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는 2021년도 사업자지원사업 공모를 13일부터 9월 11일까지 진행한다.사업자지원사업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장학지원 △지역경제협력 △주변환경개선 △지역복지 △지역문화진흥 등 5개 분야에서 주민단체, 지자체, 기관의 아이디어를 공개 모집해 사업을 효..
경북지방경찰청은 13일 후배 선수들에 대한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 주장선수 장윤정(여·31) 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장 씨는 고(故) 최숙현 선수 등 후배 선수들에게 폭언 및 폭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 5일 구속됐다. 경찰은 또 김규봉 감독(42)이 허위서류 작성으로 경주시에서..
국회미래연구원이 최근 개통한 ‘대한민국 행복지도’를 분석한 결과 경주시민들의 국민행복지수가 전국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경주사회의 물리적, 정신적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번 분석에서 경주시민이 체감하는 행복지수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하위권을 기록했으며 특히 행정, 교육, 의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번 분석에서 경북 도내 시·군의 행복지수가 전반적으로 전국 타 시·군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경북은 8개 시·군(봉화·울진·영양·영덕·구미·의성·군위·영천)이 E등급(하위 20%)을 기록해 한 전국 시도 중 가장 저조했으며 경주시를 비롯해 문경·예천·김천·청송·포항·칠곡·경산 등 8개 시·군이 D등급을 받았다. 국민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지표 중 하나인 ‘행복역량지수’ 조사 결과 경주시의 지수는 ‘0.403’으로 나타나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59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행복역량지수는 건강, 안전, 환경, 경제, 교육, 관계 및 사회참여, 여가 등 7개 영역을 종합한 지수인데 전국 평균 지수인 0.448에도 못 미쳤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 경주시는 7개 영역 중 안전, 여가, 관계 및 사회참여, 환경, 건강 등 영역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안전 부문은 최하위를 기록해 철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경주의 경우 안전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인구 10만명당 응급의료기관’과 응급실 운영 기관 수, 교통사고 및 화재 등에서 하위권을 기록했다. 국민행복지수를 결정짓는 또 다른 지표인 ‘삶의 만족도’ 지수도 0.316으로 전국 평균 0.494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시의 이 같은 결과는 경주시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생활에 밀접한 공공기반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고 폐쇄된 지역사회 풍토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경주시민들이 체감하는 행복지수가 높으면 이는 곧 시민들의 자긍심과 이어지며 그 힘은 경주의 높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경주시는 이번 분석결과를 살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고 시민들도 열린 마인드로 건강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함께 동참하길 기대한다.
국회는 지난 4일 본회의를 열고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출신 고 최숙현 선수에게 선수를 폭행한 지도자의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고 최숙현법’을 의결했다. 최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 운동처방사, 감독, 주장 등 핵심 인물 3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이번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안은 체육인 인권보호 강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 설치를 명문화하고 선수 폭행 등 스포츠 비리에 연루된 단체와 지도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그리고 조사에 비협조하는 것만으로도 책임자 징계가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제1조에서 법 목적으로 ‘국위선양’ 문구를 삭제하고, ‘체육인 인권보호’를 명시했다. 이는 체육계 1등 지상주의가 폭력·폭행 사건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손꼽혔던 만큼 성적보다 인권보호에 우선을 두고 법 목적을 개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에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했는데 직원조사권, 수사기관 신고·고발 및 징계요구권, 공무원 파견요청권, 피해자 임시보호시설 설치 등을 추가로 부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그동안 선수 등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거나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출석을 거부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면 조사가 제때 진행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지도자나 선수 등 관련자가 인권침해 사실을 인지했을 때 신고를 의무화하고 피해자 등에 대한 불이익 조치도 금지했다. 스포츠윤리센터 조사에 비협조하거나 방해, 거짓진술을 강요한 사례가 적발될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책임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성폭력, 폭력 사건 관련 지도자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년에서 5년의 범위 내로 확대했으며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물리적 공간 분리, 피신고인의 직위해제 또는 직무정지, 피신고인이 신고인 의사에 반해 신고인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2차 피해 방지 규정도 명시했다. 직장운동경기부 선수와 소속팀이 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표준계약서 개발·보급하기로 한 것은 선수들이 안정 속에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직시해야 할 것은 최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체육계 전반에 깔린 성적 지상주의와 불공정한 선수구성, 폐쇄적인 구조, 약자에 대한 무관심 등이 그 원인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최 선수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도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제 제도적인 뒷받침이 마련된 만큼 체육계와 관련 기관도 스스로 과거 잘못된 관행을 끊어 내고 자정하는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문명이 발전하다보니 문화 또한 더불어 다양해 졌다. 몸과 마음이 접촉할 수 있는 지형변화가 그만큼 넓고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 행하는 바, 만족하는 바의 대상 자체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광의 패턴 또한 다변화를 거듭해 왔고 개념 또한 바뀌어 왔다. 이것이 ‘관광’이다 라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need’ 가 만들어 내는 ‘trend’를 규명하기에 숨 찰 지경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광대국의 강자로서 굳건한 위상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나라들이 있다. 서구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세 나라들이 관광 대국이라는 명성 외에도 동일하게 획득하고 있는 명성이 또 한 가지 있으니, 바로 ‘음식’이다.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것은 이 음식들이 관광 산업과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면서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가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이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굳건히 관광대국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결정적 핵심 역활로서 ‘음식’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서구 사회에서 ‘여행과 휴가’는 엄청나게 중요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개인의 권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본인들이 다녀온 여행이나 휴가에 대한 후일담을 주변 사람들과 반드시 나눈다. 이 때 사람들이 가장 장황하게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을 보았다 – seeing’, ‘무엇을 했다 -doing’ 라는 것보다 ‘무엇을 먹었다 - eating’ 라는 것이다. 특히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별미’라던지 그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미’는 대단한 자랑거리이자 즐거운 화두가 된다. 만약에 그 음식이 ‘별미’ 와 ‘특미’를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완벽한 ‘진미’ 가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볼 것이다. 욕구적 견지에서 볼 때 그 지역 음식에 ‘별미’만 있어도 그 지역의 관광동인으로 충분한 역활을 할 수 있다고 필자는 진단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이 관광산업과 음식을 어떻게 잘 연계하여 활용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음식이 ‘Brand France’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프랑스 는 ‘France Gastronomie’ 라는 음식소개 책자를 꾸준히 발행을 하면서 ‘음식 – food and drink’ 을 관광과 연계한 전략을 국가차원에서 추진·실행하고 있다. 와인, 음식, 에펠탑은 프랑스의 국가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3대 요소이다. 음식의 역사에서 볼 때, 사실 프랑스는 중세시대부터 포도농장으로 먹고 살았던 나라이고, 계몽기 시대부터 ‘미식’을 국가 브랜드로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스페인도 관광객들이 먹거리에 지출하는 소비액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스페인 특유의 해산물 중심의 음식을 적극 개발하고 국가에서 많은 홍보를 하고 있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의 경우 관광지출의 30%를 음식이 차지함으로써 음식이 관광산업의 중추역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에서 마침내 미식여행상품을 개발해서 관광의 전략 자체를 음식에 비중에 두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 내륙지방은 ‘고기 중심’ 단순한 ‘특미’전략 이고, 바다와 가까운 지역은 생선 및 해산물 중심의 화려한 ‘별미’ 전략으로 대별하여 차별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미식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프랑스와 스페인과는 좀 다르다. 