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김건희 특검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를 거쳐 국회의 재의과정에 들어갔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앞으로 국민의힘 공천과정을 거치며 나올 공천탈락의원들의 동조표를 흡수한다는 전략 하에 그 의결을 일부러 늦추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김건희 여사의 그동안 문제가 된 행적에 한마디 말을 얹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음을 느낀다. 이것을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헌법학자로서 이 법률안의 위헌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술집 접대부 ‘줄리’설 그리고 부실논문 김 여사에 대한 포문은 지난 대선기간 중 김 여사가 과거 젊은 시절 ‘줄리’라는 이름으로 술집 접대부 일을 했다는 데서 시작했다. 그러나 김 여사의 어릴 적 가정환경이나 친정이 선산김씨 명문가인 점 등을 감안하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퍼부어진 집요하고 세찬 공격은 그에게 너무나 큰 타격을 입혔다. 내가 듣기로, 그는 남편이 대선후보로 촌음을 아끼며 캠페인을 하는 동안 몸져누웠다. 혼자서 화장실에 갈 기력조차 잃었으며, 그의 극한선택을 우려하여 24시간 옆에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그는 한 번씩 이런 심각한 건강부조화의 상태에 떨어지는 비참한 날들을 보내왔다. 그의 학위논문이 부실로 작성된 사실은 수긍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인문, 사회계열 혹은 문제 논문의 학문 영역에서 작성되는 논문의 일반적 수준을 벗어나는 저질의 것은 아니다. 그 논문은 지도교수나 대학에 의해 우수논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한국의 일반적인 대학의 연구 풍토에 관한 비판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설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인지는 불명확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이 그의 남편이 심한 정치적 박해의 대상자로 된 동안 이 문제에 관하여 검찰의 가용인력이 충분히 동원되어 샅샅이 조사하였다. 처벌할 만한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윤 대통령과 혼인하기 전의 옛날 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는 등의 국정농단 베갯머리송사가 일어나는 부부 사이의 일이라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 말을 해서 안 됐으나, 나로서는 좀 뜨악하기만 하다. 뜬 바람에 얼핏 여기저기 들은 말로는, ‘김 여사가 가장 존경하는 이’가 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정부 들어와서 어떤 고위직 공직에 거론조차 된 일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임의 문재인 정부 때는 초대 감사원장 후보로 올라갔고, 2018년에는 대법관 후보로 강하게 천거되었다. 그뿐인가? 몇 달 전 내가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할 것이라는, 지금으로 봐서는 별것 아닌 말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김은혜 홍보수석이 표독하게 날을 세운 짐승의 이빨로 나를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과연 김 여사가 일부의 말대로 국정농단에 이를 정도의 힘을 과시하며 권력의 실세로 지내왔다면 이런 사실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한 가지 더 말하자. 우리가 공동체의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공정함이다. 지금 이 특검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쪽에 서있었다. 그런데 문 정부의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행적과 김건희 여사의 것을 비교해보라. 구체적 내용은, 조선일보 박정훈 기자가 쓴 ‘김건희보다 더 특검 대상이었던 김정숙’이라는 제목의 2023년 12월 30일자 칼럼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설명돼 있다.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김정숙 여사의 허물이 훨씬 더 큼을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이 특검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은 공직자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정성이라도 베푼 것인가? 그런데 만약 특검법안이 재의과정에서 2/3이상 의원들 찬성으로 법률확정이 되었다고 하자. 김정숙, 김건희 양 여사에 대한 현저히 불합리한 차별에 의해 성립된 이 법률은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소지가 크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심판의 과정을 거쳐 이 법률에 대한 무효선고가 날 수 있고, 일정한 경우 선고 전이라도 가처분에 의해 효력정지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 어디에서도 이를 적시하는 의견이 나온 일이 없어 부득이 내가 여기에서 언급한다.
만월성(滿月城)은 신라 때 성곽으로 『삼국사기』에 신월성(新月城)의 북쪽, 『동경잡기』에 월성의 북쪽이라고 전한다.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통일정비공장에서 고려 현종 때 축조된 남고루(南古壘)를 북쪽으로 따라가다 우측의 성동리전랑지(城東里殿廊址) 일대로 추정할 따름이다. 전랑지는 1937년 북천 제방 공사를 하던 중에 통일 신라 시대 큰 건물인 전당(殿堂), 장랑(長廊) 및 담장 및 우물터 등이 발견되어 궁궐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있고, 흙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4천 9백 45척이다. 그리고 『연려실기술』에는 주위가 1천 8백 38보로 기록의 차이가 있다. 한자어 ‘滿月’은 온전히 둥근 달을 말하며, 성곽의 표면이 둥근 보름달처럼 둥글기에 ‘만월성’이라 하였을 것이고, ‘반월’과 ‘만월’은 서로 마주해 성이 되어 신라의 안위를 지켰다. 즉 월성과 만월성 그리고 금성은 솥의 다리 세 다리처럼 존립하며 성안에는 각각 웅장하고 수려한 궁궐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는 「지행록(地行錄)」에서 “신라 때 국도(國都)에 쌓은 성은 다섯인데 금성, 월성, 만월성, 명활성, 남산성으로 두루 옛터를 방문하였다. 월성은 산세가 반달과 같아서 이름 지어졌고, 가장 분명히 알만하다. 만월성은 (월성) 북쪽에 있고 월성에 이어서 둥글게 쌓았기에 이름 지어졌다”라며 금성과 만월성을 각기 다른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似因連月城圓築’이라 표현하였는데, ‘連’은 연결 또는 이어지다, 잇다 등의 의미가 부여된다. 즉 월성과 연결하여, 월성에 이어서 등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니 아마도 그의 말이 맞다면 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위치하며 월성과 연결되도록 둥근 형태의 성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거리상으로 월성과 만월성은 가까운 거리이면서도 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남과 북에 위치한다. 신라의 유적지 만월성에 대해 조선 문인들은 만월성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점필재 김종직은 1486년에 경주부윤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1438~1504)을 전송하며 지은 「送洪府尹 兼善」시에서 “선도산 아래엔 아이들이 죽마를 타고, 만월성 위에는 이슬이 오동나무에 떨어지네(仙桃山下兒騎竹 滿月城頭露隕桐)” 그리고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은 경주부윤 상정(橡亭) 황필(黃㻶,1464~1526)에게 부친 「寄慶州府尹黃公㻶二律」시에서 “만월성 가에 가을이 다시 돌아오고, 선도산 아래 물은 이끼처럼 푸르다(滿月城邊秋正回 仙桃山下水如苔)”라며 서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만월성과 서쪽의 선도산을 대비하며 높고 우뚝한 상징적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동사강목』을 보면 “신축년 신라 파사왕 22년 가을 7월에 계림이 월성을 쌓고 도읍을 옮겼다. … 신라는 바닷가에 있어 구적(冦賊)의 경보가 자주 있었으므로 동쪽에는 명활성, 남쪽에는 남산성, 북쪽에는 만월성을 쌓아 서로 의지하는 기각(掎角)의 형세가 되었다”라며 적을 막는 성의 역할을 언급하였는데, 기각은 달아나는 사슴의 뒷다리를 잡고 뿔을 잡는 것처럼 앞뒤에서 적을 협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1722~1788)은 「동경방고기(東京訪古記)」에서 “그렇다면 이곳은 금성의 옛터이니, 저것이 반월성이라면 그 북쪽 토산[토부(土阜)]에 둥글게 휘어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만월성(滿月城)입니다. 곧장 서쪽으로 수풀에 나무가 울창한 것은 진실로 계림입니다”라며 둥글게 휘어진 성곽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경주처럼 시대별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한 곳이 드물다. 신라의 천년고도 동도(東都)는 앞서 삼한의 진한(辰韓) 땅이었고, 사로국이 발전한 신라에 흡수 통합되었다. 