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지난해부터 본격 추진한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을 올해는 환경개선, 활성화, 조직강화 등 3개 부문, 16개 사업을 중점 시행한다. 시는 중심상가 일원에 총사업비 80억원 중 올해는 23억700만원 예산을 들여 이들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시는 먼저 지난해 1차년도 사업을 토대로 더 좋은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상권으로 ‘신라의 빛, 맛, 멋’으로 재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중심상권을 기존 의류·잡화 중심 구조에서 차별화된 콘셉트 투어가 가능한 상권으로 변모시킬 계획이다. 또 황리단길과 대릉원을 연계한 방문객들의 동선 확장과 장시간 머무를 수 있는 문화적 소통공간도 조성한다. 3개 부문 사업 중 환경개선은 ‘신라의 빛 광장’과 ‘금리단길 디자인거리 조성’을 테마로 진행한다. 이는 신라대종 및 원효로 일원에 야간 경관개선을 위해 감성조명 설치와 휴게공간 조성 등 중심상권의 랜드마크 공간 확보가 핵심이다. 또 활성화는 ‘골목길 매니지먼트’와 ‘스타점포 개발’ 등 사업으로 업종전환 희망 또는 예비창업자들에게 트렌드에 맞는 상품개발과 점주모집, 인테리어 등 컨설팅을 지원한다. 이어 ‘금리단 아트페스타’와 ‘거리예술위크’는 중심상권의 콘텐츠와 어울리는 축제와 거리공연 등의 이벤트를 제공한다. 특히 지난해 눈길을 끌었던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은 올해 지역에 걸맞은 다채로운 음식 판매를 유도해 경주만의 특화된 야시장으로 안착시킬 계획이다. ‘금리단 브랜드개발 사업’도 통일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디자인과 스토리를 적용해 선보인다. 또한 ‘금리단 역량강화’를 목적으로 협동조합 설립지원과 상인 공동체 역량강화, 상권활성화를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한다. 시는 2차 연도 사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5차 연도까지 시너지 효과와 지속성 강화를 위한 기반을 다질 계획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상권 활성화를 위해 상인참여와 의식 변화가 필수적이다”며 “지역 내 연계 사업들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추진 중인 대릉원 무료개방이 시행되면 연간 12억5000여만원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시는 세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한 원도심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대릉원 무료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시가 지난 21일 경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회 안건심사에서 확인됐다. 시가 제출한 ‘경주시 사적지 공개관람료 징수 및 업무위탁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이날 심사를 통해 수정 가결됐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병역명문가증을 발급받은 자와 그 가족에 대한 관람료 면제, 천마총 유료화 등이었지만, 정작 주목 받은 것은 비용추계였다. 시가 제출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대릉원 무료개방 후 천마총에서만 입장료를 받을 경우 연간 12억6800여만원의 수입이 감소한다고 예측했다. 지난 2022년 한해 대릉원 입장료 수입 31억7100여만에서 천마총 입장비율을 60%로 가정해 나온 수치다. 반면 현재 경주시시설관리공단으로 위탁운영 중인 대릉원 관리인부가 감소해 인건비가 연간 1770여만원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연간 12억5000여만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주시가 수입 감소에도 대릉원 무료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황리단길과 동부사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대릉원을 통해 도심권역으로 보다 쉽게 유입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심으로 유입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금관총 및 금관총 고분정보센터, 그리고 경주읍성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이를 통해 중심상권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경주시의 복안이다. 대릉원 무료 개방을 위해 경주시는 지난 2021년부터 문화재청과 협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면서 대릉원 정문과 북문 등 2개 출입문 외 대릉원 동편 돌담길에 출입문인 삼문을 신축했다. 또 대릉원 무료 개방의 일환으로 천마총 매표소 설치를 3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이들 사업이 완료되고 이번 조례안을 경주시의회로부터 최종 승인받아 오는 5월부터 대릉원을 무료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 성인 3000원, 12세 이하 어린이 1000원의 대릉원 관람료가 모두 폐지된다. 대신 대릉원 내 천마총은 문화재 보존과 관리 효율을 위해 관람료를 징수한다. 하지만 대릉원 무료개방에 따른 비용추계 결과 세수 감소가 예상됨에 따라 신중론도 제기됐다. 이날 문화도시위원회 심사에서 병역명문가증을 발급받은 자 등에 대한 관람료 면제의 시행 시기를 당초 오는 5월 4일에서 2024년 12월 31일로 연기하는 것으로 수정 가결한 것. 시의회 차원에서 대릉원 무료개방 이후 천마총 입장객 수, 관광객들의 도심 유입 효과 등을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주시와 경주시의회는 향후 세수 감소에 따른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재논의하기로 결론지었다. 이번 조례안은 24일 열리는 제274회 경주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대릉원 무료개방으로 관광객들이 도심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 중심상권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천마총 내 유료 입장객 증가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대릉원과 도심을 연계하는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경주시가 2020년 12월 9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한 ‘대릉원 개방에 대한 시민의견 조사’ 결과 응답자 2357명 중 적극 찬성 913명, 찬성 429명 등 총 1342명(56.9%)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농철 농촌 인력난 해결을 위한 대안인 인력중개센터 온라인 플랫폼이 마련돼 조금 더 쉽게 인력을 구하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구인 농가나 구직자 모두 직접 인력중개센터를 방문해 구인·구직을 진행했지만 이제부터는 온라인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부터 ‘도농인력중개플랫폼(www.agriwork.kr)’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인력이 필요한 농가와 구직자는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가입 후 구인·구직 관련 사항을 입력하면 기존 인력중개센터에서 매칭을 시켜주는 방식이다.
한국의 미와 멋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닮은 달항아리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전통 도자기로 한국의 멋과 미, 문화적 가치를 대표한다. 차 한잔 따뤄놓고 달을 본다. 찻잔에 담긴, 내 안에 담긴 달의 소중한 가치를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자연과의 조화 아래 끊임없이 고민한다. 예술적 가치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위해.
