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APEC 정상회의 유치를 기념하고 추석을 맞아 농·특산물 특별할인 행사를 연다. 이번 특별할인 행사는 온라인 경주몰(gjmall.cyso.co.kr)에서 2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또 오프라인으로 경주농특산물판매장 본점(계림로 69)과 불국점(진현로1길 59-5)은 각각 10% 할인한다. 할인 행사 기간은 19일부터 9월 30일..
경주시가 반려동물 문화교육 수강생을 19일부터 모집한다. 이번 교육은 증가하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와 함께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개 물림 사고 등을 사전 예방하고 건강한 반려 문화 정착을 위해 마련됐다.교육은 9월 6일부터 11월 22일까지 경주동물사랑보호센터 2층 교육장을 비롯한 야외운동장에서 실시된다.반려동물의 ..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EBTS협동조합(이사장 이승원) 경주남부지점 조합원들이 화랑대기 유소년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황성공원에 위치한 경주축구공원 일대에서 지난 16일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독도를 매개로 한 현대 미학의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동양화의 전통적인 산수화 기법을 활용해 독도를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한국의 정체성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독도는 한국의 고유한 영토로서, 역사적 및 문화적 의미를 지닌 장소다. 이를 통해 한국 자연의 본질과 그 속에 내재된 철학적 사유를 심도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 아크릴 물감의 독창적인 색감과 질감을 통해 동양 미학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문 이 작품은 동양의 철학적 사유와 서양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조화롭게 결합된 결과물이다. 독도를 매개로 한 이 작품이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역할이 되길 바란다.
문화와 예술은 지속가능한 사회혁신을 위한 문제 제기 능력, 상상력, 실천력, 공동 창조에 기여한다.문화 예술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브랜딩’, ‘혁신’, ‘조직 활성화’, ‘비전 제시’라고 할 수 있다(若林宏保 외, 2019).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직관과 미학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와 예술적 사고의 과정의 중요성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화, IoT, AI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 기술혁신 시대, 재화와 가치는 인간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창작과 디자인 행위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디자인은 경제성장과 사회혁신을 동시에 창출하는 창조산업정책으로 연결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과학과 기술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둘러싼 경제의 개념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DCMS는 창조 산업을 ‘개인의 창의성, 기술 및 재능을 기반으로 지적 재산의 개발 및 사용을 통해 부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SDGs·ESG 실행 과제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국가와 도시의 큰 틀을 구축하고, 도시를 인문, 문화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시도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전에는 스마트 시티, 컴팩트 시티와 같은 생활세계의 ‘지속 가능한’ 재생산 방식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있었다. 도시와 문화, SDGs·ESG 목표와 사람과 섹터, 우리 사회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기업은 예술을 만나 창의성을 얻고, 예술은 기업을 만나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강화하는 메세나(Mécénat)운동도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의 폭(어워드와 인증 활동)을 넓히는 ‘This is MECENAT’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메세나는 지자체와 기업의 SDGs·ESG 실천과 연계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이 한국메세나협회에서도 ‘ESG 경영에 메세나가 필요한 열 가지 이유(1.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인식 고취 2. ESG 실현 노력에 대한 공감 확대 3. 이해관계자 소통과 나눔 4. 노동과 삶의 균형 보장 5. 노동자 인권 증진 및 만족도 영향 6. 지역사회 참여 및 개발 7. 기업 가치 향상과 주주 이익 증대 8. 공급망 협력 기회 창출 9.시민 에너지 독려 10. 새로운 세대를 위한 사회책임 이행)’를 제시하며 ESG를 메세나 활성화의 동력으로 설정한다(한국메세나협회 HP). 그간 다수의 연구 결과는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소비자 또는 기업의 이해 당사자, 지역사회 관계자, 그리고 정책 입안자 등에게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조직 구성원에게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사심을 갖게 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메세나 활동은 주로 문화예술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기업은 메세나 활동을 통해 이윤만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메세나 활동을 기업의 핵심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황낙건, 2014: 30). 더불어 기업이 명품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문화예술 마케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추석이 한 달 앞이다. 신라가, 경주가 만들어 낸 가장 큰 문화유산 중 지금도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가족에 대한 정과 고향 사랑을 더해주는 최대의 브랜드인 한가위가 바로 저만치 앞에 있는 시기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도 4년 지나 맞는 추석이다. 올해는 유달리 4로 시작되는 숫자에서 의미를 찾는다. 