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자애롭지 못한 모성 어릴 적 엄마로부터 “이 다음에 커서 꼭 너 같은 새끼 낳아라!”라는 말을 이따금 듣던 나는 말썽꾸러기였다. 결혼 후 그저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덜컥 낳고 보니 나는 몸만 자란 어른 아이였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의, 식, 주를 자연스럽게 포기해야만 했고, 모든 것을 주면서도 부족함에 미안함을 느끼는 내 모습에서 친정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신은 자신의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하는 곳에 ‘어머니’를 보냈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친정엄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며 닮아가고 있다. 그전에는 몰랐던 엄마의 삶을 경험하며 자애롭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이미지는 환상임을 깨달았다. 작품에서는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통해 모성의 대물림을 표현하고, 엄마가 된 후 내가 경험하고 있는 모성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근래 들어 이상기후에 따른 여름철 기후변화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극복해나가야 할 숙명적 과제다. 기후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미래의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인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강하고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보했다. 장마철을 앞두고 지역 내 재해 예방시설과 취약지역에 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경주시는 여름철 우기 및 집중호우로 인한 재산 및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21일까지 취약시설 집중 점검에 나섰다. 안전관리자문단 인력풀 등을 활용해 민관합동으로 급경사지 23곳, 법정도로, 우수관, 도로 배수시설, 지하차도 9곳 등에 대해 집중 점검에 들어갔다. 급경사지는 비탈면 상태, 낙석 및 토석류 발생 여부, 비탈면 시설 등, 도로 및 배수시설은 균열, 침하, 융기, 포트홀, 맨홀단차 등에 대해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또 지하차도 자동 진입차단시설 작동 여부, 펌프시설 작동 및 배수로 준설 여부 등도 살펴볼 계획이다. 시는 이번 점검에서 이상 징후나 재해 위험성이 발견되면 긴급보수 공사에 나선다고 한다. 또 국립공원 토함산지구 곳곳에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언론보도 후 주낙영 시장은 지난 11일 피해 예방을 위해 팔을 걷었다. 지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내습 시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산사태 현장을 점검한 주 시장은 신속한 복구 작업과 함께 산사태 피해 예방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재난취약시설은 집중호우로 지반과 토양 등이 약해져 무너짐, 쓸려내림, 낙석 및 붕괴 등으로 인한 사고발생률이 높은 곳을 말한다. 또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배수가 되지 않아 침수되는 도로나 지하차도 등도 포함된다. 재난은 그동안의 경험치로 볼 때 사전준비가 소홀한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마 하는 안일함이 큰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을 방치해 재난을 키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기 전 위험시설물과 취약지구에 대한 점검을 서두르고, 지속적인 예찰과 대비를 강화해야 한다. 올해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소식이 들리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지난 10일 경주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11일엔 낮 최고기온이 36.0℃까지 치솟는 등 폭염이 예년보다 일찍 다가왔다. 문제는 폭염이 해가 갈수록 점점 빨리 다가오고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다. 이상기후 영향에 폭염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보로 긴장감까지 겹친다. 피해가 더 걱정되는 쪽은 폭염 취약계층이다. 더위를 막아낼 여건이 상대적으로 약한 취약계층에게는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은 겨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이 상승하고,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에너지 취약계층이 양산될 위험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폭염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 빈곤층과 노인, 저소득 가구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철 평균온도가 상승했고, 에너지 복지정책이 확대되면서 겨울 고통지수는 내려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관행처럼 어려운 이웃돕기는 겨울과 연말에 집중돼있다. 계절 특성이 바뀌었지만 폭염 취약계층의 여름나기 지원은 겨울철보다 상대적으로 인색한 편이다. 냉방비 폭탄 우려에 고통받는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조금이라도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경주시는 매년 여름 장애인, 독거노인, 거동 불편자 등 폭염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재난 도우미를 지정해 안부 전화, 방문 건강체크 등을 실시해왔다. 또 무더위 쉼터를 지정·설치하고, 지역 경로당에는 냉방비(전기요금)를 지원했다. 이제는 기존 폭염 대책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다. 어딘가에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정책조차 몰라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없도록 대책 마련과 홍보, 관심이 필요하다. 또 각종 단체와 기업 등의 겨울철에 집중된 이웃돕기도 여름에 나눠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올해 일찍 찾아온 폭염 만큼 여름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도 서둘러 마련하길 기대한다.
APEC 유치에 대한 경주, 인천, 제주의 치열한 유치전이 지난 7일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 PT를 마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세 도시 어느 곳도 ‘아직은 유치전이 끝난 게 아니다’며 다시 치열한 물밑 로비에 돌입할 기세다. 그게 합당한 것인지, 최종 PT까지 치른 마당에 계속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경주의 경우, APEC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모습을 서울에서 곧잘 볼 수 있었다. 유치의 결정권자들과 이 유치전을 보도할 방송·언론들, 여론을 이끌 눈이 많은 서울, 수도권이다 보니 이곳에 대한 집중적인 홍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청계천 광장을 비롯한 주요 인구 이동 지역의 대형 광고판과 홍보용 TV, 인천공항, 서울역을 비롯한 중요 교통 중심지의 광고판, 심지어 공항의 화물 운송 카트에도 유치를 홍보하는 경주시의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경주시민들에게 보여준 각오도 대단했다. 경주시 전체가 APEC 유치를 위한 홍보 구조물, 홍보 영상, 홍보 팸플릿, 현수막과 치장들이 넘쳐날 만큼 눈에 띄었다. 향우들과 관련된 행사에도 어김없이 APEC 유치를 호소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간곡했고 유치에 대한 강한 자신감도 두드러져 보였다. 아마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경쟁도시인 인천이나 제주 역시 경제적 시간적 투자는 물론 인맥을 연결하고 조금이라도 눈길을 끌 만한 방법들을 총동원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유치를 확신하고 유치 후의 성과도 비슷하게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세 도시 중 유치에 성공한 두 도시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탈락한 도시가 느낄 패배감이 얼마나 클 것이며 이처럼 오랜 기간, 물심 양면의 노력을 기울인 후유증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특히 우리는 지난해 11월 28일 있었던 ‘2030 엑스포’ 유치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어 실패한 경우의 파장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당시 정부는 5500억원의 혈세를 쓰며 정제계 인사를 총동원해 야단법석 떨었고 유치에 대한 자신감을 지나치게 과장해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큰 기대감을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29표의 저조한 성적을 올림으로써 국민들이 어이없는 충격을 받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급격히 떨어졌다. 