이탈리아는 각 지역에 맞는 ‘local food’를 관광의 보조 동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이탈리아가 바로 ‘slow food’운동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음식재료로 그 지역에서만의 독특한 요리방법으로 조리되는 음식을 적극 홍보하여 관광산업에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략 또한 미식전략에 못지않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경주는 철저하게 역사문화관광도시이다. 이러한 경주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면서, 침체된 경주관광 산업에 새로운 동인을 공급할 수 있는 ‘경주 음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 ‘경주음식’은 솜씨 좋은 요리사의 손에서 탄생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련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치열한 토론, 철저한 고증, 합리적 검증을 거친 후 ‘Brand Kyoungju’ 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초등학생 때의 일로 기억한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거나 센 바람이 불면 과수원에는 낙과가 무척 많다. 리어카에 주워 모은 풋사과를 가득 싣고 와 파는 사람이 있었다. 맛이 채 들기 전이어서 너무나 시고 떫은맛이었다. 하지만 항시 배가 고프던 시절이라 10원을 내면 10개도 더 주던 그 사과에 눈이 꽂혔다. 허겁지겁 깎지 않은 채 먹었다. 그런데 그 사과에는 농약이 잔뜩 묻어있었다. 먹으면서 조금씩 이상한 냄새에 신경이 쓰였다. 그럼에도 계속 먹었다. 목 안이 화끈거리며 타들어가던 느낌이 지금도 선연하다. 물론 병원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으나 당시 연탄을 난방의 주재료로 한 탓에 연탄의 연소 시 나는 일산화탄소가 째진 방 밑을 타고 들어와 중독되는 사고가 빈발했다. 거기에 딱 걸렸다. 일어나서 걸음을 옮기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쓰러졌다. 이때도 동치미 한 사발 마신 것 외에는 약 한 번 먹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신통하게 생각되는 몇 가지 일들이 더 있다. 나는 어째서 살아남았을까? 그런 정도의 일은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여 혼자서 충분히 극복해내었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가진 신체적 조건이 우연히 남들보다 바교적 나아서 농약이나 연탄가스 중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고, 조금 허약했더라면 죽을 수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를 거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쓰러진다. 빈곤으로 약을 제대로 복용을 못하거나 병원에 갈 수 없어서 혹은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살아남은 자는 여기까지 함께 오지 못한 이들을 향하여, 그들이 가진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니? 나처럼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의지를 가지지 못했니? 더욱이 가난한 가정에서 쓴 맛을 보며 자란 이가 좋은 머리를 타고 나서 명문학교를 나와 또 번쩍이는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심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에서도 자신이 겪어야 했던 질곡과 난관을 기억해내며,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그 시선은 그가 가져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는다. 이렇게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 사람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문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조카인 메어리 트럼프가 최근 ‘넘치면서도 더 욕심을 내는(Too Much and Never Enough)' 이라는 책을 내어, 책 속에 트럼프 가문의 일화들을 소개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부는 독일 이민자로 파란만장하게 밑바닥 인생을 기었다. 그러나 그 가문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켰다. 하지만 가문에 진하게 밴 자기보다 열등한 자에 대한 무시, 경쟁에서 이겨 가진 것을 더 불리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분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내려왔다. 그래서 ’넘치면서도 더 욕심을 내는 ‘책 제목은 그 가문의 가풍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성차별주의자(sexist)이자 인종차별주의자(racist)로 길러졌고, 그 젊은 시절의 트럼프 기질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 메어리의 설명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그들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무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나라를 경영할 정치지도자는 아무래도 과거에 온갖 신산(辛酸)을 다 맛보며 자신의 비참하고 고달픈 처지에 때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 이가 적합하다고 본다. 그런 이라야 살아남은 자로서 가지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사회적 통합을 잘 실현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외관에 너무 속지는 말자. 트럼프 같은 자들이 간혹 섞여 있다. 2022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신 평] 서울대법대 졸, 미국·일본·중국의 각 대학에서 연구, 서울 등 각지 법관 역임, 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 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현 변호사,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중국 인민대 객좌교수.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가운데 경주 출신의 회재 이언적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다시금 옥산서원을 찾아 그 자취를 더듬지만, 아쉽게도 만년에 사화에 희생되어 머나먼 강계로 유배되어 생을 마치면서 실상 외형적으로는 고향 경주에 회재학(晦齋學)을 오롯이 전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내면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는 많은 유자(儒子)에게 계승되고 있다. 회재의 동생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1494~1553)은 벼슬을 마다하고 실천적 학문을 행하며 노모를 봉양하였고, 윤원형 일파에 몰려 유배된 형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지어 규탄하였다. 가문을 유지하기에 애쓴 그의 노력에 힘입어 후손들이 뜻을 모아 농재선생과 그의 부친 찬성공(贊成公) 이번(李蕃,1463~1500)을 모신 세덕사(世德祠) 창건으로 이어진다. 문원공 회재선생 연보(年譜)에 의하면, “이번은 젊어서부터 선비로 이름이 있었다. 일찍이 본도(本道)의 하과(夏課)에서 수석을 차지하였는데, 성종께서 시부(詩賦)를 아름답게 여겨 불러서 만나 보고 옷과 물건들을 하사하였고, 성균관에 머물면서 공부하게 하였다. 뒤에 향리로 돌아가 날마다 후진들을 가르치며 지냈다.”며 간략하게 기술한다. 매산(梅山) 류후조(柳厚祚,1798~1876)가 지은 농재의 시장(諡狀)에 그의 행적이 상세히 들어있다. 1778년 건립된 세덕사는 현재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마을 용계정(龍溪亭:사의당) 뒷편에 있었다. 덕동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인연이 닿았고, 훗날 양동마을 농재의 현손이자 향단(香壇) 이의주(李宜澍,1566~1637)의 손자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1621~1688)이 농포의 손녀(부친 鄭大榮)와 혼인하며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며, 여강이씨 집성촌을 이뤘다. 농포의 별장으로 사용된 용계정은 정조 이후에 세덕사의 부속 건물인 강당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연연루(淵淵樓)로 불렸으며, 회재학의 연원은 부친 이번으로부터 가학(家學)의 연원이 시작된 것을 기리기 위해 물이 모이는 못 ‘연연(淵淵)’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겼다, 전주이씨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은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과 깊은 교유가 있었고, 세덕사 건립과 문루(門樓)의 내력까지 공유하게 된다.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은 설남(雪南) 이정익(李鼎翊,1734~1793)의 행장에서 “일찍이 9대조 찬성공과 작은 할아버지 농재공 두 분을 모시는 세덕사를 덕연마을에 세울 것을 의논하였고, 절의를 강론하여 결정해 영구히 따르고 행할 규범으로 삼았다(『耐軒集』卷6,「行狀·王考成均生員雪南府君家狀」, 嘗議建德淵世德祠 爲九代祖贊成公 叔祖聾齋公兩世腏食之所 而講定儀節 爲永久遵行之規).”며 세덕사 건립의 동조인물과 과정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향정(二香亭) 이범중(李範中,1708~1783)이 세덕사상량문을,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덕연별사 봉안문 축문(德淵別祠奉安文 代本孫作)을 지어 기쁨을 나누었다. 1789년에 지어진 「연연루기(淵淵樓記)」는 이정응(李鼎凝,1743~1796)이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의 편지를 들고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1719~1791)에게 부탁한 것으로 농재선생의 행실에 대한 깊은 감명이 함축되어 있다. 연연루기 - 간옹 이헌경 물은 한결같아서, 흐르면 시내가 되고, 모이면 못이 된다. 그 아래로 베풀어지는 공로는 못이 진실로 시내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모이지 않으면 그 흐름이 어찌 길겠는가? 따라서 시내는 반드시 못을 바탕으로 하니 못의 공로가 적지 않다. 경주 이정응이 종숙 함창공(咸昌公) 이헌락의 편지를 가지고 나를 찾아와 아뢰며 ‘연연루’ 기문을 청하였다. 나는 “연연(淵淵)의 뜻이 무엇인가?” 물으니, “선조 찬성공 이번(李蕃)은 회재 선생의 부친으로, 찬성공은 학문과 문장으로써 가문을 창도하였으며, 회재의 동생 농재 지평공(持平公) 역시 지극한 효우(孝友)의 행실로써 그 아름다운 자취를 이었습니다. 후손들이 추모경앙(追慕景仰)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줄어들지 않았기에, 이에 덕연(德淵)마을에 세덕사(世德祠)를 세워 향사지내고, 또 사당 앞에 누를 세우고 ‘연연루’라 편액하였으니, ‘연연’이라고 한 것은 가학의 연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하였다. 회재선생이 끊겼던 학문을 창도 표명하여 동방유학의 종사가 되었고, 퇴계선생이 그를 위해 “선생의 가문에 전해오는 학문[家學]은 진실로 그 유래가 있으니, 어찌 학문의 연원이 가정에 있거늘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라 찬하였다. 아! 찬성공 이번은 이미 못이 되었고, 또 반듯한 아우가 그 연원을 접하였다. 그리고 회재는 그 흐름을 인도하여 더욱 크게 되었으니, 이같이 성대한 기운을 막을 수 없도다. 우리들은 후손들이 그 흐름을 따르고 그 연원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연연루’라 이름한다.