신라 이후 불교가 흥행한 470여년간 고려의 땅이었고, 유학을 숭상한 조선왕조 500년의 땅이기도 하다. 유물론적 입장에서 유적지의 존재유무가 중요하듯 그러한 문화가 정착된 이전의 역사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경주는 아직도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문화가 공존하는 역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은 덕담을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양에서는 Happy new year라고 말하는 게 대표적이다. 아줌마도 덕담을 자주 주고받았다. 그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행운과 행복이다. 서른 즈음부터는 행운보다는 행복에 더 무게를 두었고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도 꿈과 사랑, 그리고 행복을 담았다. 행복과 행운의 차이를 아는가! 세잎 클로버와 네잎 클로버의 차이다. 풀밭에 펼쳐진 클로버의 99%는 세잎 클로버다.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눈을 크게 뜨고 찾다 보면 드문드문 네잎 클로버가 보인다. 그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전쟁 시기에 한 남자가 세잎 클로버 사이에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말에서 내린 사이, 화살이 날아가 목숨을 구했다며 행운을 상징한다. 뜻밖의 행운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다. 지나온 삶을 통해 아줌마는, 행운보다는 행복을 찾으며 지내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행운은 뜻밖이다. 나의 노력이나 수고에 의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오는 것이다. 행운을 마냥 기다리며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것만을 기대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 서른 즈음 아줌마의 생각이었다. 반면에 행복은 내가 마음먹기에 언제나 가능한 것이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감사일기를 쓰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들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많은 이들이 아줌마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이십 년이 흘렀다. 여전히 청년들은 불안하다. 불안한 미래, 치솟은 집값, 기성세대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고 세상은 불공정하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욜로족이 되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소비로 만족을 하고 SNS에 올린다. 한때 청년이었던 아줌마가 말한다. 이십 년 전에 아줌마의 생각도 그대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성세대가 된 아줌마가 여전히 세상은 불공정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80년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와 조금은 변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대의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는 조금 더 변하리라 기대한다. 100% 완전무결한 세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단지 과거보다는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여전히 세상에 만연하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미리 포기하지 말아라. 이십 대는 직장도 미래도 모두가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나의 수고와 노력이 쌓이고 시간이 쌓이면 결과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엄청난 사업 아이템이나 마인드도 없고 월급쟁이 남편의 아내로 살아온 아줌마가 공부를 통해 기초를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우리 가족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쌓였다. 부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의 노후와 미래가 차곡차곡 준비되어가는 것이 보인다. 물론 이런 것이 최고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아줌마는 노후의 빈곤한 삶이 죽기보다 싫다. 젊었을 때는 좀 고생하더라도 노후에는 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후 은퇴금을 한순간에 날리시고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보았고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 모습보다 나이가 들어서 존경받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무슨 소용이냐, 젊어서 여행도 다니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나이 들어서 여행도 못 다니고, 후회하며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싫다면 그것에 맞게 계획을 하고 살면 된다. 문제는 생각도 없고 계획도 없이 매일 불평불만을 쌓아놓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확천금을 기다리며 인생은 한방이야를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먼저 생각하자.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자. 아줌마처럼 고만고만한 계획을 세우고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가도 되고, 남다른 계획을 세우고 더 큰 수고로움을 기획해도 된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행운을 기다리며 우리 안에 가득한 행복을 저버리지 말자.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보헤미아 왕국의 칼리슈테에서 태어났다. 칼리슈테는 오늘날 체코의 땅이어서 말러는 보통 체코 음악가로 분류된다. 평생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하고 싶은 작곡보다는 생계를 위해 지휘를 더 많이 해야 했다. 살아생전 그는 완벽주의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만든 탁월한 작품들은 사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평가를 받게 된다. 말러의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부모가 모두 정신병을 앓았다. 말러의 열다섯 형제자매 중 여덟 명이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남동생 오토는 22살 때 권총으로 자살했다. 가족의 잇단 죽음은 말러에게 강한 죄의식을 남겼고, 이후 그의 음악은 죽음과 죄의식에 경도되었다. 말러의 첫 작품 칸타타 ‘탄식의 노래(Das klagende Lied)’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탄식의 노래는 빈(Wien)대학 시절의 작품으로 1878년에 시작하여 1880년(20살)에 완성했다. 말러는 이 작품을 이듬해 베토벤 상 콩쿠르에 출품했지만 입상하지 못했다. 심사위원 대부분이 브람스를 비롯한 보수파였기 때문이었다. 말러는 대학시절 브루크너에게 대위법을 배웠고, 브루크너는 잘 알려진 대로 바그너 추종자다. 브루크너와 상극관계에 있던 브람스가 브루크너의 제자에게 좋은 점수를 줄 리 없다. 그렇다고 말러가 진보파의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말러는 유대인이었고, 바그너는 그런 유대인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러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충돌했던 19세기 유럽음악의 주변인이었다. 작곡가 말러의 생애 첫 작품이 입상에 실패하자 그는 크게 실망했다. 말러는 이 입상 실패가 훗날 작곡가가 아닌 지휘자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로 말러는 이후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많은 성공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말러는 오로지 시즌이 끝나고 주어지는 짧은 여름휴가 중에만 작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교향곡 1번(거인)과 2번(부활), 그리고 그의 교향곡에 큰 영향을 미친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의 교향곡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지휘자로 유럽의 극장들을 전전하던 말러에게 드디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1897년 빈 국립오페라극장(빈 슈타츠 오퍼, Wienstaatsoper)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엔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음악감독으로 기용될 수 없었다. 이때 유대인이었던 말러는 과감히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그리고 37살에 유럽 최고의 극장 중 하나에서 영광스런 커리어를 이어간다.