요즘 인터넷과 방송에는 온통 BTS를 비롯한 아이돌 가수들과 무슨무슨 트로트 경연대회로 인한 내용들이 넘쳐나고 있다. 전국의 각종 중요한 축제들에도 이들의 무대는 비싼 공연대가로 초대되고 그만큼 많은 청중들을 불러 모은다. 음악의 현대적 변화와 대중문화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함께 축하하고 즐겁게 여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에 이르면 갑갑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음악인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이런 대단한 소식들이 그저 잠시 반짝하는 뉴스로 그치고, 열렬한 클래식 애호가를 제외하면 일반 대중들의 뇌리에서 그 같은 대단한 소식조차 금방 잊히고 만다. 다양한 변화와 폭발적인 무대 장치를 선보이며 시시각각 변화하고 발전하는 대중문화와 달리 근엄한 복장에 긴 연주시간을 지키는 등 변화보다는 전통을 추구해온 클래식 음악은 그런 면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이라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가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쉽게 변하는 음악이었다면 처음부터 붙여지지 않는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면에서 클래식이 추구하는 전통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의 저변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다양한 연구에서 클래식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안정과 치유를 안겨준다는 결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록 대중들의 인기에서는 다소 멀어졌다고 해도 클래식이 가지는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런 중요한 클래식이 대중에게 점점 멀어지는 데는 정책적인 문제도 있다. 대부분 정책 입안가들은 클래식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게 보고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결해 클래식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심포니 오케스트라 한 팀을 꾸밀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 클래식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는 우스개도 있다. 물론 클래식의 궁극적인 총아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일 수 있다. 실제로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발레, 뮤지컬, 연극은 물론 영화와 합창, 대중음악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기본적인 연주단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아우름의 문제일 뿐이다. 클래식에는 다양한 악단 구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현악4중주, 목관5중주, 금관5중주, 타악기 앙상블, 현악앙상블, 관악앙상블 등은 따로 떼면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악단이지만 이들을 모아두면 거대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다. 꼭 이렇게 악기 종류별로 분류하지 않아도 다양한 종류의 실내악을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지자체들이 큰 공연장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보유하면서도 그 쓰임은 재정형편상 겨우 합창단 운영 정도에서 그치고 그 비싸고 좋은 시설을 대관하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에 걸쳐 무려 225개의 문예회관을 가지고 있지만 몇몇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이들 대부분 문예회관의 쓰임은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한산하다. 그러나 만약 지자체들이 위에서 열거한 각각의 개별 악단들을 따로 운영하다가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교류·통합한다면 비용은 최소화할 수 있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원하는 지자체들이 순식간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고 각각의 지자체 시민들에게 언제건 최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전국적으로 최소한 1~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고 관리하기 어려운 문예회관도 훨씬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외국 음악가들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인들의 면면을 알고 나면 진심으로 놀라는데 그만큼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실력가들이 마땅히 설 자리가 없어 개인 레슨과 떠돌이 연주를 전전하다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기도 하다. 지자체들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바, 이웃 지자체들과 협의해 우선은 작은 악단이라도 한 팀씩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클래식 음악이 제 자리를 잡는다면 다른 장르의 모든 예술이 지금보다 훨씬 탄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은 뻔한 일이다. BTS가 세계를 휘어잡고 트로트가 안방을 환호하게 하듯 우리나라 클래식 역시 조금의 관심만 가져도 대중의 사랑을 훨씬 크게 받을 수 있고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신중하게 고려하기 바란다.
10여년 전에 SNS상에 사우스웨스트항공사의 재미있는 기내방송이 기업의 성공사례 중 하나로 회자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사례는 기업경영에 유머를 접목한 사례로 뿐만 아니라 가족 같은 조직문화에 관한 사례로서 또한 유명했다. 그러나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조금 다른 측면에서 가졌던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 이들이 유쾌하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한때 기업경영에 유머를 적용하는 이론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유머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유쾌한 분위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직원이 유쾌하지 않으면 어떻게 유머를 접목시킬 수 있겠는가. 그 당시의 나 또한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한 직원들에 대한 고민이 있던 시절이어서 무엇이 영상 속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승무원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점에 관심이 갔었다. 조직사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항상 자발적이거나 능동적일 수는 없다. 자발적이거나 능동적인 자세는 기업의 주인이나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흔히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인의식’이라는 말로 바꾸어 주인이 아닌 이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에 임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주인이 아닌 이들에게 주인의식을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이루어지지 않을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것을 다시 일하는 사람의 자발적이거나 능동적인 자세로 표현을 바꾸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표현을 바꾸어도 얻는 결과는 비슷하지만, 그 태도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발성과 능동성을 얻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가장 원칙적인 방법은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일의 가치를 느낀다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소중하기에 자신에게 가치있는 일만이 스스로에게 일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를 통해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사람들에겐 모든 면에서 개인차가 있다. 