세 도시 중 두 곳은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노력과 공을 더 들인 곳이 선택받아 개선가를 울리면 그 도시는 물론 행복하고 좋겠지만 나머지 두 도시는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대한민국이 겪었을 법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의 혈세를 과도하게 쓴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유치전은 오히려 세 도시가 협의해 과하게 경쟁하는 것을 자제하고 시민들에게는 최대한 차분하게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국내 어디에서 열려도 좋지만 기왕이면 우리 도시에서 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런데 마치 APEC을 유치하면 세계인이 바로 몰려들 것처럼 선전하고 금방이라도 도시가 발전될 것처럼 떠벌리며 열 올리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설령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세계인이 몰려들 리도 없고 기대한 만큼의 발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설혹 기대한 만큼 세계인이 몰리더라도 그것이 과연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인가도 따져 보아야 한다. 물론 경주 같은 관광도시는 유치전에 참가하는 자체로 그 유치전을 통한 대외 홍보 효과가 훨씬 클 것이란 점에서 어지간한 투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품는 기대는 이같은 실익과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더욱 대외적으로는 혼신을 다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이중작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유치에 실패해도 대외적으로는 유치전을 통해 홍보 효과를 거두고 대내적으로는 아쉬움을 겪을망정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기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밑바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탄핵을 꺼집어 낸다. 지지율이 낮다 보니 모든 탓이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무엇 때문에 지지율이 이럴까? 가장 큰 이유는 가진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의 심리는 일단 가진 자에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호감을 가지지 않는게 지금의 민심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가 국정 난맥을 원활하게 풀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고, 세 번째가 대응, 대처의 미흡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경우를 만들고 대응과 대처를 잘 한다면 인기가 나아지고, 지지율 또한 오를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대책과 상황에 맞는 속도 조절은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원동력이다. 늦은 대처는 차라리 안하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채상병 특검이란 이슈에 갇힌 대통령은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렇게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을 상황이었던가 하고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 초반의 대응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좀 더 빨리 정면 대처했더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상황인데 그걸 놓쳐 버리니 지금의 애매한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순간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위와 같은 예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지율과 인기의 변화는 한 순간이다. 상대방이 잘함에 따른 지지율 저하는 큰 문제이나 야당의 인기 또한 동반 하락 하는 것을 보면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에 처해진게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지금의 난맥을 풀어야 할까? 야당과의 정쟁보다는 국민만을 생각하면서 민생과 먹고 사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내놓아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야당이 특검을 주장할 때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책 등으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거대 야당의 정치 공세에 휘둘리다간 남은 임기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되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은 그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되기에 결국은 크나큰 손실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개혁, 의료개혁, 연금개혁 등 어느 하나 간단한게 없는 개혁을 전개해 나가면서 그것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 이를데가 없다. 국민들의 인기와 직결되기에 다른 정권 같았으면 건드릴 엄두도 못낼 사항들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면서도 그러한 것들이 지지율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 그 이유도 타이밍을 놓친 탓일 것이다. 밀어 붙일때와 소통할 때 등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여론전도 병행을 하면서 추진을 해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그것을 간과하다간 오히려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의 정부가 그렇다. 세밀히 쳐다보면 어느 것 하나 크게 흠이 되는 것 없다. 근데도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처럼 소통이 빠른 정보화 시대에는 어느 것이 먼저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난 총선 때만 하더라도, 3월 초만 하더라도 지금 여당이 승리에 자만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경계령을 내릴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완전 역전돼 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기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호주대사 임명건 등 빌미를 주었기에 야당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라 봐야 한다. 이제 이 정부가 다시 국민들의 지지율을 얻으려면 지금 타이밍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등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가와 소득의 불균형, 국가적 위기로 다가오는 저출생 문제이다. 이제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내놔야 할 것이고, 그것이 충분치 않을 때는 더 노력해 보충 방안을 계속적으로 내놓는 작업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들 대다수의 바람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소수의 적극관심층이 쏟아내는 정치 공세에 지금은 귀 기울일 때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법문제다. 대한민국 사회가 지금처럼 판·검사가 주목 받던 때가 또 있었나 싶고, 지금처럼 판·검사가 정치적 성향에 치우칠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차별이 있어서도 안되고 신속해야 한다. 시간을 끌다 보면 죄의 유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기 유명가수 김호중 씨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신속하고 엄중했다.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벌은 이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법의 엄중함을 국민들은 더욱 체감하게 된다. 공수처만 뿐만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층들만 따로 다루는 법원의 필요성도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여론조사가 향후 방향의 가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느 순간엔가 여론조사가 만능·만사형통이되어 버렸다. 참고는 하더라도 맹신해서는 안된다. 어딘가에 의지하는 사람, 국민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어디가 가려운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지금의 경주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자 그 용기를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그 답이 항상 늘 머릿속과 마음속에 가득해야 자격이 있다. 