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관광단지 활성화를 위한 후속사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지난해 경주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보문관광단지 조성계획 변경 용역’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관광단지 내 6개 시설지구 중 운동·오락시설지구와 휴양·문화시설지구간의 벽을 허물어 ..
思親詩 申師任堂詩 千里家山萬疊峰 歸心長在夢魂中 寒松亭畔雙輪月 鏡浦坮前一陣風 沙上白鷗恒聚散 波頭漁艇各西東 何時重踏臨瀛路 綵舞班衣膝下縫 천리라 내고향은 첩첩 봉우리 저쪽 돌아가고 싶은 마음 언제나 꿈속이네 한송정 곁에는 외로운 달빛이요 경포대 앞에는 한 떼의 바람이리 모래밭에 백구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물결위의 어선들은 왔다갔다 하였네 언제나 다시 어머니 그림자의 길을 밟아 때때옷에 춤추며 슬하에서 옷 지을꼬 여맥 한규식 / 010-3791-1889 / hgyusig@hanmail.net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상(2000) 수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운영 및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인천광역시서예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장 역임, 백범김구서예대전 등 다수심사 한·중·일 국제교류전, 삼청시사전(2004~2005), 한·일 묵향전(베를린), (사)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전(2004~),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2001, 2011), 8.15광복절기념 평화통일기원전(2007), 서예정신전(한국미술관)등 그룹전 100회 초대 개인전2회(원인재 갤러리, 2017, 2019), 현) (사)한국서예협회 인천광역시지회 회장, 한국서예가협회 이사, 한국서예협회 이사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가장 돋보이는 부문이 자원봉사다. 특히 지역사회가 시민들의 손길이 필요할 때 기꺼이 봉사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훈훈한 감동을 준다. 최근 지자체들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을 제·개정해 공영주차장 이용료를 감연해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지자체들이 이 같은 제도를 다수 시행하고 있으며 경북에서는 인근 포항시가 공영주차장 이용료의 50%를 감면해 주면서 자원봉사자와 자원봉사 활동 시간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자원봉사문화가 확산되면서 경주지역도 지역 곳곳에 더 불어 함께하는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기꺼이 나서는 시민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시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공영주차장 주차요금 감면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했으나 경주시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주지역 자원봉사자들이 공영주차장 주차요금을 감면받기 위해선 ‘경주시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와 ‘경주시 주차장 조례’ 2개가 모두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주시의 경우 현재 ‘경주시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는 개정했지만 ‘경주시 주차장 조례’는 개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제251회 경주시의회(1차 정례회) 경제도시위원회에 이 안건이 상정됐지만 집행부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의원들 간에도 의견만 분분했었다. 1365 자원봉사포털에 등록된 경주시 자원봉사자는 2019년 말 기준 6만5552명으로 경주시 인구(25만5253명)의 25.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적극적인 활동을 한 50시간 이상 자원봉사자는 4412명으로 등록자 대비 6.7%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수자원봉사자증을 발급한 것은 2875명에 달한다. 이들 중 차량을 주로 이용하는 30~60대 사이의 자원봉사자는 2136명으로 실질적으로 공영주차장 이용 대상자는 1700여명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별한 혜택을 받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시민들은 없다. 없는 시간과 넉넉하지 않지만 나눔을 함께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원봉사자들에게 봉사에 대한 보답이 아닌 지역사회에 봉사문화를 확산시키고 자리 잡게 한다는 취지로 보고 일정한 혜택을 주는 제도마련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 진다. 자원봉사문화 확산은 지역사회에 건전한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자원봉사는 주민자치시대 반드시 필요한 주민들의 역할 중의 하나로서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을 둘러싼 논란으로 지역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지난달 29일 대학 홈페이지에 ‘주낙영 경주시장 페이스북 게시글에 대한 입장문’을 게시했다. 입장문은 지난달 주 시장이 개인 SNS에 동국대 법인과 대화를 통해 재단, 대학, 병원, 시청 관계자로 구성된 상생협의기구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대학 측은 주 시장이 동국대 학교법인을 방문해 이사장인 성우 스님을 비롯해 재단 관계자들과 차담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법인은 협의기구 구성 및 운영에 합의한 바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법인은 경주시가 제안한 상생발전방안 내용이 미비해 실망감을 표했으며 경주시에 대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니 경주시가 이 위원회에 참여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대학 측은 주 시장의 SNS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 ‘재단과 대학, 병원, 시청 관계자로 구성된 합의기구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합의했다’는 부분이 삭제됐으며 해당 글을 인용한 기사 철회를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학교법인은 경주캠퍼스가 법인 산하기관으로서 독립적이고 엄중한 법인 감사의 지적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 수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 측의 이 같은 반발로 경주시의 입장만 난처하게 됐다. 대표적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의 동국대 경주캠퍼스 자유게시판에는 ‘학교가 경주시에 캠퍼스 이전 선전포고를 했다’ ‘계속 캠퍼스 여론이 공론화 돼 캠퍼스가 이전하길 희망한다’ ‘캠퍼스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경주시뿐이다’ 등의 글이 올라오는 등 캠퍼스 이전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43년 동안 경주에 뿌리를 내린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이전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경주사회에 큰 혼란이다. 지금 대학 측의 입장을 보면 경주시에 서운한 감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전추진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대학으로서도 바람직한지 새겨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경주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 측과 진정성 있는 논의를 통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차일피일 지켜만 보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다른 이와 달리 보이려고 혹은 뛰어나 보이려고 외모나 태도,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정말 달라지려면 생각이 달라야 한다.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도 그렇다. 혁신 혹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외형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고려한 콘텐츠만이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그 도시만의 문화로 형성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0년 국내여행 트렌드를 ‘REFORM.’의 6가지 키워드로 전망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2020-2024년 관광 트렌드 키워드를 ‘NEXT TRAVEL’로 설정하였다. ‘REFORM’과 ‘NEXT TRAVEL’ 은 Regional Creator에서 R, Next generation에서 N 등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새로운 조어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도시재개발 대신에 지역의 삶과 장소성에 기반을 둔 재생이 도시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 하지만 정부주도화로 실시된 대표적인 도시재생 정책-폐산업시설 문화 재생사업,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문화도시 지정 예비사업 등-은 이들 정책들이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 전문가들조차 구별하기가 애매하다. 