며칠 전 대학 입학 40주년 행사 계획을 들었는데 대학 입학 40주년은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이자 경주를 떠나 주 생활지를 서울로 옮긴 지 40년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제는 경주에서 태어나 배운 기간보다 타지 생활이 두 배 이상 되고 내가 사는 지역의 성당이 더 포근하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40년과 4년, 파리올림픽이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다소는 소란스러운 시기지만 추석을 목전에 두어서인지 묘한 차분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1년에 경주를 방문하는 횟수가 얼마나 될까? 점점 줄어 왔고 지금은 1년에 5차례 정도이다. 제사와 차례를 서울에서 지내고 모친을 뵙고 병원 등 업무상 동생들과 함께 또는 번갈아 가면서 경주를 방문하고 있다. 이번에도 추석을 앞두고 8월 하순에 부친 묘소 벌초를 위해서 짧게 경주를 다녀올 예정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경주와의 인연을 무엇으로 이어가고 더 강하게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모친이 경주에 계시니 그 동안은 경주를 당연히 찾고 호흡해야 하겠지만 그 이후는 무엇이 나를 경주로 이끌어 찾게 할까? 핵가족보다 전자가족이라는 단어도 나오는 때이고 1인 가족이 40%에 육박하는 요즈음이라 예전처럼 일가친척 전체가 모여 벌초하고 함께 지내는 것도 점점 없어질 것이다. 어린 시절과 달리 고향도 정말로 많이 변했고 집성촌이었던 마을도 이제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져 오히려 고향보다 서울, 사는 곳에 더 정든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 지금에 경주와 나, 나와 경주를 이어줄 탯줄은 무엇일까? 그 가장 분명한 하나의 끈이 있다. 경주와 나, 나와 경주를 변함없이 이어주고 더 강하면서 더 아름다운 향기로 이어줄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는 바로 친구이다. 경주에 갈 때마다 괜히 마음이 허해지고 바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친구들과 바로 생각하지 못해서이고 그들과 흉금을 터놓을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나에게는 나와 경주를 억지로라도 이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따지고 보면 고향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져 가던 나에게 고향에 대한 열정을 불현듯 불붙여준 친구다. 바로 이 ‘첨성대’ 칼럼을 쓰게 해준 친구 박근영이다. 격월로 이 칼럼을 쓸 때마다 조금이라도 경주에 도움을 주고 싶어 각별하게 경주 관련 정보를 찾고 할 수 있는 한 내 전공과 관련된 조언을 하고 싶어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런 작업을 통해 다른 출향인들에 비해 지금의 경주 정황을 더 알게 되었고 그만큼 고향에 대한 마음도 깊어질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친구도 경주신문사를 떠나 야인의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고향 사랑하는 마음에 함께 첨성대 필진으로도 활동하고 경주최부자 이야기도 꾸준히 연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응원을 보내고 있다. 어느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는 날 함께 한강 둔치를 걸으며 우리의 남은 젊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보람있게 보낼 것이며 고향을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를 숙고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로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친구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지혜를 나누며 더 발전적인 경주 찾기와 경주의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가! 최근 읽은 글 중에 ‘인생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족과 친구다. 이들을 잃게 되면 당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다. 그동안 늘 좋은 친구 만나기를 바랐는데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내가 먼저 좋은 친구, 경주의 좋은 벗이 되고자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천년지기’라는 노래를 멋지게 불러준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내가 지쳐 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 준 친구. 천년지기!’
영천시의 한 농장에서 또다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인접해있는 경주시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들어 ASF 확진 사례가 나온 것은 경북 영덕(1.15), 경기 파주(1.18), 강원 철원(5.21), 경북 영천(6.15), 경북 안동(7.2), 경북 예천(7.6), 이번에 재차 경북 영천(8.12)에서 발생해 모두 7번째다. 그동안 ASF는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올해는 경북에서만 벌써 5번째 발생이다. 경북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경주시도 결코 안전지대라 할 수 없다. 방역당국은 지난 12일 영천시의 한 농장에서 ASF 양성으로 확진되자 대구, 경북 6개 시군(영천, 경산, 청도, 경주, 포항, 청송)에 이동통제 및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발령했다. 발생농장에 대해서는 전 두수를 살처분했고, 반경 10km 방역대 내 24개 양돈농가에 대해서는 정밀검사를 의뢰하는 등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경주에서는 아직까지 ASF 발병 사례가 없다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방역망이 한 번 무너지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ASF 바이러스는 냉장 상태에서도 무려 6개월 동안 살아남고, 섭씨 80℃ 이상 고온에 30분 이상 가열해야 죽는 생명력이 끈질긴 바이러스다. 자칫 방역을 소홀히 했다가는 전국의 돼지가 절멸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돼지 질병이다. 한 마리만 걸려도 해당 농가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할 정도로 무서운 제1종 가축 전염병으로 분류된다. 아직까지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감염될 경우 치사율이 100%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발생농장의 반경 10km 이내 양돈농장의 추가 발생 가능성도 높다. 