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달 30일 ‘설 명절 맞이 전통시장 장보기 행사 및 청렴문화 확산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이날 행사에는 황주호 한수원 사장과 이상민 기술부사장을 비롯한 본사 임직원들이 경주의 대표 전통시장인 성동시장과 중앙시장에서 쌀, 청과류, 육류, 건어물 등 10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했다. 한수원은 이 물품들을 경주지역 아동센터와 복지기관,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에게 전달하며 모든 이웃들이 풍성한 명절을 맞이하길 기원했다. 또 청렴한 명절 문화가 지역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청렴 캠페인도 시행했다. 한수원은 2016년 본사가 경주로 이전한 후 매월 본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러브펀드 기금으로 전통시장 장보기를 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77차례의 장보기 행사를 통해 5억2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매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취약계층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앞으로도 지역 대표 기업으로서 모든 시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어려운 곳을 잘 살피겠다”고 밝혔다.
경주우체국이 오는 4월 22일부터 시내 소재 5개 우체국의 ‘점심시간 휴무제’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지난 23일 경주우체국에 따르면 이용고객들의 의견을 수렴을 위해 지난 22일부터 이와 관련한 행정예고를 실시했고, 4월 21일까지 홍보기간을 운영한다. 현재 읍·면단위 우체국은 지난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점심시간 휴무제를 실시 중에 있으며, 이번엔 시 소재지 6급 이하 관서까지 확대 시행을 추진한다. 우체국은 점심시간 교대 근무로 발생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직원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점심시간 휴무제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점심시간 휴무제 확대 시행 이후에도 경주우체국과 안강우체국에서는 계속 업무를 볼 수 있으며, 점심시간 휴무 시행국 간 휴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우체국 점심시간 휴무제와 관련해 자세한 사항은 경주우체국과 인터넷우체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주시 근로자종합복지관은 근로자 및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문화와 취업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연중 상시 운영한다. 교육문화 과정은 문화욕구 충족과 여가선용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요가, 줌바, 포크아트 툴페인팅, 보타니컬 아트, 아코디언, 통기타 등 11개 강좌로 진행된다. <사진> 취업창업 과정은 전문기능 및 직업능력 향상을 통한 취업·창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바리스타자격과정, 카페창업 메뉴 실전반, 핸드드립 자격과정, 제과제빵 과정 등 10개 강좌로 구성돼 있다. 신청은 경주시 근로자 및 시민 누구나 가능하다. 신청방법은 근로자종합복지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선착순 모집한다. 복지관 이용시간은 월·화·수요일은 9시~21시, 목·금요일은 9시~18시까지다. 교육일정 등 보다 자세한 사항은 근로자종합복지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사무실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복지관은 시민들의 편의증진과 공동체 활동지원을 위해 시설대관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공연장(236석) 대관 시 2시간 기준 5만원으로 저렴하게 대관할 수 있으며, 요청 시 휴일대관도 가능하다. 또 지난 2020년 1월부터 경주지역 외국인근로자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권익보호, 사회통합 도모를 위한 상담, 통역, 기관연계지원 업무 등을 지원하는 경주시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근로자들의 직업적 기능향상과 권익보호, 구직자의 취업욕구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방문교육사업과 자녀 대상 방문학습지 비용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먼저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사업’은 지리적 접근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참여가 어려웠던 결혼이민자 및 다문화자녀, 중도입국자녀를 대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방문교육지도사 13명이 1:1 맞춤형 지원으로 △한국어교육 △부모교육 △자녀생활서비스를 진행한다. 이 가운데 한국어교육은 최초 입국 5년 이하 결혼이민자 및 중도입국자녀를 대상으로 총 80회 실시된다. 이어 부모교육은 임신·출산·영아기, 유아기, 아동기로 나눠 각각 40회씩 지원된다. 또 자녀생활서비스는 3세~12세 이하 다문화자녀 및 중도입국자녀를 대상으로 독서코칭, 숙제지도, 정서지원, 문화역량강화, 생활습관 등 교육을 총 80회를 지원한다. 지원 기준은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가형)는 무상이며, 150% 초과(나형)는 본인부담금이 일부 발생한다. 방문학습지 비용 지원사업은 다문화자녀의 학업 증진을 위해 학습지도가 어려운 다문화자녀 중 5세~9세 아동대상으로 1:1 가정방문 맞춤형서비스(눈높이 한글, 수학)를 지원한다.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 가정에 월 3만3000원을 지원한다. 실제 지난해 134명을 대상으로 방문교육사업이 이뤄졌고, 방문학습지 비용 지원사업은 월평균 184명에게 지원됐다. 