엇도 아닌 그저 재미, 나머지는 그 이후에 생긴 결과물이었다. 내 인생에서의 한 권의 책 모르겠다. 그저 시작은 ‘뚱보와 마른보’였다. 변성희 한국관광정보정책연구원 원장
황실에 막중한 영향력을 가졌던 지통천황이 건설한 등원경을 버리고 새로운 수도 평성경으로 천도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평성경(平城京) 천도를 둘러싸고 주의 깊은 배려가 있었다. 등원경(藤原京)을 폐기하지 않도록 했고, 또다른 조치로 새로운 도읍인 평성경(平城京)과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샤머니즘적 방안까지 강구되었다. 이것은 저승에 가 있는 지통천황의 노여움을 방지하는 일방, 그녀의 정통성을 대대로 승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80번가> 青丹 吉 寧樂 乃 家 尒 者 / 萬代 尒 / 吾 母 將 通忘 / 跡念 勿 “푸르고 붉게 화톳불이 켜진 평성경, 남녀노소 편안하리라. /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 등원경과 평성경을 왕래하는 수고로움을 생각지 않으리라. / 지통천황의 공적을 잊지않으리라”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작품 속 이 구절이 당시 천황가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도읍으로 옮겨 가며 그들이 행했던 주도면밀한 조치를 살펴본다. 천도를 하지만 등원경과 평성경 두 곳은 매우 가까운 곳임을 강조하고, 두 곳 중간중간에 수많은 집을 지어 마치 두 도시가 이어지는 것처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남녀를 선발하여 두 도시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토록 조치하였다. 이것은 두 도시가 한 도시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새로운 도읍 평성겸(平城京)에는 붉은 깃발을 매달아 놓도록 했다. 붉은 색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이 임신의 난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군사들로 하여금 사용하게 했던 색깔이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이 붉은 색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의 상징색이 되었다. 단절을 막고, 정통성을 잇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샤마니즘적 조치가 뒤를 이었다. 이로써 본 작품을 지은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통천황의 공적을 잊지않으리라.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지통의 후손들은 향가의 힘을 동원해 자신들만이 독점적으로 만대를 이어 황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향가는 자신들의 염원을 이루어지는 마력의 힘을 가진 주술가였고, 황위를 보장했던 도구였던 것이다. 지통천황의 후예들은 향가의 힘에 의해 자신들이 황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향가집이었던 만엽집을 만들고, 향가집의 힘으로 소원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고대인들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의 노래였던 향가는 한편의 작품으로도 천지귀신을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여러 편의 향가를 한 곳에 묶어 놓으면 향가가 가진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향가에서 8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80은 무한대를 말하는 숫자다. 만엽집의 만은 1만이 아니었다. 무량의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