지금으로서는 ASF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농장 방역이다. 방역당국이 방역활동 강화와 야생멧돼지 이동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지역 양돈 농가는 축사 출입 시 방역복 착용, 농장 안팎 소독 및 청결 유지 등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한 만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방역의 고삐를 죄어야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지난해 경주지역 어린이집은 111곳으로 2018년 157곳 대비 46곳이 감소했다. 어린이집이 감소하면서 영·유아수 역시 4360명으로 5년 새 무려 1576명이 감소했다. 반면 노인복지시설은 762곳으로 같은 기간 660곳 대비 102곳이 증가했다. 노인복지시설은 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의료복지시설, 노인여가복지시설,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이들 노인시설은 고령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이 같은 수치는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보육통계와 노인복지시설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어린이집이 줄고 노인복지시설이 증가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개 지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폐원한 어린이집 종사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등 그 고충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또 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다지만 당장 동네 어린이집 폐업으로 자녀를 맡길 곳이 사라진 부모들의 고충을 흡수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맞벌이 가정은 아침 시간 먼 곳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노인시설과 어린이집의 증감 추세가 지속되고 있고,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저출산 정책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지만, 폐원하는 어린이집 시설의 속도는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는 결국 우리 사회의 경제·교육·복지·의료·문화 등 전방위적인 분야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면서 국가 뿐만아니라 지역 경쟁력이 하락되고, 도시 위상마저 추락시킬 게 뻔하다. 무엇보다 지역 내 현황을 정확히 분석해 어린이집·유치원 수급 계획 및 정책을 개발하고 육아 인프라 취약지역에 대한 돌봄 교실 설치 등 지원 강화가 시급하다. 그동안의 실패한 정책들을 반면교사 삼아 경주지역 현실에 맞는 육아 정책을 수립하고, 기존 추진 중인 사업들은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 앞서 재원 확충 등 경주만의 실질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코앞에 닥친 인구소멸 문제야말로 열일 제쳐두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으뜸 과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의 부친은 러시아의 귀족으로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여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네 살 때 스스로 피아노를 연주하더니 10대에 접어들며 작곡을 시작했고, 17살 때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전도유망한 청년 음악가였다. 그랬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24살(1897년)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이 혹평을 받는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려던 내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교향곡 1번 초연 후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의 나락에 빠졌다. 교향곡 1번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더 이상 연주되지 않았다. 그의 우울증은 최면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해졌다. 라흐마니노프는 3년여 동안 주치의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1901년(28세) 희대의 히트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세상에 내놓는다. 피협인데도 피아노가 반주하고, 오케스트라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독특한 시도로 1악장을 연다. 누가 들어도 애수에 가득 찬 러시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성공의 1등 공신이었던 달박사에게 헌정된다. 라흐마니노프는 비로소 자신감을 되찾고, 성공가도를 다시 질주하기 시작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라흐마니노프는 공산화된 조국을 뒤로 하고 망명길에 오른다. 일단 노르웨이에 갔다가 이듬해인 1918년 미국으로 떠난다. 1928년에는 동족의 망명 연주자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를 만난다. 호로비츠는 라흐마니노프보다 30살 연하였지만 이후 평생 음악적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다.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의 연주 실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특히 1909년(36세)에 발표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에 대하여 “내 피아노 협주곡은 바로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고 항상 꿈꿔왔다”라고 말하며 극찬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 망명 후에 피아노 협주곡 4번(1926년)을 만들긴 했지만, 눈앞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실상 전업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2m에 육박하는 큰 키에 손을 펴면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가 30cm를 넘는 신체를 가진지라 그의 연주는 범인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었다. 그가 한국인에게 유난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탁월한 신체조건을 활용한 기교와 러시아적 애수를 담은 멜로디 때문이다. 