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현곡면 남사저수지를 지나 왼쪽 남사리로 접어들면 작은 물길을 따라 경주최씨 외와(畏窩) 최림(崔琳,1779~1841)을 배향한 남계정사(南溪精舍)가 나타난다. 조부 최경위(崔慶煒)는 최종륜(崔宗崙), 최종락(崔宗洛), 최종연(崔宗演) 등을 두었고, 최종륜은 밀양박씨 박재엽(朴再燁)의 따님과 혼인해 최림을 낳았다. 최림은 정조 3년(1779) 11월 12일에 현곡 구산(龜山) 아래 옛집에서 나고 자랐고, 현종 7년(1841) 10월 23일에 타계해 현곡 은선암(隱仙庵) 선영에 묻혔으며, 남계정사에서 후손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 5살에 모친상을 당하였고, 22세에 경시(慶試) 복시(覆試)를 보았다. 딱히 과거에 뜻이 없는 그는 45세에 부친상을 당하고 나서 과거공부를 접고, 청도 운문산 공암(孔巖)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성력(星歷)‧병학(兵學)‧기수(箕數)에 모두 통달하였고, 선비로써 위기지학과 수신에 힘썼다. 「공암산수기(孔巖山水記)」에서 “청도 여러 산은 경주에서 시작되고, 경주의 여러 산은 소백산에 이어진다. 소백산은 순흥에 있고, 그곳에 백운동이 있으니, 회헌 안향이 살던 곳이다”라고 말하면서, 안동의 퇴계와 경주의 회재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청도 공암의 산수 역시 경주부의 서쪽 계곡에서 발현된 것이라 말하며 자신이 청도에 머문 연유를 빗대어 설명했다. 스승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와 인연은 45세에 회현(懷縣)의 오동(鰲洞:오촌)으로 송치규를 찾아가 4~5일을 머물렀고, 54세에 다시 송치규를 뵈었으며, 이듬해 문인 배영(裵泳)과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학의 연원을 살폈다. 62세 늦은 나이에 관찰사의 추천으로 선공감 가감역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처사문인으로 평생을 벼슬하지 않았다. 송병선은 「서문」에서, “문(文)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의 경우 도리(道里)가 있기 때문이다. 문이 있으면서 도리가 아닌 것이 어찌 문이 되기에 충분하겠는가. 군자께서 그러한 연유를 알았기에 반드시 그 근본을 중히 여기고 그 말단을 가볍게 여겼었다. 근본에 힘쓰고 말단을 얻는 자가 굳이 그것이 있더라도, 근본을 얻지 못하고서 말단에 능한 경우는 아직 있지 않다. 때문에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외와 최 공이 이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그의 인품 됨을 언급하였다. 어려서 수재로 알려진 그는 이미 7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10세에 인(仁)이 되는 효제(孝悌)의 근본을 좌우명으로 적어 실천하였다. 교유한 인물로는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과재(過齋) 정만석(鄭晩錫), 안윤일(安允一) 등이 있다. 손자 최세현(崔世顯)과 증손 최임수(崔任壽)가 유문을 정리하였고, 종손 최진수(崔瑨壽) 등의 주선으로 1899년(광무 3)에 『외와집』을 간행하였다. 연재 송병선이 서문을, 면암 최익현이 행장을, 하석(霞石) 이용원(李容元,1832~1911)이 묘갈명을, 성암 최세학이 행록(行錄) 그리고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1839~1912)이 발문을, 이병수(李炳壽)가 근지(謹識) 등을 지었다. 게다가 「경의회정(經義會精)」에서 『주역』의 건원형이정(乾元亨利貞)을 해설하며, 정자와 주자의 설을 토대로 학자가 지향할 바를 제기한 것이 특이점이다. 최림에 대한 생애와 사상 연구는 경주 현곡에 소재한 선비로써 영천과 지역문인의 관계 그리고 청도에 이어지는 학문연원에 디딤돌이 되기에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묘갈명 병서 -하석 이용원 근래에 경상도 사유(師儒) 중에 외와 최 공이 있는데, 혹은 ‘문장사(文章士:문장으로 이름난 선비)’, 혹은 경세지재(經世之才:세상을 다스릴 재목)라 하니, 사물을 분별하고 이치에 통하여 중심이 되는 사람이다. … 공이 태어난 날밤에 구산(龜山)이 세 번 울었으니, 마을사람들 모두 기이하게 여기며 “옛 정무공 최진립 공이 내려온 듯하다”라고 하였다. … 공은 한번 본 것은 문득 기억하였다. 8살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 10살에 ‘孝悌’ 두 글자를 책상 모퉁이에 적어 인을 하는 근본으로 삼고는 “孝와 悌 두 글자 모두 도리는 하나다. 효(孝) 자는 아들 자(子)를 따르는 아들의 도리이고, 제(悌) 자는 아우 제(弟)를 따른 아우의 도리이지만, 시행함이 같지 않아서 그 이름이 다르다”라고 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운문의 공암에 거처하였는데, 공암은 바위 구멍[孔]에서 이름을 취하였다. 사방에서 배우러 오는 자가 매우 많았으나, 모두 수용하지 못하였고, 이에 벽을 마주 대하여 정자로 삼고, 그 안에서 머물렀다. … 「경세연류(經世沿流)」와 「원회운도(元會運圖)」를 지었는데, 당시 세상의 급한 일 네 가지에 대해 논하였다. 첫째, 元孫(원손)을 보익하여 성군의 기틀로 삼는다. 둘째, 빠뜨린 인재를 모아다 어진 길을 넓힌다. 셋째, 수령을 골라 뽑아 백성의 힘을 풀어준다. 넷째, 군사의 방비를 엄수(嚴修)하여 국경을 견고히 한다. … 돌아가시자 원근의 아는 자 모두가 “어는 곳에서 이러한 사람을 만나리오”라고 하였다.
러시아 5인조의 막내인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가문의 전통대로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된다. 어린 시절 귀족들의 교양 차원에서 음악을 익힌 그가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선 건 발라키레프를 비롯한 5인조 멤버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에 매료되었고, 잠재되어 있던 음악적 재능이 꽃을 피우게 된다. 특히 관현악에 일가견이 생겼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1871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관현악법 및 작곡법 교수로 임용된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게다가 정규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사람을 교수로 발탁한 것은 꽤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당시 서양식 음악에 정통했던 차이콥스키와 교류하며 막역한 우정을 쌓았다. 또한 3년 동안 안식년을 갖고 독학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대가가 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대표작은 1888년에 만든 교향모음곡 ‘세헤라자데(Shekherezada)’다.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에 모티프가 있는 작품으로 그의 관현악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탄생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오리엔탈리즘이 돋보이는 4악장의 작품이다. 과거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세헤라자데를 선곡하면서 우리나라에 친숙한 곡이 되었다. 사실 세헤라자데보다는 ‘왕벌의 비행’이라는 소품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대표하는 곡으로 더 유명했었다. 이 작품은 1900년에 초연한 오페라 ‘살탄 황제의 이야기(The Tale of Tsar Saltan)’의 2막에 등장하는 곡이다. 벌떼의 습격을 받은 백조의 모습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여러 악기로 묘사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아노곡은 이 관현악곡을 러시아의 후배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가 편곡한 것이다. 관현악의 대가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편곡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러시아 음악의 선구자였던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 1804-1857)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Ruslan and Lyudmila)’를 편곡했다. 러시아 5인조 동료들의 작품에도 손을 댔다. 보로딘(Aleksandr Borodin, 1833-1887)의 미완성 오페라 ‘이고르공(Prince Igor)’과 무소륵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의 대작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가 대표적인 편곡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한동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다가, 5인조 동료들의 다소 거칠지만 독창적인 작품을 훼손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요즘은 최소한의 수정을 거친 원곡이 연주되고 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 5인조의 국민악파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지만, 스스로 서양 음악 양식을 독학하여 둘을 융합시켰다. 글라주노프, 레스피기,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등 당대를 풍미한 러시아의 거장들이 모두 그의 지도를 받았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해임되었다가 복직되었지만 곧 은퇴를 했고, 지병으로 1908년 사망한다.