무엇이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인가를 쉽게, 일찍 발견하는 이도 있지만 이걸 찾기 위해서 평생을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게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무작정 유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안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순서를 바꾸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는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함으로써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지금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거꾸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일의 가치를 인식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실천 방법이지만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둘러싼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해봄으로써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역으로 분별해 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개인의 흥미적성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적중률이 높은 방법이지만, 세상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일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본격 영농철을 맞아 농기계 안전사고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경주지역은 광범위한 농촌지역에다 고령화로 농기계를 조작·운전하는 농업인이 대부분 나이 많은 분들이다 보니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또 사고 발생 시 대처능력도 떨어져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 크다. 특히 농기계 관련 사고가 자동차 사고에 비해 사망률도 높아 농기계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농기계 안전사고가 703건 발생한 가운데 사망 31명, 부상 621명 등 652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히 사고 발생 시기가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봄 영농철에만 전체 사고의 약 30%를 차지했다. 지난해 3월에서 5월 사이에 경북도내에서 209건의 농기계 안전사고가 발생해 사망 11명, 부상 183명 등 총 194명이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또 농기계 안전사고 중 경운기와 트랙터 운전으로 발생한 사고율은 각각 71.8%, 16.1%를 차지했다. 특히 사고 발생 농기계 운전자의 연령대가 70대 이상인 고령이 59%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다. 농기계 사고 사망률은 일반 교통사고에 비해 9배가량 높다. 농기계 사고 발생과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고령의 운전자, 안전장치가 차량에 비해 없고, 안전수칙 및 교통법규 미준수, 열악한 농촌 도로 환경 등이 복합됐기 때문이다. 농촌지역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대부분으로 시력·청력·집중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이 농기계를 운전하다보니 사고가 잦다. 또 기계화 영농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만 안전수칙 교육 등은 미흡한 실정이다. 농촌지역의 여건상 좁은 농로와 급경사지 등 곳곳에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안전사고 발생의 큰 원인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경주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대부분 고령자이다보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더욱 많은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농기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운전자 스스로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관련당국의 안전교육 강화와 현장지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경주시가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5일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15개 국가산단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경주시가 ‘SMR국가산단’ 조성 부지로 이름을 올리면서 그동안 계획해오던 원자력산업 중심의 특화 국가산단 조성이 가능하게 됐다. ‘SMR국가산단’은 사업비 3966억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경주시 문무대왕면 일원에 150만㎡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SMR국가산단은 국내 소형모듈원전 연구개발의 전초기지로 2025년 준공 예정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연계해 전 세계 SMR 시장 공략에 나설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특히 경주지역으로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경주시가 연구용역을 통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SMR국가산단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730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410억원, 취업유발효과 5399명에 달한다. 이 산단이 본격 가동되면 생산유발효과 6조7357억원, 취업유발효과 2만 2779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입주수요 확보를 위한 조사에서 대기업을 포함한 225개 기업에 275만㎡의 입주수요 면적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SMR 관련 기업들이 국가산단 조성에 따라 경주로 입주한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용역결과보다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경주에 제조업 분야 국가산단이 들어오는 것은 ‘SMR국가산단’이 처음이다. 현재 국가산단은 전국 47곳이며, 경북에는 구미 6곳, 포항 2곳, 경주 1곳(월성원전) 등 9곳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정의 의미가 크다. 경주시는 국토부가 지난해 신규 국가산단 후보지 선정 계획을 발표하자 10월 제안서를 제출하고 현장점검, 전문가 종합평가, 산업입지 정책심의위 심의 등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됐다. 그동안 국가산단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기까지 행정력을 집중해 온 결과다. 앞으로 환경영향평가, 예비타당성조사, 관계부처 협의 등 국가산단 지정까지 행정절차를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경주 미래 100년을 견인할 성장 동력으로 꽃 피울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경주부는 신라의 천년고도로 935년 고려 태조년간에 ‘경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동경·계림·동도 등으로 불리며 수많은 시인묵객이 다녀간 명승이자 회재 이언적 등 학자의 고을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영남웅부(嶺南雄府)의 경주는 마땅히 현명하고 부지런한 관리가 부임해 잘 다스려졌으나, 사리사욕·경거망동·부정부패 등 다소 부도덕한 부윤도 있었으니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본다. 성종 2년 1471년 8월 23일에 사헌부 장령 홍귀달(洪貴達)이 “경주부윤 전동생(田秱生. 재임1469.03~1471.09)은 그 첩이 죽자 경 내에 장사지내고 향리에게 재(齋)를 마련하게 하고, 또 돌로 사람의 형상을 설치하고 표석을 세우는 등 폐단을 일으킨 일이 많았으며, 또 성주(星州)의 어떤 여자는 아비가 죽어서 장사도 지내기 전에 전동생이 강제로 취하여 처로 삼았습니다. 사리를 아는 재상으로서 이같이 행동하여 풍속을 더럽히고 허물어뜨렸으니,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주는 큰 고을인데, 부윤이 탄핵을 당하면 관가의 일이 반드시 허술해질 것이니, 청컨대 그를 파직하소서”라며 파직을 청하였다. 전동생은 전흥(田興,1376~1457)의 아들로, 판승문원사, 첨지중추원사, 청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경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풍교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유배되었으며, 형제인 전수생(田穗生) 역시 음서로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근신할 줄 모르고 불의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다가 유배당하였다. 