문화 활동은 사람(지역민)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뒤를 행정이 받쳐주어 지역 전체가 움직여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2021년 현재 ‘만들어진’ 문화도시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도시재생을 논하는데 있어 문화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거의 모든 정책에 문화가 중언부언된다면 문화는 갈 곳을 잃고 말 것이다. 도시재생과 문화의 관계는 ‘문화예술을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하자’는 문화를 통한 도시의 재생과 ‘도시 재생의 목표이자 결과로서 도시의 문화를 되살리자’는 도시의 문화 재생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즉, 도시의 재생에 있어서 문화는 수단이자 방법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의 다수가 대부분이 문화·관광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도시재생 사업은 곧 ‘도시관광사업’, ‘도시문화관광사업’이 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도시재생의 배경과 효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도시화와 도시쇠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968년에 36.8%였던 도시화율이 2018년에는 81.5%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3470개 읍면동 중 2239개(65%)가 인구 감소, 사업체 감소, 노후건물 증가 등 도시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어 빈집재생과 빈집은행과 같은 일본의 정책을 참고하기도 한다. 특히 지역 인구 감소와 공간 잉여현상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도시 소멸의 문제까지 직면한 경주와 같은 지방도시는 현재의 도시재생 정책이 지역민들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까지 ‘경주는 역사문화도시이다. 경주는 관광도시이다. 현재의 관광트랜드는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관광수요자(소비자)중심의 정책을 요구한다. 따라서 볼거리뿐만 아니라 먹거리, 즐길거리가 여행 소비자 중심으로 도시 정책이 추진되어야한다’와 같은 논점들을 중심으로 경주 미래에 관한 논의들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자. ‘그래서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사실 글로벌 경쟁력과 시민의 삶의 질은 동전의 앞뒤같이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명제이다. 누가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지니지 못한 도시에 국제적 지점이나 기관을 위치시키고자 할 것이며, 누가 삶의 질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곳에 가서 살며 일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상이 다르다. 최소한 경주에서의 도시재생 정책은 대상이 되는 지역주민 나아가서는 경주시민에게 이렇게 물을 일이다. ‘더 살기 좋아졌습니까?’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면 이렇게 묻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말이나 글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고칠 수도 있다. 특히 새로운 용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지곤 한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공간은 아무리 새로운 터치를 하더라도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서 바뀌기가 정말 힘이 든다. 특히 장소성과 시간의 의미가 남다른 경주라는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지구촌을 이루어 왕래하고 있고 다들 글로벌이니 해서 다투다시피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외 유학생 수가 2008년 21만6867명이던 것이 2018년 22만0930명으로 점진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자료:교육부) 조기유학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의 경우 2019년 1만2432명(유학 4693명, 파견동행 5738명, 해외이주 2001명)으로 중학생 4463명, 고등학생 1857명에 비교해 볼 때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자료:해당국 재외공관에서 관할국가 한국인 유학생 조사) 여기서 미국으로 유학한 초등학생을 보면 2006년 한 해 3,000명을 넘어 서는 기록을 세운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2018년 600여명에 이르고 있다. “10년 안에 과거급제 못하면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하지도 마라. 나도 아들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겠다” 경주 땅에서 출발하여 걷고 배를 타고 또 걸어서 3개월여나 하여야 다다를 수 있는 국제도시 중국(당 唐) 장안(長安)에,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12세의 어린 아이를 두고 아버지(최견일)가 한 말이다. 1150여년 전인 868년(경문왕 8) 최치원(崔致遠 857-?)은 이렇게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최치원은 이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당 유학 6년만인 874년 9월, 18세의 나이에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중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과거)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당시 신라에는 과거제도가 없었고 골품제도로 인해 신분 제약을 많이 받던 육두품 출신들이 많이 응시하였던 것을 보면 이러한 시대상이 유학의 동기에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837년(희강왕 2)에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던 신라 학생수는 216명에 달하여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았다. 840년에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수가 105명이나 되었으니 유학 열풍이 거셌던 셈이다. 821년 신라 유학생 김운경(金雲卿)이 처음으로 당의 과거에 급제한 후 당이 멸망하는 907년까지 과거에 급제한 학생은 58명이었다.(자료:동문선) 신라를 통틀어 당나라에 유학한 학생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인물은 바로 고운(孤雲) 선생인 것이다. 고운은 약관의 나이에 선주 율수(凓水, 강소성 남경) 현위를 제수 받았다. 이후 그는 양주(陽州)의 당성(唐城)을 막부로 쓰고 있던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병(高騈 ?-887)의 밑에서 관역순관(館驛巡官)이라는 비교적 높은 종사관으로 근무했다. 이때 고운은 881년에는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써서 일약 스타가 된다. 이를 계기로 당 희종(僖宗) 황제로부터 정오품이상에게 하사하는 자금어대를 받고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지금 양주에 최치원 기념관이 자리하게 된 연원이다. 이당시 중국 유학기간은 보통 10년이었으나 고운은 17년 만에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헌강왕에게 발탁되어 시독(侍讀) 겸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왕의 최측근에서 외교문서 등의 작성을 담당하였다. 그 뒤 스스로 청하여 태산군(太山郡, 전북 정읍시), 천령군(天嶺郡, 경남 함양군), 부성군(富城郡, 충남 서산시) 등 외지의 태수(太守)를 역임했으나 신라사회는 중앙귀족들의 권력쟁탈 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접어든 시기였다. 고운은 국제적 안목을 가진 수재였으나 제도의 한계와 사회의 모순 등 시대를 잘못만나 뜻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전국 방랑길에 오르게 되니 그의 나이 41세(898년)였다. 지난 2015년 경주시에서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한 보고서 중국에서 활약한 신라인의 문화관광자원화에 따르면 고운은 전국 각처의 89개소에 관련 유적을 남겼으며, 영정을 봉안한 곳도 21개소에 이른다. 또 주거주지가 17개소, 친필 서각으로 알려진 것이 13개소이다. 또 향교나 서원에 배향된 곳은 얼마나 많은가. 유적이 있는 시·군 지역을 보면 경북 9개, 경남이 10개, 전북 5개, 충청 4개, 경기 2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전남 등 전국 지자체에 고운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아마 전국적으로 이만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회남(淮南, 현 양주)을 비롯한 7개 도시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지난 3월 경주에서 ‘고운 최치원 인문학적 가치 학술대회’가 의미 깊게 열렸다. 이미 1997년부터 각처에서 40회나 고운을 두고 학술대회가 열린 것을 보면 그의 치적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운을 주제로 한 석박사만도 10여명에 이른다. 고향 경주에는 8개소의 유적을 비롯하여 주생활지역 4개소, 영정 1, 서원 배향이 1개소가 있다. 이제는 유불선을 아우른 고운 선생의 고향에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자원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면 한다. 