지원을 원하는 다문화가정은 주소지 읍면동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수시로 신청할 수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다문화가족과 소통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시가족센터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외에도 가족상담, 부모 및 부부역할 지원, 공동육아나눔터 등 다양한 가족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가족센터 홈페이지 및 전화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대교 눈높이 경주지점은 지난달 19일 경주시가족센터를 방문해 아동도서 600권(600만원 상당)을 기탁했다. <사진> ㈜대교 눈높이 경주지점은 2022년 공동육아나눔터에 도서 900권을 기탁한데 이어 올해도 600권을 기탁해 지역 아동을 위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기탁한 도서는 공동육아나눔터 8개소에 전달해 공동육아나눔터를 이용하는 아동들이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할 예정이다. 정운재 지점장은 “공동육아나눔터를 이용하는 아동들이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한 나눔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시가족센터는 핵가족화와 맞벌이로 인한 육아부담 과중을 겪는 부모들에게 공동체 돌봄활동 및 양육친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공동육아나눔터 8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만 12세 이하 아동과 보호자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공간이용 및 상시프로그램 운영, 도서·교구 이용, 이웃 간 돌봄품앗이 활동 등을 지원하며 신규 이용자와 품앗이 회원을 상시 모집 중이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시설과 사업화 프로그램을 활용해 성장하고자 하는 입주기업을 모집한다. 모집 기간은 오는 14일까지다. 예비 창업자부터 창업 7년 이내의 기업까지로, 경북 기반 관광 관련 사업으로 직접 수익사업이 가능하며, 입주공간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관광사업자 또는 기업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1차 서류심사, 2차 기업 인터뷰를 통해 최종 선정된 8개 내외 기업은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내 독립 사무공간과 회의실 무료 이용과 컨설팅, 홍보·마케팅, 네트워킹 등 기업 맞춤형 지원을 받는다. 또 2024 경북 관광스타트업 공모전 신청 시 가산점 혜택도 주어진다. 입주 희망 기업은 경북문화관광공사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홈페이지 공고문을 참고해 신청서를 14일 오후 5시까지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김일곤 사장직무대행은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는 다양한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으로 입주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쓸 예정”이라며 “사무공간과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관광사업자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024 경주 대릉원돌담길 벚꽃축제를 앞두고 친환경 프로젝트 ‘함께해봄’ 참여자를 모집힌다. <사진> 함께해봄은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생활 속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친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 내에서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과 협업해 ‘업사이클링 악기 체험’ ‘친환경 에코백 만들기’ ‘비건 음식체험’ 등 총 6개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다. 참여자는 생활 속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친환경에 관심이 있는 경주 내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13일까지 모집한다. 활동 시 △활동가 친환경 교육 △축제 기념품 △소정의 활동비·수료증 △자원봉사활동 실적 인증 등 다양한 지원과 혜택이 주어진다. 참여 신청은 (재)경주문화재단 및 경주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의는 (재)경주문화재단 축제사업팀 054-777-5953.
프랑스는 반려견 귀족의 나라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반려견은 그레이트 피레니즈(Great Pyrenees), 바셋하운드(Basset Hound), 비숑 프리제(Bichon Frise)와 파피용(Papillon) 등이다. 프랑스어로 바셋하운드의 바셋은 난쟁이, 파피용은 나비라는 뜻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개에 관한 한 ‘명가’를 선호하고, 순종 혈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대단하다. 프랑스에서는 출생 증명서가 없으면 개를 사고팔기가 어렵다.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12~15개월이 되면 순종인지 아닌지를 검사받아야 한다. 심사에 합격한 개는 농무부에서 관리하는 LOF(Livre des Origines Français, 순종개 등록부)에 등록된다. LOF에 이름이 오르면 혈통을 인정받는다. 이 제도에 의해 프랑스는 잡종 개가 20% 미만으로 순수 혈통의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이다.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약 50%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반려견의 수는 900만마리 정도이며 프랑스인 6명 가운데 1명이 개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개를 기르는 것을 금전적, 시간적 여유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또 개를 자식과 동일시하여 자식 둘에 개 한 마리를 자식 셋을 키운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시키는 것이다. 반려견을 위한 각종 의료 및 상해보험이 정착되어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아무리 작은 동네 구멍가게에도 개 고양이를 위한 용품을 구비해 놓고 있다. 프랑스에는 흡연자를 사절하는 식당은 있어도 개를 사절하는 식당은 없다. 슈퍼마켓·식당 등 어디고, 못 다니는 데가 없다. 