아니면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인재를 볼 수 있는 혜안과 덕이 있는 사람이던지···. 우리는 한사람에 의해 수십,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선출직은 아무나 해도 되나?’를 ‘절대 아니다’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선택한 선출직 지도자라는 것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계림사화(鷄林士禍)는 을사년(1725) 경주부의 영남남인이 화를 당한 사건으로, 1722년 경주부윤 권세항(權世恒.재임1722.4~1723.2)과 울산부사 홍상빈(洪尙賓,1672~1740)이 경주지역 남인 유생 1백여명을 동원하여 노론의 거두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를 모신 봉암영당(鳳巖影堂)을 훼철했다가 대거 치죄(治罪)된 사화를 말한다. 봉암영당은 1717년 우암을 모시는 서원건립 소장(疏章)을 시작으로 1719년 노론계 경주부윤 이정익의 도움으로 건립되었고, 1725년 부윤 조명봉에 힘입어 인산영당(仁山影堂)을 거쳐, 1764년 영당에 목주를 모시고 강당을 증축하고 ‘인산서원’이라 명하였다. 노론계 서원으로 유명했던 인산서원은 현재 허물어지고 흔적조차 알기 어려운 실정으로 당시 남인의 땅에 노론계 서원건립을 둘러싼 경주부의 봉암영당 훼철사건과 계림사화 발발 그리고 남인과 노론의 향전(鄕戰) 대립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의 하나이다. 우암은 1674년 제2차 예송논쟁에서 패해 파직삭출되어, 1675년(숙종1) 정월에 함경도 덕원(德源)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포항의 장기(長鬐)와 경남의 거제로 이배되었다. 당시 우암은 포항 장기에서 5년간 적거하다가 1679년 4월 거제로 이배되는 과정에 경주부를 경유하면서 경주의 곡산한씨 등과 접촉하였다. 이에 둔옹(遁翁) 한여유(韓汝愈,1642~1709)의 둔옹집 「연보」에 의하면, “기미년(1679) 선생[한여유] 38세에 유배에 오른 우암 선생을 뵈었다. 이때 송 선생께서는 포항 장기[蓬山]로부터 거제로 이배되어 경주를 지나갔다.”라 기록한다. 이 일로 경주 인왕산자락 아래에 곡산한씨의 주도로 봉암영당을 세우고 훗날 인산서원으로 변모를 거듭하면서 영남의 근거지에 노론계 서원의 입지를 확고히 하지만, 서원건립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노론인사였으며, 영남남인의 참여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유림의 공조와 부윤의 도움으로 봉암영당을 지었지만 1722년 남인에 의한 봉암영당 훼철사건이 발생하면서 노론의 한시유가 장살(杖殺)을 당하며 유림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된다. 이후 을사년(1725) 노론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지난날 봉암영당 훼철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당시 남인계 경주부의 이덕표(李德標)와 울산부의 이광희(李光熹) 등 28명을 처벌하는 사건[鷄林士禍]이 벌어지면서, 경주 유림 간 갈등의 대립은 심화되어 간다. 결국 경주부의 남인계 등은 봉암영당의 건립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봉암영당 훼철사건과 을사년(1725) 계림사화라는 경주부윤의 당론과 집권세력의 입장에 따라 남인과 노론의 힘겨루기는 지역 유림 간 큰 진통을 낳았다. 시대별 사화와 정쟁(政爭)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 왔으며 중앙의 정치세력과 지방의 부윤과 목사 그리고 관찰사 역시 정치적 흐름에 따라 체직되었다. 경주부에 발생한 계림사화는 우암이 포항 장기에서 거제로 이배되어 가는 과정에서 경주부를 경유한 일이 어째보면 덕화(德化)이자 참화(慘禍)로 판단된다. 이는 다분히 중앙정치와 연동되었으며, 지방에서도 중앙의 통제에 따라 영당과 사당건립 등의 소규모 전개양상이 이뤄졌을 것이다. 다만 중앙과 지방의 유착에 대한 단서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남인(서인주도)의 정권장악 이후 1674년 갑인예송에서 남인이 우위에 있었고, 이후 서인에 의한 남인의 정치적 탄압이 지속되었으며, 1680년 경신환국과 1694년 갑술환국으로 집권세력이 교체되었다. 이렇듯 숙종년간 지속된 환국으로 붕당체제에서 일당(一黨) 체제의 정치판도로 변하고, 이에 대한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당시 안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노론계가 영남의 곳곳에 파고들어 서원을 건립하며 남인들과 공분을 사는 일이 발생하고, 그 가운데 경주지역 역시 영남남인이 노론에 의해 탄압이 일어나면서 그 중심선상에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신임옥사(辛壬獄事)를 맞이해 양동의 우와 이덕표가 「변신옥소」을 올리는 과정에서 이미 노론의 미움을 샀고, 더불어 경주 땅에 노론계 서원이 들어서면서 남인과 노론의 대립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태가 된다. 거제에서 우암의 유상(遺像)을 받으러 온 옥삼헌(玉三獻)에게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은 “공자께서 뗏목을 타고 구이(九夷)에 가고자한 탄식이 있은 것은 또한 우암 선생이 귀양 간 것이 사람의 재액(災厄)으로 간 것이 아니고, 이 역시 시류(時流)가 하여금 그렇게 시킨 것이다”라며 군자가 가서 살고자 한 구이를 빗대어 설명한 것처럼, 우암의 유배 역시 인액(人厄)이 아니라 시류 때문이라 말한다. 시류가 때로는 남인을, 때로는 노론을 곤혹함에 처하게 하였지만, 그 누가 이 일에 대해 시비를 끊듯이 가르겠는가? 계림사화의 처분에 남인과 노론의 잘잘못을 논하기에 역사적 아픔과 유림 간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고, 당시 격하게 대립된 상황을 시류로써 이해하며, 나아가 이제는 화해와 협력자로 동조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라 함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달’을 의미한다. 6.25 전쟁이나 연평해전(6.29), 그 외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는 달이다. 그래서 정치계에서도 현충원 방문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아줌마에게 군인은 어릴 적 위문 편지를 써야 했던 대상이다. 제주공항과 가까운 지역에 살았는데 무작정 가서 편지를 드렸다. 군인 아저씨가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제주공항이 군사 공항이어서 군인 두 명이 입구에 항상 서 있었다. 좀 더 장성해서는 대학생이 되어 선배나 동기, 후배들이 하나둘 군대에 들어갔고 휴가 나오면 주구장창 술을 마시며 환영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군인을 생각하면 존경보다는 친근함이 강하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군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챈스 일병의 귀환>. 2009년도에 개봉한 영화지만 아줌마는 몇 해 전에야 이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이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챈스 일병의 운구 임무를 맡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다. 평소에 자신과 함께 근무하던 이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전사자 명단을 살피던 그는 자신과 고향이 같은 콜로라도 출신인 챈스 일병의 운구 임무를 자원하게 된다. 챈스 일병의 가족이 현재는 와이오밍 주에 살고 있기에 콜로라도 주에서 와이오밍 주까지 운구를 하게 되면서 느낀 것들을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은 다이어리에 메모했고, 나중에는 ‘한 해병의 집을 향한 여정(A Marin’s Journey Home)’이란 열두 쪽의 수필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의 밑바탕이 되었다. 아줌마는 이 영화를 통해, 군인에 대한 예우에 대해 처음으로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군인은 여름이면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겨울이면 폭설이 내린 지역에서 그들의 젊음과 열정으로, 언제나 가장 먼저 나타나 피해 주민들을 돕는다. 자연재해가 아니라도 그렇다. 농번기 때 일손이 부족한 지역에, 농활마저 불가능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군인들이었다. 물론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군부대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뉴스에 나오든 안 나오든, 그들은 언제나 국민 곁에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던 전시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비전시 상황에서도 군인은 언제나 국민 곁에 있다. 채 상병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며 아줌마는 마음이 아팠다. 사실 관계 확인이나 특검법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정작 군인에 대한 예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 같은 엄마 입장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슬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들이 맡았던 임무가 적정했는지, 구명조끼 없이 물살이 센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 군인의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 단지 장성한 아들이 차가운 주검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그런 부모를 향해 우리는, 사회는 어땠는가? 정치 싸움의 수단으로 그들을 매도하거나 그들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나? 우리는 가장 먼저 예우해야 했다.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에 대한 예우,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 우리는 그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했다. 그래서 혹여 그들을 매도하거나 이용하려는 자들을 온 사회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그런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도하는 자와 이용하려는 자만이 가득한 것 같아, 아줌마는 이 점이 가장 슬프다. 우리를 대신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의 죽음이다. 어떤 과정에서 일어난 죽음이었든지, 일반 시민인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나라를 위해 젊음과 열정, 결국 생명까지 바친 그를 향해 진심으로 애도해야 한다. 이보다 중한 일이 어디 있을까?