경주시가 무형유산을 보다 쉽게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무료강좌 교육생을 모집한다. <사진> 무형유산 무료강습은 무형유산 전수교육관 운영 활성화로 무형유산 전승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개설 후 올해 2회째다. 강좌는 판소리 및 남도민요, 가야금 병창, 정가(正歌7) 등 세 종목으로 무형유산 전수교육관에서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여름방학 특강, 8월 12일에서 10월 2일까지는 하반기 수업이 진행된다. 특히 이번 강습에 강사로 정순임 명창이 참가한다. 그는 2020년 국가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홍보가 예능보유자로 현재 소리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무형유산 무료강습 접수는 이달 26일까지 현장 선착순으로 받고 있다. 전화로 예약 접수는 가능하나 방문을 통해 교육신청서를 제출해야 최종 접수된다. 이번 무료강습은 연령 제한 없이 경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접수가 가능하다. 기타 궁금한 사항은 경주무형유산전수 교육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선보이는 강좌도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행복결혼식에 참여할 예비부부 5쌍을 모집한다. 행복결혼식은 고비용 결혼문화를 개선해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혼인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경주시가 지원한다. 신청 대상은 공고일(7월 17일) 기준 경주시에 주소를 두고,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 예식 가능한 예비부부다. 대상자로 선정된 예비부부에게는 웨딩세팅, 예복, 헤어, 메이크업, 웨딩촬영 등 예식 비용으로 커플당 300만원이 지원된다. 예식장소는 경주시 공공기관 개방장소 13곳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개방 공공기관은 국제문화교류관(정원), 경주문화원(정원), 동국대(녹야원), 동궁원(느티나무 광장), 경주세계문화엑스포(주작대로), 보문정, 호반공원, 화랑마을(상인암 공연장) 등이다. 신청은 이달 31일까지 경주시청 저출생대책과로 방문 및 우편, 이메일(ingu2770@korea.kr)로 접수하면 된다. 선발은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심사를 거쳐 최종 5커플을 선정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젊은 청년들이 행복결혼식에 동참해 합리적 결혼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작고 행복한 결혼식을 시작으로 행복한 가족과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이 진행하는 ‘복지코디네이터 행복 따숨’이 어르신들의 우울감 해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인회 경주시지회에 따르면 안강읍에 거주하는 권모 어르신은 수개월 전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우울함이 심해져 평소 잘 가는 쉼터와 경로당에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경로당행복선생님을 만났다. 행복선생님들은 복지코디네이터 활동으로 주 1회 경로당 미이용 어르신들을 찾고 있다. 복지사각지대 예방 및 위기 노인 조기발굴·지원, 경로당 중심으로 어르신 대상 상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행복선생님들의 방문과 돌봄을 통해 권모 어르신은 차츰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권 모 어르신은 “아내 사망 후 쉼터에는 간혹 나가지만 경로당은 나가지 않았다. 여성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살아생전 잘해주지 못한 아내 생각에 갈 수 없었다”며 “행복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니 기운이 나고, 또 무척 기다려진다. 식사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져다주는 반찬은 기운을 차리게 한다”고 말했다. 윤옥경 행복선생은 “어르신이 현재는 조금씩 외출도 하고 건강도 챙기려고 노력하며 육체적·정신적으로 즐겁게 생활하려 하고 있다”며 “어르신 행복 따숨 사업 등과 연계한 복지코디네이터 활동으로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더 생겼으며 어르신들에게 더 잘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권모 어르신을 보살피기 위해 반찬을 전하고 있는 안강읍 금성마을 이장님에 대한 칭찬도 빼먹지 않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미디어 경제학에서는 기업으로 운영되는 언론사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합니다. 이를테면, 언론사는 기업으로서 자유롭게 영업할 권리가 있고, 사적 이익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저널리즘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언론사는 공적 이익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언론은 의견과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중과 공익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순은 언론사가 미디어 시장에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기업으로 운영되는 언론사에 공적 임무를 수행하도록 시장 규제와 함께 재정적인 지원을 합니다. 재정적 지원에는 기금을 마련해 언론사를 직접 지원하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방식으로 언론사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줍니다. 공익을 위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국내·외에서 확인됩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지역신문을 지원하는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지역신문법)이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19세기부터 신문을 지원해 왔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신문지원은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사례로 유명합니다. 특히, 1944년 프랑스가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됐을 때, 프랑스 정부는 독일에 부역했던 신문을 강제 폐간하고 민주주의 재건을 위해 신문을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신문지원은 방송과 인터넷 미디어로 확대되었고, 2021년 3억67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5000억원이 지원되었습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다원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일간지에 국한되지 않고, 토론과 정보 및 비판적 시각을 전하는 미디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언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 때문에, 그만큼의 효과가 있었는지 회의적인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금이 재벌언론에 사용되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부의 지원방식이 조건적이고, 선별적이며, 한정적이라는 문제도 제기됩니다. 