슈퍼마켓에만 가면 바로 사료·간식·놀이 도구·미용 도구 등 용품을 살 수 있다. 프랑스 반려동물용품의 시장 규모는 약 43억유로(약 5조9000억원)로 2010년 이후 매년 약 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동물병원이 아닌 일반 점포에서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를 전시하거나 팔 수도 없고, 애완동물의 공개적 판매 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프랑스는 2021년 ‘동물 학대 방지 법률’이 보완 제정되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징역 3년 및 벌금 4만5000 유로(한화 약 6000만 원)에 처하고, 동물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징역 5년 및 벌금 7만5000 유로(한화 약 1억 원)까지 처할 수 있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동물 소유 및 동물 관련 직업 활동이 금지되기도 한다. 프랑스는 반려동물 매장을 최초로 제도화하여 1899년 세계 최초의 동물 묘지가 인구 약 8만5000명인 아니에르쉬르센(프랑스어: Asnières-sur-Seine) 시에 있다. 반려동물 묘지에는 현재 4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묻혀 있고, 예쁜 비석과 비문, 조각상 등이 조성되어, 입장료가 3.5유로인 유명한 관광지이다. 프랑스는 동물이 사망하면 I-Cad(반려동물 국가 등록부) 사이트에 의무적으로 사망 신고를 해야 하고, 반려동물 사체를 쓰레기통 등에 유기할 경우 375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시신을 수습하고, 행정기관에 신고하고 등 장례를 치르는 절차와 과정이 점점 더 전문화되어, 동물 장의회사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아 동물 장의업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이다. 시신 수습 및 운구 이송에 200~300유로, 종이 재질 관 제작에 30~150유로, 공동 화장은 40~100유로, 장례의식이 수반되는 개별 화장은 250~350유로이며, 매장 시 묘지 임대료는 140~3600유로이다. 묘지 관리비는 별도로 연간 200유로이다. 프랑스에는 약 30여 도시에 반려동물 묘지가 있으며 그중 1/3 정도는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동물 묘지 설치를 검토하는 지자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반려견은 가까이하고 귀여워하는 존재의 의미를 넘어서 삶을 함께한다는 동시에 가족 같은 존재이며, 자식을 데리고 산책 나온 듯한 아들딸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경북도는 지난달 26일부터 2월 말까지 정당 현수막 설치 상태를 점검하고 법령 위반이 있는 현수막 등은 정리할 계획이다. <사진> 이번 점검은 지난 12일 정당현수막 개수와 설치 장소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제도를 조기 정착시키기 위해 실시한다.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현수막은 정당별 읍면동별 2개 이내만 설치, 어린이보호구역과 소방시설 주변은 설치가 금지된다. 보행자와 차량 운전자 시야를 가릴 우려가 있는 교차로, 건널목, 버스정류장 주변은 현수막을 2.5m 이상 높이로 설치해야 하고 다른 현수막과 신호기, 안전표지를 가리면 안 된다. 현수막 규격은 10㎡ 이내로 정당명·연락처·게시 기간(15일)을 표시하는 글자 크기는 5cm 이상으로 제작해야 한다. 경북도는 26일부터 시·군, 경북옥외광고협회 관계자와 함께 합동점검반을 꾸려 점검을 실시하고 안전신문고를 통한 신고방법도 홍보해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위반 현수막에 대해서는 해당 정당에 자진 철거, 이동 설치 등 시정 요구를 하고 미이행 시에는 지자체에서 철거한다. 한편, 이번 점검에 앞서 행안부와 경북도, 각 지자체에서는 정당의 중앙당과 시도당에 개정 법령 내용과 이번 점검의 취지를 설명하고 정당 차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지역 옥외광고 사업자에게도 개정된 규정에 맞게 현수막이 제작·설치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만성질환예방 관리 치유농업 프로그램 ‘건강팜케어’의 성공적인 운영 사례를 담은 사례집 ‘치유농업으로 건강을 품다’가 발간됐다. <사진> 시례집에는 경상북도농업기술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협력해 진행한 건강팜케어 프로그램의 운영과정과 치유농장별 참여 프로그램, 만성질환 관리 요령, 치유 효과 우수사례 등의 내용을 담았다. 건강팜케어 프로그램은 2022년 경북농업기술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경본부가 지역사회 건강증진과 치유농업 활성화 업무협약 체결 후 협력사업으로 2년간 추진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매년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 30여명을 대상으로 경북 우수 치유농장이 참여한 키친 가드닝, 마음꽃 그리기 등 치유농업과 질환 및 영양 관리, 생활습관 개선 등 만성질환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등 총 9회에 걸쳐 진행했다. 참여자들의 효과분석을 위해 경북대 임상심리 및 가정의학과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프로그램 참여 전후의 설문조사와 생체지표(타액호르몬, 맥파 등) 데이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 수준은 평균 37.5% 감소했고, 우울감이 개선되는 등 신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영숙 경상북도농업기술원장은 “프로그램을 통해 농업의 치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치유농업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북도가 2024년을 ‘복지사각지대 제로화(zero)화’ 원년으로 삼고 도내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기 위한 사회보장수준을 대폭 확대한다. 생계급여 지원 기준 역대 최대 인상 도는 올해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가 4인 가구 기준 162만289원에서 183만3572원으로 13.16% 상향됨에 따라 생계급여 예산도 지난해보다 1473억원 증액한 5730억원으로 편성했다. 2024년 기준 중위소득이 4인 가구 기준으로 지난해 540만964원에서 6.09% 인상된 572만9193원이며, 생계급여 선정기준이 2007년 이후 7년 만에 기준 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조정됨에 따라 도내 생계급여 수급자가 2400가구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거급여 선정기준 역시 기준 중위소득의 47%에서 48%로 높아지고, 임차가구에 대한 기준 임대료도 지역별·가구원수별 16만4000원~62만6000원에서 17만8000원~64만6000원으로 인상한다.