그의 선율은 차이콥스키와 같은 듯 다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조국 러시아를 그리워했지만 다시는 그 땅을 밟을 수 없었다. 1943년 70세에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피부암(흑색종)으로 사망한다.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참부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아줌마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좋은 말이구나 그냥 생각했던 말이지만, 아이를 낳고 막상 부모가 되어서는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다. 그래서 아줌마가 육아에 대해,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된 말이기도 하다. 부모와 참부모.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아이를 올바른 성인으로 키우는, 아이의 롤모델이 부모인, 참부모는 되기 쉽지 않다는 소리로 아줌마는 받아들였다. 아줌마는 모든 면에서 아이에게 모범이 되어야 했다. 부모가 보여주는 세상이 어린 자식에게는 전부이고, 성장하면서 부모의 삶은 아이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엄마·아빠처럼 절대 살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행복할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부모가,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어떤가 돌아봐야 한다. 내가 사는 삶이 곧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삶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내가 보내는 오늘 하루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한때 ‘헬리콥터 맘’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아이가 성장하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헬리콥터처럼 나타나 모든 일에 참견하는 엄마를 일컫는 말이다. 아마도 그 엄마는 아이의 교육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어떤 과목을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진도 체크와 보충까지, 아이의 모든 일과는 엄마의 계획하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이는 선택권이 없는 삶을 살았기에 엄마가 헬리콥터 맘이 되기를 포기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아마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일궈가기는 힘들 것이다. 인간관계부터 일, 모든 분야에서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배워나가야 할 테니 말이다. 선택이나 결정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자식이 원하는 것을 쉽게 제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 “당신의 아이가 누군가가 일으켜줄 때까지 그대로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작은 것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열의 아홉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지대다. 절대적인 후원자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에 가는 나이가 되어서도 부모의 태도가 그대로인 것이 문제다. 세상의 내 아이가 최고라는 태도, 가치관을 아이에게, 무심결에 가르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귀한 아이가 아니라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속담에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고 하지 않는가! 쉽게 쉽게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던 아이들은 참을성도 인내심도 없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작은 것에 감사함을 알까? 내가 사는 삶에 행복함을 느낄까?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점점 더 큰 것을 부모에게 요구할 것이고 그것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오히려 원망할 것이다. 감이 안 오는가? 초중등학교 때부터 원하던 대로 용돈을 주고, 아이가 갖고 싶다는 것을 쉽게 제공하면서(시험 100점 맞으면 제공했던 것,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또래에 비해 과한 선물도 이에 속한다) 성장한 아이는, 성장한 만큼 더 과한 것을 요구한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가계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학교와 가까운 호텔식 오피스텔을 요구하고 결혼할 때는 남들과 비교하여 절대 뒤지지 않는 결혼식과 혼수나 예단을 요구할 것이다. 이건 부모 교육이 결과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부모인 자신의 삶을 뒤돌아봐라. 우리는 안다.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당당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모는 집에서, 사회를 가르쳐야 한다. 나이에 맞게 성향에 맞게 부모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허무함이나 실망에 빠져 고립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나는 그냥 부모인가, 참부모인가!
안동권씨 노헌(魯軒) 권응생(權應生,1571~1647)은 의병장 그리고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문인으로 경주의 이름난 학자였다. 고을 유림의 동조로 1795년 안강읍 두류리에 권응생의 위패를 모신 향불천(鄕不遷) 부조묘(不祧廟)가 세워졌으나, 근래 두류공단 조성으로 두류이주단지(두류두동길 34-12)로 이건되었다. 새롭게 조성된 모현문(慕賢門)을 열고 들어가면 충현묘(忠顯廟)가 바로 보인다. 권응생은 평소에는 바른 인품으로 학문을 대하고, 국난에는 창의하여 충을 세운 인물로, 고조부 권명추(權命錘) - 증조부 권계중(權繼中) - 조부 권덕린(權德麟)의 가계를 이룬다. 부친 권사의(權士毅)와 모친 광릉안씨 안윤조(安胤祖)의 따님 사이에서 밀양 삽포리(鈒浦里)에서 태어나 가학을 계승하였다. 어려서 총민하였고, 22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경주 내남 계연(雞淵)전투, 문천회맹, 영천성 탈환작전 등에서 활약하였고, 김호 장군과 노곡전투, 경주성 수복작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팔공산회맹과 화왕산회맹에도 참가하였다. 