어린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던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은 그의 자호 고운(孤雲)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던 ‘외로운 구름’이었는지 모른다. 신라에 돌아와서도 혼란한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뜻을 펴지 못한 채 방랑하던 ‘외로운 구름’이었는지 모른다. 천 백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에서 선양에 목말라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구름’인지도 모른다. “경주여! 고운(孤雲)님을 잊으셨나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스위스 사람에게 ‘스위스’라는 글자는 매우 흥미롭다. 그들에게 스위스는 산(스)과 산(스) 사이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위)처럼 보이나 보다. 써보니 마치 그림처럼 그럴듯하다. 그들에게 한글은 그림 같은 글자가 아닐까 싶다. 한글은 위대하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다. ‘젉댏삾먺짒많셇욝’라는 말을 아무리 구글 번역기로 돌려봐도 번역이 안 된다. 외국 여행에서 이상한 과일이나 음식을 먹고 남긴 후기 중 하나다. 절대 사 먹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에 애교가 듬뿍 묻어 있다. 하기야 애교도 우리만 느끼는 정서라고 하던데, 이 느낌 이 기분을 우리만 이해한다 싶으니 꽤 기분이 좋다. 한글은 칭찬에도 아주 특징적이다. 좋은 그림을 보고는 “와, 사진 같아요!”라고 하고, 잘 찍은 사진을 보고는 “와, 그림 같아요!” 한단다. 사람을 보고는 ‘인형 같다’ 고 하고, 인형 보고는 ‘사람 같다’고 한다. 누구는 이걸 칭찬 돌려막기란다. 한글에는 서양어의 기본적 내용인 주어, 동사, 목적어 하는 식의 분명한 구분이 없다. 가급적 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오히려 공감을 주는 식이다. “배고파~”하면 상대는 배가 부른 상태라도 같이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이다. 굳이 주어를 쓴다면 ‘나’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이다. 우리 학교, 우리 집처럼 ‘나’를 익명성 속에 감춰두는 방식이랄까, 분명 나의 엄마가 맞지만 우리 엄마가 느낌상 딱이다. 익명성이라기 보단 보편성이라고나 할까, ‘우리’라는 말이 그렇다. 우리라는 집단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선배, 후배, 옆집 순이, 누렁이 다 들어있는, 마치 보자기 같은 함축성이다. 어릴 때 부르던 “학교 종이 땡 땡 땡~ 어서 모이자”하는 노래만 해도 그렇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서양인이라면 선생님이 종을 치셨는지 종 스스로 쳤는지 헷갈릴 거다. 하지만 주체가 중요하지 않은 우리는 노래만 잘 따라 부른다. 우리는 논리보다 맥락에 더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졌을 때 우리는 ‘사람 살려~’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금 인류(!)가 물에 빠졌는데 그를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 가치가 있냐는 식이다. ‘나를 살려(help me)’라는 명령조의 서양식 표현보다 더 호소력이 있다. 물론 문화에 우열은 없지만 말이다. 한국어는 가령 영어처럼 시간별 인사 표현이 따로 있지 않다. ‘안녕하세요?’ 하나면 다 된다. 영어는 아침(good morning), 오후(good afternoon), 저녁(good evening)으로 나누지만 우리는 차라리 식사 여부를 묻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인들이 흥미 있어 하는 우리네 인사법이다. “아침/점심/저녁 드셨어요?” 하는 인사에 “네, 비빔밥 먹었어요.”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당황해한다. 반면에 ‘수고하십시오’나 ‘잘 부탁드립니다’하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인사는 영어권에는 없다. 수고했다는 의미의 영어식 표현으로 ‘do one’s best’가 있지만, 이는 능력은 부족한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라서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한국어의 인사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상대방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한다.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이런 식의 직접적인 언급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키(또는 발)가 크시군요’ 하는 식은 결코 근사한 칭찬이나 인사가 아니다. 우리식 인사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말하는 거다. 우리가 자주 쓰는 ‘그간 편안하셨는지요?’라는 예의를 담은 정성스러운 인사도 그렇다.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런 표현도 있구나! 지평을 넓혀서 좋고, 우리도 우리식 인사법이 만국에 통용되는 건 아니구나! 문화적 상대성을 배울 수 있어 좋다. 아참, 한국어는 생략도 특징적이다. 그중 최고는 충청도식인데, “자네는 술 좀 마실 줄 아는가?”를 줄이고 줄여서 “술 혀?”란다. 세계 언어 문자의 기원을 그려놓은 지도를 보면, 거의가 이집트 상형문자 유래, 아니면 추정, 및 중국 갑골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전혀 근본이나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언어가 조그맣게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한글이란다. 한글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원원사지는 사적 제46호로, 삼층석탑은 보물 제14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지정 순서에 따라 부여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근거로 문화재를 서열화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문화재 지정번호를 없애기로 했다. 원원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7.0m의 쌍탑으로 가운데 석등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8.5m 떨어져 있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인 2중 기단으로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양 탑 모두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만 남아있다. 기단부의 하대갑석과 상대갑석 윗면에는 2단의 옥신굄과 중석받침이 새겨져 있다. 모서리에 표현된 우주와 2개의 탱주로 하여 각각 12면을 이루고 있는 상·하층기단 면석 중 하층기단 면석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지만 상층기단 면석의 각 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12지신상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북쪽에서부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지신상은 평상복장을 한 채 연화좌 위에 자유스러운 자세로 앉아 있는데, 머리는 동물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몸은 사람 형상이다. 옷자락을 천의처럼 머리 위로 흩날리듯 표현함으로써 마치 범종(梵鐘) 등에서 볼 수 있는 비천상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왕릉 등에서 보이는 무인 복장에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입상의 12지신상들과는 다른 형태이다. 이 상들의 얼굴은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나 소를 나타내는 축상만이 왼쪽을 향하고 있다. 신라 능묘의 둘레에는 12지신상이 배치된 예가 많지만 탑에 새겨진 예는 드문 편이다. 탑에 12지신상을 조각한 예로는 구례화엄사서오층석탑, 영양화천동삼층석탑, 영양현일동사층석탑, 안동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등이 있는데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탑으로 알려져 있다. 이 12지신상은 약사여래의 권속인데 방위신이자 시간신으로 각자 맡은 방향과 주어진 시간에서 우주를 지킨다는 신으로, 여기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초층 탑신에는 면마다 모서리에 우주를 만들고, 그 내부에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사천왕상들 가운데 두 탑 모두 남쪽 면의 증장천왕상만이 깨어져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뿐, 나머지 동·서·북방의 상들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탑의 경우 동방의 지국천왕상은 오른손에 칼을 잡고 악귀를 밟고 정면을 향하고 있다. 서방의 광목천왕상 역시 악귀를 밟고 있는데,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삼지창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다. 북방의 다문천왕상은 오른손 위에는 복발형 탑을 얹고 있으며, 허리에 왼손을 대어 운동감을 부여하고 있지만 다소 경직되고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서탑의 경우 거의 완전한 형태로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상은 정면향으로, 두 손으로는 칼을 잡고 있다. 얼굴과 왼쪽 가슴 부분이 모두 깨어진 서방의 광목천왕상은 일고저로 추정되는 무기를 들고 있는데, 정면향으로 똑바로 서 있다. 북방의 다문천왕상은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 변화를 주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악귀 둘을 밟고 있다. 오른손에는 보주를 잡고 있으며, 왼손에는 방형의 보탑을 들고 있다. 