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복지 혜택을 지원하는 교육급여도 전년대비 11% 올라 초등학생 46만1000원, 중학생 65만4000원, 고등학생 72만7000원을 지원한다. 긴급복지 생계비 월 62만원→71만원 인상 저소득 위기가구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긴급복지지원 생계지원금도 인상됐다. 1인 가구 기준 월 62만3300원에서 월 71만3100원으로 오른다. 난방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가구는 기존 11만원에서 15만원으로 인상해 지원한다. 올해는 기준중위소득 기준이 상향되고 금융재산 기준은 완화됨에 따라 저소득 위기가구 대상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경북도는 지난해 대비 46억원 증가한 273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의료급여 기준 기준완화 및 확대 올해부터 장애 정도가 심한 등록 장애인이 있는 수급 가구는 가구 내 연 소득 1억원(월 소득 834만원) 또는 일반재산 9억원을 초과하는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7098억원의 예산을 수립, 9만5000여명에 대해 질병 치료, 수술, 입원 간호 등 의료급여를 지원한다. 지난해까지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재가의료급여사업을 기존 6개 시군(포항, 김천, 안동, 구미, 영천, 의성)에서 전 시군으로 확대해 장기입원 필요성이 낮지만, 입원 중인 의료급여 수급자에겐 의료·돌봄·식사·병원·이동 등 서비스 제공으로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다. 자활근로 및 자산형성사업 확대 올해 경북도는 441억원의 자활근로사업비를 편성해 3466명의 자활참여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으로 인한 기초생활수급자와 근로복지연계서비스 참여 수요 확산에 따른 자활사업 참여자 증가에 발맞춰 수요자 중심 자활지원체계를 강화한다. 도는 이를 위해 광역자활센터와 19개 지역자활센터 협력을 통해 △신규 자활사업 모델 및 지역별 특성화 자활사업 개발 및 보급 △광역자활센터 중심 자활사업 규모화 지원 강화 △자활기업 협업 확대로 저소득 근로 빈곤층의 자립 기반 조성과 탈수급을 지원한다. 일하는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등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탈수급지원을 위해 자산형성지원(IDA : Individual Development Account) 사업도 확대한다. 올해는 128억원의 예산을 수립해 6763명에 대해 지원한다. 가입대상자는 근로중인 수급자·차상위계층과 중위소득 100%이하 청년 등으로 구분된다. 매달 본인 소득의 10만원에서 50만원을 저축할 경우 근로소득 장려금으로 매달 10만원에서 30만원을 매칭 지원한다. 사회적 고립 가구 발굴·지원 확대 경북도는 사회적고립예방지원센터를 신설하고 도와 시·군의 희망복지지원단과 읍면동 맞춤형복지팀 간 협력을 강화한다. 시군에서는 복지유관기관으로 구성된 행복기동대, 읍면동은 이·통장, 명예사회복지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마을기동대를 편성해 위기가구 발굴과 지원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도는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고립 고위험군 실태조사와 발굴, 안부확인, 지역돌봄, 지역공동체 공간 조성, 주민 간 교류활동, 생활환경개선 사업 등을 추진한다. 황영호 경북도 복지건강국장은 “위기가구 발굴 체계를 촘촘하게 만들고, 체감 복지 행정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도민 중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사각지대 제로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도가 저출생극복 임무를 수행할 ‘저출생극복TF’를 지난달 25일 정식 출범하고 비상 대응체제에 돌입했다. 도청에서 진행된 현판식에는 이철우 도지사, 행정부지사, 정책실장, 실·국장, 경북연구원장, 다자녀 직원 등이 참여했다. TF는 경북도 기획조정실장·정책기획관 등 도청 핵심 참모들이 참여하며, 미래전략기획단장이 TF단장을 겸임해 총괄기획팀과 정책협력 3개 팀 등 총 4개 팀, 13명으로 운영된다. 도는 그간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적 노력이 국민에게 와닿지 않고 실패한 것은 현장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도는 지자체·기업·시민사회 등 지방이 주도하고, 국가는 협력·지원하는 체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현장이 원하는 사업모델을 발굴해 경북에서 성공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초단기·단기·중기·장기 등 단계별 추진계획을 마련한다. 초단기 과제는 당장 지방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경북도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집과 육아’ 문제로 보고, ‘부모안심주거’와 ‘자녀완전돌봄’에 주력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K-저출생극복 시범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사업에 필요한 재원도 파격적인 수준으로 확보해 올해 추경예산부터 도와 시·군이 반영한다. 중·장기적으로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적극적 지원책은 물론, 국가 균형발전과 교육 개혁, 축소 시대 대비 등 구조적인 대책과 정책 비전 등도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에 건의할 과제도 적극 발굴한다. K-저출생 극복 테스트베드 설치, (가칭)인구부(부총리급이상) 지방 설치, 어린이 기금·특별회계 및 특별법 마련 등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중앙에 제안한다. 