특히 전동생은 왜통사(倭通事) 최웅(崔雄)의 처를 취하여 첩으로 삼고, 최웅의 재산을 다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가 최웅의 족친에게 고소를 당하는 등 사림에서도 그를 비루하고 염치가 없었다고 기록한다. 훗날 홍귀달(재임1486.09~1489.02)은 부친 봉양을 위해 경주부윤을 자청하였다. 명종 8년 1553년 9월 19일에 사헌부에서 “원주목사 이순형(李純亨)은 경주부윤(재임1552.04~1552.12)이 되어서는 관인들을 많이 데리고 금천(衿川)에 오가며 부리면서 집을 지었는데, 관인들이 오래 머물게 되어 옷을 팔아서 먹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실어온 물건들이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일일이 다시 징수하여 받았고, 본 고을의 백성들이 원망하고 괴로워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만일 또 수령을 시킨다면 필시 백성들이 받는 피해가 많을 것입니다. … 모두 파직하소서”라며 파직을 고하였다. 덕수이씨 이순형은 1525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괴산군수·청주목사·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성품이 경박하고 망령되어 가는 곳마다 은혜를 팔아 명예를 구하였기에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추잡하게 여겼다고 기록한다. 선조 7년 1574년 2월 5일에 간원(諫院)에서 “경주부윤 양응정(梁應鼎. 재임1578.02~1578.05)은 인물이 거칠어 앞서 진주목사로 있을 때 청렴하지 못한 일이 많았고, 사람들이 모두 침 뱉고 더럽게 여기니 이번에 모든 백성에게 임하는 관원이 될 수 없습니다. 파직하소서”라며 청렴하지 못하였다는 잘못을 캐물었다. 제주양씨 양응정은 시문에 능하였고, 1540년 생원시, 155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공조참판·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경주부윤으로 재임 중에 진주목사 시절 청렴하지 못하는 일로 짧은 임기를 끝으로 파직되었으며, 1578년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다시 파직되었다가 대사성에 복직되었다. 선조 39년 1606년 6월 29일에 경주부윤 김영남(金穎男. 재임1606.05~1606.07)을 탄핵하는 사간원 상소문을 보면 “김영남은 2품의 수령으로 당초에 탄핵을 받고서도 뻔뻔스럽게 부임하였으니, 후안무치함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부임한 뒤 술에 빠지고 형벌을 함부로 쓰는가 하면 정사를 하급관리들에게 위임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영남의 큰 고을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파직시키소서”라 상소하였고, 그대로 행하였다. 광산김씨 김영남은 157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익산군수·배천군수·죽산부사·황해도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지만, 정사에 치밀하지 못해 배천군수에서 파직되는 등 인물 됨됨이가 용렬하였다. 경주부윤 부임 당시에도 요직의 책임과 탄핵을 받은 뒤에도 부임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영어였다. 수학은 곧잘 하고, 재밌어했지만 영어는 일찍 포기했다. 영어에도 수학과 같은 법칙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단어를 암기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만 집중하고 공부하는 게으름뱅이인 나에게 영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가 그나마 점수 같은 점수를 줬을 뿐, 고입시험, 대입 시험에 영어는 포기한 과목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누굴 닮겠는가, 엄마를 닮지! 나와 같은 꾀에 빠져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낼까 걱정이 앞섰다. 임신하고 영어(교육)에 관한 각종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고 강의, 강연을 쫓아다녔다. 영어를 잘하는 엄마들을 만나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교육할 생각인지 묻고 다녔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바로 여자에서 엄마로, 아줌마의 삶으로 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학 시간에는 손을 들고 자진해서 문제를 풀기 위해 나가던 아이가 영어 시간에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기 영어 교육을 한다고 아이를 타국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둘 효과가 좋은 방법들, 이미 많은 아이가 익힌 방법들을 찾아냈다. 이제는 이 방법을 내가,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걸러내야 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영어 교육의 기준이 생겼다. 스트레스는 최소한, 영어를 자연스럽게, 쉽게 익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줌마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영어는 교육이 아니라 언어로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학교 영어 성적이 좋은 사람들도 다시 어학원을 다니고, 높은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또 토익 학원에 다니는 걸 보면서 이것은 문제라고 인지했다. 아줌마가 원하는 영어는 회화였다. 그러나 회화학원도 다녀보고 문법 책도 공부해 봤지만, 그 과정이 쉽지도 않았고 끝까지 완독도 못 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었다. 엄마표 영어라 불리는 많은 방법도 알게 되었다. 많은 선배 엄마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끝에 엄마가 찾은 방법들로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전파하는 많은 방법이 존재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알맞은 수준의 책을 컨택하는 눈이 있어야 하거나, 엄마가 영어 그림책이나 책을 꾸준히 읽어줘야 했다. 아이도 엄마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던 내게 이 방법은 엄마인 내가 꾸준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나는 게으른 엄마니까!) 또 어떤 방법들은 말만 엄마표 영어지, 집에서 하는 영어학원식 교육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강한 압박감으로 아이를 몰아붙이는 방법들은 거부감이 들었다. (엄마도 이런데, 당하는 아이들은 오죽할까!) 5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지났지만 결론은 없었다. 그 사이에 아줌마는 아이들이 모르는 것에 대한 도전에 망설이지 않기를 바라며 아줌마도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영어 강의를 완강하는 경험을 했고, 처음으로 암기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입에서 영어가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학교를 다녀도 영어를 익히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강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완강을 했어도 여전히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 방법은,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게 또 실망한 순간, 우연히 듣게 된 강연이 있었다. 엄마표 영어로, 엄마는 영어를 못하지만 아이들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그 방법을 책으로 쓰고, 커리큘럼을 만들었으며 그 방법을 전하다보니 그 방법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 효과를 보았고, 그 효과를 본 아이들의 엄마가 이 방법을 다시 전하고 있었다. 유레카! 드디어 내가 찾던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아줌마는 중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영어와 점점 멀어지다가 엄마가 되어 다시금 영어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영어 학원을 석 달도 못 다녔던 사람이 영어 강의를 완강하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고, 성경을 필사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신약은 영어로 필사를 하게 되면서, 영어 문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영어를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미드 프렌즈를 필사와 쉐도잉을 함께 하면서 영어가 들리게 되었다. 영어를 좀 알게 되는데, 이만큼 오는데 삼십 년이 걸렸다.