‘백조의 호수’(1877), ‘잠자는 숲속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작품이다. 이처럼 차이콥스키는 우리나라에 발레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만큼이나 다재다능하다. 교향곡, 협주곡은 물론이고, 오페라도 잘 만들었다. 차이콥스키가 우리나라에서 다소 과소평가된 것은 그가 러시아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독일권의 주류 음악가가 아닌데다 과거 반공을 국시로 했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이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한몫했다.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양 대장은 피아노협주곡 1번(1874)과 바이올린협주곡(1877)이다. 두 곡 모두 오늘날 자주 연주된다. 호른의 장쾌한 소리에 피아노 건반의 강렬한 타격으로 시작되는 피협 1번은 명곡이다. 러시아가 도핑 스캔들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하게 되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러시아팀의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차이콥스키의 유일한 바협은 세계 4대 바이올린협주곡으로 꼽힐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결하듯 넘실넘실 주고받는 연주는 협주곡의 어원(concertare: 협력하며 경쟁하다)을 잘 구현하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을 6곡 작곡했다. 후기교향곡 4, 5 ,6번이 유명한데 이 중에서 그가 사망한 해에 작곡한 6번 비창이 오늘날 무대에 자주 오른다. 그는 비창 초연 후 불과 9일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된 셈이다. 비창은 클래식에 익숙한 유럽 관객들도 3악장이 끝날 때 박수 치는 실수를 종종 범하는 곡이다. 3악장 마지막 부분이 4악장 종결부보다 더 강렬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는 기악곡의 대가였기에 발레 음악 역시 훌륭하다. 발레 음악은 원래 이류 음악가들의 영역이었다. 살펴보면 일류 음악가가 쓴 발레 음악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차이콥스키가 발레 음악을 음악답게 만든 최초의 작곡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의 3대 발레곡이 처음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프티파(Marius Petipa, 1819-1910)와 같은 거장 안무가들을 만나면서 그의 발레곡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가 무려 10개의 오페라를 작곡한 러시아 오페라의 거장이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을 뽑으라면 단연 ‘예브게니 오네긴(Eugene Onegin)’(1879)이다. 푸시킨(Alexander Pushkin, 1799-1837)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타티아나는 예브게니를 연모하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어 외려 예브게니가 후회하며 (유부녀가 된) 타티아나에게 구애한다.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밀류코바를 타티아나로 여겼다. 그래서 밀류코바와 결혼한 것이다. 타티아나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밀류코바는 차이콥스키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하지 않았던가? 차이콥스키의 사인은 콜레라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성애에 기인한 음독자살설 또한 유력하다.
경주시립도서관은 대구한의대 독도&안용복 연구소와 협력해 다음달 4일부터 6일까지 2024년 독도 인문학 교실을 운영한다. 이번 인문학 교실은 직장인과 성인을 대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강좌는 총 3회로 2회 강연, 1회 현장 탐방으로 구성됐다. 7월 4일 김병우 대구한의대 교수(독도&안용복 연구소장)가 ‘역사 속의 독도, 오늘의 독도’라는 주제로, 5일은 이정태 경북대 교수의 ‘독도가 독도인 이유’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된다. 6일은 김병우 교수와 함께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용복 생가지,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 등을 탐방하면서 독도와 안용복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프로그램 신청은 오는 18일 오전 10시부터 23일 오후 6시까지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접수한다. 경주시민 40명을 대상으로 선착순 모집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시립도서관 사서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이하 센터)는 친절한경자씨들과 함께 담배꽁초 무단투기 방지 캠페인 ‘V-클린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V-클린 캠페인’은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신규 프로그램으로, 배수구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로 인한 침수피해 급증, 환경오염, 화재발생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되는 시민 인식개선 프로그램이다. 캠페인은 자원봉사단체를 대상으로 상시 모집중이며, PE망 채색활동과 스티커 부착활동으로 나뉘어져 진행된다. 현재까지 7개 단체(△열린난타, △재난안전보안관, △황성동자율방범대, △황오동 자율방재단, △한국자유총연맹 경주시지회 여성회, △초록옹달샘, △경주시민응원봉사단) 100여명의 친절한경자씨들이 참여해 경주시를 위해 노력중에 있다. 정재윤 이사장은 “‘V-클린 캠페인’을 통해 재난 발생 시 위험을 줄이고, 깨끗한 경주시 만들기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며 “참여해주신 단체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친절한경자씨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캠페인 참여 및 관련 사항은 포스터 참고 및 전화(070-4415-5821)로 문의하면 된다.
내남면 청년회와 부녀회, 경주시민응원단은 지난 8일 월산2리 경로당을 찾아 마을주민과 함께 어르신 효 잔치를 열었다. <사진> 이날 효 잔치에는 한운복 월산2리경로회장, 이종학 이장, 김춘자 부녀회장, 이종봉 청년회장, 손승호 주민자치위원장 등을 비롯해 마을주민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히 진행됐다. 건강한 어르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는 건강체조, 민요·색소폰 공연 등이 펼쳐졌다. 내남면은 경주시 서남쪽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외동읍과 경계하고, 남쪽으로는 울산시 울주군, 서북쪽으로는 건천읍, 서쪽으로는 산내면과 경계한다. 금오산과 고위산을 잇는 금오산맥과 단석산 고헌산을 잇는 주사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쳐있고, 각각 동과 서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맥 사이로 형산강이 흐른다. 내남면 남쪽 지역 월산리(月山里) 마을은 달같이 둥근 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해 달뫼, 달미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표기하면 월산(月山)이라 했다. 자연 마을로 월산1리 마을과 월산 2리 마을이 있는데 월산1리는 주로 벼농사에 의지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에 의해 두 마을은 갈라져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단체는 지난달 월산1리에서 어르신 효 잔치를 열기도 했다. 청년회와 부녀회, 이장들은 “어르신 효 잔치는 효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더욱 건강하고 존경받는 월산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효’라는 가치를 널리 퍼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병진 경주시민응원단장은 “청년회, 부녀회, 이장님들 덕분에 어르신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모두 함께 화합하는 시간을 내주셔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경주시민응원단은 이날 오후 경주시민의 날 행사에 참여해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를 희망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경주 개최를 응원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5일장으로 열리는 아화 전통시장을 갔다. 