경북도는 2월 ‘저출생과의 전쟁 선포식’을 시작으로,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국민운동 전개, 국회세미나, 전문가 워킹그룹 운영,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 릴레이 현장토론회, MZ·대학생 토크쇼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또 상반기 중 ‘(가칭)지방주도 K-저출생극복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 저출생극복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저출생 대응은 현장을 잘 아는 지방에서 기획부터 집행까지 주도해야 한다”면서 “경북에서 급속한 저출생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저출생극복 성공모델을 만들어내고 대한민국을 살려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북도의회도 이날 저출생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모으기로 결의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도의회는 조례 제·개정, 예산 심사, 행정사무감사, 도정질의 등 의정활동 전반에 걸쳐 저출생 극복을 최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특히 경북 모든 시·군에 결혼, 출산, 육아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 발굴 및 시행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계획이다.
1907년을 즈음해, 경주의 한 우체부는 토함산을 넘어 우편배달을 가다가 우연히 폐허 상태의 유적을 발견한다.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던 이 유적은 바로 국보이자 한국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석굴암’이다. 나비 표본을 찾아 캄보디아의 정글로 들어갔다가 ‘앙코르 와트’를 발견하게 됐다는 프랑스인 앙리 무오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석굴암 발견’ 이야기는 허구 사실 이 이야기는 허구에 가까운 듯하다. 물론 석굴암은 조선시대에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3세기 ‘삼국유사’에 언급된 후 17세기에 몇몇 기행문과 시가 나오기까지 약 400년간 석굴암과 관련된 기록은 전무했다. 하지만 석굴암은 조성된 이래 항상 토함산에 있었고, 폐굴이 되었던 것도, 밀림에 묻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 적지 않은 선비들이 석굴암을 다녀갔다. 불국사 인근에선 중요한 날에 토함산에 올라 예불을 올리고 공양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다만 ‘문화재’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아래 글은 조선시대 문인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기록이다. “석굴암에 이르렀다. 암자의 명해(明海)스님이 맞이하여 들어가서 잠시 앉아 있다가 석굴로 올라갔다. 모두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석문(石門) 밖 양쪽에는 커다란 돌에 새긴 불상이 각각 네다섯 개 있는데, 기교하기가 짝이 없다. 석문은 잘 연마된 무지개 형태이다. 그 속에 있는 커다란 석불은 엄연하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대좌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균형이 잡히고 기교하다. 굴속 위쪽의 덮개돌과 여러 천장돌은 기울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배열된 불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하고 기괴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시한은 1688년 5월 15일 석굴암을 방문한 뒤 기행문 ‘산중일기’(山中日記)에 이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목격한 석굴암의 모습은 전실(前室)과 성소(聖所), 그것을 연결하는 통로로 이뤄져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기와지붕으로 덮여있는 지금의 전실이 당시에는 상부에 아무것도 없는 노출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시한의 이 기록은 당시 석굴암의 모습을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 도구로 활용 석굴암의 조성 당시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이곳에선 옛 이름이 석불사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통일신라시대 ‘石佛(석불)’이란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됐다. 하지만 조성 배경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명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석불사의 조성 배경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확인된다. 김대성(金大城)이 751년에 전생(前生)과 현생(現生)의 부모를 위해 각각 석불사와 불국사(佛國寺)를 조성하다가 774년에 그가 죽자 국가에서 완성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석불사 불교 존상들의 조형적인 특징이 8세기 중엽을 가리키고 있어서 ‘삼국유사’의 기록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불국사와 석불사가 모두 김대성 집안의 원찰과 관련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며, 그 규모로 볼 때 그가 이 국가적인 차원의 불사(佛事)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대표적 견해다. 석굴암의 미학적 아름다움엔 이견이 없지만, 석굴암이 20세기 초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관광명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제의 영향이 컸다. 일제는 1913년부터 3년간 석굴암을 완전 해체·복원하고(1차 공사),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가 그랬듯, 석굴암도 제국주의의 ‘발견’에 의해 식민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1930년대에 들면 우리 스스로도 “영국이 인도를 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무엇보다 귀중한 보물은 석굴암 불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석굴암 ‘붐’이 일어난다. 