‘지키는 이 없는 개찰구 열린 문으로 마음대로 떠나거나 돌아오면 그만인 간이역에서 모처럼 출렁이며 다가오는 느린 열차에 흥건한 강물 소리를 듣는다’-‘사방역’ 중에서, 백점례. 경주의 철도는 1900년대 초 중앙선 개설로 최초 개통됐습니다. 이후 동해남부선이 개설되었고요. 경주의 철도 역사는 어언 100년의 시간성을 지나 현재는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의 복선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에 따라 기존의 열차부지는 2021년 이후 역이 신설 및 이설됨에 따라 기존 철로는 폐선이 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안강읍 사방리 576-3,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청령역과 안강역 사이에 있는 ‘사방역’은 국철 시절부터 사용된 흑백의 역명판이 여전했습니다. 사방역은 찾는 이들에게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울타리로 심은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뤄 역사를 완전히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입구를 쉽게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기차선로 쪽으로 자세히 살펴보아야 간신히 역으로 오르는 계단과 진입로가 보일 정도입니다. 최근에 찾은 사방역 대합실의 출입문과 창들은 모두 노란색 판자로 다 막아 버렸습니다. 이 공간이 악용될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서랍니다. 봉합돼버린 사방역은 더욱 말이 없습니다. 나무와 넝쿨이 우거진 사방역 구내, 까슬까슬 녹슬은 손잡이의 간이의자는 역 승강장에서 승객의 체취를 미련하게 기다리는 걸까요. 간이 의자는 아직도 짝사랑 중인 듯합니다. 색이 바랜 초록색 기와지붕과 벽돌로 쌓아올린 사방역사는 독특한 양식으로 다른 역사에 비해 작은 듯 아담합니다. 노구를 이끌고 버틴지 102년. 이제는 찾아오는 이도 없지만 간간이 사방역의 안부를 살피러 찾는 이들의 발길도 귀찮아졌을까요? 말이 없는 역사는 많이도 병약해져 있습니다. 사방역은 1918년 11월 협궤 열차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습니다. 사방역이라 명명하고 역사 창설 당시에는 화물, 원목수송, 수화물 및 여객수송을 했으나 점차적으로 그 이용이 감소해 1994년 1월 20일 보통역에서 역원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습니다. 2004년 사방역 열차시각표를 보면 하루 10회의 통일호가 정차했으나 2007년 6월1일 여객영업중지(전 열차 무정차 통과역)로 폐역이 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점차 어둠으로 함몰되는 역내 승강장에서 한참을 서성입니다. 앉으면 풀썩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낡은 플라스틱 간이 의자는 저무는 사방역의 상징 같습니다. 딸랑딸랑... 기관차의 진입을 미리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역구내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여객기관차의 따뜻한 불빛의 안내를 받고 싶어졌습니다. 비어있는 한 자리에 불쑥 편승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후일 다시 찾을거라 다짐하며 사방역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
오페라를 보다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성악가들은 왜 어색하게도 노래하듯 대사를 칠까? 그냥 말로 하지” 여기서 노래하듯 대사를 치는 것을 레치타티보(recitativo)라고 한다. 아리아(aria)가 주인공의 현재 심정을 격정적으로 표현한다면, 레치타티보는 노래하듯 말하며 사건을 전개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페라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페라와 뮤지컬이 다른 점도 레치타티보로 설명된다. 오페라는 아리아와 아리아 사이를 레치타티보가 메워주고, 뮤지컬은 넘버와 넘버 사이를 대사가 연결해준다. 레치타티보는 소유(시스타)와 정기고의 히트곡 ‘썸’의 가사처럼 노래인 듯 노래 아닌 노래 같은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뚜렷한 특징이다. 특히 벨칸토 오페라에서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대조가 명확하다. 하지만 바그너의 후기 오페라에 와서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를 보면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중간쯤 되는 노래가 주구장창 이어진다. 이것을 아리오소(arioso)하고 한다. 워낙 이탈리아 오페라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으로도 오페라를 볼 때마다 레치타티보 특유의 어색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럼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또 다른 차이는 뭘까? 아리아는 콘서트에서 따로 불리기도 한다.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 속 아리아는 콘서트홀에서도 대접받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콘서트 무대에서 레치타티보를 부르는 가수는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 가요에도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로 구성된 노래가 있다. 하춘화와 고봉산이 부른 ‘잘했군, 잘했어’이다. 영감! 왜 불러~(→레치타티보) 뒤뜰에 뛰어 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아리아) 보았지~ 어쨌소?(→레치타티보)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아리아)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이중창)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아리아)
경주 도심의 유적지를 둘러보고는 경주를 다 보았다고 하는 이들이 흔하다. 그들은 경주의 바다를 모르는 이들이다. 한 번 찾으면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는 바다. 수 천년의 비경을 감춘 채 지금까지 말없이 경주를 구성하며 어루만지고 있는 바다..., 그 천혜의 동해바다가 지척에 있다. 경주 시내서 40분만 달리면 동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것. 특히 감포에서 양남면으로 이어지는 바다 100리 길에 위치한 해변은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아기자기한 해안의 풍경들은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처연하다. 해안선을 따라가면 어느 곳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고 날씨에 따라 다양한 질감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위력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몫으로,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해 뜻밖의 눈호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몰아치는대로, 짙푸른 하늘과 고요한 파도의 파문은 또한 그대로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양남면 바닷가다. 특히 관성바닷가 해안선의 유려함은 눈물을 쏙 빼놓을만큼 아름답다. 하물며 아직 알려지지도 않아 그 절경이 감춰져있어 더욱 보배롭고 귀하다. 또 양남 주상절리의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하서해안공원과 솔숲과 모래밭, 자갈이 공존하는 관성 해변,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경주 바다의 백미다. 지난 10일은 태풍 ‘장미’가 상륙하던 날이었다. 짙은 해무는 해안에 서 있는 바위를 휘휘 감쌌고 격랑은 바위에 세차게 부딪히곤 흩어지길 반복했다. 관광객들은 잠시 바다를 떠났지만 얼굴엔 시원스런 웃음이 가득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양남면 해변의 관성리 해안선 절경과 수렴항의 군함바위 일대, 솔밭이 해안선을 끼고 있는 하서리, 읍천항까지 온몸으로 비바람을 즐기며 스케치 해보았다. 경주의 여름 바다, 그곳은 아직 시원(始原)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다. 해 저물면 하나 둘씩 따스한 감귤색 불빛이 켜지기 시작할테고..., -경주 동해안 최남단, 울산과 경계 이루는 관성 해안... 