가는 도중 아기자기한 논 들판에서는 이앙기로 모내기가 한창이다. 본국 스리랑카에서는 사람들이 아직도 모내기를 하는데 여기 경주에는 사람들이 모심는 광경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트랙터로 논을 고르고 이앙기로 모심기를 하는 광경이 참 낯설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참 발전한 나라 같다. 기계로 농사를 지으니까 사람들이 일할 곳이 없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안 좋을 것 같다. 아화시장에 들어서니까 아주 규모가 작다는 것을 느꼈다. 장옥은 4개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면지역의 5일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장에 올 것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실제와보니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과일가게 1곳, 고기파는가게 2곳, 각종 잡화파는가게 1곳이 문을 연 것이 전부다. 그나마 파리를 쫓고 있는 가게 주인들이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와 내가 같이 간 선생님이 장에 온 사람의 전부다. 장 어귀 도로가에 할머니 한 분은 각종 모종을 팔고 있었다. 고추, 호박, 오이, 토마토, 가지, 들깨 등등 10가지 정도되는 모종이 있었는데 며칠 전 건천장에서 팔고 남은 것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외국 사람이 이런데 왜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한국의 경주의 시골장이 어떤지 궁금해서 처음으로 보러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오이 모종과 토마토 모종을 사 가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사가지고 집에 가서 심고 싶었으나 기르는데 자신이 없어서 못 샀다. 장옥에서 좀 걸어 나오니 공용주차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온 장사꾼들이 4군데 트럭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과일 트럭, 신발 트럭, 뻥티기 트럭, 각종 연장을 파는 트럭, 그리고 공용주차장에는 민물고기를 파는 아저씨, 아줌마가 고기를 다듬고 있었다. 어디에서 잡아 왔는지는 알 수 없는데 미꾸라지, 가물치, 붕어, 빨간고기, 새우 등등을 팔고 있었다. 다섯 군데의 외지 장사꾼들이 파는 곳에는 사람들이 한두명 있었다. 모내기를 하는 시기라서 그런가? 정말 사람들이 없어 놀랐다. 뻥튀기 트럭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 장사가 이렇게 안돼요? 물건 사러오는 사람이 이렇게 없어요? 장사하러 오는 분들도 다섯 분이 전부인가요?”라고 물었다. 뻥튀기 아저씨 왈 “요즘은 이게 전부요. 몇 년 전만해도 100여명의 장사트럭이 이 도로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화장을 오는 손님들이 없으니 장사트럭이 이곳에 안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고 이곳 아화장은 얼마 안가서 없어질 것 같네요”라고 대답했다. 함께 간 선생님은 “5일장에는 정말 재미나고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 등이 많았는데, 참 안타깝다”고 했다. 5일장을 방문해 한국, 경주의 보통사람들의 사는 모습, 장사하는 모습을 참 보고 싶었는데 이곳 아화장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서 참 아쉬웠다. 다음에는 좀 더 규모가 있는 5일장을 찾아가 한국의 경주의 5일장 정서와 기억에 남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을 경주를 사랑한다. 경주에서 더 오래 오래 살고 싶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가 주관한 경주시노인회장기 제6회 게이트볼 대회가 지난 5일 황성공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노인회 분회별 24개팀, 18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예선리그를 거친 후 결선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한 우정을 나누는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 대회는 집중력과 팀원들의 단결된 모습을 보인 황성B팀이 우승했으며, 준우승은 현곡A팀, 장려상은 불국A팀, 노력상 산대A팀에게 각각 돌아갔다. 구승회 지회장은 “참여 선수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기고, 게이트볼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주낙영 시장은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건강한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운동 시설개선과 프로그램 발굴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여름인가 싶다가도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은 꼭 늦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또 여름이 온다고 지레 폭염을 걱정하는 것도 풀밭에 서면 다 부질없는 것 아닌가. 봄비 추지게 내린 후에도 시드는 꽃이 있고, 폭염에도 냉해를 입는 식물이 있으니 어찌 계절을 탓할까. 오고 감이 뭣이든 간에 우리는 맞추어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그러고 보니 지천에 앞다투어 피고 지던 꽃도 어느 정도 정연해진듯하다. 나무는 어느새 그늘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여름은 달리 오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나부대며 제 그늘을 키우는 나무로부터 그렇게 오는 거다. 최치원의 옛집 독서당은 어디일까 미명과 섞여 푸르스름하게 기지개를 켜는 풀밭에 섰다. 미명을 지나 서서히 묽어지는 어둠을 위로 삼아 마치 태초의 종족처럼 풀밭으로 덥석 발을 들이는 일은, 어쩌면 무모한 용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어둠을 가르며 달려왔느냐 물으면, 무언가에 홀린 채 ‘그냥’이라는 말뿐, 허울 좋은 대답은 거짓말 같아 차마 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저 탑 하나만 삐쭉 선 풀밭, 그것이 목적이었다고 하면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딱히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광활한 황룡사 터를 걸으며 사야에 얼핏 걸렸던 탑일뿐이었다. 당연히 황룡사 터의 일부일 거라 여겼던 탑은, 황룡사 터를 구분 짓는 울타리 그 너머에 존재했다. 아직 발굴이 덜 된 구역이라서 울타리를 쳐 놓았을 거라 여기며 한 번도 울타리 너머의 영역에 관해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경주를 기행하다 보면 흔한 것이 탑이다. 굳이 울타리를 넘어가면서까지 마주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존재감 없이 풀밭에 허허롭게 서 있던 탑은, 어쩌면 나를 비롯해 황룡사 터를 찾는 수많은 이들을 훔쳐보았을 지도 모른다. 곁눈질하며 수줍은 듯, 언젠가는 자신을 찾아와주겠지, 아니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참 오래도 걸렸다, 스치며 지나간 탑과 조우하는 일. ‘미탄사 터’란다. 이름에서 전해져오는 느낌부터 낯설지 않은가. ‘황룡사’나 ‘감은사’처럼 자주 들어 귀에 익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입에 착 붙는 이름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낯섦에서 오는 묘한 신비감이 있다. 한자를 풀이하면 맛 ‘미(味)’ 삼킬 ‘탄(呑)’, ‘맛을 삼키다’는 의미인데, 부처를 모시는 거룩한 사찰 이름을 맛에 견준다는 것도 뭔가 어색하다. 그렇다면 한자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께 가장 훌륭한 음식(맛있는)을 공양하여 드시도록 하는 거룩한 장소’로 이해해 볼까. 아니 아니, ‘부처님이 훌륭한 음식을 드시고 기뻐하시는 복된 장소’로 이해해 볼까. 미탄사는 어느 시기 어디에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떻게 운영되다 사라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에 ‘味呑(미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여러 점 나와 ‘미탄사 터’라 불리게 되었다는 게 전부다. 학계에서는 미탄사가 8세기에 조성돼 13세기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유사》 기이편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 편에는 미탄사에 관해 짧게 기록돼 있다. ‘진한 땅에 예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다. 그중 네 번째 자산 진지촌 촌장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의 사로국 6촌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정 씨(鄭氏)의 도시조(都始祖)다. 처음 화산(花山)에서 내려왔으니, 이 사람이 신라시대 육두부 중 하나인 본피부(本彼部) 최 씨(崔氏)의 조상이 된다. 