정부가 한정된 기금을 지급할 때, 행정적인 절차와 눈에 띄는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지원정책 대부분이 언론사의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정보의 다원주의나 양질의 저널리즘이 아닌 언론 기업의 운영, 즉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지급되었다는 지적입니다. 프랑스와 달리 독일 정부는 언론사에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금지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자금지원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직접적인 자금지원 대신 모든 언론사의 부가가치세를 간접적으로 감면해 줬습니다. 일반적으로 19%의 세율이 신문사에는 7%로 적용됩니다. 독일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약 1억 유로의 부가가치세 감면 혜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에서도 프랑스와 같이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2017년 독일 연방하원은 언론에 대한 자금지원을 공론화하고, 합법적인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정기적인 언론은 현대 민주주의에 필요하므로 시장 경쟁에 처한 언론사가 다원적인 언론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도 국가의 의무”라고 밝혔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상업언론에 빼앗긴 자리를 되찾기 위해 공영방송은 물론 지역신문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독일에서도 프랑스와 같이 언론사를 위해 다양한 자금지원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사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뉴스가 상품이 아닌 재화로서 생산, 분배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한번 생산된 뉴스를 시장에서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고, 간단히 접근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본래 공개와 연결 그리고 협력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은 공동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뉴스와 같은 공공재화를 더욱 쉽게 생산, 분배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디지털 환경에서도 뉴스와 같은 공공재화가 상품으로 판매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뉴스는 광고와 감시 그리고 가짜 뉴스가 지배하는 상업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상업화된 디지털 미디어는 이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 경제학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지닌 특성, 즉 공개와 연결 그리고 협력을 바탕으로 뉴스가 더는 상품이 아닌 공공재화로써 생산, 분배될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사익과 공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언론사의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은 뉴스가 상품이 아닌 재화로서 생산될 때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언론사가 뉴스를 상품이 아닌 재화로서 생산한다면, 시장 경쟁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저널리즘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뉴스 재화를 공동으로 생산, 분배하는 방안들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필요로 한 재화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구조적, 법률적 조건들을 모색해야 하며, 자본(광고)과 국가(정치)는 언제나 언론과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SDGs에 문화적 요소 도입의 ‘실패’를 정치과정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논의들은 국제개발원조의 주요 공헌자이자 의제 설정의 중요 행위자였던 유럽, 북미 여러 나라의 저항이나 망설임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Antonios Vlassis에 따르면 2030년 어젠다 협상 과정에서 유네스코와 기본적인 시각을 공유하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태평양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연대의 움직임과 이러한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문화 관련 NGO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그것은 첫째, 다국 간의 틀을 통한 문화 영역에 대한 개입 기피 현상. 둘째, 문화의 추상적 성질. 특히 정량화가 불가능한 문화·예술의 특성과 문화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출의 인색함. 셋째, 발전 목표에 문화를 도입하고 주류화하는 것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문화 상대주의 훼손이라는 오해와 이로 인해 성평등, 인권 보장 등의 다른 영역의 목표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계심. 넷째, 다른 정책적 과제와 비교했을 때의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는 유럽 및 북미 국가들의 선입견 등이다.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일련의 논의 전개에서 문화는 ‘거처’라는 지위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거처’가 등한시되거나 경제, 사회, 환경 등의 다른 요소의 그늘에 숨어 버렸다. 그렇다면 문화의 관점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포착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먼저 통합원칙(principle of integration)의 관점에서 SDGs와 문화를 재정립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関根久雄은 “사회의 문화와 문화적 다양성은 ‘지속가능발전’,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関根久雄, 2021). 유네스코는 SDGs의 구체적인 실시 조치 안에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는 형태로 방침을 전환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우회적이지만 더 공세적으로 세계유산협약, 무형문화유산협약, 문화다양성협약 등 문화유산, 문화다양성 보호를 위한 법적 틀을 만들어냈다. 이는 SDGs의 실시를 위한 규범적 기반으로서 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고, 이러한 접근법은 SDGs와 기존 국제법의 접합지점을 설정하고, 확립된 국제법 규범과의 충돌을 피하면서도 문화 의제의 위치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로 평가할 수 있다. 유네스코 외에도 세계지방정부연합(UCLG)은 SDGs의 각 목표에 문화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제시하면서 도시나 지방자치단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예시한 행동 문서를 작성하고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유럽도시를 향한 선언인 올보헌장은 도시가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생활양식과 소비 그리고 공간적인 형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또한 문화의제 21(Agenda 21 for culture, United Cities and Local Governments-Committee on culture 2004)은 환경문제에 이어 문화적 다양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며, 지방정부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서 문화 진흥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하며, 또한 전체 정책 분야에 문화가 관여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각 측면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 도시 정책 내에서 문화 정책이 완수해야 할 독자적인 역할에 대해 강조되는 동시에 구체성 있는 정책 대안 모색의 필요성이 제시되고 있다. Culture21: Actions는 지속가능발전문화의 관점에서 SDGs에 문화와 관련된 명확한 목표와 대상, 지표를 포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라 고승, 고선대사 원효가 머문 고선사 알천의 상류인 덕동면 암곡동에는 고선사 터가 있었다. 