숨은 절경과 자태 꼭꼭 숨기고 있어 시원하게 트인 바다가 와락 안긴다. 바로 울산과 경계를 이루는 지경(地境), 바로 경주의 관문인 관성(觀星)리다. 관성리는 옛날 시계가 없을 때 별을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첨성대 같은 것이 있었다하여 관성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몰린 관성 해수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성솔밭해변은 울산과 인접한 곳에 자리한 해변으로 송림과 해안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검푸른 바위들이 해안선을 따라 자연스레 흩어져 있는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수줍은 듯 맨 얼굴을 내민다. 관성 바닷가 갈매기들은 세찬 비바람에 지친 탓인지, 거친 바람의 공기 저항 때문인지 쉬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태고적의 크고 작은 바위들을 완전히 가릴만큼 짙은 해무는 장관을 연출했다. 격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파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가운데 한 쌍의 연인들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이 관성 해안은 해안선이 유려하다. 그럼에도 경주시민들에게 숨은 절경과 자태를 꼭꼭 숨기고 있다. 이곳 해변가에는 두 곳의 펜션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장맛비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해변의 풍경을 즐기는 이들로 북적였다. -수렴항, 일명 ‘군함바위’ 유명... “갈치, 광어, 낙지, 문어가 엄청났어. 이곳 사람들은 고기 잡아 배 채웠어” 관성에 이어지는 곳에 수려한 풍광의 수렴항이 있다. ‘수렴(水念)’은 임진왜란 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가졌던 곳이라 수영포리라 했는데 1914년에 행정리명을 수렴리라 했다고 한다. 겨우 서 너 사람이 탈 정도의 작은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있는 수렴항 풍경은 작아서 더욱 정겹다. 섬 같은 검은 바위들은 항구를 에워싸고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횟집이 즐비한 수렴항 인근에는 바로 군함바위가 눈에 띤다. 항구 맞은편 방파제 위로 올라가본다. 거기, 군함바위라 불리는 바위들은 소나무를 머리에 이고 군락을 이룬다. 군함바위는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바위들로 군함처럼 바위가 형성되어있다고 해서 군함바위라고 불린단다. 수렴항은 관성해변과 연접해 있으며 경치가 빼어나고 특히 여름철 피서객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지난해, 수렴항 일대 개발사업을 추진해 해양관광객을 늘리는 사업이 추진됐다. 해양레저 및 수산특수사업에 어항 기반시설과 문화체험시설 등을 건설해 수렴항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수렴항 어촌뉴딜 300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8대조부터 이곳 수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김한호(75) 어르신과 이웃인 김형일(79) 어르신이 항구 입구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수렴 포구예요. 울산 등 이 인근서는 어업이 가장 활성된 곳이었어요. 제일이었지요. 지독한 보리고개 시절에 울산의 온산 사람들이 이곳 수렴에 많이 와서 살았어요. 어종이 매우 풍부했는데 갈치, 광어, 낙지, 문어 등 엄청났어. 이곳 사람들은 생선을 쌀로 바꿔 연명할 정도였어. 고기 잡아 배 채우던 시절이었지. 일제강점기 일인들이 멸치 저장을 ‘축간(항구)’에 하곤 했다는데, 어릴적 고디 잡으려고 항구 바다에 잠수를 하다보면 수족관 같은 어항으로 보이는 시멘트 장치가 있었어요. 아직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예전엔 적산가옥도 있었어요. 지금의 용명횟집, 수궁횟집 자리에 그런 가옥들이 있었어요” “이 동네는 경주 김씨가 많이 살아요.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고 살았어요. 우리도 횟집을 30년간 운영해 애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했어요. 아직도 우린 고기 잡아요. 저기 우리 배도 있어. ‘한진호’, ‘흥일호’가 우리 배요. 놀기 삼아 바다 나가서 장어도 잡고 잘개이(성대), 가자미 등을 잡아요. 재수 좋으면 20~30만원 벌지. 하하” 1983년 월성해안 침투 공비 격멸을 기념하는 전적비가 수렴2리 해안가에 세워져있다. 40여 년 전의 이곳을 상상하니 격세지감이었다. -하서리 솔숲엔 200년 넘는 해송이 숲 이루고 있어 휴식처로 각광 수렴항에 이어 길은 다시 하서리에 이른다. 하서리 솔밭이 나타나고 솔밭을 마주한 곳에는 하서해안공원이 해안선을 따라 조성돼있었는데 조형물들과 작은 정자 사이로 6.25 참전 및 월남전 참전 용사의 충정어린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양비가 서 있다. 솔밭에는 야영장이 마련돼 있고 피서객들이 머물고 있었다. 올망졸망 바위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하서 1리는 전통시장이 열리는 ‘장터마을’이라고도 한다. 하서 1리와 하서 3리 경계지점 해변에 ‘하서해안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주위에는 이 지역의 명소인 하서 솔밭이 있다. 이 솔숲에는 200년이 넘는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어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과 하서 송림공원을 연결하는 산책로가 건설되면서 풍부한 먹거리와 해안선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양남면 읍천항과 하서항 잇는 1.7km ‘파도소리길’...길의 하이라이트 부채꼴 주상절리 수렴항에서 다시 이어지는 주상절리군. 양남 주상절리를 곁에 두고 거닐 수 있도록 양남면 읍천항과 하서항을 잇는 1.7km ‘파도소리길’은 주상절리를 파도소리와 함께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해안 트레킹 코스다. 복잡한 일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길은 부채꼴 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536호)를 만날 수 있는 해파랑길 경주 구간 중 백미다. 길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허연 포말이 잘게 검은 바위를 어루만지고는 사라진다. 이 검은 갯바위는 2012년 천연기념물(536호)로 지정되고 2017년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주상절리군이다. 오랫동안 해안초소가 자리 잡고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지역인데,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철조망을 걷어내고 2011년 일반에 개방됐다. 주상절리 주변에는 이곳의 유명세와 궤를 함께하듯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 펜션들이 에워싸고 있다. 주상절리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들어선 이들은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2017년엔 주상절리의 신비로운 모습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4층 규모의 조망 타워가 우뚝 섰다.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한 조망타워에서는 주상절리와 함께 동해안 해양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타워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파도소리길을 들른다면 읍천항 벽화마을을 지나칠 수 없다. 길은 다시 읍천항으로 이어진다. 읍천항은 파도소리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읍천항 마을에선 집집마다 담벼락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읍천항의 담벼락은 여전히 고달프고 아름다웠다. 거친 바다는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투박한 위로일수도 있고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해방감을 맛보게도 한다. 경주의 바다로 떠나 보라. 위대한 자연이 내주는 넉넉한 품에 ‘와락’ 안겨 보기를...,