1813년은 음악사에서 두 명의 천재가 태어난 특별한 해다. 한 사람은 오페라의 왕 베르디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그너다.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가 주도한 19세기 초반의 벨칸토 오페라는 성악 중심의 장르였다. 특히 초절기교의 소프라노는 벨칸토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성악보다 오페라의 내용이 중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리브레토(libretto)라 불리는 오페라 대본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오페라에 두 가지 흐름이 생겨났다. 온건파는 대본이 중요하므로 성악을 자제한 채로 기존 오페라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통성을 이어가려는 베르디가 그러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작품들이 오페라에 대거 원용되었다. 아리아는 여전히 오페라의 중요 구성요소였지만, 벨칸토 오페라만큼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반주기능에 충실했다. 결론적으로 오페라 내용(대본)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지만, 성악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한편, 바그너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바그너에게 대본은 문학(文學)이고 시(詩)다. 대본을 위해 음악은 봉사해야 한다. 그래서 성악이 도드라지는 것을 경계한다. 독창이든 중창이든 합창이든 아리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레치타티보 풍(風)의 노래가 극을 이끌어 갈 뿐이다. 바그너에게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다. 주제를 암시(Leitmotiv)하며 무제한으로 선율을 제공한다. 바그너에게 이러한 종합예술을 음악극(Musik Drama)라 명명했다. 음악극은 기존 오페라의 전통을 무너뜨린 혁신적인 장르였다. 바그너(R.Wagner/1813-1883)는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바그너 가문에 예술과 관계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바그너의 부친인 프리드리히(F.Wagner/1770-1813)가 예술애호가였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었지만 가이어(L.Geyer/1779-1821)라는 화가를 후원했다. 가이어는 바그너의 집에 자주 놀러 와서 바그너의 모친인 요한나(J.Wagner/1774-1848)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훗날 프리드리히가 죽자 다음해(1814년)에 가이어와 요한나는 결혼을 한다. 다소 황당한 일이지만, 바그너의 나이 한 살 때의 일이라 전혀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이어는 어린 바그너에게 예술적 영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비록 바그너가 8살이 되던 해(1821년)에 단명하고 말지만, 살아생전 바그너에게 준 일생일대의 선물이 하나 있다. 당시 드레스덴의 궁정악장이었던 카를 마리아 폰 베버(C.M.von Weber/1786-1826)를 소개시켜 준 일이다. 어린 바그너에게 베버는 영웅이었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단연 최고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8살 소년 바그너는 베버의 기념비적인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년 초연)를 피아노로 연주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버와의 인연도 오래가지 않았다. 베버가 40세의 나이(1826년)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훗날 바그너가 장성하여 드레스덴의 음악감독이 되었을 때(1843년), 그는 베버의 유해를 런던에서 드레스덴으로 옮겨오는 일을 감행했다. 어린 시절 영웅에 대한 바그너의 충정이었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새 지평을 열었던 베버는 비록 독일 오페라사에서는 영원한 2인자가 기록되겠지만, 바로 그 1인자가 바그너이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접하게 된 계기 마키아벨리는 15~16세기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한 경험과 고대 위대한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고찰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피렌체의 군주에게 헌정하였고, 그 책이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은 후세에 호불호(好不好)가 갈리고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사상가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고뇌, 욕망도 솔직하게 글로 담았기에 그 사상이 먼 후세까지 회자되고 있다고 본다. 나는 1989~1991년 고등학교 시절 조철제 선생님(현재 경주문화원 원장님)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는데 귀한 가르침을 많이 얻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당시 민주화라는 주제를 접하면서 ‘정치(政治)란 뭘까?’라는 생각을 늘 품었는데 마침 한문 수업 중 공자님 말씀에 ‘정치(政治)는 바르게 하는 것(政也)’이라는 아주 간명한 답을 들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치가 참 단순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열심히 배우면 정치가 뭔지, 그 방법도 찾을 수 있고 실행할 수 있겠다 싶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필독서로 만나게 되었고,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공자님 말씀을 되새겨보니 나에게 배움,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사고를 배우며 마키아벨리는 우유부단한 중립은 어떤 감사나 명예도 얻지 못한 채 파멸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승자는 자기를 돕지 않았던 자를 동맹으로 원하지 않을 것이고, 패자는 당신이 공동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공동체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와닿는 현실적 이야기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읽는 독자에게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주입한다. 나는 사법고시 합격 후 2006년부터 변호사로 현실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마키아벨리는 법이라는 인간의 방법과 힘이라는 짐승의 방법을 모두 이용할 줄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대선배님인 이정락 변호사님(전 서울형사지방법원장, 경주고도보존회 회장)께서 가르쳐주신 ‘변호사는 기다리는 직업이다’라는 말씀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늘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운(fortuna)이란? 마키아벨리는 ‘운(fortuna)’을 ‘여성’으로 언급한다. 운명은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을 덮치며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경주에 깊은 애정을 갖고 계시는 신평 변호사님(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께서 윤석열 대통령님의 대통령 후보 시절 만나서 “정치인의 제일 중요한 덕목이 무엇입니까?” “‘운’입니다”라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신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운명과 조화를 이루어 성공할 것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유럽, 이탈리아의 역사에서 정치적 해법을 찾았지만 우리는 신라, 경주의 역사에서 정치적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 군주론은 나에게 학문적 현실적 과제로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그 과정에 군주론 이상의 지혜를 갖고 계시고 알려주시는 훌륭한 분들이 내 옆에 계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박진철 변호사 : 경주고 출신의 서울 출향인. 고교시절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워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황우석 박사의 ‘개 복제기술과 관련한 특허권’ 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법조계의 유명인사로 주목받은 바 있다. 경주고도보존회 이사로 오래 활동했으며 경주고도시민연합을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은 바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범죄피해자 지원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대국민 봉사에도 앞장섰다.
경주시가 심각해지는 취업난과 코로나19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으로 불안, 우울감, 무기력을 경험하는 청년들을 위해 심리 상담서비스에 나선다. 시는 마음건강을 위한 상담이 필요하거나 스스로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어 고민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문심리 상담 서비스인 ‘청년마음 건강지원사업’ 을 추진한다. 지원대상은 만19세 이상 34세 이하 지역 청소년이다. 총 35명을 모집해 기본 3개월(10회)간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유형은 크게 두 종류로 A형(1회당 6만 원 중 자부담 10%)은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다. 또 B형(1회당 7만 원 중 자부담 10%)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상담 서비스이다. 신청은 이달 20일부터 24까지 주소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로 방문신청 하면 된다. 시는 자립준비청년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연계한 청년에게 우선적으로 이용권을 제공할 방침이다.