초층 탑신에 비하여 급격히 줄어든 2층과 3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우주만이 새겨져 있을 뿐 아무런 조각도 없고, 옥개석 역시 탑신과 같은 비율로 축소되어 있다. 옥개석은 추녀 끝부분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아래로는 층급받침이 5단이다. 위로는 각형의 2단 탑신 괴임이 조각되어 있고 모서리를 둥글려 멋을 부리고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또한 이전 시기의 석탑에 조각한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나타나 9세기 석탑에서 중심을 이루는 장엄의 선례로서 주목되고 있다. 아울러 학계에서는 12지신상을 최초로 배치하고, 석탑의 조각기법,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 서탑 사이에는 화사석이 결실된 석등이 있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복련의 하대석과 앙련의 상대석 사이의 간주석은 팔각이다. 상대석 위에는 모서리 부분이 파손된 옥개석이 얹혀져 있다. 이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장식성이 강한 대표적인 석탑으로 원원사의 창건보다 1세기 정도 지나 8세기 중후반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두꽃 고영민 늙은 어머니 목련나무 가지에 앉아 만두를 빚네 빚은 만두를 한 손 한 손 나뭇가지에 얹네 크고 탐스러운 만두는 한입에 다 먹을 수 없네 볼이 터져라 나는 만두를 욱여넣네 세상 모든 목련나무의 만두는 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았으니 목련나무마다 잘 쪄낸 만두꽃이 피었네 어머니,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 어머니 나무 그늘 밑으로 툭, 떨어지네 -목련에서 늙은 어머니가 쪄낸 만두를 보다 조상들의 식물 이름 명명법을 보면 눈물겨운 데가 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봄날에 핀 꽃들을 이팝(이팝나무), 조팝(조팝나무), 국수(국수나물)라 불렀을까? 근래에 한 시인도 “돌나물을 무쳐먹던 늦은 저녁밥때에는/한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문태준, 「하늘궁전」) 고 말할 정도로 춘궁기의 모든 생물은 근원적인 식욕을 유발하나 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시에서 목련나무에서 “잘 쪄낸 만두꽃”, 평생을 “빚은 만두를 나뭇가지에 얹”는 “늙은 어머니”의 손길을 만난다. 확실히 목련은 오므린 자태가 만두의 형상을 닮았다. 세상의 어머니는 식구들의 입에 더운 밥과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을 낙으로 사는 분이시다. 농본주의적 삶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대자연도 마찬가지다. 늘 이맘때가 되면 우리들 정신적 허기를 달래줄 한 그릇의 밥과 “크고 탐스러운 만두”를 두 손 모아 건네준다. 그러면 우리는 “볼이 터져라” 대지의 그 밥을 “욱여넣”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꽃들은 개인적이면서 대지모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시인의 형이 서른셋에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시인의 어머니는 2년이 넘게 “매일 아들이 지냈던 방에 불을 밝혀놓았”고, “아버지가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그 마음이 목련나무를 보는 시인에게 옮겨붙었으리라. “세상 모든 목련나무의 만두는/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았으니”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대지의 신은 영속하지만 현실의 어머니는 유한한 삶을 사신다. “이제 그만/내려오세요”라는 아들의 글썽이는 말에 “어머니 나무 그늘 밑으로/툭, 떨어”지실 수밖에 없다. 자식은 이제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어머니의 둥글고 자애로운 사랑은 또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고, 시인은 또 “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은” “한입에 다 먹을 수 없는” 만두을 울컥이며 먹을 것이다.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고영민, 「목련에 기대어」)었다는 시인이 마침내 어머니 돌아가시고 얻은 「만두꽃」은 어머니라는 근원을 대지모신과 결합시켜 빚어낸 가편이 아닐 수 없다.
120세 시대, 초고속으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금 한국의 시니어 세대는 은퇴를 해도 딱 절반의 삶을 산 세대가 되었다. 최첨단 의료장비와 의학기술의 발달로 고령화는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비만이 암보다 더 고질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이다. 비만과 더불어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시니어세대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은 치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치매를 지연시킬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갱년기로 접어들면 몸을 재정비해서 인생후반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보수공사를 시작해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몸만 정비한다고 해결될까? 신체적 건강, 정서적 감정관리, 정신력···, 이 모든 걸 잘 관리하려면 뇌를 잘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뇌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뇌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뇌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요가 및 명상은 동양에서 시작되었지만, 서양으로 전파된 후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오고 있다. 또 명상 기법의 하나인 마음 챙김(mindfulness)은 그 효과를 인정받아 미국에서는 영국, 독일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뇌 활용에는 대체로 5단계를 거치는데 첫 번째 단계로써 뇌감각 깨우기 단계가 있다. 뇌와 친숙하게 되는 활동을 통해 뇌가 자신의 것임을 자각하고 이어 뇌가 가진 잠재력을 깨워내기 위해 신체 느끼기, 호흡 느끼기, 에너지 느끼기 및 뇌 느끼기로 진행된다. 뇌의 감각을 깨우는 과정은 뇌를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약60조 개의 세포 중에서 신경세포는 1400억개 정도다. 뇌와 척수에 있는 신경을 중추신경이라 하고, 중추신경과 몸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신경을 말초신경이라 한다. 말초신경에는 근육과 이어진 운동신경, 내장과 이어진 자율신경, 감각기관과 이어진 지각신경이 있다. 이렇게 뇌와 몸의 각 부위는 서로 완전히 연결되어 긴밀하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칭, 걷기, 달리기, 호흡명상을 통해 몸에 집중하면 뇌와 몸의 교류감각이 깨어나며 뇌 기능이 활성화된다. 뇌 감각을 깨우려면 의식을 내부로 돌리고 감정과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몸에 집중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뇌 감각이 깨어나면 마치 시력이 좋아진 것처럼 감각 자극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습관적인 반응에서 벗어나게 된다. 뇌 감각을 깨움으로써 자기 몸과 뇌의 상태를 잘 느끼는 상태는 뇌교육 훈련을 위한 중요한 바탕이 된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아는 것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다. 내 뇌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고, 이는 매우 주관적인 정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눈이라는 시각 기관에 비친 그대로가 아니라,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 중에서 뇌의 시각피질이 인지한 부분적인 정보다. 눈에 ‘비친 것’이라 해도 뇌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된다. 만약 뇌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앞에 있을지라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는데, 없어진 팔의 감각을 담당했던 뇌 부위에서는 여전히 팔이 있는 것으로 알고 팔을 잃은 순간의 통증을 계속 느끼는 경우가 있다. 팔은 없어졌지만, 그 팔의 감각과 연결된 뇌 부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팔이 없다는 사실을 뇌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뇌를 깨우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뇌체조, 기(氣)체조, 도인(導引)체조 등이 있는데 이런 체조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관절과 근육을 움직여서 이와 연결된 뇌의 영역을 깨우는 체조이다. 우리 몸에 에너지가 흐르는 경락(經絡)을 열고 강화하기 위한 동작을 중심으로 털기(bouncing), 두드리기(tapping), 스트레칭(stretching), 돌리기(rotation), 짜주기(twist) 및 용쓰기(burst) 등으로 구성된다. 경락체조는 근육과 인대를 밀고 당기는 운동을 통해 경혈을 자극하여 기혈 순환을 촉진하는 체조다. 일반적인 맨손체조, 에어로빅 등과 특이점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동작을 취하고, 몸에 의식을 집중한 후 숨을 내쉬면서 동작을 풀어준다. 이 동작을 취하는 동안 기혈 순환이 개선되어 에너지 상태가 균형을 이루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심신의 평화가 회복된다. 다음으로 단전 강화훈련이 있다. 