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검지 안상학 지문이 반들반들 닳은 아버지의 검지는 유식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체에서 눈 다음으로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독서를 할 때 밑줄을 긋듯 길잡이만 한 것이 아니라 점자 읽듯 다음 줄 읽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쪽마다 마지막 줄 끝낼 때쯤 검지는 혀에게 들러 책 이야기 들려주고 책장 넘겼을 것이다 언제나 첫줄은 안중에 없고 둘째 줄부터 읽었을 것이다, 검지는 모든 책 모든 쪽 첫줄을 읽은 적 없지만 마지막 여백은 반드시 음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유식했을 뿐만 아니라 삿대질 한 번 한 적 없는 아버지의 검지였지만 어디선가 이 시를 읽고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의 여백을 읽고 있는 중이다 해학 속에 담긴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생각 시인 아버지의 책 읽으시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분은 노련한 독서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독서속도도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에 들인 그분의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진지하고 살뜰하다. 검지를 꾹꾹 눌러가며 한 줄 한 줄 마음을 다해 책을 읽으신다. 그것을 시인은 눈이 윗줄을 읽는 동안 검지는 “밑줄을 긋듯” “점자 읽듯 다음 줄을 읽고 있었을 것”이기에, “아버지의 신체에서 눈 다음으로/책을 많이 읽은 “아버지의 검지는 유식했을 것이”라고 농을 친다. 그것도 지문이 다 닳을 정도로 읽었으니 이 유머는 참 그럴듯하다. 더욱이, “쪽마다 마지막 줄 끝낼 때쯤 검지는/혀에게 들러 책 이야기 들려주고”에 이르면 와락, 웃음마저 쏟아진다. 다음 쪽을 넘기기 위해 검지에 침을 바르는 일인 줄 독자들은 이미 다 알기 때문이다. 첫줄 밑에서부터 시작한 검지의 독서행위는 그리하여 “검지는/모든 책 모든 쪽 첫줄을 읽은 적 없지만”으로 받아넘기고, 다음 쪽을 넘기기 위해 천천히 혀에 침을 묻히는 검지의 동작은 “마지막 여백은 반드시 음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으로 또 받아친다. 이렇게 책 읽기로 유식해진 검지에 더하여 시인은 짧게 한 줄을 더 한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삿대질 한 번 한 적 없는 ‘참 유순한 검지’라고. 그런 아버지가 당신의 독서 습관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이 시를 어디선가 또다시 ‘검지’로 눌러 읽으시고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시인은 딴지를 걸고 있지만, 우리는 다 안다. 이 작품은 결국 아버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자식이 온몸으로 “아버지의 여백을 읽”는 시라는 것을.
오랜 기간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단일민족이라는 신앙 같은 상식을 교육하고 그런 양 믿고 살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인종학적으로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뉘어 그 생김이나 특징이 분명히 다르고 크고 작은 전쟁의 결과로 다양한 인종의 교류가 생겼을 것이 뻔한데도 억지로 한 민족인 것처럼 포장해왔을 뿐이다. 그게 국가 간 교류가 적고 개방되지 않은 나라라면 별 일 아니겠지만 다수의 국가가 어울려 살거나 이 민족 간 교류가 많아지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인종의 문제를 안게 된 것은 6.25 이후 UN군의 진주, 특히 미군과의 교류로 인한 문제부터일 것이다. 순전히 피부색과 머리카락 등 눈에 띄는 다름이 있을 뿐이지만 별종이나 저급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한 다수의 배타적 성향이 곳곳에서 2세를 괴롭히고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는 필리핀과 베트남 등 결혼으로 인해 늘어난 다문화 가정, 다양한 국가에서 취업으로 들어온 해외노동자들이 늘면서 일어난 사회적 편견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는 미국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나는 극한적인 인종차별을 없었지만 단순히 외모가 다르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량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홀대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며 모두가 꿈의 나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은 실상 지독한 인종차별 국가다. 백인은 흑인을 ‘니그로’라는 말로 차별하고 그 흑인과 백인은 다시 동양인을 ‘바나나’라 비하하며 차별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지금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위장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걸핏하면 인종으로 인한 폭력사고가 일어난다. 숱한 인권단체와 양심적 지성들이 이런 문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오랜 기간 활동해온 덕분에 상당부분 인종차별이 완화되었지만 언제 이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종차별 백인단체로 KKK단을 꼽는다. KKK는 Ku Klux Klan의 합성어로 이들은 백인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흰색 천으로 온몸을 감싸 자신들을 드러낸다. 미국 역사에서 KKK단이 다른 인종에게 저지른 범죄와 폐해는 상상을 불허하며 지금도 그 점조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악랄한 KKK단 지부장이 백인 자녀들과 흑인 자녀들의 학교가 통합되는 회의의 공동의장을 맡았으니 그 결과가 심히 괴로울 것은 뻔하다. 