경주시가 청소년합창단 신규단원을 오는 24일까지 추가모집 한다. <포스터> 모집 대상은 지역 내 10세 이상 청소년이다. 음악적 기본소양과 노래 실력을 갖추고 연습에 성실히 참여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응시 가능하다. 원서는 지원서류를 작성해 청소년수련관으로 방문 또는 이메일(ju3130@korea.kr)로 제출하면 된다. 오디션은 이달 26일 오후 3시 청소년수련관 회의실에서 가창 실기와 면접을 거쳐 최종 10명 내외로 선발한. 최종 합격자는 29일 경주시청소년수련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청소년 수련관홈페이지 또는 경주시 아동청소년과 청소년활동팀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청소년합창단 정기연습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6시에 진행되며, 공연 일정 및 대회 참가 상황에 따라 연습 일정이 변경되거나 추가될 수 있다.
경주시 청소년 2023 봄학기 특기적성 교육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 <포스터> 모집과정은 드론항공, 융합코딩, 뮤지컬, 영어 스피치, 푸드테라피, 화랑문화탐방 등 44개다. 참가대상은 지역 거주 청소년 및 성인(화랑문화탐방에 한함)이다. 접수는 20일 오전 10시부터 23일 오후 6시까지 경주공공서비스예약(인터넷)을 통해 선착순 마감된다. 다만, 수강료가 감면되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시설 아동은 16일부터 17일까지 청소년수련관 방문 혹은 전화로 우선 접수해야 한다. 수강료는 청소년 3만원, 성인 6만원이다.본격적인 교육은 이달 25일부터 6월 18일까지 3개월 과정으로 진행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청소년수련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고하거나 경주시 청소년활동팀에 문의하면 된다. 김희경 아동청소년과장은 “앞으로도 청소년의 창의력 향상 및 자기개발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특기적성교육은 청소년 잠재력 개발은 물론, 긍정적인 또래 관계를 형성에 도움을 줘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도시 풍경 작년 9월, 고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돌아가시기 전 거주하신 궁전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할리루드 궁전’으로, 당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궁전입니다. 나는 지난 유럽 가족여행 때 운 좋게 이곳을 관람한 적이 있어, 여왕의 서거로 인해 그 궁전을 회상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에딘버러는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쪽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면 이곳의 중세 전통적인 풍류를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이 들리는 곳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 관광지인 에딘버러성에서 ‘로얄마일’거리를 지나, 끝쪽에 있는 궁전이 ‘할리루드 궁전’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지요. 옛날 왕과 귀족들만 통행하든 길로, 길이가 1마일정도 된다고 하여 로얄마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걸어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거리로 전통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와 현재 서구문화가 겹쳐있는 느낌을 받아요. 아담스미스 동상, 스콧 기념탑이 있고, 왕관처럼 생긴 성 자임스 대성당도 있습니다. 거리에는 킬드 차림의 전통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천연색의 비누방울을 불어 날리며, 곳곳마다 거리마법사들이 마술을 자랑하고 있어, 마치 마법의 고장에 온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해리포트의 작가 JK.롤랭이 그 최초의 집필 장소로 여기를 택한 것은 이런 마법 요술적인 분위기가 이 도시에 배어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로얄마일거리 주변에 있는 칼튼 언덕에 오르니, 아테네 신전같은 대리석 구축물이 덩그렇게 서 있고, 나폴레옹 전쟁 때 죽은 장병들의 추모탑이 아직껏 남아 있으며, 200여년 전에 건립된 넬손 제독의 추모탑도 북해를 향해 서 있었습니다. 할리루드 궁전관람 영국왕실의 하계휴양지인 이 궁전은 1128년 데이비드 1세 때 건립된 궁전으로 에딘버러 할리루드 공원 옆에 있습니다. 좌우 대칭 건물로, 처음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짊어진 십자가를 보관하던 곳(홀리루드 사원)을 찾는 귀족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고 하고, 그후 16세기부터는 스코틀랜드 왕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곳은 메리여왕(1542-1587)이 좋아했던 궁으로 유명합니다. 궁전 내 메리 여왕 갤러리에는 여왕과 역대 왕의 초상화, 금장식, 옷 등 유류품이 보관되어 있고, 식탁에는 당시 그녀의 그릇 소품들이 세팅되어있어요. 궁 주변에는 옛 수도원이던 낡은 건물이 바깥 정원과 잘 어울려 오히려 옛 교회처럼 보이고, 궁전 근처에는 푸른 잔디밭에 산책길이 있습니다. 이 궁전은 건물 자체가 우아하며, 여성적인 분위기에 화려한 프랑스식 건물로 주변에는 할리루드 공원이 있어요. 할리루드 공원에서 에딘버러 시가지를 보다 할리루드 궁전에서 이어지는 엄청 넓은 녹색 잔디밭이 장관입니다. 궁전을 지나 큰 공원 안에 ‘아서시트’라는 해발 200여미터 정도의 높은 언덕이, 산처럼 넓게 펑퍼짐하게 들어차 있어요. 궁전에서 가까워 많은 시민들이 놀러 오는 힐링공원인데, 언덕에는 트래킹 코스가 있습니다. 이 코스 둘레를 돌면 에딘버러 시가지를 180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사람들이 항상 많다고 합니다. 우리도 아서시트 언덕을 오르다가 잔디밭이 좋아 그냥 한참이나 놀고 왔어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기습침략 교란할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에 남침용 군사 통로(땅굴)를 만들었다.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땅굴은 총 4개이며, 발견된 땅굴은 순서에 따라 제1, 제2, 제3, 제4땅굴로 명명되었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육군 수색조가 수색 임무를 수행하던 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발견하였다. 높이는 1.2m, 너비는 90cm, 지하 2.5∼4.5m, 길이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또 1975년 3월 19일에 강원도 철원군 근등면 북한 군사분계선에서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 지하 50∼160m인 제2땅굴을 우리 군과 주한 미군의 공병대가 탐사하여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1978년 10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의 DMZ에서 남쪽 400m, 판문점 남방 4km 지점에서 너비와 높이 2m, 길이 1635m, 깊이 73m인 제3땅굴이 발견되었다.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에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동북쪽 26km 지점에서 북한군들이 뚫어놓은 4번째 땅굴이 발견되었다. 제4땅굴은 군사분계선 남쪽 1502m 지점에 폭 2m, 지하 145m, 전체 길이 2052m임을 확인했다. 