경주시립 단석도서관이 오는 23일부터 2월 23일까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겨울방학을 맞이한 어린이 이용자들이 도서관 이용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지난해 단석도서관에서 많이 대출된 도서를 전시하는 ‘아듀 2023’과 다독 이용자 10명을 선발하는 ‘나는 독서왕!’이 펼쳐진다. 또 새해와 설날을 맞이해 ‘도서관 초성 놀이 ㅅㄴ’을 비롯해 십이지와 관련된 도서를 읽고 열두 띠 동물 시계를 만드는 ‘책 읽고 만들고’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각 프로그램 수강료는 무료다. 전체 프로그램 중 ‘책 읽고, 만들고’는 2월 2일 오전 10시부터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10명까지 신청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단석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북남부보훈지청은 대학생 SNS 기자단인 ‘보훈프렌즈 3기’를 오는 2월 16일까지 모집한다. 보훈프렌즈는 보훈+프렌즈의 합성어로 보훈에 관심 있으며, 보훈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기자단을 뜻한다. 보훈프렌즈 3기는 관내 소재 대학생으로 구성되며, 3인 이하 팀 또는 개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활동내용은 보훈행사 및 보훈봉사 현장 취재와 보훈 관련 인물, 현충시설 등을 개인 SNS에 홍보하는 것으로 활동기간은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실시한다. 보훈프렌즈가 되면 위촉장 발급과 활동비 지급 및 우수활동자 포상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김지현 경북남부보훈지청장은 “지역 대학생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라며 보훈프렌즈를 통해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보훈 문화 확산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데 큰 힘이 돼 달라”면서 “앞으로도 국가보훈 업무 수행을 더욱 철저히 하고 국가유공자분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위해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내가 사는 지역 어르신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지난해 4월 임명된 강신채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황성분회장은 보다 좋은 분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황성분회 27개 경로당이 운영되고 있다. 강 분회장은 분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솔력이 뛰어나고 회원들과 소통도 능하다. 태블릿 PC로 현장에서 회원을 확인하고 각 경로당마다 애로사항들을 직접 듣고 기록하는 습관 등으로 많은 회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분회장으로서 소감은? 현역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잊혀져 갈 나이에 매일 일찍 집을 나와 소속된 경로당에서부터 봉사하는 생활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몸을 움직이니 건강 유지도 되지만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이해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회원들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예산과 관련되지만 회원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 기분 좋고 보람도 느낀다. 특히 과거 28통·31통 경로당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봉림경로당으로 변경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파트 사이에 있는 경로당으로 봉황이 내려앉은 동네라는 유래가 있어 ‘봉림’경로당으로 이름을 교체했다. 2024년 희망나눔 불우이웃돕기에 참여하는 회원들을 보며 더욱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앞으로 경로당을 내 집같이 관리하고 원활한 이용에 최선을 다하겠다. 황성동 경로당 시설에 대한 생각은? 오래된 경로당이 많아 내부 보수 및 정리정돈, 위치변경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황성 갓뒤마을 경로당이 제일 먼저 설립돼 잘 운영되고 있으며 26개 경로당이 분회와 함께 화합하고 있다. 회장님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위해 사무장들과 간담회도 실시하고 식사자리도 만들었다. 연령이 높아지다 보니 좌식생활이 힘들어 소파생활이 이뤄지고 있다. 다행히 경주시에서 각 경로당마다 식탁과 붙박이 소파를 설치하고 있어 감사하다. 그러나 실내가 좁은 경로당은 소파 혹은 식탁 설치가 어려운 곳도 있는 만큼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경로당 운영과 관리는? 행복선생님이 주1회 방문해 인지활동 프로그램과 낙상예방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 어르신들은 낙상이 제일 문제가 된다. 수시로 경로당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노후된 시설은 해결방안을 관공서 등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연륜만큼 자신의 의견도 강해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하고 갈등도 빚어낸다. 그러나 경로당은 노인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심어 드리고 싶다. 모두의 삶은 소중하다. 나이가 한 살 적고 많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거동 등 신체변화에 잘 적응하며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로당행복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행복선생님은 회계, 물품관리, 회원관리 등 경로당 운영 관련 지도와 위생관리, 경로당 코디네이터, 보이스피싱 교육, 건강, 체조, 문예, 음악, 놀이 등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 있는 취약노인을 발굴해 개별상담을 통한 경로당 이용과 복지서비스를 연계하는 복지코디네이터 역할도 수행한다. 특히 쉽게 커피를 살 수 있도록 키오스크 교육, 알짜배기 문자를 받으면 쉽게 열어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차근하게 알려주는 선생님들이 감사하고 고맙다. 행복선생님들과 함께 경로당의 참여율과 만족도를 높여 즐겁고 흥겨운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경로당으로 건강한 노인상을 정립하고, 이웃 경로당에서 견학올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가겠다.
경북도는 10일부터 오는 4월 18일까지 ‘AI·메타버스 영화 및 영상 공모전’을 진행한다. 이번 공모전은 AI와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미디어 콘텐츠를 발굴하고, 오는 6월 최초로 개최 예정인 ‘경상북도 국제 AI·메타버스 영화제’의 출품작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했다. 공모 주제는 자유주제로 영화, 영상 2개 부문으로 지원 가능하다. 지원작은 AI 또는 메타버스 기술을 사용하거나, AI 또는 메타버스를 주제·소재로 제작된 영화 및 영상 콘텐츠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참여는 국내외 개인이나 단체 누구나 가능하며, 특히 1인(팀)당 다작 출품이 가능하고 출품작의 시간제한도 없다. 도는 공모 작품의 작품성, 대중성, 기술 활용성, 독창성을 종합 심사해 5월 중 21점(영화 11점, 영상 10점)의 수상작을 선정하고, 최종 등수는 6월 영화제 개막식 현장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수상작은 제1회 경상북도 AI·메타버스 영화제와 함께 국내외 여러 협력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공모전의 출품 규격, 유의사항 등 자세한 내용은 경상북도 홈페이지와 경상북도 AI·메타버스 영화제 조직위원회 홈페이지(1월 말 오픈 예정)에서 확인하면 된다.
경주시가 문체부 주최, 한국관광공사 주관 ‘2023 한국관광의 별’에 대릉원과 동궁과 월지가 선정됨에 따라 ‘경주로ON’ 홍보 이벤트를 진행한다. ‘한국관광의 별’은 관광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이번 선정을 통해 지역관광경기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이벤트는 한국관광의 별 선정지인 대릉원(천마총), 동궁과월지 입장 전 ‘경주로ON’ 앱 회원가입 후 리뷰를 남기면 1명당 2인 무료입장권을 증정하는 방식이다. 천마총과 동궁과 월지 입장료는 성인 1인 기준 각각 3000원이다. 경주시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경주로ON’의 신규 가입자가 5000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벤트는 지난 12일 시작으로 이달 31일까지 실시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 및 축제에서 한국관광의 별과 경주로ON 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겠다”며 “홍보영상, 카드뉴스와 더불어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뉴미디어 홍보에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로ON’은 여행자 누구나 통합 관광 플랫폼을 통해 여행 준비 단계부터 여행 후까지 활용할 수 있는 앱이다. 