여주이씨 근재(謹齋) 이경홍(李慶弘)의 따님과 혼인해 슬하에 권기(權旡)·권임(權恁)·권도(權燾) 세 아들을 두었고, 모두 여헌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대암(大庵) 박성(朴惺), 수암(守庵) 정사진(鄭四震), 쌍봉(雙峰) 정극후(鄭克後) 등과 교유하였고, 특히 1638년에 권응생은 정극후와 함께 『동경지(東京誌)』를 편찬하였다. 스승 장현광이 제자 권응생[자 명세(命世)]에게 보낸 편지에서 “듣자하니, 『동경지』 편찬이 아직 정서(正書)하지 못했다 하니, 이는 진천(鎭川:권응생) 그대가 눈 치료에 겨를이 없고, 효익(孝翼:정극후)이 혼자 감당키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병을 회복하는 겨를에 생각을 지극히 서로 권해서 기필코 완성하길 기약한다면 아마도 큰 다행이지 않겠는가? 고을의 선비들이 멀리서 찾아오니 그 마음이 진중(珍重)하나 다만 늙고 혼몽하여 그릇된 요구에 응할 수 없어 많이 부끄럽네. 일전에 마침 새로 부임한 부윤이 방문하였기에 잘 조처해 줄 것을 청하였고, 모름지기 제때 사업을 끝마치도록 부탁하였으니, 생각건대 기필코 범범하게 보지 않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장인 이경홍의 『철감록(掇感錄)』에는 김성일의 참모 박성으로부터 소모밀양사민통문(召募密陽士民通文)을 받아 참전한 의병관련 내용이 있으며, 사위 권응생 역시 의병활동에 영향을 받았다. 사후에 경주 기계현 가천리(駕川里) 산막동(山幕洞)에 장사지냈고, 다시 이장되었다가 기계에 다시 묻혔다.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봉사(奉事), 직장(直長), 평구도찰방(平丘道察訪) 등을 역임하였으며, 진천현감으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었다. 하지만 광해군의 폭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밀양에 돌아가서 손기양(孫起陽) 등과 교유하다가, 만년에 안강으로 돌아와 형강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집중하였다. 임진왜란 때 당숙 매와(梅窩) 권사악(權士諤)과 작은아버지 매헌(梅軒) 권사민(權士敏) 등과 함께 주민과 노복으로 의병을 조직하였고, 화왕산성에서 망우당 곽재우의 휘하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웠다. 학림(鶴林) 권방(權訪)이 서문을, 궁오(窮悟) 임천상(任天常)이 발문 등을 지은 『노헌유고』가 전하며, 사후에 쌍봉 정극후, 우복 정경세가 제문과 만사, 여와 목만중이 묘갈명,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이 행장 등을 지었다. 지역 유림이 권응생 사후 150여년이 지난 후에 그의 업적에 대해 평가하고, 향불천에 처한 일은 참으로 합당하다. 이제 그의 업적을 제대로 드러내어 후대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할 때이다. 권진천 묘갈명(權鎭川墓碣銘) - 여와 목만중 권응생의 자는 명세(命世), 스스로 노헌(魯軒)이라 불렀다. … 어려서 문예(文藝)에 일찍 성취하였고, 장성해서는 폭넓고 빼어났다. 부친이 매번 칭찬하며 “우리 가문의 업을 잇는 자가 여기에 있구나”라고 하였다. 임진왜란에 종숙 권사악, 서숙 권사민과 눈물을 쏟으며 창의하여 팔공산에서 여러 의병장과 모여 망우당 곽재우을 따라 산성을 수비하는데 공이 있었으니, 이때 겨우 약관의 나이였다. … 진천현감에 제수되어 백성을 잘 다스렸고,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동의보감』 한질을 하사하였으니, 사람들이 영화롭게 생각하였다. 공은 평소 벼슬에 마음이 없었고, 밀양 옛 별장으로 돌아와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과 덕과 의로 학문을 익히니, 사람들이 어우러져 대종(大宗)으로 삼았다. 이윽고 다시 동도 옛집으로 돌아와 서적을 낙으로 삼고, 만년에 형강의 빼어난 산수를 좋아해 호수 가에 정자를 짓고 철마다 왕래하였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들은 600여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국수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안전교육과 함께 진행된 국수프로그램은 입맛 없는 여름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영양도 챙기고 식사도 챙긴다. 행복선생님들과 진행되는 국수 프로그램은 국수 삶는 동안 시도 읽고 양념에 넣을 고명도 만들고 추억을 소환해 국수에 얽힌 이야기를 자랑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프로그램은 인지능력을 유지하고 뇌 기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크다. 맛을 조절하는 순간도 함께 간을 맞추며 소통하고 화합하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국수 같은 요리프로그램은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문화를 알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는 시간이 된다. 도계상동 남정숙 회장과 회원들은 “그리움이 많은 국수인데 경로당 프로그램으로 하게 돼 회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며 “우리 노인네 마음을 어찌 이리도 잘 알아주는지 감사하다”고 전했다. 아화4리 경로당 조소암 회장은 “평소에도 경로당 화합이 좋은 곳인데 국수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색했던 행복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돼 좋았다”고 말했다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이 경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2025년 주민참여 예산 공모를 21일까지 실시한다. 주민참여예산제 공모 대상 분야는 공단이 관리하는 사업장에 대한 시설·환경 개선, 서비스·복지 및 기타 공공 복리 증진 등이다. 대상 사업은 공단의 사회적 가치 제고 및 ESG 경영을 위한 사업, 지역발전에 필요한 사업이다. 참여 대상은 경주시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주민 또는 기관 및 단체에 근무하는 직원 등으로 공단 발전에 관심 있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메일, 우편, 팩스로 접수하면 된다. 공모에 당선된 시민에게는 소정의 포상금이 지급되며, 공모에 선정된 사업은 내년도 예산에 반영해 추진할 예정이다. 주민참여예산제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정태룡 이사장은 “고객만족, 상생협력 등 공단의 핵심 가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예산제 공모에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의 종주도인 경북도는 지난 7일 ‘2024년 경상북도 새마을지도자대학’ 입학식을 김천대 본관 세미나실에서 가졌다. <사진> 이날 입학한 73명은 경북 22개 시·군에서 2명에서 8명이 등록해 신입생이 됐다. 경주시에서는 황성동새마을지도자 2명과 성건동새마을부녀회 회원 2명 등 4명이 입학했다. 이들은 앞으로 3개월간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새마을정신 이해, 새마을운동 세계화, 새마을지도자 리더십 함양 등 전문과목과 양성평등, 기초 외국어 등 다양한 분야의 교양과목을 배운다. 