국군은 역 발굴 작업으로 땅굴의 탐색을 시작하였고, 이듬해인 1990년 3월 3일에 북한군의 땅굴과 관통되자 땅굴 내부 수색 및 북한군 소탕 작전을 계획하였다. 제1땅굴 수색 및 북한군 소탕 작전으로 북한이 매설한 폭발물에 의하여 국군 장교 1명과 미군 장교 1명이 순직하고 6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제2땅굴 수색 작전에서는 김호영 중사 등 8명이 북괴가 설치한 부비트랩에 의해 순직했을 정도로 땅굴 수색 작업은 대단히 위험한 작전이다. 제4땅굴을 탐색하기 위한 수색 작전에는 국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수색팀과 군견 한 마리가 참여하였다. 이 군견이 ‘헌트(Hunt dog)’이며 저먼 셰퍼드 품종으로 당시 나이는 4살이었다. 헌트의 임무는 수색대원들보다 앞서 땅굴로 들어가 북한군이 설치한 부비트랩과 폭발물, 유독가스 유무를 사전에 확인하여 수색대원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헌트는 나무가 우거진 산악지대에서 단숨에 목표물을 찾아낼 수 있으며, 시속 60~70km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훈련된 군견이었다. 헌트(Hunt)는 수색대와 함께 제4땅굴로 진입하였고, 수색대원들보다 한발 앞서 군사분계선 근처까지 접근했다. 군사 분계선을 330m 앞에 두고 대원들은 헌트(Hunt)의 이상 행동과 움직임을 포착하고 수색을 중단하였지만, 헌트(Hunt)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땅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헌트(Hunt)는 축축하고 어두운 땅굴 속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폭발물의 화약 냄새를 맡고 이를 대원들에게 알리려는 순간에 북한군이 설치한 또 다른 목함지뢰(1930년대 말에 소련에서 개발한 나무상자 안에 TNT 폭약과 같은 폭발물이 들어있는 지뢰)를 밟고, 1990년 3월 4일 12시 05분 그 자리에서 산화하였다. 만약 헌트(Hunt)가 앞서 나가지 않았다면, 밀폐된 공간에서 부비트랩이 설치된 폭약이 폭발하여 수색대 분대원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을 것이다. 장렬한 산화로 임무를 수행한 헌트(Hunt)는 1990년 4월 1일 유해가 수습되었고, 제4땅굴 앞에 묘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죽음으로 장병들을 구하고 조국을 위해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仁憲武攻勳章 : 우리나라 5등급 무공훈장이며, 전투에 참여하여 용감하게 싸운 공적이 뚜렷한 유공자에 수여하는 훈장이며, 인헌(仁憲)은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시호이다.)’을 받고, 군견으로써는 최초로 ‘소위’로 추서되었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석탑이 정말 우뚝하여 (石塔正嶙峋) 우러러 보니 잡고 오르기 어렵네 (仰看難躋攀) 층층이 봄풀들 자라나고 (層層春草長) 계단마다 이끼 꽃이 아롱지네 (級級蘚花斑) 텅 빈 굴엔 원래 불상이 없었고 (空洞元無佛) 호위하는 사천왕상 남만족 같네 (訶撝像似蠻) 아득한 천 년 전의 옛일 (悠悠千古事) 일취몽에도 미치지도 못하네 (不及一炊間)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학자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쓴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이란 시다. 김시습은 이 시에서 당나라 고사 ‘일취몽’(一炊夢)을 통해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했다. ‘일취몽’은 소년 노생이 도사 여옹의 베개를 빌려 베고 잠이 들어 부귀영화를 누리며 80세까지 산 꿈을 꾸었는데, 깨어보니 아까 주인이 짓던 조밥이 채 익지도 않았더라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 김시습이 노래한 분황사 석탑은 이 절을 대표하는 유적이자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이다. 634년 분황사 창건당시 건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탑의 정식이름은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이다. 전탑(塼塔)은 흙벽돌을 구워 쌓아 올린 탑을 뜻한다. 반면 모전탑(模塼塔)은 벽돌로 쌓은 전탑을 모방해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이다. 모전탑인 분황사석탑의 돌은 검은 회색을 띠는 안산암(安山巖)이다. 전탑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불교가 탄생한 인도에서 시작했으며 지금도 유적이 인도 곳곳에 남아 있다.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도 전래됐는데 숭악사 12각15층탑(523년 조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 통일신라 때 전성기를 맞았고 고려시대에도 건립됐다. 그사이 전탑을 모방한 모전탑이 등장했다. 모전탑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탑의 양식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우리나라 불교 탑의 발전 양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탑의 발달은 대체로 목탑, 석탑의 순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신라는 특이하게도 전탑과 모전석탑이라는 과도기적 과정을 거쳐 석탑으로 발전해 간다. ‘삼국유사’ 양지사석(良志使錫)조에는 신라 최고의 예술가였던 승려 양지를 소개하면서 “영묘사(경주 서악동에 있던 사찰)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 전탑의 기와, 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불교의 여덟 수호신)과 법림사(안동 운흥동에 있던 사찰)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그(양지)가 만든 것이다. 이외에도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다.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모전탑)를 만들었고,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양지가 모전탑을 처음 세웠는데 그 이전에 전탑이 존재했고 이 탑과 탑에 쓰인 기와를 양지가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기록은 전탑이 모전탑을 앞서는 증거로 인용된다. 대표적 모전탑인 분황사탑이 7세기 전반에, 대표적 전탑인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1세기 가량 늦은 8세기에 조성된 것을 볼 때 ‘전탑-모전탑’의 순서는 대체적 경향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돌 다루는 기술이 앞섰던 백제는 전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목탑에서 바로 석탑으로 옮겨갔다. 목탑 형식으로 쌓은 돌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신라도 통일이후 석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탑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3층까지만 남았지만 ‘모전석탑 백미’ 꼽혀 문화재로 지정된 국내 불탑 492기 가운데 모전석탑은 1.6% 수준인 8기에 불과할 정도로 희소성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분황사석탑은 모전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지만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시습이 ‘분황사석탑’이란 시에서 ‘석탑이 정말 우뚝하여’(石塔正嶙峋)라고 노래한 것으로 미뤄볼 때, 당시만 하더라도 탑은 온전했던 것 같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따르면 분황사 석탑은 임진왜란 때 왜병이 훼손했고, 그 뒤 분황사 스님이 고치려하다가 또다시 허물어뜨렸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5년 해체 수리 때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됐다.