석굴암을 불우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대조되는 ‘과거의 영화’로 내세우고, 일본의 기술로 발견·수리·복원했다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부연하자면 석굴암 등 신라의 미술 문화를 한반도 문화의 최정점으로 두고 이후 점점 퇴락해 조선시대에 이르렀다는 인식, 문명화된 일본이 석굴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보수함으로써 석굴암의 옛 영화를 찾아줬다는 인식을 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일제는 서구에 맞서 자신들을 ‘동양’의 중심으로, 고대 인도와 중국에서 전해진 불교·유교·예술을 모두 소유하고 보존한 ‘아시아 문명의 보고’로 자리매김하도록 애썼다. 일본에서 꽃피운 문화의 중간과정인 ‘석굴암’의 훌륭함을 증명할수록 일본 문화 또한 훌륭해지는 것이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그리스~간다라~통일신라’의 불상 전파 경로는 이런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에서 나온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 일제는 ‘석굴암’의 본래 명칭이 ‘석불사’임을 알고도 ‘석굴’을 강조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자랑’이라 홍보했다. 하지만 석굴암은 ‘인조 석굴’로, 암벽을 파고들어간 인도 석굴 양식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인도의 ‘석굴사원’과의 친연성을 강조한 것은, 일본이 불교미술의 정수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수차례 보수공사로 훼손 이 과정에서 수난도 적지 않았다. 현재 석굴암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에 총 3차례, 1960년대에 한 차례 보수·복원공사를 거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석굴암을 수리하면서 본존불이 있는 주실의 천장 외부를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어 씌웠다. 석굴암을 콘크리트 돔 구조물로 바꿔버린 것이다. 1961~1964년엔 우리 정부가 석굴암을 보수했다. 이 보수공사에서 일제가 씌워놓은 콘크리트 외부에 또 한 겹의 콘크리트층을 만들어 씌웠다. 석굴암을 현대식 콘크리트로 완전히 밀봉해 버린 것이다. 이 같은 수차례의 황당한 보수공사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콘크리트로 인해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가 커져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더 많이 차고 이슬이 맺히는 결로(結露) 현상이 발생했다. 급기야는 1966년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태로 석굴암을 개방해 왔고 급기야 석굴암의 보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76년 12월 유리문을 설치한 것이다. 지금도 석굴암은 유리문으로 막혀 있다. 그래서 석굴암에 가면 늘 아쉽다. 관람객들은 유리문 앞에서 전실과 주실 쪽을 기웃거리다 이내 밖으로 빠져나간다. 여기저기 엉뚱한 것들이 유리에 반사돼 석굴암의 진면목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전실의 팔부중상에 조명까지 뒤섞여 관람을 심하게 방해한다. 내부 공간의 구조도 경험할 수 없다. 게다가 유리문의 알루미늄 새시 틀이 석굴암의 품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참 아쉬운 풍경이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주시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인식개선 및 친화적 환경조성을 위해 ‘주택관리공단 경주용강1아파트’를 치매극복 선도단체로 지정했다. <사진> 선도단체로 지정됨에 따라 경주용강1아파트 모든 직원들은 ‘치매 파트너’ 교육을 이수하게 된다. 이후 치매환자·가족에 대한 옹호적 태도 확립, 치매예방 활동, 치매극복 환경조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치매극복선도단체 및 기타 치매지원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치매안심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가 1월부터 ‘디딤씨앗통장(아동발달지원계좌)’ 가입 대상과 연령을 대폭 확대한다. 디딤씨앗통장은 저소득층 아동이 성인이 될 때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아동(보호자)이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두 배에 해당하는 정부 지원금이 추가로 지원된다. 예를 들면 3만원을 적립하면 6만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정부 지원금 최대액은 10만원이며, 18세 미만까지만 지원된다. 18세 이후 학자금과 주거비 마련, 기술자격과 취업 훈련 등 자립을 위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24세 이후에는 용도와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올해부터 기초생활 수급 아동의 가입 연령을 기존 12∼17세에서 0∼17세로 대폭 확대한다. 또 생계·의료급여로 한정됐던 소득 기준도 주거·교육 급여 수급 가정 아동까지 범위를 대폭 넓혔고 가정위탁, 시설 입소 아동 또한 가입이 가능하게끔 조정했다. 경주시는 디딤씨앗통장 가입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관련 예산을 지난해 4억1749만4000원에서 올해부터는 10억9357만원으로 전년 대비 2.6배 이상 높였다. 신청 방법은 거주지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거나 ‘복지로’에서 온라인으로도 신청 가능하다