이 앱을 통해 △스마트 서비스(AI 기반 다국어, 오디오 가이드) △스마트 모빌리티(KTX, 시티투어, 렌터카 예약·결제) △스마트 오더(숙박, 식당, 체험, 티켓 등 연동) △스마트 편의(AR상점스캔, 도슨트투어) △스마트 경험(게이미피케이션, 미디어월) 등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며칠 전 한국 언론에서 ‘금투세 폐지’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란 주식이나 펀드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해 첫 증권시장에 대통령이 참석해 내년부터 시행될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면, 시장원리에 맞게 개선되어야 하며’, ‘저 윤석열이 말하는 공정은 자신의 노력으로 오를 수 있는 역동적인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론사들의 논평을 보면, 이번 결정은 4월 총선을 앞두고 1400만 개인 투자자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이며, 정부 부처 간의 논의도 없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판에 동의합니다. 이번 정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 정책들이 일방적이며,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선거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공정한 자본시장’을 주장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 특히 ‘저 윤석열이 말하는 공정’입니다. 미국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정치적 용어로 자주 사용한 대통령은 레이건입니다. 그는 공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유경쟁을 선호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정치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싸해 보이는 ‘공정’과 ‘자유’에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공정하니까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개인의 몫이 됩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은 줄어들고, 복지정책마저 축소됩니다. 그 결과, 미국은 돈이 없으면 병원이나 학교도 못 가는 불공정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레이건은 영국의 대처 수상과 함께 신자유주의, 즉 민영화, 세계화, 독점화를 강행한 역사적 위인입니다. 최근 독일 언론에서는 전혀 다른 ‘공정’의 의미를 접하게 됩니다. 독일 최대 언론사 Axel Springer는 세계 최초로 오픈AI와 협력해 저널리즘의 자동화를 상용화했습니다. 잘 알려진 ChatGPT는 미디어 콘텐츠를 자동으로 생산, 전달하며, 비즈니스 모델까지 제시합니다. ChatGPT 기술이 공개된 지 1년 만에 인공지능 시스템이 저널리스트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기자협회(DJV)는 Axel Springer에게 AI기술을 통해 얻은 이익의 일부를 ‘공정하게’ 기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AI가 학습한 기존의 데이터는 모두 기자들이 제공한 지적 결과물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돈이 돈을 벌게하는 불공정한 자본시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실제로 1400만 명이 주식을 하고, 부동산 투기나 로또를 통해 인생역전을 기대합니다. 젊은이들은 건물주가 되길 희망하고, 직장을 관두고 유튜버가 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 하나 잘 만들어 대박 날 요행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에 해당합니다. 즉 노동의 대가로 얻는 근로소득이 아닌 이외의 자본소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로소득보다 이자, 배당, 부동산 및 금융거래를 통해 얻는 자본소득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오히려 부동산 투기도 능력이며, 콘텐츠 하나 잘 만들기도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공정한 소득이 무엇인지, 또 생산적인 노동이 무엇인지 무감각해진 우리의 현실이며, 불로소득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공정이나 자유와 같은 정치적 슬로건을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공정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이미 불공정한 우리 사회를 주시해야 합니다. 특히, 공정의 의미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기계가 사람을 위해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로봇이 사람의 직장을 빼앗는 게 아니라, 로봇이 사람을 위해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자동주행 기술은 운전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하고, AI의 저널리즘은 기자의 노동환경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공정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적으로만 소유하려고 합니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능력주의 시장에서는 공동소유나 공공혜택이 낯설게 보입니다. 상위 10%가 세계 소득 5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 7억명 가량이 기아와 빈곤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의 빈부가 공정한 경쟁이나 노력의 결과는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에 공정한 자본시장을 구태의연하게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술 발전의 결과를 공동의 것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의 것을 어떻게 공동의 혜택으로 만들지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독일은 첨단 생명 과학이 함축된 세계적 명견 저먼세퍼드(영어: German Shepherd, 독일어: Deutscher Schäferhund)의 나라이며, 로트와일러, 닥스훈트, 도베르만, 포메라니안, 슈나우져, 그레이트덴 등 세계적 명견을 보유한 국가이다. 독일의 반려견 수는 940만 마리 정도로 독일 전체 가구의 19%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국가에서 엄격한 반려동물 정책에 의해 개를 시민으로 취급하며, 반려견 세금(Hundesteuer)을 부과하고 있는 반려견 문화 모범 나라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 식품 농업부(줄리아 클뢰크 장관, Julia Klöckner)에서 동물복지를 정책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 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어린이 교통 요금 비용을 지불한다. 동물복지법 규정에 의해 반려견의 주인이나 전문 브리더(Hundezüchter)는 하루 2번 1시간 이상씩 개 산책을 시켜야 하고, 장기간 목줄에 매어 두고 혼자 둬서도 안 되고, 반려견의 사회화를 위해서 사람과 하루에 최소 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반려견에게 먹이를 주지 않거나 적절하게 돌보지 않는다면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동물 사육 금지 명령을 받을 수 있고, 개를 유기하면 최대 2만5000유로(약 3600만원)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2023년 추가된 동물복지법에는 상업적 목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개와 교배를 시키는 것이 금지되고, 한 사람이 돌볼 수 있는 개는 강아지 포함 총 3마리로 제한한다. 개는 닭과 소 같은 쓰임이 있는 가축이 아닌 취미로 기르는 반려동물이므로 매년 한화 14만원~77만원의 동물 보유세를 낸다. 첫 번째 개는 1년에 108유로, 두 번째 개는 216유로 정도이며, 대도시일수록 비싸다. 한해 약 2억5000만 유로(약 3300억원)가 징수되는 세금으로 동물복지와 전문 브리더 관리 교육, 동물 보호소 관리 및 유지, 동물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반려견을 입양할 때는 반려견 면허시험(Hundeführerschein)에 합격해야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1차는 개 교육, 개 잡는 법, 개 억제에 관한 30~40가지 문제로 된 필기시험과 반려견 입양 1년 이내에 응시해야 할 2차 실기시험은 산책을 하는 것부터, 반려견이 ‘앉아’, ‘멈춰’ 등 견주의 간단한 명령을 알아듣고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여 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또 반려견은 등록번호, 전염병 예방접종 정보, 혈액검사 결과를 기록한 수백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공인 수의학 증명서(TierausNicht-EU-Staat)를 발급받아야 한다. 독일은 반려견을 입양하는 펫샵이 없고, 전문 브리더와 한국의 유기견 보호소에 해당하는 티어 하임(Tierheim, ‘반려동물의 집’)에서 입양할 수 있다. 입양비는 전문브리더는 1000~2000유로(약140~280만원) 내외로 매우 비싸고, 티어 하임에서는 차등화되지만 대략 200~350유로(약 30만원 내외)이다. 독일의 품종견 전문 브리더는 한 견종만 키울 수 있고, 암수를 함께 기를 수 없는 등 개인의 무분별한 강아지 번식을 통제하고 있다. 입양은 생후 3개월 이상 되어야 하고, 입양 후 한 달 이내로 관청에 등록해야 하며, 등록하지 않을 경우 5000유로(약 668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등록되지 않은 반려견은 대중교통, 슈퍼 및 일부 식당 출입이 제한된다. 견주 물림 사고 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독일 동물보호법은 강아지 불법 거래 근절을 위해 여러 종의 분양, 판매가 금지되어 있고, 전문 브리더는 한 종만 사육, 번식할 수 있다. 독일은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고, 동물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법률적 장치를 꾸준히 개선해왔다는 점이, 방치하는 우리의 반려견 정책과 다르다. 독일의 슬기로운 반려동물 정책을 우리는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천연기념물 동경이의 고향 경주는 반려견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돈벌이로 여기는 비인도적 현실은 비판받아야 한다.