최치원은 이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도 황룡사 남쪽과 미탄사 남쪽에 옛날 집터가 있어 이것이 최후(崔候, 최 문창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 명문 기와의 발견은 ‘여기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년 ~ ?,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의 고택 독서당(讀書堂)이라오.’ 외치며 세상에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탄사 터에는 삼층석탑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금당지와 여러 동의 건물과 원지(園池), 담장, 우물, 배수시설의 흔적도 나왔다. 금당이 탑과 일직선을 이루지 못하고 중심축에서 벗어났다는 것, 신라왕경의 전형적인 사찰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는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8세기 이후 왕경에 자리 잡은 귀족층의 개인 사찰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간결미 돋보이는 보물, 미탄사 터 삼층석탑 미탄사 터에서 단연 으뜸은 석탑이고, 탑 옆으로 펼쳐진 물웅덩이가 두 번째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 들어차면 하늘도 탑도 모두 물속에 내려와 잠긴다. 인적이 없고 해가 저물 무렵이면 노을과 함께 장관을 이루는데 더 신비롭기까지 하다. 미탄사 삼층석탑은 신라 왕경 내에 조성된 탑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석탑이다. 도굴로 기단부와 탑신(몸돌) 일부가 사라진 채 방치되다가 1980년 복원되었고, 보물(제1928호)로 지정되었다. 전형적인 신라 탑의 모습이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지만 마치 새로 조성한 탑처럼 아주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이다. 조각이나 치장조차 없어 간결하며, 차분하면서도 정연하고,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인다. 약 6m 높이로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인 석가탑과도 많이 닮았다. 기단부 초석 아래 돌로 쌓은 기초(적심) 부분에서는 금동불상, 곱돌로 깎아 만든 새, 각종 수정 등 국가의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땅의 기운을 누르고 땅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埋納)하는 물건이나 제기(지진구)가 출토되었다. 미탄사는 여몽전쟁을 견뎠을 고려와 몽골 간의 전쟁(여몽전쟁)은 잔인했다. 몽골은 1231년(고종 19년)부터 1259년(고종 46년)까지 28년 동안 무려 9차례나 고려를 침략했다. 몽골군은 고려 국토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결국 1238년(고종 25년) 황룡사마저 타격을 입었다. 아흐레 동안 불에 탔다고 전해지는 황룡사를 미탄사 석탑은 모두 보았을 테다.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한 세월을 함께한 황룡사가 무너질 때, 미탄사와 석탑은 통곡하며 치욕의 순간을 버텨냈을 것이다. 주변이 사라지고 인적마저 끊어질 때, 혼자 남은 미탄사 석탑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불타 쓰러지는 황룡사 구층목탑과 화마의 열기에 녹아내리는 장륙존상을 목도했을 미탄사 석탑은 홀로 천년을 통곡하며 버텨왔을 것이다.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며 당나라로 유학 간 최치원이 돌아왔을 땐 얼마나 기뻐하며 맞이했을까. 미탄사 이야기를 단 한 줄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인가. 풀밭을 헤매며 무슨 단서라도 찾겠다는 마음이 일다가 이내 누그러뜨리고 만다. 풀숲에 숨어 몸을 가린 가련한 도기 파편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 것만 같지만 나는 그들의 침묵을 존중하기로 한다. 파편들을 잇고 이어, 살아보지 않은 한 시대를 마치 살아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내게 어울리지 않다. 바람이 부니 보문들판을 가득 채운 초록의 풀들이 한 방향으로 흔들리며 쓰러졌다 일어난다. 미탄사 터에서의 사색은 여기까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도 세월에 조금씩 흐려지다가 지워지고 또 다른 미래를 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숨 쉬는 지금을 또렷하게 기억해 두는 것, 사라지고 나면 그땐 그랬었지 하며 회상하는 것도 내 몫이겠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나는 옛것이 되고, 또 다른 지금이 나를 살게 하겠지. 순간을 명징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 삶에 충실한 태도일 것이다. 구름은 저 혼자 분주하고, 황룡사 터에서 미탄사 터에 이르기까지 이 광활한 대지에 개망초 꽃만 수억만 송이 피어 하늘거린다. 탑을 남겨두고 풀밭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 당간(幢竿)도 지주(支柱)도 없는 퇴락한 절터엔 혼자 선 탑도 야생초 같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사)대한노인회 경주시회 경로당행복선생님들은 여름철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름나기와 쾌적하고 편리한 경로당 이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가증진, 평생교육, 생활교육, 지역사회 참여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우며, 안부 확인, 폭염 대비 행동요령, 건강수칙 안내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경로당 왕래가 어려운 돌봄 어르신의 건강과 안전도 방문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좌식생활에 불편을 겪는 이용 어르신의 편의 제공을 위해 경주시는 경로당에 의자와 테이블, 소파를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행복선생님들은 “혹서기 취약한 홀몸 어르신들께서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나길 바라며 더욱 안전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구승회 노인회 경주시지회 회장은 “올해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폭염이 예상됨에 따라 어르신들이 쾌적한 경로당에서 무더위를 식히도록 꼼꼼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서비스가 전국적으로 시작됐지만, 경주시는 현재까지 시행기관이 모집되지 않아 관련 기관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사업인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서비스’는 지난 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 중 장애 정도가 극심하고 자해나 타해 등으로 기존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1:1 맞춤형 돌봄사업이다. 서비스 이용자로 선정되면 개별이나 그룹으로 산책, 음악, 체육 등 원하는 활동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이 모집되지 않아 서비스 제공이 늦어지고 있다. 경주시가 지난 4월부터 서비스 제공을 위해 사업 수행이 가능한 기관을 대상으로 모집공고 했지만, 단 한 곳도 모집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처음 시행하는 사업이라 모집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 해당 서비스가 제공이 가능한 기관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늦더라도 지역에서 통합돌봄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한편 경북에서는 포항이 처음으로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서비스를 오는 7월부터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동상은 사랑의 열매 본부에 설치하면 아주 좋겠구만!”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충의공원에 설치된 최부자댁 나눔현장을 형상화한 동상을 본 한주식 회장의 소감이다. 지난 8일 경주시청 시장실에서 의미 있는 약정식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물류기지의 현대화와 초대형화를 이끈 경주 출신, 지산그룹 한주식 회장이 매년 2000만원씩 10년간 총 2억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내겠다는 약정식을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약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행정안전부에서 정한 고향사랑기부금 약정한도액이 2024년까지 500만원이었던 것이 내년부터는 연간 2000만원으로 늘어나는데, 그 첫 번째 약정자로 한주식 회장이 미리 약정했기 때문이다. 2000만원 한도액 증액의 마중물로서 한주식 회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남다른 의미가 들어있다. 더구나 앞으로 10년 동안 새해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2000만원씩 납부하겠다는 약정은 ‘한주식 회장만의’, ‘한주식 회장다운’ 결정이기에 고향사랑기부금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뜻을 가진 독지가들에게 중요한 귀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2025년부터 10년간 2000만원 총 2억원 고향사랑기부금 약정, 2024 500만원 고액기부 1호, 경주고·신라중 동창회에도 1000만원씩 후원 이 결정은 원래 지난 5월부터 추진된 계획이었다. 