가뭄에 대비한 덕동호가 생기면서 덕동면 전체가 수몰되면서 고선사 터도 함께 물에 잠겼다. 방앗간도, 학교도, 집도 모두 수장되었다. 삼층석탑 하나가 겨우 남아 고선사 터임을 증명했지만, 세상의 필요에 의해 그마저도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던 비운의 석탑이었다. 석재 유물과 석탑은 현재 경주국립박물관 뒤뜰로 옮겨졌다. 덕동면 주민 전체가 고향을 잃을 때, 석탑도 고향을 잃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열반에 들 때까지 머물렀다던 고선사다. 어느 시기에 왜 폐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선사는 태종무열왕(김춘추, 신라 제29대 왕) 이전에 세워졌던 절로 추정 한다. 황룡사에서 출가했다고 전해지는 원효는, 저술을 위해 분황사에 머물렀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평생 이름 있는 절에 몸을 의탁하지 않았다. 불교계의 중심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다. 거창한 명성보다 백성과 고락을 함께했다. 당대 그 누구보다도 공부를 많이 하고 많은 책을 썼지만, 원효가 원한 것은 백성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구원의 희망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서라벌의 중심이 아닌, 지금도 경주의 골짜기에 속하는 토함산 아래 머물렀던 것만 봐도 원효의 본질적인 애민 정신을 헤아릴 수 있다. 원효가 얻은 것은 지배 계급층의 존귀한 추대가 아닌 민중의 소박한 마음이었다. 신라 사람들은 원효가 고선사 주지로 오래 있었기에 ‘고선대사’라고 불렀다. 원효의 어릴 때 이름은 설(薛) 서당(誓幢, 새털)이었다. 원효의 손자인 설중업은 원효를 기리며 고선사에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를 세웠다. 비문에는 686년 원효가 혈사(穴寺, 구멍 절)에서 입적하기 이전에 고선사는 사찰의 규모를 갖췄다고 기록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1021년(현종 12년), 가사의 조각조각에 금색 실로 수를 놓아서 승복의 장엄함을 갖춘 ‘금란가사(金欄袈裟)’와 ‘불정골(佛頂骨)’ 을 내전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현종까지도 법등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선사 터는 옛 신라인들의 집단 무덤 터이기도 그간 덕동호는 매번 물이 가득하고 안개가 자욱했다. 돌아서는 걸음 뒤로, 다다르지 못한 갈증이 곱절로 일었다. 회의감마저 들었다. 사라진 절터를 찾아, 같은 길을 여러 번 오가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지만, 사라진 절과 수몰된 절터를 찾는 것은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 없고 사라진 것을 좇는 것이 때로는 미련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번 없고 있음에 의미를 두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기에 그저 ‘없음’으로 갈음하며, 무(無)에서 다시 무(無)를 좇는 것에 굳이 의미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바닥이 드러난 덕동호를 거닐다 수많은 돌무지를 보았다. 돌들은 누가 부러 쌓아놓은 듯 어떤 균형을 이루었다. 어느 날, 돌무지 앞에서 마주친 중년의 남성이 내게 말했다. “돌덧널무덤(석곽묘)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이예요. 옛날 신라인들의 집단무덤, 일종의 공동묘지 같은 것이지요. 이곳에 총 100여 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바닥 곳곳에 깨진 토기와 기와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흙 속에 묻힌 조각들을 들추었다. 천년 세월 동안 부식된 흔적이 역력했다.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아련하게 살아남았을 시간을 살폈다. 과거를 건져 올리는 일이 때로는 아플 때도 있다. 죽은 자는 육신의 한 톨 뼛조각도 없이 사라졌어도,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쌓아 올린 돌들은 무너지고 깨졌을지언정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 떠밀려가지도 못한 돌들은 아직도 주변을 맴돌며 죽은 이의 슬픔을 추모하고 있는 듯했다. 수몰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덕동호 사람들 시래골을 빠져나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무서우리만치 험한 길이었다. 간간이 민가가 나타났지만, 어둑어둑 날이 저무는 산길은 스산했다. 어두운 곳에서 산비둘기가 날고, 토끼와 고라니가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굽이치는 곳마다 토함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지류가 나타났다. 정신없이 달리니 덕동경로당 앞이다. 촌로들이 종일 앉았다 떠난 의자는 모두 덕동호를 향해 놓여 있었다. 덕동호를 한 바퀴 돌며, 어느 곳에서든 모든 것이 덕동호를 향해있다는 것을 느낀다. 의자도, 사람도, 집도, 논밭도…. 그립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 깊숙한 골짜기까지 닿아있는 덕동호는 침묵한 듯 수많은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 깊은 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길 따라 아름다운 운치만 말할 것이다. 때로는 깊은 안개에 푹 젖어 고독을 즐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들에게 귀띔하고 싶다. 입을 굳게 다문 호수 밑에 1300년 전에 살다 간 신라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다고. 매일 어디까지 물줄기가 뻗어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장중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로 고요하고 도도한 덕동호도 파란만장한 역사를 적잖이 숨기고 있다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 덕동호의 수위는 한층 더 가득 찰 것이고 노출된 모든 과거의 공간들은 물속에 잠길 것이다. 망향병을 달래려 덕동호 산기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짙고 푸른 물속을 들여다보며 오래오래 옛날을 회상할 것이다. 과거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길은 물살도 지우기 힘들었는지 아직도 간간이 남아 흔적을 드러낸다. 굽이진 길을 따라 시선을 뻗으면 어느새 집들이 되살아나고, 키 작은 초등학교와 고선사 삼층석탑도 나타난다. 아름드리나무가 그늘을 키우고, 그 아래 아이들이 모여 입씨름을 하며 왁자하다. 산 아래엔 층층이 논과 밭이 펼쳐지고, 곡식과 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바닥은 스스로 수몰될 채비를 한다. 물속에 잠긴 것들을 그리워하며 촌로들은 다음 가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몇 겹의 바람마저 잠든 덕동호의 저녁은 평화롭게 저문다. 어둠이 장막을 치니 적막하기까지 하다. 인적이 드물어 더 쓸쓸한 덕동호의 섭섭함이란 이런 것일까. 물결만 바라보아도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던 사람들. 물속에 고향을 담그고 떠나온 사람들에게 세월은 아득해졌다. 그들이 말하는 ‘가슴 먹먹함’의 의미를, 고향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한평생, 아니 그 이전 먼 조상 때부터 정(情)을 들인 땅을 물속에 가두었다. 고향의 고샅길, 개울물과 숲이 자꾸만 물결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수몰된 마을은 선연한 기억으로 찾아오곤 했다. 물과 그 물의 끝엔 여전히 추억이 살고 있기에. 경주국립박물관 뒤뜰로 옮겨진 고선사 삼층석탑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뒤뜰 고선사 삼층석탑 앞에 섰다. 