경북도 농특산물 쇼핑몰 ‘사이소’가 2023년 매출액 455억원을 달성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382억원 대비 19% 증가한 수치다. 또 입점농가 수는 2223호로 전년 1821호 대비 22%가 늘어났으며, 회원 수는 13만2506명으로 전년 8만6746명 대비 53% 크게 증가했다. 또 소비자들은 명절 및 연말연시에 집중 소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월별 매출실적은 설·추석이 포함돼있는 1월(51억원), 9월(106억원)이 157억원으로 전체 실적의 35% 차지한 것. 또 4/4분기 10월(67억원), 11월(67억원), 12월(33억원) 실적은 167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1월, 9~12월 5개월간 실적이 324억원으로 전체 실적의 71%를 차지했다. ‘사이소’는 명절 선물기획전, 연말 할인전, 수산물 기획전 등 시기별·주제별 소비자 맞춤형 행사를 집중 추진한 것이 이 같은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또 2021년부터 소비자 접근성 향상, 제품 다변화, 통합마케팅 등 온라인 유통 활성화를 위해 시군 단위로 운영되던 쇼핑몰을 3년에 걸쳐 2023년 도 단위 광역플랫폼으로 통합 완료한 것도 한몫했다. 이를 통해 쇼핑몰 회원관리, 등록상품, 결제·정산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체계적인 고객 대응과 시스템 관리가 가능해졌다. 또 소비자들은 하나의 아이디로 ‘사이소’뿐만 아니라 시군 쇼핑몰에도 별도 가입 절차 없이 지역별 다양한 상품과 행사를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도는 2024년 매출액 500억원, 회원 수 15만명과 입점 농가 2500호 유치를 목표로 설정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사이소 홈페이지 및 시스템 전면 개편을 통해 대형 민간 온라인 쇼핑몰 수준의 사용자 환경을 구축하고, 사이소·시군 통합마케팅을 통해 홍보예산 절감, 판로확대 등 저투입, 고효율 마케팅을 실현할 계획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경북도가 유통혁신을 위해 추진하는 농업대전환의 성공 사례”라며 “앞으로 시스템 개선 및 고객 맞춤형 행사, 타 기관 협업 등을 지속 확대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전국 최고의 농특산물 쇼핑몰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천여년 전 울산 개운포(울산시 남구 황성동)는 고대 신라 수도 서라벌의 관문이었다.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헌강왕이 처용을 만난 곳도 개운포였다. 개운포에서 시작한 길은 울산 반구동 유적지를 지나 울산과 경주의 경계에 있는 관문성으로 향한 뒤 서라벌로 이어졌다. 지금의 7번 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처용과 헌강왕이 함께 걸었고 각종 이역(異域) 문물이 지나갔을 이 길엔, 경주 도심에 있는 유적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1천여년 전 신라 유적이 즐비하다. 국가 안녕 기원한 호국사찰…원원사지 지난 회차에서 소개한 관문성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경주 방향으로 가다보면 모화역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모화불고기단지’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동쪽 산속으로 들어가면 원원사(遠願寺)에 닿는다. 원원사는 밀교(密敎)의 대표적 승려 명량법사가 세운 금광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었다고 한다. 문두루비법은 명랑법사가 당나라로부터 신라를 지키기 위해 행한 것으로 알려진 주술적인 밀교 의식이었다. ‘관정경’(밀교 경전)에 나오는 주술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위기에 빠졌을 때 둥근 나무에 오방신(五方神)의 이름을 써놓은 문두루를 설치한 뒤 주문을 외우면 모든 악이 물러난다는 것이다. 삼국 통일은 이뤘지만 한반도 지배를 노리던 당나라가 큰 골칫거리였던 문무왕 재위 시절(661~681). 명랑법사는 화급한 상황에서 임시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어 당나라군을 670년과 671년 두 차례 격퇴시키며 전란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문무왕 19년(679)에 이 절을 고쳐 지어 사천왕사라고 했다는 게 ‘삼국유사’가 전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원원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이에 대해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명랑의 제자와 김유신 등이 뜻을 모아 세웠고, 왜구의 침입로인 관문성 근처에 위치하며, 사천왕사·금강사와 함께 문두루비법의 중심 사찰이었다는 점으로 미뤄 ‘호국 불교’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먼(遠) 소원(願)을 빈다’는 ‘원원’이란 사찰명도, 나라의 안녕을 바란 김유신 등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 아니었을까. 이곳엔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높이 7m 규모 쌍탑 2기가 남아 있다. 보물 제1429호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 건축학자 노세 우시조(能勢丑三)가 쓰러지고 묻혀 있던 석탑 부재를 모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은 빼어난 수준의 사천왕상과 십이지신상을 자랑한다. 사천왕상은 사방을 지키고, 십이지신상은 열두 방위를 수호하는 형세다. 탑에 십이지신상을 새기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지금의 원원사는 1970년대에 영호스님이 새로 지은 천태종 사찰이다. 시찰 건물 위쪽 쌍탑이 서있는 곳 뒤편이 옛 대웅전이 있던 자리다. 서역인 닮은 무인상의 미스테리…괘릉 원원사에서 도로를 따라 경주방향으로 10㎞ 정도 가면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인 괘릉(掛陵)이 나온다. 무덤 입구에 서역인(西域人) 모습을 하고 있는 무인상으로 널리 알려진 왕릉이다. 이 무덤 자리는 본래 곡사(鵠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원성왕의 어머니 소문왕후의 외삼촌인 파진찬 김원량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건물로 지었다. 그 뒤 불상을 봉안하고 경전을 담은 윤장대를 세워 절로 바꿨는데, 절 주변에 있는 바위가 고니 모양처럼 생겨서 곡사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798년(원성왕 14) 왕은 자신의 장례 절차와 관련한 조서를 통해 번거롭게 흙을 쌓아 무덤을 만들지 말고 지세를 따라 무덤을 세우라고 명령한다. 원성왕이 세상을 떠난 뒤, 담당 관서는 곡사를 지금의 숭복사 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왕릉을 조성한다. 그러나 봉분이 놓일 자리가 절의 연못 터였던 탓에 땅을 메우는 과정에서 계속 물이 솟아나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사람들은 관을 거는 장치를 만들어 허공에 안치했다. ‘능을 걸다’라는 의미의 괘릉(掛陵)이란 이름은 그렇게 생겨났다. 괘릉 조성 때 통째로 옮겨진 사찰 터…숭복사지 괘릉에서 2㎞ 정도 떨어진 외동읍 말방리엔 숭복사지가 있다. 798년 괘릉을 조성하면서 통째로 옮겨진 사찰인 곡사가 있던 자리다. 곡사란 이름이 숭복사로 바뀐 것은 헌강왕 때인 885년의 일이다. 곡사가 이곳으로 옮겨지고 60여년이 지난 경문왕 즉위 2년인 862년. 경문왕은 원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곡사를 주목하고 중창불사를 계획한다. 하지만 곡사의 중창은 쉽게 시작되지 못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865년 어느 날 경문왕은 꿈에서 원성왕을 만나 중창 불사에 대한 허락을 받게 되고, 허비한 3년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중창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경문왕의 곡사 중창은 그동안 왕위 계승을 두고 대립하고 갈등했던 여러 정치 세력들을 ‘원성왕의 후손’이라는 점을 들어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아들인 헌강왕 때에도 곡사에선 또 다른 불사가 추진됐다. 헌강왕은 재위 11년(885)에 곡사의 이름을 ‘대숭복사’로 바꾸면서 국가가 관할하는 정법사에 예속시키고, 보살과 관리를 파견해 재정을 돌봤다. 곡사를 중창했던 선왕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면서, 대숭복사와 왕실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려고 하려는 의도였다. 이듬해인 886년엔 최치원에게 명해 숭복사비의 비문을 짓도록 했다.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인 ‘대숭복사비명’이다. 경문왕의 곡사 중창과 헌강왕의 대숭복사 개창 내용을 담았다. 비는 진성여왕 때에 완성됐다. 지금의 절터 한편엔 2014년 진품 비편을 본떠 만든 숭복사비가 서있다. 비편과 비를 짊어지고 있던 쌍귀부(雙龜趺)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감산사지, 구정동 방형분도 눈길 괘릉리를 관통해 산을 향해가는 길 끝엔 감산사지가 있다. 