2024년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개원식이 지난 22일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지역 중등 청소년과 보호자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학습지원, 다양한 체험활동 및 생활관리, 고민상담 등 청소년을 위한 종합서비스를 지원하는 경주시의 핵심 청소년정책 사업이다. 올해는 중등 청소년 42명을 선정해 △학습지원 △체험·역량강화 △생활지원 △특별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사업을 통해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고 미래사회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달 30일 경주중앙로타리클럽(회장 이재술)과 지역장애인 복지향상과 자립생활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사진> 주요 업무협약 내용은 △각종 봉사활동지원 △경북IL센터 캠프, 문화탐방, 등산, 목욕 지원, 김장봉사 등이다. 이날 봉사파트너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향후 사업 진행과 홍보에 상호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박귀룡 센터장은 “경주시 중증장애인의 권익옹호와 이들을 위한 다양한 자립생활 서비스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과 협약을 맺게 됐다”면서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봉사파트너로서의 협업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경주중앙로타리클럽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초아의 봉사’를 모토로 삼고 꾸준한 후원 및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경주시가 한부모가족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저소득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한다. 먼저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청소년부모(부모 모두 24세 이하) 아동양육비 △경북 청년 한부모(34~39세 이하) 양육비 등은 지원 대상이 소득인정액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에서 63% 이하로 확대된다. 18세 미만 자녀에게만 지급되던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 연령이 고등학교 재학 자녀로 확대되며, 지원금액도 월 20만원에서 21만원으로 인상된다. 또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중위소득 65% 이하)의 0~1세 자녀 양육비도 월 35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지원금액이 인상된다. 이외에도 청소년한부모에 비해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던 청소년부모 아동양육비도 월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늘어난다. 경주시 관계자는 “한부모가족의 경제적 자립 기반과 아동 복지 증진을 위한 정책지원을 확대해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황성동 행정복지센터, 배진석 도의원, 온동네로타리지역사회봉사단, 서라벌로타리클럽은 지난달 27일 민관 합동으로 형산강변 산책로 일원에서 환경정화활동을 펼쳤다. <사진> 이들은 강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강변도로 경사면 등지에 버려진 폐비닐, 플라스틱병, 폐스티로폼과 부유물 등 환경저해 요소들을 1톤 가량 수거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 양현두 황성동장이 환경정화활동을 총괄했고, 배진석 도의원은 ‘내 고장은 내가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평소 신념으로 형산강변을 상쾌한 자연으로 되돌리는데 일조했다. 서라벌로타리클럽과 온동네로타리지역사회봉사단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기 위해 ‘초아의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료급식소 이웃집 급식봉사, 노인복지회관 배식봉사, 저소득가정 어린이 장학금 지급, 환경정화활동, 쌀나눔 봉사 등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진열 서라벌로타리클럽 회장은 “우리의 작은 노력이 세상에 희망을 전파하고 시민들이 행복해하는 살기 좋은 경주를 만들어 가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전했다.
“회장님, 회장님께서 어린 시절에는 부자댁 위용이 어느 정도는 살아 있었을 텐데 부자댁 만의 특징으로 무언가 기억되는 것은 없었습니까?” 내 질문에 최염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니, 그렇지 않네. 내가 어릴 때는 이미 독립자금 지원하느라 만든 ‘백산상회’를 통해 재산을 거의 다 써버린 이후였어. 조선식산은행에 전재산이 차압 당해 온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기도 했었지” 그러나 ‘부자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끝까지 여쭈어보았다. 더구나 경주 최부자댁은 그냥 평범한 부자가 아니고 조선 최고의 뼈대 있는 부자댁 아니었나 말이다. 100여명이 참여하는 제사, 그때마다 사라지는 그릇들과 소달구지로 실어 오는 새 그릇들! 한참 생각하시던 최염 선생님은 ‘이런 것도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시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집안에 제사가 많았다는 말은 이미 했었고..., 그 제사가 끝나면 할아버지께서 가복 한두 명과 함께 소달구지를 끌고 나가곤 하셨다네. 그렇게 나갔다 들어오시면 소달구지에 잔뜩 새 그릇들을 사오곤 하셨어!” 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제사에 그만큼 많은 그릇들이 사용되었다는 말입니까?” 최염 선생님은 빙긋 웃음을 띠셨다. “그럴 만한 것이... 봉송이 장난 아니었어요. 박작가 어릴 때 교촌 기와집들 중 몇 집을 빼고는 대부분 우리 집안 대소가들 아니었나. 내가 어렸을 때는 그 기와집들 전부가 우리 집안 사람들이었지”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내가 교촌에 살 때만 해도 아버지 형제분들 살던 몇 집과 그 외 두어 집을 빼고는 그때도 교촌의 대부분 기와집들은 최부자댁 친인척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다시 되짚어 보자면 최부자댁이 교촌에는 처음 이곳으로 이사온 최염 선생님의 6대조 최기영 공(1768~1734) 이후, 종가를 중심으로 가솔들이 한 집, 두 집 살림을 나가 마을 전체에 퍼져 살았다. 그러니 제사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어른·아이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 전부가 종가에 와서 일도 거들고 밥도 먹고 했을 것이고 봉송(封送-제사를 지낸 다음 제사 지낸 음식을 보내는 일 또는 그 음식)도 손에 손에 받아 갔을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을 이었다. “그 봉송을 모두 그릇에 담아서 했어요. 봉송도 고기, 떡, 전, 밥, 국... 전부 다 보냈어. 