새마을지도자대학은 한국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된 새마을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새마을운동 활성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지도자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과정이다. 이날 입학식 후 새마을지도자의 능력개발을 위한 대화, 소통, 회의 기법에 대한 첫 강의와 각 시군에서 입학한 입학생들의 자기소개 시간도 가졌다. 경북도 새마을지도자대학은 김천대 평생교육원이 주관한다. 8월 7일부터 11월 13일까지 12주간 15회 과정으로 매주 수요일 6시간 교육이 진행된다. 새마을 관련된 강의와 체육대회, 1·2차 현장학습, 분임·전체 토론회도 실시될 예정이다. 수료는 출석률 70% 이상이어야 한다. 김천대 윤옥현 총장은 환영사를 통해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 정신으로 교육 기간동안 새마을지도자로서 무엇을 해야될 것인지,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계속 발전시켜야 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실천 방법의 해답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도 이정률 정무실장은 “새마을운동은 54년간 살아있는 국민운동으로 사회통합을 선도하고 있으며, 새마을운동 가치가 곧 경북의 미래가치가 될 것”이라며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큰 역할을 펼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폭염 속에도 재미와 기운이 나는 비결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웃고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윷놀이다. <사진>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 행복선생님들은 지난 1일부터 장작윷과 새롭게 제작한 미션 윷놀이 판으로 경로당마다 윷놀이를 시행하고 있다. 윷놀이가 즐기는 문화로 자리잡아 온 가운데 경로당에서도 빠질 수 없는 놀이다. 윷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급증함에 따라 창의적으로 놀이판이 변경되거나 디지털화되는 등 놀이문화의 하나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윷놀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한반도 내에서 전승되고 있는 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관련 역사 기록이 풍부하게 확인되는 점 △‘도·개·걸·윷·모’에 대한 상징성 등 학술 연구 주제로 활용도가 높은 점 △가족 및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승이 지속·유지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 받았다. 또 급격한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단절 없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은 대표적인 전통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같은 윷놀이를 즐기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하루는 즐겁다. 두산위브 트레지움 경로당 어르신들은 “윷이 커서 일어나 던지고 무조건 5회를 외치는 일은 함께하는 즐거움이다”며 “행복선생님의 시범 소리에 덩달아 힘이 생겨나고 기분도 변하는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금선 행복선생님은 “윷놀이를 통해 소리를 내며 만세를 부르는 모습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았다”며 “앞으로 어르신들의 노후 생활이 즐거울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 미스터경북 선발대회가 지난 4일 경주시 근로자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2022년 이후 2년 만에 지역에서 다시 개최된 이번 대회는 경북보디빌딩협회가 주최하고 경주시보디빌딩협회가 주관했다. 대회는 보디빌딩 동호인 선수들에게는 화합의 장을, 대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종목은 19세 이하 3체급, 마스터즈 1체급, 일반부 8체급, 클래식 보디빌딩 2체급 등 14체급을 비롯해 남자 피지크 2체급과 여자 비키니 피트니스 2체급, 여자 레깅스 핏 2체급으로 나눠 각각 진행됐다. 일반부 보디빌딩 8체급의 각 1위 선수들이 경합해 남자 부문 최우수선수 수상자가, 여자 비키니 피트니스와 여자 레깅스 핏 각 체급 1위 선수들이 경합해 여자 부문 최우수선수 수상자가 각각 결정됐다. 대회 최우수선수에는 남자 그랑프리 미들급(-85㎏)에 장효영(상주시보디빌딩협회) 씨, 여자 그랑프리(+165㎝)에 배도의(비키니피트니스) 씨가 각각 차지했다.
경주 신라왕경숲, 경주 경북천년숲 정원이 산림청 주관 ‘아름다운 도시 숲 50선’ 공모에 선정됐다. 경북도내에서는 포항 철길숲, 포항 송도 솔밭 도시숲을 포함해 총 4개소가 선정됐다. 산림청이 도시 숲의 가치와 역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번 공모는 기후변화 대응형, 경제효과 증진형, 경관 개선형, 주민건강 증진형, 주민 참여형 등 5가지 유형으로 신청을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국민 추천을 받아 전국에서 916곳의 도시 숲이 신청한 가운데 경주지역 2곳이 경제효과 증진형 부문에 선정됐다. 경주엑스포대공원 내 신라왕경숲은 보문관광단지 내 문화관광시설 및 숙박시설과 다양한 제휴 할인을 통해 지역 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2023년 ‘경상북도 산림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올해는 ‘대한민국 산림박람회’가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신라왕경숲에는 우리나라 고유 향토 수종 약 2만5000여그루가 식재돼있어 생태적으로 매우 우수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육부림, 왕경림, 곡수원 등 다양한 테마의 조경환경이 조성돼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경북 천년숲정원은 지난해 4월 재개장했다. 경북도내 제1호 지방정원으로, 거울숲, 서라벌정원, 숲그늘정원, 버들못정원, 천연기념물원 등 13개 테마정원을 갖췄다. 다양한 식물종과 아름다운 정원 디자인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으면서 경주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숲의 전경이 거울처럼 물에 반사되는 외나무다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포토존이다. 한편 산림청은 ‘아름다운 도시숲 50선’ 선정 기념 방문 이벤트를 9월 8일까지 진행한다. 선정된 도시 숲을 방문해 ‘아름다운 도시숲 50선’ 배너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고, 도시 숲 경관과 이용 사진을 산림청 SNS에 올리면 참여자 중 100명을 추첨해 1만원 상당 기프티콘을 증정한다.