장맛비 질척이던 여름철이 수그러지기도 전에 입추(立秋)가 지나갔다. 범람한 물 사태로 피해를 입은 전국이 물난리 복구로 어수선하다. 세계가 코로나19로 앓는 몸살기 쉬이 가라앉지 않는 시절이다. ‘장미’태풍이 몰고 간 장마전선이 끝을 보여, 시커먼 비구름 벗긴 하늘이 쾌청하다. 두문불출 마음의 문을 닫고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 엇박자 놓는 일상을 단도리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마스크 낀 걸음들이 조심스럽다. 매미소리 자지러진 해 긴 여름날 무작정 길나서는 여유로움이 피서가 된다. 낡고 닳은 곳을 새 단장한 황남동 옛길 느릿느릿 오래된 골목을 들여다본다. 역병도 기어이 물리칠 혈기 왕성한 청춘의 발길들 빼곡하다. 불타는 태양도 발맞추는 청춘남녀들의 젊은 기백이 꿈으로 뭉친 ‘황리단(皇理團)길’이다. 주소지의 공식 명칭은 포석로, 처음 이 길을 지나던 때는 웨슬레유치원 시절이다. 어린 날 소달구지 타고 포석 살던 큰고모 댁 가든 길 어렴풋이 겹친다. 경주시황남동 포석로 일대를 일컫는 큰길을 중심으로 양옆 골목길 전체를 일컫는다. 골목 구석구석 멋지게 탈바꿈한 변화에 맞게 트렌디한 별칭 ‘황리단길’이다. 경주시가 고풍스런 한옥마을 조성사업에 들어가면서, 기본정비계획과 현황조사를 거친 2012년 말부터 관광객들의 나들이가 시작됐다. 예스러움 접목시킨 전통가옥을 잇댄 상가들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당당한 몫을 취하고 있다. 황리단길은 천년을 새롭게 돋을새김 하는 소통과 화합의 살아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한 핫 플레이스다. 역사를 품은 도시에 또 하나 볼거리, 먹거리, 한옥스테이, 자전거대여, 의상대여 입고 즐기는 경주관광 필수코스로 확 뜨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육부 중 황남동 지명의 유래는 알천 양산촌에 속한다. 이씨 성을 가진 집성촌으로 전한다. 고려 땐 황촌이라 불리었는데 임금이 살던 마을을 뜻한다. 황(皇)씨 무덤이라 불린 신라고분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황남동이라 칭했다. 〖경주풍물지리지(慶州風物地理誌)〗 ⦾조선시대 경주6방(坊)의 하나로 황남방(皇南坊)이라 부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황남, 쪽샘, 앞중리, 뒷중리, 중리, 선돌백이, 놋전, 남천내, 노동 일부 등의 자연부락을 통틀어 부내면(府內面) 황남리라 고쳐 부름. ⦾1955년 시제(市制) 실시에 의하여 법정동인 황남동으로 부름. ⦾1973년 법정동인 황남동을 행정동인 황남동으로 운영. 작고한 김기문시인 ‘글밭’ 출판사에서 1991년 편찬한 기록이다. 타박타박 느린 걸음으로 훑어가는 황리단길 골목어귀에 황혼이 얹힌다. 견디며 버텨 온 삶의 흔적들이 질박하고 구성진 노래로 흘러든다. 황남떡집, 구,황남목욕탕 골목 선돌(비석)배기길로 들어선다. 고려시대 효자 손시양 정려비각(孫時楊 旌閭碑閣) 앞이다. 오랜 세월 효의 사상을 고취하며 마을을 지키던 유서 깊은 비석이다. 고려 명종 12년(1182)에 세웠으며 높이 2m의 비석으로 보물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모가 돌아가자 각 3년씩 묘소에 움막을 지어놓고 묘를 지켰다. 당시 유수(留守)가 왕에게 아뢰어 집에 정표(旌表)를 내리니 지금의 정려비다. 후면에 5행 130자로 효행 내용과 경위가 새겨져 있다. 노천에 서 있던 것을 1977년 기단을 설치하고 보호 각을 건립하였다. 낯익은 듯 낯설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화들짝 추억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강산이 두껍게 변한 세월, 친구 옥이가 퍼뜩 스친 것이다. 홀쭉한 골목길 옥이친구 살던 기와집, 대충 위치만 가물거릴 뿐 꼭 집어지진 않는다. 늘씬한 키에 미모의 유순한 친구 옥이 덕분에, 내성적이고 수줍음 타던 청춘의 그 한 때가 덩달아 아름다웠던 것이다. 도시 전체가 수학여행단,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젊은 청춘들이 딱히 기댈 시설은 별로 없었다. 천년유적지는 학창시절 소풍으로 때웠기에 특별히 젊음을 충전시킬 문화공간에 목말랐던 터다. 70년 중후반 음악다실은 유일하게 청춘의 낭만이 흐르던 장소였다. 왕궁, 본전, 사계절 등 음악다실에서 우정도 여물렸던 것 같다. 문화의 갈증을 음악으로 해소하던 시절이다. D.J(Disc Jockey)에게 쪽지로 신청해서 듣던 음악, 하루라도 멈추면 탈이 날 것 같은 청춘들이었다. 그 날도 단짝 친구들 서울서 온 가수 권태수 남궁옥분이 출연하는 통기타 라이브공연에 들떠있었다. 미니스커트에 긴 통굽부츠로 멋을 낸 우리들은 황남동 옥이내 집 골목어귀 손효자비 앞에서 기다렸다. 옥이 큰오빠는 목수였다. 잘 지은 한옥에 부모님과 한 집에 거처하는 대가족이었다. 그 날은 제삿날이라 음식 장만하는데 올케언니 거들어야하는 눈치를 봐야했다 약속된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가슴 태우다 용케도 빠져나온 옥이친구, 추억으로 확 닿는다. 추억이 뛰어나오는 골목길, 전봇대 가로등 희미하던 손효자비 친구집 외진동네가 사랑과 젊음의 활기가 생동하는 번화가로 훤하게 치장돼 있다. 도전하는 젊음의 꿈을 부풀리며 청춘의 열정 거침없이 쏟는 사업장들이 새롭게 들어선다. 도시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용솟음하는 희망을 읽기에 정감어린 황남동이다. 좁고 비뚤한 골목길을 만지며 노는 자잘한 삶의 여정이 여행의 색다른 묘미가 된다. 오래되어 정겹고 낯익은 풍경들을 현대감각으로 덧댄 보석 같은 ‘황리단길’이다.
흔히 ‘선비타입’이라고 하면 얌전히 앉아서 글공부 하는 센님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판, 조선시대 선비는 육례(六禮)를 알아야 선비대접을 받았다고 전한다. 육례는 예(禮), 서(書), 사(射), 어(御), 악(樂), 수(數)를 말한다. 각종 행사나 의식에서 예법을 아는 것은 유교의 근본이고 글을 쓰고 닦는 것 역시 우리가 아는 선비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다소 의외다. 사는 활쏘기, 어는 말 타기, 악은 노래와 춤, 수는 주역을 능히 할 수 있어 인생의 수를 읽을 줄 아는 것을 일컫는다. 평소 철인운동으로 페이스 북을 달구어 오던 정연주 씨가 지난달 29일부터 국궁에 입문하는가 싶더니 이달 10일에는 집궁례를 마쳤다며 페이스북을 활쏘기로 장식했다. 집궁례란 활쏘기에 입문한 사람이 사범님으로부터 배운 실력을 검증 받은 례다. 집궁례를 마쳤으니 정연주씨는 바야흐로 국궁의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선비의 덕목 중 하나를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로도 보인다. 짱짱한 철인운동가가 잡은 활은 얼마나 강한 활일까 생각하는 자체로 공연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경주 황성공원에는 ‘호림정(虎林亭)’이라는 정자를 겸한 건물이 있어 이곳이 경주 국궁동호인들의 산실로 여겨져 왔다. 경주 호림정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궁인들에게는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선비정신도 중요하지만 오랜 옛날부터 활을 중시해온 나라가 우리나라고 특히 경주는 신라 화랑도의 국혼이 어린 곳인 만큼 우리나라 국궁 활쏘기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경주 호림정이 가지는 의미는 어느 지방 국궁 활터보다 크다. 경주시는 해마다 ‘경주시장기 전국 궁도대회’를 호림정에서 열고 있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전국에서 꽤 많은 궁도인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인정받고 있으며 2019년 10월에 제 11회 대회를 열어 바야흐로 대회의 영속성을 확보한 편이다. 기왕이면 전통 활의 범위를 국제화시켜 중국이나 일본, 기타 다른 나라의 전통 활을 초대해 ‘세계 전통 활 겨루기 대회’ 같은 것을 열어보면 어떨까? 신라의 화랑도와 조선 선비의 기개를 세계에 떨쳐 보이며 또 다른 경주 마케팅을 해 볼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경주 ‘황남빵’, 속초 ‘단풍빵’, 강릉 ‘커피빵’, 천안 ‘호두빵’ 등 각 도시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빵과 명과가 있다. 그러나 일반 빵을 팔면서도 나름의 질과 맛 노하우, 마케팅으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 있으니 춘천의 유동부 치아바타 빵집이 그곳이다. 지난 8월 7일 춘천의 유동부 치아바타 빵집을 방문한 시간은 오후 4시 경, 이 집 빵은 오호 3시에 판매를 시작해 6시까지만 판매한다는 정보를 미리 얻었기에 넉넉한 여유를 두고 빵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미 빵은 판매대에서 3분의 2 넘게 사라졌고 기자 앞을 6명의 고객이 빵을 든 채 줄 서 있는 진풍경과 맞닥뜨렸다. 오후 6시까지 판매하지만 보통은 5시 넘어가면 빵을 다 판매하고 문을 닫아버린다는 인터넷 정보들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빵맛이 하도 좋아 30분 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빵이 다 팔리고 없었다. 