그러니 그릇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어요?” 그런 후 최염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들이셨다. “그런데 사실은 봉송 못지않게 그릇들이 없어지는 일이 있었어!!” 최염 선생님이 어린 시절에는 가복들이 제법 많았을 때였다. 집안일 하는 남녀 가복들이 늘 5~6명은 늘 있었다. 게다가 제사 지낼 때는 동네 근처 아낙네들이 대거 일손을 도왔는데 그들 역시 몇 개씩 소매나 치맛자락 속에 그릇들을 숨겨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부자댁 어른들은 그것을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그건 훔쳐 가는 것 아닙니까? 가복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과 법도를 지키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최염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귀하게 대하셨네. 그들은 대부분 우리 집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봉송에 보내는 그릇처럼 그들이 훔쳐 가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버리기 일쑤였다네. 제사 지내고 나면 그들도 떡이며 음식을 싸가게 했는데 그 역시 마땅히 그릇들에 넣어 보냈으니 하나둘 가져가는 것보다는 아예 터놓고 내주는 그릇들이 훨씬 많았다고 봐야지!”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이른바 ‘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을 떠올렸다. 이를테면 최부자댁은 그런 생활 그릇에 연연해할 정도의 부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제사 한 번 지내면 뭉턱뭉턱 사라지는 그릇을 보충하기 위해 제사가 끝날 때마다 소달구지로 그릇들을 다시 사올 만큼의 습성이 최염 선생님 당대에도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새로 사오는 그릇들은 대부분은 사기그릇들이었다고 한다. 제사는 놋그릇으로 지내지만 아무리 최부자댁이라도 봉송까지는 놋그릇으로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놋그릇과 사기그릇은 가격으로 따지면 최소한 열 배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부자댁 제사에는 몇 분이나 참사(參祀)했을까? 최염 선생님의 회고는 이렇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제사 지내기 며칠 전부터 어지간한 잔칫집을 방불케 할 만큼 시끌벅적했네. 참사하는 사람만도 100여명이었고 제사를 돕기 위해 동원되는 가복들과 동네 사람들도 수십 인이었지”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때 우리 큰댁에서 제사 지내던 모습도 그랬다. 우리 집안도 제사를 지내면 방안은 물론이고 마루와 마당까지 내려가 멍석을 깔고 제사를 지내야 했다. 아버지 5형제분 모두 6~8인까지 자녀들이 있었고 그중 남자들은 거의 참사했는데 이러면 줄잡아 3~40명은 늘 모였다. 우리집도 그 정도인데 하물며 최부자댁은 오죽 더 많이 모였을까? 다시 최염 선생님 말씀!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들었던 것이 참사하는 일이었어. 최부잣집 주손이란 자리는 생각보다 엄해서 아무리 아이라도 제사에는 반드시 참사해야 했거든. 더군다나 정무공 할아버지 이후 후손이 귀했던 집안에서 제사라는 것이 종중의 제사와 우리 집안의 제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지내는 식이 되었기 때문에 좀 심하게 말하면 제사를 지내고 나서 돌아서서 또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어” “사람을 부릴라믄 쪼매씩 눈감아 주는 도량이 있어야 대는 기라. 그래야 사람들이 잘 따라 오는 벱이라” 나는 그때는 과객들이 없었는지, 있었다면 제사 지낼 때 과객들은 불편해하지 않았는지를 집요하게 여쭈었다. 그럴수록 선생님은 더욱 기억력을 돋구셨다. “내 어릴 때는 늘 머무르는 과객들이 많지 않았네. 대신 파젯날은 어떻게 알았는지 과객들이 유독 많아지기도 했지. 그런 날은 사랑채가 온통 사람들로 넘쳐났어. 할아버지께서 머물러 계시는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는 방이고 대청이고 마루고 할 것없이 사람들도 꽉꽉 들이찼었네. 마당에도 멍석이 펴져서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그들 모두가 넉넉히 먹고 가져가기 위해서는 쌀만해도 몇 말씩은 들어갔고 떡이며 전, 나물, 생선 등 온갖 음식들이 넉넉하게 준비되어야 했지!” 갈수록 더 상상하기 어려운 최부자댁 제사 풍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신기한 것은..., 그때 그 과객들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거리낌이 전혀 없었어. 당연하게 와서 당연하게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처럼 제사를 돌보는 집안 어른들이나 가복들에게 이것 달라 저것 달라 끊임없이 주문해댔거든. 그러면 집안사람들도 역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과객들이 원하는 대로 이것저것 날라다 주었고 그들이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작은 보퉁이 하나씩을 챙겨서 들려 보냈지. 이런 일을..., 요즘이라면 상상이라도 하겠나?” 그렇게 보면 최부자댁 역대 종부들을 비롯한 집안의 며느리들은 일 년 내내 정신없이 바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념의 집에서도 제사 모시는 일이 가장 큰 일이고 최소한 4대를 지내며 그 힘듦에 대해 호소하곤 하는데 100명 넘는 사람들을 일년내내 치러낸 최부자댁 역대 며느리들은 어떤 종갓집 며느리들보다 더 어렵고 힘든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을까? 최염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문파 선생님께서 제사가 끝난 후 가복들이 가져가는 그릇들에 대해 들려주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정리해서 옮기면 이렇다. “염아, 과객들이야 지나가믄 그뿐이지만 동리사람들은 마케 다 우리캉 한 집안 같은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이 대대로 우리캉 같이 살면서 우리를 도와 왔는데 그깟 그릇 맻 개 땜에 의가 상하믄 대겐나? 그라고 사람을 부릴라 카믄 머든지 쪼매씩 눈감아 주고 봐주고 하는 도량이 있어야 대는 기라. 그래야 사람들이 잘 따라 오는 벱이라. 알것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