도리천이 흐르고 신들이 거니는 산, 낭산 칠흑의 밤이다. 한밤중에 문득 두드리는 소리 있어 밖을 보니,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초승달 너무도 가까이에 와 있다. 어디를 따라나서자는 말씀처럼 그저 나를 내려다볼 뿐, 단 한 말씀도 없으시다. 홀린 듯 서둘러 채비하고 길을 나선다. 어둠이 지워놓은 길과 어둠이 살려놓은 길과 내가 본능으로 직감하고 가는 길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오늘 하루도 길고 뜨겁겠다. 경주는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은 토함산과 수많은 불상과 능을 안은 남산이 경주를 포근히 끌어안아 재우는 새벽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은, 두 산 못지않게 신라시대에 큰 영향력을 미친 낭산이다. 낭산은 일곱 개의 가람 터 중 여섯 번째로 토착 신(神)이 머무는 신령한 산이다. 신라 사람들은 신유림(神遊林) 또는 불교 세계의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수미산(須彌山)으로 부르기도 했다. 부처가 계시고 신들이 거닐고 노니는 가장 신성한 숲이니 백성들은 어쩌면 낭산을 먼발치에서만 관망만 할 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신라본기》 실성 이사금 12년(413년)에는 낭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12년 가을 8월에 낭산(狼山)에서 구름이 일었는데, 마치 누각(樓閣)과 같고 향기가 가득하여 오랫동안 그치지 않았다. 왕이 이르기를 “이는 필시 신선(神仙)이 강림하여 노는 것이니, 아마도 이는 복된 땅이리라.” 하였다. 이후로 사람들에게 낭산의 나무 한 그루라도 벌목하지 못하게 하였다.’ 묽은 어둠이 잠식한 낭산으로 몸을 들인다. 낭산은 해발 108m의 낮은 야산이다. 동서로는 폭이 좁은 반면, 남북으로 뻗은 산세는 풍만하여 이 모습을 두고 어떤 이는 누에고치와 흡사하고, 어떤 이는 짐승 이리가 웅크린 것과 같다 하여 이리 ‘낭(狼)’ 자가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사기(史記)’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러니 어떤 물체나 짐승의 형상 때문이 아니라 신라 왕궁의 동(남)쪽에 있다 하여 낭산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처럼 낭산은 비록 작은 규모의 산이지만 의미와 깊이를 알고 나면 신라라는 사회에서 얼마나 큰 의미의 산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낭산은 내게 ‘귀족의 땅 여왕의 나라’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변방의 문외한처럼 풀밭을 왕래하는 자발적 빈민을 자처하며, 마음의 거리로부터 먼 곳이기도 했다. 아마도 왕과 관련된 곳들이 적지 않음에서 오는 어떤 괴리감 같은 것이었을 게다. 문무왕을 화장해 유골을 빻았다는 능지탑과 바위에 부처를 새긴 마애불, 그리고 도리천에 쓴 선덕여왕릉,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 국보로 지정된 구황리 삼층석탑과 황복사 터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신라 왕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낭산과 함께 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신라 최초 여왕 선덕(덕만, 신라 제27대 왕)은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신하들은 도리천이 하늘에 있는 곳이라 여기며 왕이 말한 곳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왕이 신라의 수미산은 낭산이요, 도리천은 낭산의 남쪽 봉우리라고 알려 주었다. 왕이 죽자 생전 왕이 지목한 낭산 남쪽 어귀에 장사 지냈다. 훗날 문무왕이 나라를 위해 사천왕사를 지으니 그곳이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다. 잠결에 초승달은 왜 나를 깨워 낭산으로 불러들였을까. 아직 동트지 않은 시각, 지금이 신들이 거니는 시각일까.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낭산 숲에서 한 무리 새가 날아오른다. 신들은 지금 어디를 거닐고 있을까. 나는 천천히 걸어 낭산 자락으로 몸을 들인다. 서서히 걷히는 어둠 속에서 사천왕사 터의 굴곡이 얼비친다. 가깝고 먼 곳이 덜 어둡고 더 어두움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낸 길을 가로지르니 돋아 올린 동탑 터와 서탑 터의 굴곡이 자연스럽게 휘어져 있다. 몇 계단을 올라 절터에 올라서니 꽤 너른 풀밭이 펼쳐진다. 풀밭 위로 돋아 올린 단이 여럿이다. 본존불이 안치된 금당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로 동탑 터와 서탑 터가 있고, 북방으로 좌경루 터와 우경루 터가 있다. 금당 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본다.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이 서서히 묽어지고 있는 걸 보니 곧 동이 트겠다. 