탑의 균형 잡힌 몸체가 밤인데도 웅장하게 드러났다. 나는 ‘아!’ 하는 탄식을 쏟아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원효대사의 염원이 깃든 고선사 삼층석탑은 고요히 뒤뜰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고선사 터에서 가져왔다는 머리 잃은 서당화상비 귀부와 함께 옛 고선사는 이러저러했다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했다. 잘 다듬어진 잔디 사이로 몸을 옮긴 석탑이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세련미 속에 석탑은 얼마나 더 고독할까. 황룡산과 토함산과 괘정산 아래, 원래의 풍경이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지천으로 날아다니는 곤충 떼와 잡풀들과 더불어 석탑은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둔 사진을 꺼낸다. 산과 들판이 한데 어우러진 곳에 탑은 터를 지키는 우람한 장군과도 같다. 나를 내려다보는 탑에서 수백 년을 거스른 소리가 들린다. 지저귀는 새소리, 원효스님 염불소리, 밤새 밤을 지키다 어디론가 날아가는 부엉이. 이것이 어느 가뭄 진 봄, 내가 목격한 고선사 터 삼층석탑의 전부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며 뒤를 돌아본다. 비에 젖은 석탑이 비를 맞으며 계절의 웅장함을 더한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들이 진행하는 경로당 내 화상시스템과 와이파이(wifi) 활용 프로그램과 교육이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 경주시는 현재까지 지역 내 50여개 경로당에서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어르신들이 교육장에 가지 않고도 디지털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 이들 경로당에서는 어르신들이 요즘 인기 있는 가수 임영웅의 노래 영상을 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오래전 고 송해의 영상을 보며 추억에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한성수 포석경로당 회장은 “경로당에 무선 인터넷이 설치됨에 따라 데이터 이용을 목적으로 경로당을 찾고 있어 신입 회원 가입과 경로당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로당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무료한 시간을 화상회의시스템 활용해 행복 선생님과 함께 필요한 교육과 운동을 편하게 배울 수 있어 여가 활용에도 좋다”고 말했다. 우은진 행복선생님은 “화상 회의시스템 설치 초기는 공간 차지로 거부반응이 많았으나 꾸준한 디지털 교육 등을 통해 이제는 만족해한다”며 “화상회의시스템 덕분에 경로당 프로그램 참여도와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경주지역 초·중·고 학생 및 중증장애인 등 총 50여명이 참여한 ‘2024 청소년장애인식개선 하계통합캠프 Happy Together’가 지역 청소년과 중증장애인들의 소통과 이해의 장을 마련했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20일, 21일 양일간 국립경주박물관 및 성호리조트 일대에서 장애유형별 특성과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직접 장애체험과 당사자의 실생활을 경험하며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사진> 이번 캠프는 미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장애인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주체임을 알게 함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더불어 함께사는 사회’로의 장애인식개선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또한 이론교육만으로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현장에서 직접 장애체험 및 당사자의 실생활을 경험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조별활동 및 레크레이션, 장애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와 예방, 장애유형별 특성 및 에티켓, 장애유형별 장애체험 등을 통해 장애인을 시혜적 대상이 아닌 이웃이자 친구로 인식하는 전환을 도모했다. 또한 장애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상황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효과적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 학생들은 “처음 만난 친구들과 조별활동을 통해 스토리텔링 짜기 경연대회를 했는데, 평소에는 장애인을 무조건 도와줘야만 하는 상대로 인식했지만 이번 장애인식개선 통합캠프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측은 “이번 청소년장애인식개선 하계통합캠프를 통해 참여 학생들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편견과 차별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사는 통합 사회 기반 조성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또한 청소년 스스로 건강한 신체에 대한 감사함을 알고, 자신과 환경에 대해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게 해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청소년장애인식개선통합캠프 ‘Happy Together’는 매년 2회 실시하고 있으며, 동계통합캠프신청은 이메일(chunma6622@hanmail.net), 또는 팩스(775-6632)로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면 된다.
최부자댁은 날마다 100여명의 과객을 치러야 했으니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했다. 또 넓은 경작지를 관리해야 했으니 그에 따른 인원도 필요했다. 그렇다면 최부자댁에는 어떤 관리인들이 있었고 몇 명쯤의 가복(家僕)들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스무 명 안팎이다. 경작기 관리는 주로 친척들이 맡아서 보았고 그들이 가복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가복이라는 말은 최부자댁에서 남녀 일꾼들을 통칭해서 쓴 말인데 가복 중에서도 여자 가복의 숫자가 좀 더 많았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과객을 치러내야 하는 부엌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최부자댁에는 전통적으로 마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해 일을 처리하는 일종의 대리인이었다. 대지주는 보통 권력도 많고 하는 일도 많아서 일일이 농사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수완 좋은 마름을 두고 농경지 관리를 시키면 알아서 힘들고 험한 일을 다해주었다. 일일이 골치 썩히지 않고 수확 때마다 적당히 마름에게 떼주고 수익만 챙기면 되는 셈이니 부농이라면 당연히 마름을 두고 자신은 유유자적할 만했다 마름이 잘 하면 공을 마름이 가져가지만 마름이 혹독하면 그 해가 주인에게 돌아와 최염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최부자댁에서 마름을 두지 않는 것은 마름의 병폐를 안 선대 최부자들의 선택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마름들이 중간에 소작농들의 이익을 착취하고 소출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잘 아셨지요. 특히 마름이 잘하면 공(功)은 마름이 가져가지만 마름이 혹독하면 그 해가 주인집에 온다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대신 그 많은 전답을 관리하기 위해서 관리인을 따로 두어야 했다. 이것은 조선시대 농경관리에서는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이런 관리법은 마름보다 큰 이점이 있다. 관리인들은 이미 자신의 수입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따로 욕심부릴 이유가 적었고 소작인들은 관리인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이나 형편을 정확하게 보고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 지주 입장에서도 관리자들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소출을 알 수 있고 경작지에 대한 객관적인 보고를 들을 수도 있으니 마름을 두는 것보다 장점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관리인이 소작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려 들면 못 할 이유도 없지만 최부자댁과 관리인 사이의 오랜 신뢰를 통해 그런 가능성을 차단했을 것이다. 