여기에는 단전부위를 두드리는 단전치기, 배를 밀었다 당기는 동작인 장운동 등이 있다. 이와 함께 호흡 느끼기가 있는데 몸 전체를 스캔하면서 느끼기, 가슴 호흡,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전호흡 등이 그런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발전된 단계가 에너지를 느끼는 단계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의식은 깨어 있을 때 우리 몸을 흐르는 미세한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이 단계에 오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개발되어 일상생활에서 신체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으며 우리가 선택한 목표에 직접 에너지를 보낼 수도 있다. 결국 이런 훈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뇌상태를 더 잘 체크할 수 있다. 뇌는 뇌 자체를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각신경도 없고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근육도 없다. 그러나 에너지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활용하면 뇌를 숨 쉬게 하고 운동시킬 수 있다. 훈련을 통해 뇌파를 변화시키고 집중력을 향상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 인지하는 것보다도 훨씬 뛰어난 능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뇌의 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뇌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몸과 감정, 정신은 모두 뇌를 통해 작용한다. 신체 감각을 깨워 뇌 감각을 깨우고 뇌감각이 깨어나면 다시 자신의 몸과 정서의 상태를 알아차리기가 수월해져 자신이 원하는 바람직한 상태로 뇌를 활용 할 수 있게 된다. 뇌감각 깨우기를 통해 무디었던 감각이 깨어나면 자기 치유와 자기 조절 같은 신경생리학적 효과뿐만 아니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하나씩 구체적인 방법들을 배워보도록 하자.
경주는 바야흐로 벚꽃으로 온통 몸살이다. 경주SNS 누구치고 벚꽃을 찍어 올리지 않을 사람이 없어 가히 벚꽃천지 경주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김유신 장군묘, 대릉원 담장길, 보문관광로 등의 벚꽃들이 밤낮으로 빛깔을 달리하며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올라오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코로나19의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고 벚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한편으로 걱정도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나마 마음이라도 환해졌을 생각하니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런 한편 ‘경주’하면 예로부터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하다. 인구수만큼 자전거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경주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은 타 도시에 비해 월등했다. 지금도 자전거를 애용하는 시민이 많고 타도시에 비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자전거 길이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자전거를 이용한다. 이 아름다운 벚꽃을 경주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전거로 만끽하는 오빠들이 등장해 SNS가 더 즐겁다. 경주의 유명 페이스부커 강정근 씨는 지난 3월 29일 네 명의 동료들과 함께 무려 44km의 벚꽃 탐방 라이딩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코스는 황성공원을 출발해 보문 관광단지 벚꽃 길을 지나 덕동마을과 보문호를 돌아 시내로 들어와 김유신 장군묘까지 돌파 후 다시 황성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벚꽃으로 소문난 길을 다 돌아온 만큼 원 없이 꽃구경하고 허벅지 딴딴해질 만큼 라이딩도 즐겼을 법하다. 당연히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고스란히 페북을 장식했을 것이고. 이를 본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의 환호도 대단하다. 시간만 되면 경주 가고 싶다는 반응에 라이딩으로 즐기는 벚꽃이 최고라는 말. 역시 벚꽃은 경주라는 말과 경주는 예쁘고 오빠들은 멋지다는 축하가 쏟아졌다. 경주에 벚꽃이 피었고 자전거로 그 길을 보여주니 금상첨화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빠아~~~달려~~~♤” 강정근 씨 페이스북에는 오빠라고 표현했지만 사진상으로는 여성분도 한 분 합류한 듯 오빠에 ‘?’표가 붙어있다. 아무렴 어떨까, 경주의 아름다운 벚꽃길과 멋진 자전거 길을 소개한 이 순간은 꽃보다 오빠가 더 멋있다.
▲스페인 「세비야」 가는 길 리스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밤 10시, 야간버스로 7시간을 달려 이튿날 새벽 5시쯤에 세비야에 도착해 예약해놓은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초등생인 애들이 이젠 자기관리에 익숙해져 다행입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주도로 인구 70여만의 스페인 4번째 큰 도시 입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부 550km 떨어져있는 항구도시며 문화관광 중심 도시이기도하지요. 올리브, 포도주, 과일, 담배, 도자기류가 주 생산품이며, 미술, 오페라, 음악등 예술의 도시로도 각광을 받고 있어요. 대성당,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 탑등 유명한 종교시설 이 있으며 집시의 춤인 풀라멩고의 본 고장이라고 합니다. ▲세계 세번째 큰 성당, 세비야 대성당 여행하면서 본 성당 중 어느 성당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장엄했습니다. 이 성당을 지을 때,(1401년)참사회(중세이후 도시의 시정 관리기관)로 부터 “그 어떤 성당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 훗날 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어라”라고 엄명을 받고 지어, 105년이나 걸려 1506년에 완공되었다고 해요, 이스람 사원 자리에 스페인 왕국의 부와 힘을 과시하기위해 건립되었다고 하는 데 성당에 들어가면 황금색의 중앙제단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이 성당의 주(主) 제단 인데 높이가 27m, 폭 18m정도, 화려하고 섬세하고, 웅장하고 장엄해 어안이 벙벙해요, 성경속의 인물 1000명을 황금색으로 조각해놓은 제단으로 제작에 80년 정도가 걸렸고 황금 20여톤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더구나 성당 천장도 많은 황금으로 장식됐다고 하는데, 성당 내부가 값비싼 예술품과 보물의 거대한 창고처럼 보여요. 대항해시대 식민지에서 모은 스페인의 막강한 부의 산물인 황금으로 치장한 세계최대의 황금제단이요, 예술의 극치입니다. 왕실전용 예배당과 성가실 면적도 대단하고요. 모든 게 크고 아름답고 웅장해 당시 참사회지시대로 훗날(지금) 우리가 볼 때 그때 사람들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 거대합니다. 성당 근처에 알카사르 궁전이 있는 데, 타일 장식과 시원한 분수와 아름다운 연못이며, 야자수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로 멋진 정원을 만들고 있었어요. 또한 근처에 대성당의 종탑인 높이 97m 정도의 희랄다 탑에서는 28개의 종이 매 시간마다 울려요, 이탑은 오르는 계단대신 경사로만 만들어져 거리간격만 표시 놓고 있는 게 특이해요. 귀족들이 탑에 오를 때 말을 타고 쉽게 오르도록 그렇게 만들었다고 전해와요. 탑 정상에 올라보면 아름다운 세비야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힘들지만 애써 올라오나 봅니다. ▲세비야 성당 안에 있는 콜롬버스의 묘〔관〕이야기 성당 안쪽에 4명의 스페인 왕들이 어깨에 콜럼버스의 관을 상여처럼 둘러메고 서있는 조각이 있어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랍니다. ‘죽어서도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라’는 그의 유언대로 관이 땅에 묻히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모양이에요. 콜롬버스(1451~1506)는 이태리 출신이지만 항해가로서, 스페인 왕실 후원으로 대항해시대에 많은 황금과 부를 스페인에게 안겨주었지요. 그러나 그를 지지하던 이사벨여왕이 죽자 말년에는 냉대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고 해요. 스페인 카스티아 지방에서 죽을 때 절대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고 유언을 했데요. 사후 도미니카, 큐바 등으로 옮겨지면서 외국으로 떠돌다가 400여년 만에 스페인(세비야)에 왔어요.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의 왕이 그에게 잘못을 사죄하고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의 유언대로 유골을 내려 땅에 묻지 못하고 떠메고 있는 의미래요. 앞쪽 두왕( 카스티아, 레온)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쪽 두 왕(나바라, 이라곤)은 반성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앞쪽 두 왕은 콜롬버스를 지지한 왕이었고 뒤쪽 두 왕은 그를 반대했던 왕이래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앞쪽 두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거린다는 거예요.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신념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으로, 관광객들이 즐겨 만져서 그러하답니다. 