방문 당일은 며칠간 비 온 뒤고 특히 그날은 춘천에서 ‘인공수초’ 건으로 대형 재난이 발생할 만큼 큰 비가 온 뒤여서 그나마 고객들이 평소의 절반 이상 감소한 날이었다. 이처럼 유동부 치아바타 빵이 인기 있는 비결은 재료의 차별성과 숙성의 진득함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건강하던 아들이 갑자기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좋아하던 빵을 먹은 아들이 온몸을 긁으며 괴로워했습니다. 더 이상 아들이 먹지 못하는 빵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유동부 대표의 말에서 보듯 이 빵은 4무 즉 무설탕, 무버터, 무달걀, 무우유를 고집했고 유기농 밀과 소금, 물로만 천연발효시키고 저온에서 오래 숙성시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그래서인지 이 빵은 맛이 매우 담백하고 곡물 특유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으며 씹는 식감이 쫄깃한 특징이 있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 말이며 영어식으로는 사람이 신는 ‘슬리퍼’를 뜻한다. 빵모양이 슬리퍼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유동부 빵집의 대표적인 빵이며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전통적인 ‘4무 바게트 빵’의 이름이기도 하다. 빵만 만들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일터를 만든다는 의미도 유동부 빵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유동부 빵의 직원들은 일상적인 시간에 출퇴근하며 오전에 빵을 굽고 오후에 판매하는 것에 익숙하다. 유명 브랜드 빵처럼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까지 빵 만드는 일이 없다는 것.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상생의 정신이 강조되는 세상임을 유동부 빵집이 먼저 알아차렸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숙된 고객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마케팅이라는 것이 현란한 빵맛과 요란한 광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느리지만 바르게, 함께 가는 시대정신을 구현함으로써 더 효과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동부 빵집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객들과 함께 기꺼이 사진 찍기를 마다하지 않는 유동부 대표의 선한 인상도 빵집을 유명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듯하다. 기자의 요청에 일부러 좋은 포인트로 가서 환하게 미소지어주는 유동부 대표가 아직도 뚜렷이 기억된다. 이 빵을 인터넷 주문하면 재고가 생기는 날까지 무려 15주를 기다려야 하지만 기꺼이 기다릴 작심도 그래서 해본다.
시 읽는 문화 경주지회(회장 심문희)는 ‘제22회 행복나눔 경주아카데미 낭송회를 지난달 28일 6시 라플레르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시 읽는 문화모임은 2016년 봄 시낭송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6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순수 학습동아리로 시작하게 됐으며 외래교수(김윤아 교수)를 초빙해 현재까지 매월 2회 수업이 이어져 오고 있다. 시 읽는 문화 경주지회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은 회원들의 단합 겸 실력을 자랑하고 서로 조언을 하는 발표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학습기간 중 수상 회원을 보면 심문희(청마시낭송대회,전국가사시낭송대회 대상), 장정옥(개천예술제시낭송대회 대상), 류소희(향가시낭송대회 대상), 김수희(상춘곡시낭송대회 금상), 정민정(대한민국시낭송대회 우수상), 진혜인(이상화시낭송대회 우수상), 임영록(문경세재시낭송대회 동상), 이인숙(상화시낭송대회 입선) 등 전국대회에서 많게는 6개에서 3개정도를 받고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며 지역 행사에 재능기부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임영록 사회로 열린 이날 회원 시낭송은 심문희(경주남산-오세영 시), 김순례·이인숙·조서영(바다-유치환 시), 진혜인(천관녀-황명강 시), 김수희(바닷가에서-오세영 시), 박옥숙(별 헤는 밤-윤동주 시), 이상애(연과 바람-정완영 시), 김자경, 최경선(연가-정일근), 임영록·장정옥·정민정(석굴암 대불-유치환 시,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서정주 시), 박정숙(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정호승 시)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2020년 상반기 지도자1급 과정을 졸업한 4명(심문희·임영록·장정옥·정민정)은 9월 동국대 평생교육원에서 김윤아 교수가 개설하는 시낭송 자격증반 과정에 지도교수로 강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수업은 일반 수업 과정과 지도자 과정이 있다. 참가 낭송가들은 “우중의 시낭송 시간은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현재의 삶에 귀한 보물을 한아름 얻은 감사한 시간이 됐다” “함께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청중의 입장에서 봐야하고 빨래줄 같은 글을 받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심문희 회장은 “서로를 위해 거울이 되어주고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다. 하지만 자신다운 목소리로 시를 외우고 자기다운 맵시로 하는 것은 좋으나 연습부족이 드러났다”면서 “앞으로 지역의 문화향유기회를 자주 갖고 평범한 일상의 고마음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행사에 앞서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실천 등 코로나19 개인별 방역 수칙을 준수했다. 한편 오는 29일 해오름시낭송공연은 경주·포항·울산에 거주하는 시낭송가들이 모여 포항 일월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다움성폭력상담센터는 지난달 23일부터 경주시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양북지역아동센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시작으로 총 10개 기관의 지역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교육은 2020년 경주시양성평등기금사업으로 양성평등교육전문강사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된 8명의 강사들이 이달 28일까지 ‘성폭력 예방’을 주제로 진행한다. <사진>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경계선과 동의 그리고 성폭력을 알게 됐다. 1366에 전화한다. 아는 사람이라도 조심하고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등 성폭력 예방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엿 볼 수 있었다. 경주다움성폭력상담센터에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평등의 내면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모두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되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서로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의(허락)를 받아야 됨을 알게 한다. 또한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예방교육을 효율적·체계적으로 지원해 아이들의 실천의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기관들은 항상 교육에 관심을 준 경주시지역아동센터에 감사를 전하며 9월~10월 사이 2차 양성평등교육으로 ‘성(아동) 인권 과 디지털성폭력’을 주제로 실시할 예정이다. 경주다움성폭력상담센터는 성폭력, 성매매, 데이트폭력, 스토킹피해의 신고접수 및 상담, 관계 기관에 필요한 협조 및 지원 요청, 성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 및 교육 등을 활동하는 상담기관이다.