최염 선생님 역시 관리인들과 함께 현장을 돌아본 경험이 자주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서나 혹은 집안 관리인들과 함께 ‘수’를 보러 다니곤 했는데 이것은 나뿐 아니라 윗대 조상님들이 어릴 때부터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었어요. 수를 본다는 것은 추수할 수확량을 본다는 것이었는데 주로 가을걷이하기 전에 다녔어요. 물론 어린 아이들이 그 역할을 할 리 없었지만 거기에 중요한 가르침이 있었어요. 이 수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리감독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를 볼 때 관리인들이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원성을 쌓지 않은 것’이었다. 때문에 풍작을 점검하는 것보다 흉작을 제대로 점검하는 데 더 역점을 두었다. 흉년이 지거나 개별적인 문제로 인해 흉작이 예상될 경우 관리인들은 그에 합당한 이유를 적시하고 최부자댁은 소출이 줄어들면 소작료를 내려주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인심을 쌓기는 어렵지만 인심을 잃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므로 풍년에 소작료를 더 챙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도 흉년에 가뜩이나 힘든 소작농에게 똑같은 소작료를 물리면 그것은 한 마디로 굶어 죽으란 말과 같을 겁니다. 몇 대를 이어오며 우리 집에 기여해 온 소작농이 대부분인데 그들이 어떤 여건에 의해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그로 인해 우리 집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 것이지요. 이것 역시 우리 집안이 남다른 점이었고 할아버지들의 특별한 애민 정신이었을 겁니다” 나는 당시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굉장한 애민정신이기도 했지만 매우 현대적인 매우 절묘한 인사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 편, 아무래도 최부자댁 가주들보다 소작인들과 더 자주 맞닥뜨리는 것이 관리인들이다 보니 이 관리인들이 소작농들에게 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녔고, 내놓고 철마다 온갖 선물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물론 소작인들 이전에 최부자댁에도 해마다 온갖 특산물들을 보내왔는데 최염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라며 ‘좋은 물건들은 관리인들에게 보냈고 좀 못한 물건들은 우리 집으로 보냈다’며 웃으셨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만큼 관리인들에게 일의 권한을 주었고 선대로부터 관리인들을 돈독히 믿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방 후 토지개혁을 할 때 최부자댁 농지 중 상당수가 무상으로 분배되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자들이 바로 이들 관리인들이었다고 한다. 한편 갑오개혁(1894년) 이후 노비제도가 폐지된 이후 최부자댁은 어떤 제도를 통해 가산을 관리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남자들의 경우는 ‘머슴’이 집안일을 다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요즘 직장에서 단계별로 직책이 있듯, 그때는 머슴들에게도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나름대로 등급이 매겨져 있었어요” 머슴은 상머슴, 중머슴, 하머슴으로 나누었다. 기본적으로 머슴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그 다음은 일하는 정도에 따라 상중하로 기준을 정한 후 그 기준에 따라 세경(細徑)을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했다. 그중에서 상머슴쯤 되는 사람은 힘이 세고 일도 요령껏 잘하고 책임감도 큰 사람이다. 보통 상머슴은 일 년에 나락 10섬의 세경을 주었다. 나락 10섬이면 조선시대 종9품 ‘참봉’의 급료와 맞먹는데 최부자댁 머슴들은 대체로 모두 상머슴의 대우를 받았다. 이에 대한 최염 선생님 회고가 재미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머슴들끼리도 서로 할아버지 눈에 띄기 위해 은근히 경쟁했어요. 한번은 우리 집에서 소를 두 마리 먹였는데 소여물을 재울 때 머리가 좀 돌아가는 머슴 한 명이 제가 맡은 소를 살찌우기 위해 가끔 곳간에서 콩을 훔쳐 소에게 죽을 쑤어 먹이곤 했어요. 그러다가 발각되었는데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벌을 받지 않았어요. 경쟁이 지나치긴 했지만 우리 집을 해하거나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어서였어요. 의도가 좋은 일이고 그 정도의 재량권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여자 가복들 역시 일하는 요령에 따라서 등급이 있었다. 특히 바느질이 능한 가복과 음식 솜씨가 좋은 가복, 혹은 특별한 재주를 가진 가복들이 대우를 잘 받았다. 최부자댁 남자 가복이나 관리인들이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출퇴근을 주로 했던 반면 여자 가복들은 반쯤은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지냈고 반쯤은 밖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일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과객들을 효과적으로 대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집 밖에서 아무리 인심을 쌓아도 집안에서 어긋나면 모래 위에 쌓은 탑이나 마찬가지! 그러면서 최염 선생님은 매우 중요한 말씀 하나를 더 들려주셨다. 사실은 이게 이번 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일 것이다. “윗대부터 내려오는 가법 중 하나가 우리 집안에서는 가복이나 머슴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절대 없었어요. 이유는 그들 역시 식구라는 분명한 개념이 있어서였지. 그들을 식구로 대한 이유도 물론 있었어요” 인심이란 것이 매우 묘해서 집 밖에서 아무리 그럴듯하게 인심을 쌓아도 집안에서 인심이 어긋나버리면 그것은 모래 위에 쌓은 탑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객맞이를 잘하고 아무리 굶주린 백성을 잘 돌보아도 내 집 식솔들에게 소홀하거나 내 집 가복들에게 가혹하게 굴면 그들이 나가서 집안 흉을 보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하루아침에 밖에서 쌓은 인심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겉 다르고 속 다른 집으로 전락해버린다. 심지어 그들이 밖에 나가 거꾸로 내 집을 들이치는 화적이 되기도 한다. 내부적으로 인심을 쌓는데 더 역점을 둔다는 매우 현대적인 경영 개념에서도 매우 획기적으로 풀이된다. 많은 기업가들이 겉으로는 자선을 쌓으며 이미지를 좋게 하면서도 정작 기업 내부에서는 임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근무환경을 열악하게 해놓고 작은 임금과 부당한 대우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그 기업에 속한 임직원들이 밖에서 자기가 속한 기업에 대해 좋게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기업의 비리나 부당거래 같은 일들이 언론에 떠벌려지는데 그게 대부분 내부고발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재벌가 혹은 기업 오너,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아랫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처신으로 기업이 불매운동에 시달리고 정치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집안, 내부를 다스리는 근본을 놓쳤기 때문이다. 한편 최부자댁은 급료를 지급하는 가복들 외에 제사가 있는 날이나 명절, 집안에 큰 행사가 있거나 대규모의 과객들이 들어오는 날은 동네의 장정들과 아낙들이 수시로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그냥 사람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일정 수준의 품삯들을 주었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은 최부자댁에서 일하는 것을 즐겨 했고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마디 갤러리에서 시간의 의미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박미희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 ‘시간 속에서’가 진행되고 있는 것. 