저희도 다시 오고 싶어서 그들의 발등을 만졌습니다. ▲정열의 춤, 세비야의 플라멩고 저녁에 예약해놓은 풀라멩고 춤 공연장으로 갔어요. 이 춤의 본고향이 이곳인 만큼, 추억에 남을 것 같아서 애들과 사위는 숙소에 남고, 나머지 세 사람만 관람키로 했어요. 30여명 정도 모인 장소인데, 1시간에 20유로정도로 입장료가 비싼 편이더군요. 싱어 1명, 키타리스트1명, 댄서2명(남녀각 1명)총 4명이 출연진이었는데, 이 3종류를 플라멩고의 3대 요소라고한데요. 풀라멩고는 스페인의 전통춤과 노래의 통칭으로. 남부지방에서 발달했고, 세비야가 본 고장이라고 합니다. 14세기경 스페인의 민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집시들의 한과 외로움을 춤과 노래로 표출한 정열적인 소리와 빠른 몸짓이에요. 세비야 근처의 「과달키비르」 강을 통해 무역이 활발할 때 집시들이 강가언덕에서 춤을 추면 무역상인들이 돈을 던져줘서 생계를 유지한 그들의 생계수단이었고 19c 이후부터 춤 무대가 공연장으로 이동되면서 직업적인 춤추기와 관광수단으로 발전됐다고 합니다. 4명이 연출하는 박수치기, 케스터넷츠 흔드는 소리, 키타 연주소리, 구두로 바닥을 치며 내는 소리, 남녀 커플의 현란한 춤사위 등 요란하고 격정적인 1시간이 금방 가버리더군요. 집시들의 희노애락이 섞인 격동의 율동과 노래는 온몸으로 피를 토하는 분노와 서러움의 절규로 보였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제10대 국학진흥원장에 경주출신 정종섭<인물사진> 전 서울대 법대학장이 지난달 29일자로 취임했다. 정종섭 신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제24대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헌법재판소 연구원, 서울대 법대학장과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제1대 행정자치부 장관, 제20대 국회의원, 성균관 상임고문, 한국국학진흥원 이사 등을 지냈다. 정종섭 원장은 헌법학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학원 진학 시 ‘헌법의 정당성’에 관해 고심하던 중 헌법학자 허영 교수를 따라 경희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시 허영교수를 좇아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 배움의 행로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정종섭 원장은 서울대 재직시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냈고 국가개조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3.0과 규제개혁 등 정부혁신 전략을 주도하기도 했다. 특히 국회의원 재임시 ‘향교·서원문화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해 입법화하기도 했다. 유학집안의 전통상 어린 시절부터 각별한 유교수업을 받아 유학경전에 두루 통달하고 서예와 미술, 사진 등 예술 활동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1995년 경상북도 안동에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국학의 진흥’이라는 비전 아래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조사·수집과 국학 연구의 대중화를 위해 설립한 연구기관이다. 2002년부터 국학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국학의 세계화, 현대화, 실용화, 정보화,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실로 2015년에는 ‘유교책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고 2016년과 2018년에는 ‘한국의 편액’과 ‘만인의 청원, 만인소’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또 2018년 6월에는 국학자료수집 50만 점을 돌파함으로써 국내 최다 국학자료 소장기관으로 위상을 다지기도 했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센터장 박귀룡)는 지난달 25일 2층 교육장에서 2021년 제11기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개강식을 가졌다. <사진> 이날 개강식은 2021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경과보고, 학장 인사말, 내빈축사, 학생 대표 선서문 낭독, 기념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식후 행사는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활동 영상 관람, 반장·부반장 선출 및 소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강식에는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명예학장인 경주시의회 서호대의장을 비롯한 경북도의회 배진석의원, 경주시청 장애인여성복지과 남심숙과장 및 관계자, 경주시장애인단체협의회 이성국 회장,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대학 후원회장이 참석해 교육생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2011년부터 시작하해 현재까지 11년째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장애인복지 및 자립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한 강의를 통하여 장애인들이 삶의 활력을 찾고 자신의 역량강화를 할 기회를 가지며 사회참여를 통한 지역사회 내에서 의무와 역할을 가지고 통합사회를 구현할 계획이다. 장애인의 성취감, 자존감 향상 및 자립기반을 마련해 사회, 경제적 구성원으로 활동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2021년 제11기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사)경북농아인협회 경주시지회·경주시수어통역센터·한마음정신보건재활센터와 연계해 진행된다. 이날 개강식을 시작으로 4월 숲체험프로그램, 6월 현장견학, 7월 졸업여행 및 수료식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5개월간 47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장애인복지와 인권강의를 비롯하여 법률, 금융 및 재테크, 소통의 기술 등 자립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강의가 총 30회에 걸쳐 실시 될 예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는 4일부터 25일까지 경주 황리단길 초입, 재미 화가 김영길 선생 소유 정미소에서 경주 어반스케치 회원과 영남 어반 스케치 회원들이 참여하는 뜻 깊은 전시회가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영남권 어반스케치 협회 회원들의 첫 교류전으로 경주 어반스케치 협회(회장 장동식) 회원들의 작품 20여점과 영남권 어반스케치 회원들의 작품 40여점 등 모두 6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달 3월 24일 본지가 대릉원 황리단길 진입로에 경주의 사회적 기업과 황리단길 사업가, 어반스케치 회원 등이 의기투합해 버려진 채 서있는 정미소를 미술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이번 전시회는 그 공간의 개장에 맞추어 처음으로 여는 미술 전시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번 전시회는 그림에 능한 사람들도 있고 이제 한창 배우는 회원들의 작품도 있어서 자연스러움을 더해 줄 전망이다. 또 영남권 회원들의 그림 중 반 이상이 경주를 테마로 하고 있어서 외부 회원들이 중요하게 보는 경주의 모습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전시회에서 관장을 맡은 전시형씨의 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어반스케치 회원들이 약 3천 명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매년 경주를 중심으로 전국단위의 모임을 개최해 왔다, 2019년에는 첫 전시회를 열어 전국에서 40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 상황에서 대폭 규모를 줄여 10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해체가 결정되었던 보문 관광단지 ‘기와상가’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보문탑’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들 이 행사는 회원들만의 행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가족들을 동반하고 오는 회원들이 대부분이므로 매우 중요한 문화행사이자 경주를 위한 관광테마 상품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올해도 10월~11월 경 코로나 상황을 보면서 전국 모임을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는 화가 겸 시애틀 타임즈 기자인 가브리엘 캄파나리오(Gabriel Campanario)가 창시한 미술가들의 비영리집단으로 세계 각국에 단체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30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사는 도시나 여행하는 도시를 간략한 스케치로 그리고 규약상 이웃 도시 회원들과 교류활동을 권장하고 있어 도시간 문화교류의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경주는 30여 명 가량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경주행복학교(교장 강석근)는 지난달 29일 경주청년회의소 2층 강당에서 뜻깊은 졸업식과 입학식을 개최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2020년 정규 초등과정 제1회 졸업생 17명과 2021년 제2회 졸업생 7명을 포함해 전체 24명이 졸업했다. 입학식에서는 정규 초등과정 10명, 정규 중등과정 9명, 한글 문해과정 18명을 비롯하여 전체 37명이 입학했다. 경주행복학교는 25년 역사를 가진 경주지역 대표 노인문해 교육기관이다. 지금까지 이 학교에 입학해 한글과 산수를 공부한 학생은 2600여명에 이르며, 현재에도 120여명의 재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노인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70대 중반으로 이 학교에 와서 처음 한글과 산수를 배웠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이번에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장까지 받았고 중학생이 됐다. 