한주식 회장은 고향사랑기부금을 알게 된 2023년 제13호 500만원 고액기부자로 처음 납부했고 2024년에는 제1호 500만원 고액 납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 와중에 고향사랑기부금이 시행 첫해에 비해 2년 차부터 급격히 부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솔선수범하게 되었다. 한주식 회장은 지난 5월 17일 주낙영 시장에게 2025년부터 30년간 매년 한도액 500만원을 새해 출발과 동시에 첫 번째로 내겠다고 제안했다. 특이한 것은 만약 한주식 회장 자신이 도중에 사망할 경우 사망 다음 날에 유족을 통해 나머지 햇수를 한꺼번에 납부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 제안을 접한 주낙영 시장은 한주식 회장의 제안을 크게 환영하는 한편 현실적으로 한주식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알렸다. 한도액이 500만원이고 이것이 행안부 지침이라는 점, 비록 약정자의 뜻이 있어도 한 해 500만원 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알린 후 ‘마침 2025년부터 한도액이 2000만원으로 늘어나는데 기왕 큰 뜻을 고향에 전해주셨으니 그 첫 번째 약정자가 되어주십사’ 거꾸로 제안한 것이다. 또 30년 동안 500만원보다 10년 동안 2000만원이 훨씬 현실적이라 제안하며 한주식 회장의 용단을 부탁했다. 이 제안을 받은 한주식 회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하고 6월 8일 전격적으로 약정식을 맺었다. 마침 한주식 회장은 지난 6월 8일 황성공원에서 열린 경주시민의날 행사에서 경주시가 수여하는 ‘경주문화상특별상’을 받았다. 학생이 적어 폐교가 결정된 한주식 회장의 모교인 사방초등학교를 적극적인 지원으로 되살린 공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경주에 마스크 5만장을 지원한 사실, 경기도와 충청도 등 지산그룹이 분포한 지역 및 경주출향단체들에 다양한 자선 및 후원 활동을 함으로써 경주 출향인의 명예를 드높인 사실이 높이 평가 받았다. 한주식 회장은 이날 받은 상금 300만원도 다시 경주시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 단순히 300만원을 기부한 것이 아니라 그 상금과 같은 금액을 더해 600만원을 기부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주식 회장의 고향 나눔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주식 회장은 6월 8일 오전 치르진 신라중학교 창립 70주년을 맞은 신라중학교 총동창회에도 1000만원의 후원금을 희사해 동문들의 박수를 받았다. 마침 이날 한주식 회장은 왕성한 기업 활동과 자선활동을 바탕으로 ‘자랑스러운 동문’ 첫 번째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26일에는 역시 모교인 경주고에서 후배들을 위해 특강한 후 장학금 1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한주식 회장이 경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미 한주식 회장은 자선과 나눔 면에서 독보적인 기업인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노인,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 소외계층에 매년 20억원 이상의 기부를 해왔으며 지난해 5월에는 ‘사랑의 열매’에 10억원을 기탁해 한주식 회장의 철학을 상징하는 ‘디딤돌 기금’을 만들기도 했다. 사랑의 열매가 주관하는 경기도 가족 아너소사이티 1호, 대한적십자사의 경기도 가족 레드클로스피플 1호 등 자선에 관한 기록은 한주식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어느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밥도 못 먹고 뛰어다니는 소방관들과 관계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2022년 5월 1억2000만원을 들여 200명의 식사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긴급재난구호차량’을 지원했다. 2022년부터 노인들을 위해 지산그룹배 게이트볼 대회를 열어 매년 700여명의 선수단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행사비와 교통운송비 전액을 부담하며 품격 높은 대회를 치러왔다. 이밖에도 자선과 나눔에 대한 한주식 회장의 미담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한주식 회장의 이번 고향 방문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것은 한주식 회장이 자선과 나눔, 상생 정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대상이 다름 아닌 경주최부자로 이번 경주 나들이에서 세세히 경주최부자 유적을 답사함으로써 그 뜻을 더욱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주식 회장은 경주최부자와 상호 연결되는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현대판 경주최부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다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진립 장군과 충노각에 공감, 최국선 공 황무지 개간, 단갈림 지혜, 최부자댁 오랜 상생정신과 맞닿은 한주식 회장의 경영철학 한주식 회장은 지난 9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용산서원을 시작으로 충의공원, 정무공 최진립(1568-1636) 장군 종가댁과 동상, 충노각 등 이조리 유적지와와 교촌의 경주최부자댁, 최완 선생 댁, 요석궁, 보비림, 숙연당, 구세댁, 최부자 집안들의 쪽문 등 교촌 전체를 꼼꼼히 답사하며 다시 한번 나눔과 상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주식 회장이 경주최부자와 닮은 것은 부의 생성 과정부터 시작한다. 경주최부자의 입지를 다진 최국선 공이 황무지 개간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앙법으로 부자가 된 것처럼 한주식 회장은 토지형질변경의 최고전문가로 우리나라 최초로 최신식 대형 냉동물류창고를 건설하며 부를 이루었다. 땅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효용성을 최대치로 높인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한주식 회장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과 충노 옥동과 기별에 대한 일화에도 깊이 공감한다. 정무공이 경기도 용인의 험천(머흐내) 전투에서 순국할 때 평생 장군을 모신 노비 옥동이 장군을 따라 전사하고 함께 전투에 임한 기별이 살아남아 장군의 전사를 알리고 시신을 찾았다는 일화, 이를 기리기 위해 정무공의 후손들이 정무공의 제사 때 충노들의 제사를 함께 모시게 되었고 정무공이 불천위(不遷位-제사를 자손대대로 모시는 위폐)로 제수된 덕분에 충노들에 대한 제사 역시 지금까지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또 최국선(1631-1682) 공이 단갈림, 즉 50:50의 소작분배율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배분법으로 상생의 물꼬를 튼 것을 매우 중요한 상생의 표본으로 삼는다. 경주최부자가 자신과 직접 관련 없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사방백리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한 가훈도 한주식 회장의 경영방침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한주식 회장은 지산그룹 산하 13개 계열사 임직원들의 복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건강과 체력관리를 누구보다 살뜰히 챙긴다. 전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비타민을 먹게 하고 금연을 매우 중요하게 관리한다. 입사와 동시에 금연을 약속하게 하고 만약 실천하지 않으면 강제 퇴사시키는 조치는 그룹 내에서 매우 유명하다. 수시로 직원들에게 다양한 건강물품을 지원하고 정기적으로 고기를 지원하는 것도 오랜 전통이다. 계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회사 입구에 마련된 1000원 현금통에서 묻지도 않고 1000원씩 현금을 가져간다. 지난 달 손모 차장은 그렇게 따로 모은 돈이 입사 5년 차에 130만원에 달했다며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산그룹의 초대형 냉동물류창고에는 초현대식 직원레스토랑이 있어 양질의 식사를 제공한다. 이 식사의 질은 한주식 회장이 불시에 수시로 챙기므로 항상 일정 수준이상의 퀄러티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 과제다. 지산그룹 계열 지산피씨 공장 근처에는 멋진 모습과 구조를 갖춘 직원 전용 기숙사가 지어져 있다. 외국인 직원이 많아진 것을 고려, 그들이 마음껏 살 수 있는 집과 휴식처를 제공한 것이다. 이 역시 양질의 숙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지산그룹 물류기지에는 지산 소속이 아닌 쿠팡, 마켓컬리 등 물류 회사의 숱한 화물차 기사들이 출입한다. 지산그룹은 아무런 조건 없이 이들이 쉬는 쉼터를 제공하는데 그 쉼터에는 기사들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각종 빵과 과자, 음료수가 무한정 제공된다. 지산그룹이 연간 20만병의 와인과 2100만 캔의 맥주를 수입해 경기도 충청도 일원의 각종 단체 행사, 경주 향우회와 관련된 행사들에 나누어주는 것은 이미 상례화 되었다. 지산그룹은 12시가 되면 무조건 전체 사무실 불이 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불은 점심 및 휴식 시간이 끝나는 1시 30분까지 다시 켜지지 않는다. 점심시간에는 전화도 받지 말고 일하지도 말라는 한주식 회장의 경영방침 때문이다. 대신 이 시간에는 회사에서 마련해둔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하거나 회사 밖 공원을 산책하거나 잠을 자도 좋다. 단, 그런 만큼 업무에 복귀한 후의 컨디션이 지산그룹 직원들 만큼 생생한 곳이 없을 정도다. 