이번 전시에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풍경과 함께 하루, 한 달, 일 년 등 시간의 흐름이 표현된 박미희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파란 바탕에 새벽 해, 황금빛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정오의 태양, 그리고 붉은 빛으로 물드는 저녁 해는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생명력이 피어나며, 결국 다시 어둠이 찾아오는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 깃들어져 있다. 작가는 일상 속 작은 소리와 장면들에서도 시간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별빛과 달빛, 개구리 소리, 빗소리 등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 작가는 “어떤 날은 별빛과 달빛을, 또 어떤 날은 개구리 소리를, 또 다른 어떤 날은 따닥따닥 때리는 빗소리를 친구 삼아 시간을 담는다. 이처럼 일상 속 작은 소리와 장면들 속에서 시간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꿈들이 가득하고,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비록 지나온 시간을 후회할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절망으로 가득할 리는 없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동안,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수년이 흘러가도,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 속에는 미래가 있고, 꿈이 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는 작가. 그녀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과 사람들, 중첩되고 중복돼 만들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을 통해 그 가치와 의미들을 전달하고 있다. 단국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박미희 작가는 한국미술협회와 경주미술협회의 회원, 이지씨씨 art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박 작가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로만티시 카페갤러리에서 상설전시를 가졌으며, 2023년 경주시청갤러리, 2018년 서울경북갤러리에서 ‘상생플러스전’, 2015년 갤러리소나무정원에서 ‘상생전’, 그리고 2013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경주작가릴레이전’ 등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진행했다. 또한 2023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G아트마켓’, 2022년 서울, 익산, 광주에서 열린 ‘여류작가 100인초청전’, 2021년 영천 갤러리 움에서 ‘조형아트페어’, 그리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포항공대국제관에서 열린 ‘포항국제아트페스티벌’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는 8월 31일까지 진행되며,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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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은 방광 밑에서 요도를 감싸고 있는 밤알 크기의 기관으로, 정액의 일부를 생산한다. 전립선에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은 40대 이전 젊은 연령층에서는 전립선염이 있고, 50대 이후에는 전립선비대증과 전립선암이 있다. 2021년 주요 암종별 발생 현황에 따르면 전립선암 발생률은 6위를 차지했으며 남성 암 발생 순위로는 4위를 차지해 남성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립선에서 발생하는 암의 대부분은 전립선 세포에서 발생하는 선암(腺癌, 샘세포의 암)이다. 종양 조직의 분화 정도와 세포의 특성 등에 따라 유형을 구분하는데, 널리 쓰이는 분류 방식은 도널드 글리슨이라는 병리학자가 제시한 글리슨 점수(Gleason score)이다. 분화도가 가장 좋은 1등급부터 최하인 5등급까지로 나눈다. 분화가 잘되어 있을수록 예후도 좋다. 전립선암의 위험요인은 고령(50세 이상에서 급격히 증가), 인종(동양인의 발생률이 가장 낮다), 유전적 소인, 가족력, 남성호르몬, 당뇨병, 비만, 서구화한 고칼로리 식생활(동물성 지방 섭취의 증가), 감염(만성 전립선염 등 요로감염) 등이다. 전립선암을 예방하려면 건강한 식생활이 중요하므로 고칼로리 음식과 동물성 지방이 많은 육류 섭취를 절제하고 섬유질이 많은 음식, 신선한 과일과 채소, 도정을 하지 않았거나 덜 한 통곡식(밀이나 호밀 등), 콩류를 충분히 먹는 것이 좋다. 또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일주일에 5회 이상, 매회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걷거나 운동을 한다. 전립선암은 국가암검진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최근 일본(2위)과 한국(4위)에서 빠르게 늘고 있는 남성 암이므로 50세 이상 남성은 개별적인 건강검진에 전립선암을 포함하는 것이 권장된다. 글/참고: 한국건강관리협회 /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예매 후 당일 불참하는 노쇼 현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부터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제15회 국공립극단 페스티벌 in 경주’는 현재 경기도극단, 강원도립극단, 부산시립극단, 순천시립극단, 인천시립극단 등 5개 극단의 7회 공연이 진행됐다. 경주시립예술단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연의 평균 예매율은 70% 수준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관객 수는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저렴한 관람료로 인한 노쇼 현상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페스티벌에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을 위한 공연이 없어 전년도 대비 관람객 수도 감소했다. 앞으로 △대구시립극단(7/26) ‘여기가 집이다’ △전주시립극단(8/1) ‘어둠상자’ △경주시립극단(8/2~4) ‘그림자의 시간’이 예정돼 있다. 이 중 대구시립극단의 ‘여기가 집이다’는 현재 매진 상황이지만, 실제 공연장 관객 수가 완전히 채워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공동 주관단체인 경주시립예술단 측은 “지난해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이 대중성 위주였다면 올해는 작품성 위주로 방향을 전환했다. 역사적 인물과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는 지역의 역사 콘텐츠 대중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페스티벌의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작품성과 대중성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과 연극의 성장을 위해서는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수적이다. 공연자들이 열정적으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관람 참여를 부탁드린다”면서 “향후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과 다양한 마케팅, 그리고 노쇼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페스티벌은 경주시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발맞춰, 인쇄 홍보물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에코백 제작 등 지속가능한 기념품을 선보이며, 저탄소 ECO 친화적인 문화예술축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제15회 국공페 8개 극단의 티켓을 모아라!!’ 