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약 13m, 높이는 약 1m 규모다.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몸돌받침을 마련하고 몸돌을 쌓았다. 기단 위 네 모퉁이엔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 한 마리씩을 배치하였는데 두 마리는 수컷, 두 마리는 암컷이다. 해체 수리가 이뤄졌던 1915년엔 기단 위에 모두 여섯 마리의 사자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두 마리는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옮겨갔다고 전한다. 1층 몸돌 4면엔 각각 부처를 모셔두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만들고 문을 달았다. 감실의 문 양쪽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세웠다. 몸돌은 진회색의 안산암을 잘라 각 층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전탑과 비슷하다. 1층은 34~37단으로 이뤄져 있고 2층과 3층의 몸돌은 1층에 비해 높이가 현저하게 줄어든 모습을 하고 있다. 석탑 내부는 큰 돌과 모래, 자갈 등으로 채워져 있다. 지진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해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몇 해 전 경주 지진 때 첨성대가 무너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 1915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탑의 2층과 3층 사이에 있던 석함(石函)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각종 공양구가 발견됐다. 당시 발굴조사보고서가 정식으로 발간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 현황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1916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사진과 도면을 통해 대략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은합(銀盒), 녹유리병 조각, 원반형 수정, 곡옥, 금제귀걸이, 금제장신구, 금은제 바늘, 동제 가위, 침통, 조개껍질류 등이다. 그밖에 상평오수전(常平五銖錢), 숭령통보(崇寧通寶) 등 화폐도 다수 발견됐다. 그 가운데 숭령통보는 1102년에서 1106년까지 중국 송나라에서 사용된 화폐로, 이를 근거로 고려 숙종~예종 대에 이 석탑의 수리가 있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출토 유물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북도가 결혼자금 만들기 프로젝트인 ‘청년근로자 사랑채움사업’을 시행한다. 인구감소와 저출산 극복을 위한 것으로, 중소기업 미혼 청년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는 경북형 미혼 청년근로자 결혼자금 지원 사업이다. 청년근로자가 2년간 월 15만원씩(총 360만원) 저축하면 경북도와 시·군이 공동으로 1년간 분기별 175만원씩(총 700만원) 추가 적립한다. 최종 만기 시엔 1060만원과 이자를 지급하게 된다. 사랑채움사업은 낮은 임금과 안정적인 주거 마련의 어려움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들을 위해 경북도가 시대적 과제로 제시, 문제 해결책으로 마련됐다. 지난 2019년 첫 시행 후 매년 미혼 청년근로자들의 자산형성을 지원해 결혼과 출산율을 높이고, 장기재직 유도를 통해 중소기업의 일손부족을 해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청년복지사업 중 자립기반을 구축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의 만족도가 높다. 지난해까지 약 370명이 참여해 1000만원대의 목돈을 마련, 주거독립과 결혼준비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총 120명의 신규 인원을 모집한다. 지원 자격은 경북도내 주민등록을 두고 같은 지역 중소기업에 3개월 이상 재직 중인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의 만 19~39세 미혼 청년이다. 경북일자리종합센터 홈페이지(www.gbwork.kr)에서 시군별 모집인원 등을 확인해 29일까지 신청하면 된다. 중앙부처와 타 지자체 유사사업(자산형성 지원)에 참여 중이거나 참여했던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박성수 경북도 지방시대정책국장은 “앞으로도 청년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복지정책을 확대해 청년이 살기 좋은 지방시대 경북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영농철 농기계 사용이 늘어나면서 농민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영양군 수비면 한 도로에서 경운기로 커브길을 주행하던 70대 남성이 도로를 이탈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됐다. 지난달 21일에도 군위군 소보면에서 경운기가 하천에 전복돼 80대 남성이 숨지는 등 농기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지난해는 농기계 안전사고가 703건 발생한 가운데 652명(사망 31명, 부상 62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히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3~5월)에만 209건의 농기계 안전사고가 발생해 194명(사망 11명, 부상 18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농기계 종류별 사고 발생률은 경운기 71.8%(505건)로 다른 농기계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어 트랙터 16.1%(113건), SS기(고속분무기) 4%(28건), 콤바인 1.1%(8건)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70대 31.1%(203명), 80대 27.9%(182명), 60대 24.2%(158명), 50대 9.8%(64명) 순이었다. 경북도는 영농철 농기계 안전사고 발생의 주된 이유로 농기계 사용 증가와 작업자 고령화로 인한 기계조작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안전한 농기계 사용을 위해 농업인 행동요령 등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농기계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헐렁하거나 늘어지는 옷 착용 피하기 △작업 전·후 농기계 안전점검 △경사로·좁은 길 등 논·밭 출입 시 주변 안전 확보 △농기계 음주운전 엄금 △교차로 신호 준수 △농기계 등화장치(반사판) 작동 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영팔 경북도 소방본부장은 “영농기를 맞아 혼자 농기계를 이용할 때 농기계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사고예방을 위해 운전자 스스로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 최소화를 위해 신속히 119에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