성덕왕 18년인 719년 중아찬 김지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여러 친족 및 일체 중생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하는 절터다. 10여년 전만 해도 빈 터에 작은 불당과 3층 석탑만 있었다던 이곳엔 제법 큰 규모의 절집이 들어서 있다. 감산사지는 1915년 한 일본인에 의해 알려졌다. 당시 감산사지에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과 석조아미타불상(국보 제82호)이 발견되었는데, 두 불상의 광배 뒷면에 절의 창건 시대와 배경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한다. 이 불상은 발견 당시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무너진 채 절터를 지키고 있던 탑은 1965년에 다시 세워졌다고 하는데 상당히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국사역 인근에 있는 ‘구정동 방형분’도 눈여겨볼만한 유적이다. 신라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네모꼴(방형) 형태를 지닌 통일신라시대 무덤이다. 방형 구조는 고구려 고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양식인데, 이런 이유로 이 무덤의 주인 또한 고구려 출신이거나 그 후손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1977년 이 무덤 주변에서 출토된 모서리기둥이 유명하다. 네모난 봉분 각 모서리에 세워져 있었던 돌기둥으로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기둥 한쪽 면엔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깊고 코가 큰 이국적 모습의 인물상이 폴로 스틱을 들고 있다. 돌기둥 다른 한 면에는 사자상이 조각돼 있다. 괘릉의 무인상과 월지 입수쌍조문 사자공작무늬 돌 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서역의 교류를 알려주는 증거로 꼽힌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주시가 어르신들의 소득지원과 활기찬 노후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1월부터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에 들어갔다. 시는 지난해 보다 135억원(3588명) 보다 33% 증가한 180억원을 투입해 연말까지 4236명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수행한다. 앞서 지난해 12월 노인일자리 참여자 모집 결과 4910명이 신청한 바 있다. 노인일자리는 유형별로 △공익활동형(3356명) △사회서비스형(609명) △시장형(271명) 등 3개 분야로 나눠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공익형 일자리 외 사회서비스형과 시장형 일자리를 확대했다. 공익활동형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월 30시간(11개월)을 활동하고 월 29만원을 받는다. 이들은 노노케어와 스쿨존 안전지킴이 등 돌봄·안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 복지 실현과 공익적 가치를 높인다. 사회서비스형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월 60시간(10개월)을 근무하고 월 64만원 정도를 받는다. 어르신들은 신노년 세대의 역량을 활용해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보육시설, 금융기관 등의 영역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장형은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소규모 매장에서 근로하고 수익금에 따라 활동비(12개월)가 배분된다. 시는 원활한 노인일자리사업 추진을 위해 경주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경주시지회, 경주문화원, 하나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 등 5개 기관을 수행기관으로 지정해 운영한다. 향후 시는 노인일자리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뿐만 아니라 사업유형을 다각화해 어르신들의 사회참여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장할 계획이다.
경주시가 올해부터 변경되는 복지정책 혜택을 더 많은 시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달라진 제도 홍보에 적극 나섰다. 변경되는 복지정책은 △기초생계급여 선정기준 및 지원금 확대 △기초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기초연금 선정기준 상향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요금 및 부모급여 인상 △디딤씨앗통장 사업대상 확대 등이다. <오른쪽 표 참조> 먼저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가 더욱 든든해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을 위한 기준중위소득이 기존 30%에서 32% 이하로 상향됐다. 이에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 지원액은 월 162만원에서 월 183만원으로 대폭 인상됐다. 또 기초의료급여 수급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는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미적용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했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4인 가구 기준 전년대비 13.17% 인상된 183만원의 생계지원금을 지급해 생계곤란 저소득가구에 대해 최저생활을 보장한다.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가사간병지원사업의 서비스 비용은 시간당 1만6600원에서 1만7200원으로 인상됐다. 어르신들을 위한 기초연금 선정기준은 월 최대 34만3000원(단독가구)으로 인상됐다. 경로당 냉방비(7~8월)는 월 5만원, 난방비(11~3월)는 월 3만원이 각각 인상돼 어르신들의 안정적인 여가생활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영아기 돌봄을 지원하기 위한 부모급여는 0세(0~11개월) 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1세(12~23개월)는 월 35만원에서 50만원으로 각각 확대된다.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요금(영아 종일제 기준)은 시간 당 1만1080원에서 1만1630원으로 인상됐다. 한부모양육비는 월 20만원에서 21만원, 청소년부모 아동양육비는 월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각각 인상돼 양육부담을 덜어 주게 됐다. 결식아동 급식 지원단가는 1일(1식) 8000원에서 9000원으로, 디딤씨앗통장 사업대상자는 만 12~17세에서 0~17세 기초수급아동으로 확대됐다. 변경되는 복지급여 기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청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가까운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상담받으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변경되는 복지정책으로 사각지대가 발생되지 않고 더 많은 시민들이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꼼꼼히 살피겠다”고 전했다.
경주시평생학습가족관은 연말까지 경로당을 찾아 환경보호를 위한 새활용(Up-cycling)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찾아가는 마을학습 사랑방 프로그램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양말목을 활용한 추억살림, 환경살림(컵받침, 냄비받침, 방석만들기) 등이다. 양말목 공예는 양말 생산 과정 중 버려지는 부산물을 재활용해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방석, 매트, 나무보호 옷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최근 옥산3리 경로당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손으로 바느질하는 양말목으로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방석을 만들었다. 경로당 행복선생님은 “어르신들이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 힘들어하셨지만 버려지던 양말목을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할 수 있어 보람된 하루였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참여 어르신들은 ‘치매예방에 좋겠다’, ‘겨울에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방석, 발 매트, 바구니 등도 만들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꽃공방 이성희 대표는 “산업폐기물이었던 양말목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다”며 “어르신들도 지역사회의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겠다”고 전했다.