이벤트를 통해 8개 극단 공연 관람객을 대상으로 경주시 관광기념품을 제공함으로써 경주 홍보와 소상공인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경주솔거미술관은 지역의 강재준 작가와 협업으로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창의적인 미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현재 경주솔거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강재준 작가의 개인전 ‘상상의 꽃’을 연계해,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할 수 있는 ‘상상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을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총 6회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작가 소개, 전시 관람, 자신만의 작품 드로잉, 조립 키트를 활용한 작품 제작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상상 속 친구(동물, 사람, 자연물 등)를 직접 그려보고, 작가가 제공한 조립 키트로 3D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완성된 작품은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경주솔거미술관 관계자는 “지역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관람객들이 작품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재능있고 유능한 경주출신 작가와 작품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과 추억을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솔거미술관 아카이브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참가비는 1인당 1만원이며, 회당 14명으로 인원이 제한된다. 초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솔거미술관과 경주엑스포대공원 홈페이지 참고.
최근 황성공원 내 호림정에서 선정비와 불망비, 효자비 등 총 29기의 비석이 경주읍성으로 옮겨졌다. 이 비석들은 경주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경주신문에선 29기 비석을 소개하며, 우리 지역의 귀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또한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나아가 이 비석들이 매력적인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경주읍성에 위치한 비석 29기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비석은 ‘營將柳公春浩永世不忘碑(영장류공춘호영세불망비)’라고 새겨진 선정비다. 이는 경주에서 유일한 철비(鐵碑)로, 경주시 성건동 392-1에 있던 철비를 향도감 권달운의 후손들에 의해 효현동 소태고개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비석의 전면에는 ‘歛此大惠 雄鎭一摩 裘帶多暇 氷蘖自持 口碑濫境 頂薌載路 勒諸翁仲 宴出衆籲’, 후면에는 ‘崇禎 紀元 五 癸巳 六月 日 立 鄕都監 權達運 監官 金時憲’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를 국역하면 ‘조세 거둠에 큰 은혜를 베푸심은 웅진의 한 영장이셨네. 군정의 바쁘신 여가에도 빙옥의 마음을 가지셨다. 칭송은 온 고을에 자자하여 향기로운 덕택 수레에 가득하였네 여기 비석을 세운 것은 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이루어졌네’ ‘숭정기원후 다섯 번째 계사년(1893) 6월 어느날 세우다. 향도감:권달운, 감관:김시헌’이다. 비문에서는 영장 류춘호가 부민 또는 군사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가 군포 등 징수 시 많은 혜택을 주었고, 청백하게 지방군사를 보살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철비의 상태 보존을 위해 비각 설치나 바람과 습기가 덜한 곳으로의 이전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주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더욱 잘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경주중은 지난 15일, 16일 이틀간 대만 타이난의 염행국민중 방문단과 국제 교류 행사를 열었다. <사진> 경주중은 염행국민중와 2023년 8월 국제교류학교 결연을 맺고 매주 온라인수업을 진행해 오다, 그해 11월 직접 염행국민중에 학생 25명이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교류를 시작했다. 이번 행사에는 염행국민중 학생 30명과 교사 3명, 학부모회 2명을 비롯해 타이난의 오지학교인 남화국민중 학생 3명으로 이뤄진 방문단과 경주중 학생들이 함께했다. 이틀간 공동수업, 급식체험, 티볼 게임, 동궁월지 및 불국사 관람, 한국문화 체험, 학교투어, 홈스테이, 국제교류 및 다문화 한마당 축제 등 다양한 문화 교류를 했다. 임건우 염행국민중 교장은 “양국의 학생들이 상호 방문 교류행사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고 많은 경험을 나눴고 이렇게 이어진 인연이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소중한 인연으로 우정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이난 염행국민중은 평소 학생들의 기초교육을 공고히 함은 물론 체육경기, 전통기예(무술), 국제교육, 다국어교육 등을 가르치는 특색학교다. 미국, 영국, 독일,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와 국제교류를 하며 학생들에게 국제적 감각을 심어주고 있는 개교 3주년을 맞은 신생 명문학교로 손꼽힌다. 박진홍 경주중 교장은 “국제교류를 계기로 학생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글로벌 시대에 함께 성장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대학입시 1대1 수시컨설팅을 무료로 개최한다. 수시컨설팅은 다음달 10일 동국대 WISE캠퍼스 문무관(석장동)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이번 수시컨설팅은 지역 수험생의 진학률을 높이고 예비 수험생의 생활기록부 전략 제공 등 사교육비 절감과 입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됐다. 특히 컨설팅은 진로진학 전문 현직 교사와 입시 컨설턴트로 구성됐다. 이들은 2025년 수시지원 전략(고3 및 재수생), 2026년 대학지원 라인 설정 전략(고2), 2027년 생활기록부 및 세부 특기 준비 전략(고1)을 지원한다. 또 진로상담 및 학습유형 검사 부스도 운영된다. 동국대는 컨설팅 참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공학과 체험도 병행할 예정이다. 참여를 원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8월 7일까지 청소년진로교육체험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컨설팅은 수시 원서접수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진행되므로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수시 전략을 가다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하반기 가정용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 구입 보조금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이 사업은 각 가정의 음식물류 배출 단계부터 폐기물을 감량시키고, 수거·운반 과정 중 야기되는 각종 악취·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된다. 감량기 보조금은 가구당 최대 30만원이다. 올해 하반기는 90대 규모로 지원된다. 감량기 제품은 품질 인증(K마크, 환경표지, Q마크)을 반드시 득해야 한다. 하수도법에 근거한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 대상은 공고일(7월 22일) 전일 기준 경주시에 주소를 둔 세대주나 세대 구성원이 상반기 공고일(3월 13일)부터 구입·설치한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가 해당된다. 참여를 희망하는 가구는 22일부터 예산 소진 시까지 제품구매 후 경주시 자원순환과로 방문 접수하면 된다. 보조금은 감량기 품질 확인 등 절차를 거쳐 구입 금액의 50% 범위 내 선착순으로 지급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각 가정을 대상으로 음식물류 폐기물 처리기 지원 사업과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스마트음식물처리시스템(RFID) 사업을 적극 추진해 지속 가능한 청정 도시환경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