단갈림으로 최부자댁 부와 함께 성장하며 최부자댁 경지에서 혼신을 다해 일하는 소작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이런 한주식 회장이 경주시 문화상 특별상을 받은 것은 한주식 회장 스스로 인정했듯 앞으로 경주문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더욱 고무적이다. 경주최부자가 대를 이어 경주에서 나눔과 상생, 오랜 문화발전에 기여했듯 한주식 회장이 나눔과 상생의 눈길을 경주에 돌림으로써 또 다른 의미에서의 나눔 여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월성원자력본부는 지난 10일 문무대왕면을 대표하는 하천인 대종천에 은어 치어 10만미를 방류하는 ‘제4회 대종천 은어 치어 방류행사’를 후원 및 참석했다. <사진> 이 행사는 문무대왕면발전협의회가 주관하고 월성원자력본부가 후원하고 있다. 노지 및 차박캠핑 성지로 떠오르는 대종천 일대는 예로부터 맑은 물에만 서식하는 은어로 유명했다. 이번 행사는 은어 치어 10만미를 방류함으로써 맑은 물 대종천의 가치를 더욱 올렸다. 행사에는 강신원 감포읍발전협의회장, 임재윤 문무대왕면장 등이 참석해 은어 치어를 대종천에 방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한성 월성원자력본부장은 “대종천 은어 방류 행사를 월성본부에서 후원한 지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며 “은어 치어 방류행사와 함께 지역 상생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상희 문무대왕면발전협의회장은 “언젠가 은어들이 기림사가 있는 대종천 상류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이 행사를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강시외버스정류장’ 건립 공사가 7월 착공에 들어간다. 완공은 오는 12월. 경주시는 토지보상비를 포함해 사업비 17억7000만원을 투입해 안강시외버스정류장을 신축한다. 안강시외버스터미널은 2017년까지 민간사업자가 운영해 오다가 면허를 반납하면서 현재 간이정류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물론 옥산서원, 흥덕왕릉 등을 찾는 관광객들도 시외버스 이용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경주시는 공영 시외버스정류장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새 정류장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토지보상 절차를 모두 완료하고 현재 설계용역이 진행 중이다. ‘안강시외버스정류장’은 안강읍 산대리 1526-12번지 일원에 147.03㎡ 건축규모로 신축된다. 정류장에는 이용객 대기실, 기사쉼터, 버스차고지 등이 들어선다. 현재 안강시외버스정류장은 포항↔안강↔영천↔하양↔동대구 노선이 하루 10회 간격, 안강↔포항 기계 노선이 하루 19회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안강시외버스정류장 새롭게 조성·운영되면 안강읍 주민들의 정주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전했다.
ADHD는 주의력 결핍, 산만함, 충동성, 과잉 행동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주로 6~12세 소아에서 많이 진단된다. 눈에 띄게 시끄럽고 산만한 아이들의 경우 쉽게 ADHD를 의심할 수 있지만, 의외로 조용하지만 실수가 잦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도 ADHD인 경우가 많다. 이모 씨(42)는 최근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잠시 맡아준 동네 이웃으로부터 “애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이후 아들과 친구들의 행동을 유심히 비교해본 이 씨는 ‘확실히 또래보다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진료 결과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이 씨는 “아들이 뛰어다니기를 좋아하고 자주 다쳐서 신경이 많이 쓰이긴 했지만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말았다”면서 “맞벌이 부부라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ADHD가 생긴 것 같다”며 자책했다. 산만하고 부주의한 행동 양상 ADHD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다양하게 작용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적으로는 부모가 ADHD일 경우 자녀가 ADHD일 확률은 57%에 달한다. 임산부 음주, 흡연이나 미숙아 등 환경적 요인도 원인으로 언급된다.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중요치 않은 자극을 배제하고 중요한 자극을 선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노프에 피네프린 부족과 전두엽과 기저핵 사이의 연결회로 이상은 ADHD 환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학계에서는 소아의 ADHD 유병률을 5~10%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성인 유병률 3~5%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 반에서 약 2~3명이 해당된다. ADHD는 증상에 따라 과잉행동 충동형, 부주의형, 복합형으로 나뉜다. 과잉행동 충동형은 차분하게 있지 못해 계속 움직이고, 높은 곳을 기어오르며, 자주 다치거나 반항적 행동으로 학교 징계를 받기도 한다. 반면 부주의형은 어릴 때는 드러나지 않다가 학교에 다니면서 늦게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과잉행동 충동 관련 증상이 현저하다가 고학년이나 청소년이 되면서 부주의형 증상만 남게 되기도 한다. 몇 시간씩 게임에 집중하는 아동의 경우도 ‘집중력’을 이유로 ADHD 의심을 피해가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DHD 판단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더라도 사례의 이 씨처럼 잘못된 양육의 결과라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훈육의 문제로 ADHD가 발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ADHD가 발현된 이후 이를 바로잡기 위해 체벌을 하거나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경우 아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더욱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자기 주장이 맞다고 성인에게 덤비며 싸우는 적대적 반항장애가 동반된 경우라면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정밀한 평가를 받아보아야 한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ADHD로 진단되는 경우 67~80%는 적대적 반항장애, 품행장애 및 물질관련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틱장애 등 다른 정신과 질환이 하나 이상 동반된다. 성인까지 방치 시 자존감 하락과 우울증 동반 ADHD 증상이나 기능상의 어려움은 약 50%에서 성인기까지 이어진다. 학계에서는 성인 ADHD의 경우 성인이 된 이후 발병했다기보다는 소아 ADHD가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분류 체계(DSM-5)에서도 ADHD는 12세 이전에 발현한다고 정의한다. ADHD는 조기에 치료하면 약물 및 비약물 치료를 통해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한 상태로 증상이 지속되거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이를 방치할 경우 아이는 반복적인 성취 실패와 잦은 실수, 주변의 부정적인 평가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추가적인 문제가 누적되면 성인 ADHD의 진단과 치료가 더욱 복잡해진다. ADHD 아동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병으로 인해 못 하는 것들이 있다. 과제를 한 번에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혼내는 것만으로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아동에게 효과적으로 지시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할 때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그 과정을 칭찬해주는 것이 행동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아울러 아동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제한하고,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게 하는 것이 당장은 힘들어도 아동에게 올바른 교육이 될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ADHD 치료는 약물요법이며, 치료제의 효능이 약 80%에 이른다. 투약을 하면 집중력, 학습능력이 좋아지고 산만함,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감소되고, 또래나 부모와의 관계도 호전된다. 문제는 약물에 대한 거부감과 부작용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부작용이 식욕억제와 성장지연이다. 하지만 식욕억제의 경우, 약물효과 지속 시간이 8~12시간이므로 그 외 시간에 먹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또 연구에 의하면 약물 복용 시 성인 신장에서 1cm 정도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개인차가 크며 약물 휴지기 등을 이용하여 예방할 수 있다. 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장호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