부자로 살게 된 것은 바로 이 최국선 공 때부터다. 국선 공은 음서로 관직에 나가 사옹원 참봉을 지내게 된다. 사옹원은 궁중의 음식을 돌보는 기관으로 여기서 각종 육상 음식재료 뿐 아니라 어물과 도자기 등 그릇까지 관장하였다. 당연히 궁궐 내의 연회를 주관하고 이와 관련된 공납도 관장했다. 사옹원과 밀접한 도시로 경기도 광주가 있는데 이곳에 왕실전용 도자기를 생산한 분원자기가 있었다. 이곳에는 국내 최고의 도자기 장인들이 최고의 실력을 바탕으로 도자기를 빚었다. 특히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은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으므로 그런 도자기는 국내 어느 곳에서도 만들 수 없었다. 분원자기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에는 굽에 파란 색 줄이 둘러져 있어서 누가 봐도 분원자기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구별되었다. 만약 분원자기가 아닌 곳에서 이 파란 색 줄을 쓴다면 이것은 왕실을 능멸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중죄를 받았을 정도다. 참봉(參奉)은 종9품이다. 조선시대 관료사회가 정1품부터 종9품까지 모두 18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품계만으로 치면 문자 그대로 미관말직이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만만한 벼슬은 아니다. 사옹원은 전체적인 왕실 구조에서 보면 한직이라 할 수 있지만 음식 계통에서만큼은 최고의 관청으로 요즘 같으면 대통령실 주방과 식약청, 농림해양수산부, 문화관광부 내 요업 관련 부서를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옹원에서 문고리 노릇을 하는 사람이 사옹원 참봉이다. 비록 미관말직이고 한직이라고 할 수 있어도 음식, 연회, 이와 관련한 각종 물품에 대해서는 최고의 관청이었고 사옹원 참봉은 그 문고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국선 공은 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버린다. 이유는 그 당시 그 녹봉으로는 도무지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봉이라는 벼슬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직급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황 선생은 종9품, 이이 선생은 정6품, 정약용 선생은 정7품을 받았다. 9품 참봉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품계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관직 명 제도를 대과에 급제한 대표적 인물들과 비교해 볼 만하다. 대과에 급제하여 처음 보직을 받을 때, 성적이 아주 우수할 경우 정6품이나 종6품 정도를 제수 받는다. 이건 매우 파격적인 대우다. 마침 조정에 공석이 나거나 운이 아주 좋은 경우, 정말 특출하게 뛰어난 인재가 아니면 이런 벼슬을 제수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태두로 알려진 퇴계 이황 선생은 대과에 급제한 후 종9품인 승문원 부장자를 제수받아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몇 해 만에 사퇴한다. 다시 대과를 보아 홍문관 수찬을 제수 받는데 이것은 이전의 경력까지 한꺼번에 인정받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수찬은 정5품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생원시와 식년과 등에서 무려 9번 장원으로 급제한, 조선을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분인데 첫 벼슬이 정6품 호조좌랑이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첫 벼슬에 희릉(禧陵: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릉)을 관리하는 희릉직장을 제수 받았는데 직장은 정7품 혹은 종7품직이다. 이런 예를 굳이 든 것은 참봉 역시 양반 관료체제하의 어엿한 관원이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참봉벼슬이 주는 녹봉으로는 제대로 밥조차 먹지 못할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참봉의 녹봉은 한 해 동안 쌀 9석, 보리 1석, 콩2석, 면포 2필이 전부였다. 1석(淅)은 요즘의 80킬로그램 가마니로 하면 약 1.8가마니로 잡는다. 그러니 쌀 9석이면 대체로 16가마 남짓의 쌀을 말한다. 대가족 제도에서 더군다나 지금과 달리 애들을 굴비 엮듯 주렁주렁 낳을 시대에 밥만 먹고 산다면 모를까 이 녹봉으로 옷도 사 입어야 하고 반찬과 술도 사 먹으려면 상당히 힘들었던 셈이다.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한 끝에 제수받은 벼슬에 대한 대가가 이렇게 보잘 것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참봉의 윗 계급이 종 8품 ‘봉사(奉事)’다. 봉사라면 우리가 가장 밀접하게 본 것이 ‘심청전’일 것이다.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를 일컬어 심봉사라고 하고 봉사를 시각장애인을 얕잡아 보는 비속어쯤으로 하는데 사실 봉사는 꽤 권위 있는 벼슬 이름이었던 것이다. 여하간 봉사쯤만 되어도 쌀이 15석, 보리2석, 콩4석, 면포 4필로 근근이 생활할 만큼의 녹봉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최국선 공은 이미 아버지 최동량 공의 경우에서 보듯 음직으로 출신한 사람이 승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먹고 살 만한 직위에 오르기 전에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법도 하다. 종6품 용궁현감을 지낸 최동량 공의 녹봉은 종6품 기준으로 쌀이 24석, 보리가 4석, 콩이 8석, 면포가 10필이었다. 식구 수에 따라 생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정도면 비교적 안정되게 생활할 정도의 녹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렸을지 모른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조선시대 제일 관등인 정1품,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같은 최고로 높은 공직자의 녹봉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쌀 64석, 보리 10석, 콩23석, 면포 21필이었다. 이 정도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만한 녹봉일 것이다. 그러나 양반가의 2대 예의 중 하나인 접빈객을 하려면 그 역시 태부족이었을 것이다. 정1품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문하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 될 것이라 보았을 때 청백리가 아니고서는 역시 녹봉만으로 생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이 녹봉은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이 정도가 되었다. 최국선 공이 한양에서 벼슬할 때 유형원 선생이 활동하고 실사구시 풍 학문이 서서히 발전할 시기였다. 여하간 최국선 공은 녹봉으로 연명은 할 수 있어도 부자로 살기 힘들다는 계산을 한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어차피 높은 관직에 나가지 못할 양이면 한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 다른 방도를 찾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조선의 성리학에 한창 실사구시 학풍이 불어닥칠 때이다. 국선 할아버지가 한양살이를 할 때만 해도 반계(磻溪) 유형원(1622~1673) 선생 등이 비록 벼슬길에 올라 있지는 않았으나 명성을 떨칠 때였으니 이런 영향을 적잖이 받았을 것이다. 경주 최부자댁 책을 쓰면서 내가 매우 중요하게 본 것은 실상 유형원 선생이다. 최국선 공이 한양에 있었을 시기와 반계 선생이 한양에서 공부하고 있던 시기가 절묘하게 겹친다. 최국선 공은 1631년 생으로 한창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할 당시에 반계 선생은 진사시에 합격(1654)하고 당시의 과거제에 대한 폐단에 혐오를 느끼고 벼슬살이를 스스로 포기한 인물이다. 이때부터 실사구시적 학문을 섭렵하며 정치, 경제, 국방, 지리, 세제, 농경, 상공을 섭렵하며 이른바 실학의 선구자로 입신하게 된다. 한양은 지금의 서울과 달리 인구가 20여 만 정도로 더구나 그 시대 어지간히 이름을 얻거나 어지간한 벼슬만 살아도 온 성내 사람들이 다 알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좁을 때였다. 그러니 최국선 공이 반계 선생을 알았거나 적어도 실사구시 학풍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국선 공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다음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과감히 이앙법을 도입해 누구보다 빠른 시간에 부자 반열에 오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이앙법인에 이것은 실사구시 학풍의 농사 지식이 없었다면 애초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농사법이었다. 내가 경주최부자댁과 관련한 텍스트라 할 수 있는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를 쓴 이후 최부자댁 선조들과 관련해 다양한 소설을 꾸미면서 최국선 공과 유형원 선생과 관련해서도 소설을 써두었다. 최국선 공이 낙향한 후 실천했던 황무지 개간이나 이앙법, 특히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획기적인 ‘단갈림(반분작)’을 결행한 일련의 사실들을 보면 최국선 공은 완벽한 실사구시 실행자라 할 수 있다. 유형원 선생과 직접 만났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고 만약 직접 만나지 않았어도 한양에 만연하고 있는 실사구시 학풍을 마음껏 경험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런 차별성이 아니었다면 최국선 공이 본격적인 부자 시대를 열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적 의미로 최국선 공에게 바로 그 확실한 차별성이 있었기에 ‘청부’라는 깨끗한 이름으로 이후 10대의 탄탄한 부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모네, 세잔, 반 고흐, 피카소, 앤디워홀 등서양미술 전반 한자리에 17세기 바로크 사실주의에서 20세기 팝아트까지 서양미술사를 총망라하는 대형 특별전시가 경주에서 펼쳐진다. 한수원아트페스티벌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특별전이 경주예술의전당 갤러리해에서 16일부터 5월 26일까지 열리는 것. 이번 전시는 한수원과 경주시 간의 상생협력 강화하고 지역 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촉진하고자 진행됐다. 전시 작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계기로 경주의 역사문화적 역량과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한수원의 문화경영을 결합한 한수원 페스티벌을 경주를 대표하는 G-문화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명작은 물론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낭만주의, 라파엘전파, 나비파와 야수파, 큐비즘과 컨템포러리아트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전반을 경주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 등으로 유명한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그의 열정과 청춘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피카소의 작품 중 20대, 예술적 성취와 변화를 엿볼 수 있는 60대, 노년의 지혜가 담겨있는 90대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적인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팝 아트의 대표적인 존재인 앤디워홀의 실크프린트작 ‘Joseph Beuys’도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통해 팝 아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대담성과 소박함, 강렬함과 원초적인 감정을 담은 화풍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베이컨, 미국 팝 아티스트 로이 리이텐슈타인, 영국의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작품은 전시를 찾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인상을 전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윌리엄 터너, 외젠 부댕,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시냑, 알프레드 시슬리,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드 블라맹크, 휘슬러, 앙리 마티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가들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경주예술의전당 오기현 대표는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서양미술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면서 “유화와 판화, 사진 등 고전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을 만나는 예술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감정을 선사하는 의미있는 전시에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과 관람을 바란다”고 밝혔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입장료는 만원이며, 경주시민은 50% 할인된다. 36개월 미만 무료. 단 증빙서류 소지자에 한함.