경주시장애인체육회는 지난달 31일 경주역 광장과 시내 일원에서 장애인생활체육서비스 홍보활동을 펼쳤다. <사진> 이날 홍보활동은 ‘장애인스포츠는 우리에게 또 다른 미래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생활체육의 중요성과 장애인체육회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 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경주시장애인체육회 노이조 상임부회장은 “이번 홍보활동을 통해 지역 장애인분들에게 장애인체육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많은 장애인분들이 체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시장애인체육회는 매년 전국 및 경상북도장애인체육대회 출전과 선수지원을 하고 있으며, 경주시장애인어울림대회 개최, 복지관·특수학교·특수학급·거주시설 등 장애인 체육지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찾아가는 생활체육서비스를 통해 생활체육을 처음 접하는 장애인과 생활체육활동을 원하는 장애인의 상담·현장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개별적 맞춤 프로그램과 동호회를 연결시켜 주는 등 장애인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지회장 노창수)는 경주시지원으로 지난 4월부터 한궁보드 28대를 경로당에 보급하고 있다. 2016년부터 산하경로당에 한궁을 지원해 4년에 걸쳐 226개 경로당에 지원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해왔다. 미지급 경로당의 우선지급을 원칙으로 코로나 종식이후 교육을 병행한다. 한궁은 양손운동을 통한 균형감각과 근력향상으로 낙상과 치매예방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고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운동으로 정신적 신체적 건강증진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되기를 기대한다. 스포츠 소외계층인 노인,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이 코로나19로 남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자제하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체육으로 한궁이 각광받고 있다. 1일 100회(좌50회, 우50회) 양손투구를 통해 두뇌 집중력과 팔의 유연성 및 근력을 키우고 신체의 좌우 평형성을 증진시킬 수 있어 노약자에게 적합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대회 시 노인의 투구거리는 2.5M이며 세대별, 계층별, 신체 상태에 따라 거리, 높이를 조절하여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2018년 지회장배 한궁대회를 개최해 매회 2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등 붐이 일어나고 있으나 한궁이 없는 400여개 경로당은 불만이 많이 생기고 지원을 요청하고 있어 예산확보를 통한 조속한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 노창수 지회장은 “건강과 위생은 실천이다”며 “위생방역 다음으로 건강관리를 잘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므로 어르신들께서 한궁활동을 운동과 재미삼아 자주 접하여 건강한 노후가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봉사하고 나누는 마음은 언제나 풍요롭고 행복하다. 멋지고 경복한 경로당이 되려면 회원들이 함께하고 도와주어야 가능하다. 사이클을 타는 건천 휴먼시아A경로당 이상출(77) 회장과 하루 종일 바쁘게 걸어 다니며 마을을 돌보는 백진수 이장을 경로당 운동실에서 만났다. #우리 경로당은 경로당 재개방이후 매일 7~8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경로당과 운동실은 그나마 우리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운동실을 이용하는 회원은 한정돼 있지만 땀을 흘리지는 않아도 매일 움직이고 운동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파트 내 경로당이라 관리실에서 바닥 등을 청소해주고 지회 소속 행복도우미가 수시로 방문해 관리 등을 도와주고 있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전에는 어르신들이 매일 함께 식사를 했으나 경로당 재개방 후에는 우선 가스부터 사용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혹시 국·찌개류를 조리해 드시게 되면 위생차원에서 문제가 될 것 같아 당분간 경로당 내에서는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지금은 무더위 쉼터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4주 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식사도 서서히 재개할 예정입니다. #어르신들의 만족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공동체라면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서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7월 25일 임원(6명)회의를 거쳐 오전 11부터 오후 4시까지 경로당을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지역은 코로나19 확진자도 없고 청정지역이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정부시책을 따르며 더 철저히 위생방역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을 체크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힘들다고 실천을 하지 않고 포기하는 회원들이 있어 설득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공동여가문화시설에 “그러면 오지 마라”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어 여러 번 이야기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화를 내게 되고 쉼 호흡도 자주하게 됩니다. 100세 시대 장수는 건강 혹은 복지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더욱더 부담이 됩니다. 이제 노인 스스로 위생관념을 갖고 4고(병고(病苦), 빈고(貧苦)·고독고(孤獨苦)·무위고(無爲苦)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르신은 움직임과 운동은 매우 중요 합니다 어르신들의 고정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습니다. 핑계 아닌 핑계도 늘어나고 경로당 내 활동을 하며 책임을 지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다툴 때도 있으며 때로는 오리발도 내밀지요.(하하) 우리 경로당은 운동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만들어 매일 7~8명이 다리 마사지부터 허리 털기까지 30분 정도 운동을 합니다. 움직이면 건강을 유지하기 때문에 병원 갈 일이 적어져 크게 보면 국가 재정에 이득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는 자식에게 도움을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경로당을 출입하면서도 최대한 많이 움직이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궂은 날씨나 비가 오면 만사가 귀찮아 밥도 먹기 싫다고 하실 때에는 그저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움직이고 운동해 건강하길 바라봅니다. #특별회원들을 존중해야 회원 배가운동도 가능합니다. 우리 경로당은 부녀회원들의 활동으로 행복이 넘쳤던 경로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찾아오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심이 사라지고 그저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단 우리 경로당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동네 젊은 사람들과의 연대가 원활해야 마을이 평화롭고 일을 해도 즐거우며 경로당 운영에도 도움이 되며 시간이 흘러 회원으로 영입할 때도 순조로울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향이 그리워 50년 만에 돌아오니 내 나이 일흔 일곱에 이르러 이젠 어디를 가도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경로당 총무, 부회장을 해오다 회장이 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경로당회장은 명예직도 아니고 봉사하는 역할이며 우리 동네 어르신들을 경로당으로 모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노인일자리 연계, 유익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8월 이후 출향인들이 중심이 되어 연재하는 ‘첨성대’ 필진이 새로워졌습니다. 첨성대는 경주와 우리시대 대한민국 혹은 세계를 바라보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특정한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공간입니다. 8월 이후 기존의 필진들 중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이사, 변성희 한국관광정보정책연구원 원장, 정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이 계속 집필하고 이분들과 함께 새로 다섯 분의 필진이 참여함을 알려드립니다. 새로 참여하시는 분들을 가나다순에 의해 다음과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박만호 : 탁월한 식견과 역사실력 서울에서 활동하다 경주로 돌아와 경주지역 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현곡면 연세의원 내과의원 원장. 중앙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가정의학과를 수료한 후 미국미네소타 의과대학과 동 대학 세인트존슨 병원에서 연수하고 귀국 후 신촌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연구강사, 한국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서울동서한방병원협진부장,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 한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주치의로 활동하며 다년간 중앙정계를 경험한 인물답게 탁월한 정치적 식견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통과 민족사관적 견해를 망라한 해박한 역사공부, 오랜 기간 스스로 채록하고 생활화 한 경주말 실력 등 경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만큼 경주문화발전에 미칠 다양한 조언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갑식 : 국제적인 인문적 경험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한국 음식 전문점인 Fashionfood21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밖에도 요시스시, 김치마마 등 브랜드도 운영 중이다. 영국 Oxford Brookes 대학에서 박사과정, 2017년에 정부 농림수산부가 주관하는 해외한식요리전문강사과정을 수료했다. 런던에서 Dinning-Eating out trend 분석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 전통음식 총연합회 영국 지회장, 재영외식업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약하며 음식을 통한 국제문화교류에 헌신하고 있다. 주간조선, 주간경향, 월간 현대문학 등에 장기간 음식관련 글을 써왔고 현재 월간 마이다스에 ‘인문학으로 본 유럽 음식문화’. 월간 음식과 사람에 ‘월드 트랜드’ 고정 칼럼리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선진음식문화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한국음식과 한국문화를 알려온 만큼 국제적인 시각에서 경주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견해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정병웅 : 한국관광학회의 수장 코로나 21로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만큼 누구보다 고민이 깊고 큰 제25대 한국관광학회회장이다. 