이날 행사는 경주행복학교 졸업생과 입학생을 비롯한 여러 내빈과 자문위원 등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행사 시작은 백필남 교무부장의 학사보고와 강석근 교장의 인사에 이어, 주낙영 경주시장을 대신해 경주시평생학습가족관 설동근 관장과 이철우 경주시의회 부의장, 서정원 경주교육장, 박차양 도의원과 경주행복학교 고문 삼부치과 한성근 원장의 축사로 이어졌다. 졸업식은 경북교육감이 발행한 초등 학력인정서와 경주행복학교 졸업장을 교장이 서정원 교육장과 설동근 관장을 비롯한 여러 내빈들과 함께 졸업생 개개인에게 수여했다. 서정원 교육장은 경북교육감 표창장을 제1회 이옥순, 제2회 한유자 졸업생에 수여했다. 그리고 장곤도 재학생의 송사와 박태현 졸업생의 답사에 이어서 내빈들과 함께 부른 졸업식 노래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입학식은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여 입학생 현황을 간략하게 보고하고 중학 입학생 길삼예 대표 학생의 선창으로 전체 신입생이 함께 입학생 선서를 한 다음에 경주행복학교 교가를 제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경주시평생학습가족관 설동근 관장은 “경주행복학교는 교육부가 인정한 정규 초등학교가 된 후 처음으로 졸업생 24명을 배출하고 다시 신입생 37명이 입학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경주시 노인문해 교육기관의 신입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가족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서정원 경주교육장은 “뜻깊은 경주행복학교 제1회 졸업식과 입학식에 와서 학력인정서와 교육감 표창장을 수여하면서 노인 문해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잘 알게 되었다. 앞으로 경주시 노인문해 교육기관의 발전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학교 안내 054) 773-3495. 경주시 금성로 292, 삼부치과 4층(성건동, 중앙시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초가집 삼간에 저 산 밑에 짓고 흐르는 시내처럼 살아볼까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노래 부르며 만들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쌍둥이 자매 안강제일초 3학년 신채원, 채영 양. 선생님과 가족들이 잘한다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응원을 해주니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자매는 매일 노래하고 무엇이든 함께해 더 신나고 코로나19 기간에 학교를 가지 못했어도 배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우리는 쌍둥이, 취미와 특기가 같아요 만들기 하는 것을 좋아해 방은 조금 지저분하게 되지만 신나게 역할놀이를 해요. 둘이서 놀다보니 역할을 나눠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엄마아빠 역할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아요. 우리 자매는 노래를 통해 행복한 마음도 즐거움도 가지게 됐습니다. 노래는 또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늘 친구가 되어 함께 놀아주시는 아빠가 정말 좋아요. 바쁘지 않는 날은 퍼즐놀이하며 꿈과 학교에서 보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아빠에게 노래선물을 하지요. 동요도 부르지만 새롭게 시작한 창을 춤사위와 함께 덩실덩실. 이렇게 놀 때가 진짜 즐거워요. -꿈은 달라요 채원 양의 꿈은 착하고 예쁜 선생님. 쉽고 재미있게 즐겁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신 모든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집중이 잘되도록 열 번을 질문해도 열 번을 다 잘 가르쳐주시거든요. 공부도 노래처럼 즐겁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채영 양의 꿈은 아이도 어른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제빵사. 야채를 듬뿍 넣은 건강한 빵을 만들어 이웃에 선물도 하고 싶어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어려서 엄마와 할머니께서 옆에 계실 때만 가스와 도구 등을 사용해요. -인내력과 체력이 좋아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할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특기를 만들고 취미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려면 인내력과 건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하는 것은 어느 순간 잊어버릴 수 있지만 꾸준하게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특기가 된다고 격려와 칭찬을 매일매일 많이 해줍니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잘하고 싶어 노래연습도 더 많이 해요. 둘이서 함께하다보니 때로는 경쟁도 하고 도움도 줍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도 필요하고 하기 싫은 것을 먼저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아요 온가족이 함께 노래로 봉사하는 시간을 계획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사들이 취소되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안타깝지만 좋아하는 노래 더 많이 연습하고 동화책도 많이 읽으며 줄넘기로 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우리가족은 노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트로트, 민요, 동요를 구분하지 않고 부릅니다. 할아버지의 하모니카연주에 맞춰 노래할 때는 저절로 춤도 추게 됩니다. 외할아버지는 “오늘도 손녀 둘과 아내를 데리고 운전하며 우리소리 ‘신아리랑’을 부르고 ‘보랏빛 엽서’를 합창하는 우리는 정말 행복합니다” 외할머니는 “쌍둥이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면 감격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납니다. 수천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지요”라며 외손녀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하트를 보낸다. 아이들 돌잔치 때 소금을 답례품으로 마련했다는 어머니는 “얼굴이 예쁜 사람보다 마음이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 누군가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아이들이 칭찬을 받아 즐겁고 행복한 것처럼 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며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칭찬과 응원으로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가족, 노래로 가족봉사를 계획하는 아름다운 쌍둥이가족에게 감사합니다. 하루속히 코로나가 종식돼 3대가 함께 봉사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과정이 처음 생겨나 법조인 양성의 새로운 방향이 마련됐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본격적으로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양산되면서 바야흐로 각계의 전문 변호사 시대가 열렸다. 어느 전공이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3년의 로스쿨을 과정을 거친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하지만, 기존에 주로 법학 전공의 변호사가 양성되던 사법시험 세대와 달리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로스쿨 제도가 생기기 전에 공학과 법학을 모두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적재산권(IP) 분야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경주 출신 법조인이 있다. 법무법인 가온의 파트너 변호사인 김태권 변호사는 고려대 전자공학과 및 법학과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의 지적재산권 그룹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자공학 분야가 잘 맞아서 졸업 후 계속 이 분야를 공부할까 고민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대학 4학년때 진로를 고민하던 중, 김변호사와 동일하게 전자공학 및 법학을 전공하고 변리사로 활동 중이었던 친형이 법학 공부와 사법시험을 권한 것이 김 변호사의 오늘을 있게 했다. “막상 법학 공부를 해보니까 상식과 논리의 학문이어서 기존의 전자공학 공부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법시험을 의식하지 않고 공부해서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는 군대를 다녀오고 전자공학 전공을 끝낸 후에 다시 법학을 공부하다 보니 20살 무렵부터 법을 공부한 학생들보다 법학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한다. 시쳇말로 ‘머리가 굵어진 상태’에서 법 공부를 한 것. 김 변호사는 뒤늦게 법학 공부를 시작해 2005년 법대를 졸업하고 2006년 사법시험(제48회)에 합격한 후, 2009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38기), 그해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지적재산권 분야 변호사로 법조 인생을 시작했다. 