공고번호 : 경북-경주-2024-00002 1월 2일 경주시 천북면 안현로 808-99에서 발견 코에 붉은 반점 있음. 사람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 믹스견 / 여아 / 1차 접종완료 중성화x / 3개월 / 0.99kg 입양문의 054)760-2883 ※반려동물이 실시간 입양됐을 수 있으니 확인 전화바랍니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을 꼽으라면 이구동성 치매라고 답한다. 치매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고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뇌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은 뭘까? 인지예비능이라는 개념이 있다. 근력으로 설명하자면 겨우 걸을 정도의 근력이 있는 사람은 폐렴으로 며칠만 누워 있어도 일어나기가 어렵고, 근력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이 어려워지니 더욱더 기능이 나빠진다. 하지만, 근력의 여유분(예비능)이 충분한 경우는 금세 다시 일상적인 신체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걸을 수 있는 최소 근력과 현재 근력의 차이를 예비능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평생 다양한 방법으로 몸과 머리를 사용하여 인지기능을 지키면 인지예비능이 높아 상당히 많은 아밀로이드 병변이 뇌에 쌓이고 뇌가 많이 쪼그라드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능적으로는 치매를 앓지 않는다. 뇌의 통장 잔고라고 생각해도 좋은데, 이 통장 잔고를 풍부하게 채워두면 노화나 질병으로 어쩔 수 없이 뇌 기능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 상황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평생 뇌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가 치매 발병이나 뇌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지도와 주소를 외워야 하는 런던 택시기사들의 해마가 버스기사들의 해마와 비교할 때 커져 있음을 보고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그래서 인지적으로 부담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아리조나 대학의 로스 앤델(Ross Andel) 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을 관리하거나 상담 또는 접대 등 사람과 접촉하는 일, 정보를 수집·분류·분석하는 일 등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직종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평균 22% 낮았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미 장·노년기에 접어든 분들은 이제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특히 뇌는 한번 고장이 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통념이 있다. 뇌와 신경이라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뇌경색 등으로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그 조직 자체가 큰 폭으로 재생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뇌는 신경 가소성(plasticity)이 있다. 이는 새로운 정보나 경험에 노출되면 새로운 연결성이 생기거나 기존의 연결성이 변화·강화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토대로 인지예비능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기존 연구를 종합해보면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인지적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면 인지기능이 개선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통한 신체기능 향상과 비슷하게 인지예비능을 개선하는 과정 역시 불편하고 힘들지만, 습관화해서 꾸준히 하면 결국 큰 폭으로 개선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익숙한 패턴의 일상생활을 반복한다. 로봇청소기가 같은 경로로 청소하기를 반복하면 점차 청소기가 다닌 경로만 반들반들해지고, 그 바깥에는 먼지가 쌓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두 가지 운동만 계속하면 관절 가동 범위가 제한되며 몸의 협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평소에 잘하지 않던 인지 관련 활동을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서구 연구자들이 주로 인지 활동으로 분류하는 것으로는 독서, 컴퓨터 사용, 보드·카드 게임, 마작, 토론 참여, 글쓰기, 서예 및 그림, 수공예, 악기 연주, 주식 투자 및 도박 등이 있다. 하지만 인지예비능이 굉장히 다면적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는, 우리가 해야 하는 활동에서 크게 다음 세 가지의 균형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의 균형 인지기능 감퇴 속도를 느리게 하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은 유산소 운동이다. 이는 뇌에 풍부한 산소 공급을 보장하며, 신체기능을 개선하고 노화와 연관되는 모든 만성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걷기,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각성도를 높여주는 도파민을 비롯한 카테콜아민이 분비된다. 운동할 때 나오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를 비롯한 여러 물질이 뇌 기능을 개선해주기도 한다. 댄스는 균형, 협응 등 머리를 잘 써야 하는 매우 동적인 활동이며 인지적 효과가 크다고 잘 알려져 있다. 댄스는 복잡한 움직임과 리듬, 그리고 공간 인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뇌의 여러 부분을 동시에 자극한다. 댄스는 큰 운동신경을 사용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정적인 활동으로는 방에서 서예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아주 미세한 운동신경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창의력과 감성을 자극한다. 회화, 서예, 조각 등의 활동은 집중력을 향상하고, 창의적 사고를 개발하며,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혼자 집중하는 활동과 상호작용하는 활동의 균형 인지예비능을 증진하는 데에는 개인이 혼자서 집중하여 수행하는 활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활동도 큰 역할을 한다. 혼자서 집중하여 수행하는 활동, 예를 들면, 퍼즐을 맞추거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 등은 개인의 집중력을 향상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활동은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며, 뇌의 신경 연결성을 강화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감정적 뇌 영역을 자극하며, 이는 인지예비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를 나누거나 그룹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사회적 기술을 향상하며,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또한 우리 뇌에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제공하며, 인지예비능을 증진한다. 수동적인 활동과 능동적인 활동의 균형 인지예비능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동적인 활동과 능동적인 활동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수동적인 활동, 예를 들어 음악 감상은 뇌를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TV시청 같은 수동적인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있다. 반면, 능동적인 활동, 예를 들어 연주나 조각, 노래, 요리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활동은 뇌의 신경 연결을 강화하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며, 인지예비능을 높이는데 강력한 도움이 된다. 신체기능과 마찬가지로, 인지예비능을 보호하고 향상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활동과 노력에 달려 있다. 두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양한 인지적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이러한 자세에 기반한 꾸준한 인지활동은 오랜 시간 우리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의 뇌를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이 편안하고 나에게 익숙한 뇌 활용의 영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사, 운동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 관리가 더해지면 분명 인지예비능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