어느새 풀밭은 세월을 거슬러 나를 세워 놓는다. 바람과 햇살, 나무와 풀, 새와 짐승, 그리고 온갖 이야기들이 신화처럼 일어나 내게 이야기를 흩어놓는다. 불경에는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흐른다고 한다. 도리천은 육욕천(六欲天)의 둘째 하늘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데, 가운데에 제석천(帝釋天)이 있고 그 사방에 하늘 사람들이 거처하는 여덟 개씩의 성이 있다고 한다. 즉 도리천은 이상 세계를 말한다. 당나라의 위협에서 계책을 고민하다 문무왕 19년(679) 낭산 남쪽 기슭에 사천왕사를 세웠다. 신라 사람들은 그제야 도리천에 무덤을 쓰게 한 여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고 탄복했다. 도리천은 사천왕천 바로 위에 있는 하늘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다. 어쩌면 여왕은 훗날 도리천 아래 사천왕사가 세워질 것을 미리 알고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으로 정했는지 모른다.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신라 제29대 왕) 김춘추(金春秋, 604~661)의 뒤를 이어, 통일을 이룬 문무왕(文武王, 신라 제30대 왕) 김법민(金法敏, 626~681)은 679년(문무왕 19)에 전쟁의 긴박함 중에 사천왕사를 짓는다. 통일을 염원했던 선덕여왕의 뜻을 받들어 수미산 도리천 여왕의 능 아래, 나라를 위해 사천왕사를 지은 것은 철저하게 불교의 이치를 따르고 불교에 의지해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였으리라. 문무왕은 전장에 나가기 전에 군사들을 사천왕사에 열병시켜 통일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문무왕이 즉위했을 때는, 삼국이 통일되었다지만 불안정한 시기였다. 연합으로 전쟁을 치른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는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삼국유사》 ‘기이 2’ ‘문무왕(文武王) 법민(法敏)’ 편을 보면 사천왕사를 세운 배경이 자세히 실려있다. 신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를 친 당나라 군대가 돌아가지 않았다. 옛 고구려 땅에 머물면서 신라를 습격하려는 것을 알고 문무왕이 군사를 보내 먼저 당나라 군대를 쳤다. 이것을 안 당나라 황제 고종이 당나라에 숙위(宿衛) 중인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 629~694)을 불러 질책한 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장수 설방(薛邦)에게 군사 50만을 주어 신라를 치라고 했다. 이때 당나라 유학 중이던 의상(義湘, 625~702)이 옥중 김인문을 찾아가 만나니, 이 사실을 전해주며 빨리 신라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이 급히 왕을 만났다. 김인문으로부터 들은 말인즉 ‘곧 당나라가 신라를 칠 것이다. 대비하시라.’는 것이었다. 왕이 심히 걱정하며 군신을 모아놓고 방비책을 물었다. 그때 각간(角干, 신라 17관등 중 최고 관직) 김천존이 아뢨다. “요사이 명랑법사가 용궁에 가서 비법을 전수받고 왔으니 청컨대 조서로 물으십시오” 왕은 명랑법사를 불렀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다음호 1648호 경주 사천왕사 터(下)에서 계속
경주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지난 6일 2024년도 ‘노인복지 프로그램 전문가’ 교육 과정 수료식을 개최했다. 경주시여성행복드림센터 4층에서 열린 수료식에는 교육생 및 관계자 등 25명이 참석했다. <사진> 이번 교육은 경로당 행복선생님과 노인복지 프로그램 강사를 희망하는 미취업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지난 6월 4일 첫 수업을 시작으로 매일 오후 하루 4시간씩 총 45일간 진행됐다. 노인 심리상담, 소통과 자기발견, 스트레스 관리, 민요체조, 라인댄스, 한궁, 터링 프로그램, 직무 소양 교육, 취업대비교육, 경로당 현장실습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지난달 30일에는 프로그램 전달기법 함양을 위한 모의 시연을 진행해 교육생의 역량을 강화하고 예비 강사로서 교육생 자질을 검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이 지난 2일 지역 내 취약아동을 위한 새학기 학용품 키트를 전달했다. 이날 공단 임직원,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관계자, 시민 등 30여명이 참석해 학용품 키트와 응원엽서를 손수 제작해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사진> 학용품 키트에는 연필, 지우개, 필통, 클리어화일 등 학용품과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 스티커, 응원엽서 등 13개 품목이 담겼다. 학용품 키트는 밀알복지재단 대구경북지부를 통해 경주시 복지정책과로 기부돼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