판사를 권유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김 변호사도 잠시 그 쪽으로 마음이 간 적도 있었지만 고민 끝에 대형 로펌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누군가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건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부담됐고 아무래도 제 성향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전문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는 대형 로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구요” -판·검사에게 기술적 사안들을 쉽게 설명 “기술과 아이디어의 시대, 미리 점검해 법적 분쟁을 피해 가세요!”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지적재산권(IP) 분야 변호사로서 특허·실용신안, 상표, 저작권, 직무발명, 영업비밀, 부정정쟁, 아이디어 탈취, 기업기술 침해 등 기술적인 이해가 필요한 업무들을 다수 수행했다. “의뢰인이 기술 쟁점의 사건을 변호사에게 설명하는 경우, 공학과 법학을 모두 전공한 저와 법학만을 전공한 변호사가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정도와 깊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 쟁점의 사건에서 변호사가 법적 리스트나 분쟁 상황을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호사가 의뢰인이 설명하는 기술을 이해하고 그 기술 분야에 문외한인 제3자(검사, 판사, 공무원)에게 의뢰인의 입장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다양한 실무를 경험하며 주로 대기업들의 소송과 자문 업무를 수행했던 김 변호사는 2020년 9월부터 법무법인 가온에 합류해 이전과는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형 로펌에서 주로 대기업을 대리해 소송과 자문 업무를 수행하였다면, 지금은 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벤처 또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 경력과 실력을 믿고 찾아 주시는 기업 및 개인 고객들을 위해 일하다 보니 훨씬 긴장감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최근의 기업 동향들을 볼 때 김태권 변호사의 주장에 설득력이 더 실린다. “우리나라가 첨단 기술을 기초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대기업들은 여러 법적 분쟁을 치른 경험이 있지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벤처 또는 스타트업 기업들은 좋은 기술과 사업 아이템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술을 보호받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구요. 지금은 이러한 회사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대형 로펌에서 쌓은 다양한 실무경험이 자산. 출향인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을 위한 든든한 창과 방패 되고 싶어 김 변호사는 지적재산권 분야 실무 경험과 업무 역량이 앞으로 기업들이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더 조명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김 변호사에게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승률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기술적인 이해도가 높을수록 승소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분쟁의 결과가 좋지 않는 경우에도 고객들이 분쟁 과정에서 하고 싶은 주장들을 충분히 개진하였다고 생각하시는 경우, 결과에 아쉬움이 있지만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변호사는 자신과 같이 다른 분야의 공부를 마치고 로스쿨을 지망해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과감히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단 무엇이 됐든 자신의 분야를 열심히 공부한 다음에 로스쿨에 진학해 법 공부에 매진할 것을 조언한다. ‘열심히 공부한 것은 언제 일지 모르지만 나중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다. 김 변호사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변호사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경주 출향인 사회에 아직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가 적었다고 인정한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40대 중반이지만 그룹 문화를 중요시한 50대 이상 연령대의 선배 세대들과 달리 개인적 성향이 강한 세대임을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앞으로 경주 출신의 다양한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분야의 변호사인 자신을 기억하고 어떤 일이건 이와 관련해 문의할 경우 마음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한다. “주변에 경주 출신이라 얘기하면, 우선 ‘양반’ 이미지나 ‘나이스’한 이미지를 연상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대구나 부산에 비해 지방색이 덜하고 관광도시여서 친근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경주는 제 성장의 토대인 만큼 자부심은 누구 못지않습니다” 양남에서 태어나 경주고(44회)를 졸업하고 줄곧 서울생활을 해온 김 변호사이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뛴다. 출향인 사회에 알려졌건 아니건 지적재산권 분야의 김태권 변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첨단 시대 출향 기업들의 또 다른 자산이 될 것이다. 치열하게 얽히는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법적 분쟁 속에서 명쾌하게 길을 내고 벽을 쌓아줄 창과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경기도 ‘양평’에 뜻밖에 첨성대 서있어 눈길을 끈다. 그것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고 외형은 실물과 거의 판박이로 같고 비율만 66%로 축소된 것이다. 첨성대 13층과 15층 사각 창문을 중심으로 아래 12단 위 12단도 맞고 2단의 기단석, 2단의 상단부 정자석, 전체적인 돌 개수도 똑 같이 맞추었다. 무엇보다 전체에 흐르는 유연한 곡선을 성의 있게 재현한 것이 정성을 여간 들인 작품이 아닌 듯 여겨졌다. 이 축소 첨성대는 양평군 옥천면 신복길 131번지에 위치한 ‘펠리시아’라는 카페의 조형물이다. 이곳 이광훈 사장은 이 첨성대를 완공한 것은 2002년이고 당시에는 이 부지에 카페조차 짓기 전이고 심지어 무슨 사업을 할지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인데도 첨성대부터 지었다고 회고한다. “무언가 상징적은 조각이나 건축물을 재현해두고 싶어 고심하다 마침 경주 여행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첨성대를 떠올렸습니다. 그 조형물의 조건으로 일체의 종교성과 정치성, 지역성, 미신적 요소까지 배제한 가장 한국적이고 의미 깊은 조형물을 세우고 싶었는데 그게 첨성대였습니다” 이광훈 사장은 단순히 첨성대를 축소 복제한 것이 아니고 첨성대에 대한 공부도 다방면으로 공부한 듯 첨성대가 천문관측대가 아닌 제단형식의 조형물이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상하 12단의 의미, 27단의 의미, 정자석의 의미 등에 대해서도 훤하게 꿰고 있었다. 첨성대 원형과 다른 것이 있다면 첨성대에 비해 전체적인 규모가 66%라는 점과 첨성대를 축조할 때 적용한 퇴물림 공법을 적용하지 못하고 벽돌을 평면으로 깎은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퇴물림 공법은 벽돌의 끝을 살짝 높게 끌어 올려 하중이 무거울수록 아래로 단단히 맞물리게 한 첨성대 고유의 벽돌 공법을 말하는 것이다. 2016년에 경주에서 강도 5.8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도 첨성대가 멀쩡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광훈 사장은 기왕에 펠리시아 첨성대를 기사로 쓸 양이면 이 퇴물림 공법에 대해 꼭 써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이광훈 사장은 첨성대 상하로 흐르는 옆면 곡선을 넉넉하고 풍만한 여체의 푸근함이라 강조하며 뒤에 카페를 만들면서 정원수와 조경도 이에 맞추어 여성의 풍만함이 연상되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고 설명한다. 그여기에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카페 건물도 암탉이 날개로 병아리를 품듯 앞으로 나오면서 살짝 벌여 놓았고 카페 전면에 연못까지 조성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덕분에 펠리시아를 찾는 고객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조경이 완성되었다고. 첨성대를 단순한 조형물로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건물 디자인의 축으로 삼아 전체적인 심상으로까지 발전시킨 애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경주사람도 경주출향인도 아닌데 경기도 양평의 어느 시골마을에 이토록 정성어린 첨성대를 재현해 놓은 자체로 이광훈 사장 역시 우리 시대 또 다른 경주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번 양평에 가면 당연히 일순위로 들릴 명소로 기억했다. 이 지역 나들이 갈 출향인사들에게도 강추!!
황오동청년회(회장 박성범)는 지난달 25일 지역 내 화분에 물주기를 시작했다. <사진> 이 화분은 황오동에서 꽃을 심은 화분으로 황오동청년회는 지난해부터 분과별로 조를 구성해 일주일에 한 번씩 물주기 등 화분을 관리하고 있다. 박성범 회장은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정성껏 화분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소중한 주말 봉사에 동참해준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