순천향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코로나시대의 엄혹한 학회를 이끌어 가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정병웅 회장은 다양한 주제의 연구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관광현황을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왔으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경주 관광과 국가관광산업 발전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지난 7월에 본지가 보도한 한국관광학회와 한양대 관광연구소가 공동으로 설문 조사한 코로나 이후 한국관광산업의 변화 전망은 경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관광산업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련과 도전의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경주는 관광산업의 비중이 어느 도시보다 큰 만큼 학계를 대표하는 정 회장의 관점이 기대된다. #최병민 : 인사와 마케팅 전문가 오랜지그룹 총괄부사장 겸 오랜지 그룹 내 천년순수홍삼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학군(ROTC)장교 대위로 예편한 후 대우그룹에서 인사팀 차장, 인사컨설팅업체 이사, 동부그룹 인력개발팀장 등을 역임한 인사업무 관련 전문가이자 미스터피자 경영본부장과 대표이사를 역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기업이 취해야 할 근본적인 마인드와 리드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하고 조언하며 2018년 6월에 ‘인사잡설’이라는 책을 펴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병민 대표는 특히 요즘처럼 기업활동이 어렵고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기업을 반석에 올리고 젊은이들이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특화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근원적인 조언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재식 : 노후 관리의 전문가 스스로 ‘Go쟁이’라고 부르며 ‘놀고 쉬고 일하고’의 가치를 강조하며 노후의 생산적인 삶에 대한 글쓰기, 대학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퇴직 후의 전직 직함을 쓰는 것을 기피하지만 평생에 걸친 공직자 생활의 마무리를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마쳤으므로 부득이 그 직함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경력만큼 퇴직 연금관련 제반사항에 관해 누구보다 확고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퇴직 후 노후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편의 연금관련 책을 냈으며 2020년 3월 ‘제3기 인생혁명’을 펴내 퇴직 후 노년이 삶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지를 조언하고 있다. 노년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경주에 맞는 ‘은퇴 후 삶의 메카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2월 24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AMGA’가 내달 본격 가동될 ‘벨(Belle)Ⅱ’ 국제 거대실험에 사용된다는 기사가 각 신문 과학란을 장식했다. 벨Ⅱ실험은 물리학 표준모형을 넘어선 새로운 입자와 물리 현상을 찾기 위한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의 가속기 실험이다. KISTI가 개발한 AMGA는 여러 저장소에 분산돼 있는 실험데이터의 요약 정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로 소개되었고 특히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 컨소시엄 팀이 개발한 미들웨어 메타데이터 소프트웨어를 제치고 채택됐다며 대서특필 되었다. 이 기사에 황순욱 KISTI 국가슈퍼컴퓨팅센터 본부장이 나와 각 지면을 장식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던 지난 4월 초, 국내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코로나19 백신 등 신약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슈퍼컴퓨터가 사용된다는 것을 알렸고 한국형 슈퍼 컴퓨터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관리하는 슈퍼 컴퓨터 5호기 ‘누리온(Nurion)’을 대서특필했다. 누리온은 우리나라는 몰론 국제적인 신약개발회사들에 시뮬레이션을 통한 치료 후보물질을 제공하고 빅 데이터 산출을 통해 다양한 연구소와 대학, 산업전반에 놀라운 테이터를 제공함으로써 각종 연구분야를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것을 알려졌다. 이렇게 AMGA개발을 지휘하고 누리온을 관장함은 물론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산업의 최첨단에 서서 다양한 분야의 과학팀들과 함께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과학자가 경주출신의 황순욱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이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누리온은 세계 10위권에 들 만큼 매우 우수합니다. 다만 슈퍼컴퓨터를 생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생산하기보다는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를 확보해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답게 한 치의 더함도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황순욱 박사는 세계가 경쟁적으로 슈퍼컴퓨터 분야에 참여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일본 정도가 슈퍼컴퓨터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참고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공식 블로그에서 공개한 누리온의 연산성능은 25.7페타플롭스다. 1페타플롭스는 1초에 1000조 번의 연산처리가 가능한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보았을 때 누리온은 PC(개인용 컴퓨터) 2만대를 동시에 묶어 놓은 능력이고, 세계 70억 인구가 420년 동안 계산해야 할 연산을 1시간 만에 해 낼 수 있는 능력으로 알려졌다. “누리온은 과학기술 산업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 1차 국가초성능컴퓨팅 유성 기본계획에 따라 총 904억원을 투입해 구축한 국가 컴퓨터 시스템입니다” 명칭은 순우리말 ‘누리’와 전부라는 뜻의 ‘온’을 합성한 것으로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컴퓨터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누리온의 사용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지원분야가 우주기원과 물질 생성의 해명, 암세포 전이 과정에 대한 분석 등 인류가 미처 지켜보지 못했거나 지나치게 복잡해 해명하기 힘들었던 기초원천연구분야 및 초거대 문제해결에 가장 유효하게 사용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발생하고 있는 지진에 대한 데이터 수집, 올해 특히 심했던 홍수에 대한 빅데이터를 통한 대응전략 생성, 식량 생산성 향상 등 주요 사회 현안해결에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빅데이트 처리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요가 높고 엄청난 저장력을 바탕으로 한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컴퓨팅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 개인 연구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슈퍼컴퓨터는 세계 10위 권, 좋은 무기 있으니 세계 향해 멋진 전투 치러야!! 황순욱 박사의 설명을 들을수록 슈터 컴퓨터의 활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른다. 자폐증이나 우울증 같은 뇌질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통한 연구, 나노분자와 신물질 설계는 물론 고해상도 모델을 이용해 군사작전에도 활동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슈퍼컴퓨터는 국가 경쟁력의 척도이자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해 있다. 역시 KISTI공식 블로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 1호기 도입을 시작으로 지난 2008년 4호기까지 도입했다. 그동안 국산자동차 설계 제작, 액체로켓 엔진 시뮬레이션, 세계 최대 규모 우주진화 과정연구 등 산학연 연구개발에 활용했다. KISTI 분석 결과 4호기는 지난 2011년부터 1만 여명 이상의 연구자와 500여개 이상의 기업이 활용해 1천여 편 이상의 SCI논문(3대 과학저널 17편)을 등재했고 기업의 신제품 개발비용78%와 시간 61%절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누리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생산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앞에서 말한 대로 슈퍼컴퓨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만 대체적인 국제추세는 슈퍼컴퓨터 생산을 ‘경제적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사치품’쯤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과 맞추어 생산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겠지요” 황순욱 박사는 최근 언론의 조명을 받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대해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약물 2만 개를 분석해 어떤 것이 백신치료제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별했다고 소개한다. 다만 이런 약물은 동물실험과 임상실험 등 보다 엄중한 과정을 통해야 하므로 함부로 단정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순욱 박사는 슈퍼 컴퓨터 환경이 좋아진 만큼 이를 활용할 각방 면 연구진들이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어도 해당 분야 연구진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때문에 각계의 과학자들이나 산업현장의 연구자들이 슈퍼컴퓨터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활용하는 능력들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황순욱 박사는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2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 대학원 계산통계학과에서 전산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남가주대학교 전산과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동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는 일본국립정보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2006년 5월 귀국하며 KISTI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다. 2008년 2월부터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를 이끌어가는 본부장으로 활약하며 같은 해 8월부터 현재까지 과학기술연합대학원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양성에도 심혈을 쏟아왔다. “수학과로 들어갔다가 군대 갔다와서 컴퓨터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우연히 뜻이 맞는 사람들이 컴퓨터 계통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저 역시 이 분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지요” 무언가 드라마틱한 연구과정이 있을 법하지만 황순욱 박사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순응해 왔다는 말쯤으로 우리나라 슈퍼컴퓨터와의 인연을 담담히 표현한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 초기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1년이 지난 후부터는 장학금을 받아 학비와 생활비까지 마련했다고 소개하며 지금도 미국유학은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학비 걱정 없이 유학을 마칠 수 있는 구조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입을 다문다. 들어가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힘든 미국의 대학구조를 모른다면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 말이다. “딱 한 번, 구글이 사업 초기인 1995년에 합류를 강하게 제안했는데 ‘학위부터 따자’는 생각에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요. 그랬으면 어찌 되었을까요?” 거꾸로 기자에게 물으면서 털털 웃는 황순욱 박사, 어쩌면 자신의 말대로 어느 곳에서건 순리대로 살아온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큰 힘과 열정으로 작용해 오늘의 황순욱 박사를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사실은 저도 일선에서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은 본부장이란 역할 때문에라도 대외적인 활동이 더 많아진 편입니다. 일종의 바람막이 노릇도 해야 하고요” 황순욱 박사는 우리나라 슈퍼컴퓨터가 세계적 수준이란 점에서 글로벌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이 분야 연구에 후학들의 도전을 권하기도 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초과학의 세상에서 슈퍼컴퓨터로 대한민국 과학과 산업을 견인하는 최첨단에 경주출신 황순욱 박사가 우뚝 서있다는 자체로 뿌듯하기 이를 데 없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그의 한 마디가 더욱 멋있다. “우리에게도 만만치 않게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 세계를 상대로 멋진 전투를 해야겠지요? 그게 우리의 역할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