더구나 그 악명높은 KKK지부장에 맞서는 상대는 흑인의 권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소문난 열혈 여성 운동가다. 피를 튀기는 접전이 예상된다.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The best of enemies/2019 로빈 바슬 감독)’는 1970년대 화재로 학교 기능이 마비된 흑인 학교를 백인 학교와 합치는 안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2주간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굳이 세부적인 내용을 접어두더라도 이 첨예한 일이 일으킬 갈등은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만큼 그 회의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상세한 전개와 놀라운 반전은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양자가 모두 자신들의 신념이 자녀들에게 합리적이고 올바르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KKK단 리더는 자녀들이 흑인 아이들에게 받을 피해를 방지하고 올바른 교육을 위해 흑인 아이들과의 통합을 반드시 막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혼신을 다한다. 그러면서 흑인 대표자에게 당신들과 우리는 똑같은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답하는 흑인 대변자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흑인들은 당신들이 겪지 않은 고통을 겪으면서 자라납니다. 백인들은 아무 이유없이 애들에게 침을 뱉고 백인에게 길을 안 비키면 얻어맞기 일쑤죠. 앉고 싶은 자리에도 마음대로 앉질 못해요. 가고싶은 곳이나 학교도요. 이런 고통을 매일 겪는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지요. 그러면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어떤 이유로도 홀대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언제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영화를 추천하는 마음은 다소 무겁다. 인종간이나 피부색 간의 일이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비록 적이라도 말이다.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달 28일 황성공원과 북천둔치 일대에서 자원봉사자 20명과 함께 ‘V-펫과 함께’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사진> 캠페인은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의 갈등을 예방하고 올바른 반려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반려동물에 대한 기본 교육과 펫티켓 교육을 수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날 자원봉사자들은 반려견 기초교육과 펫티켓 교육을 받은 후, 펫티켓 안내서와 배변봉투를 나눠줬으며, 외출 시 목줄 착용 및 배변 수거와 같은 반려인들이 지켜야 할 펫티켓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V-펫 프로그램에 두 번째로 참여하면서 펫티켓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었다”며 “지역 주민들이 점차 펫티켓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이 경험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캠페인은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5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며, 지역 내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의 갈등을 예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사회의 반려동물 문화를 향상시키고 사람들 간의 이해와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동궁과월지 맞은편 월성 자락에는 가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나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사진: 최진욱 사진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북형 관광 전문가 양성을 위한 ‘2023 경북 관광인재 육성 아카데미’가 지난달 26일 수료식을 가졌다. <사진>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이번 아카데미는 관광업계 종사자와 관광에 관심 있는 도민을 대상으로 상·하반기로 나눠 총 2회 진행했다. 상반기 아카데미는 지난 8월 11일부터 25일까지 3주간 관광 콘텐츠 기획, 관광 창업 비즈니스 모델, 관광업 신직무 교육 등 총 6회차로 운영해 38명이 수료했다. 하반기 아카데미는 상반기 관광 기초 교육에 이어 심화된 내용으로 구성했다.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 관광 창업교육 중심으로 로컬관광, 관광 상품 개발부터 사업계획서 작성법 등 5회차 교육을 통해 경북 관광기업 대표, 예비창업자, 경북도민 등 29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김성조 사장은 “관광 창업에 어려움이 있는 기창업자와 예비창업자들이 아카데미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과 역량 강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관광 기업 및 예비 창업자를 위해 다양한 관광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23 한옥문화박람회’가 2일부터 5일까지 4일간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서 열린다. 경주시와 경북도가 주최하고, HICO가 주관하는 이번 박람회는 ‘가치를 잇는 한옥’을 주제로 한옥이 필요한 이유와 미래건축으로서 가치를 이어가는 지속가능성 등을 제시한다. 행사는 40개 참가업체와 140개 전시부스, 컨퍼런스, 부대행사 등으로 구성했다. 전시회는 △한옥건축 △한옥자재 △인테리어 △한옥문화 △한옥정책 등 5개 분야로 나눠 설계·시공·인테리어 등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인 전시품목으로 구성됐다. 현장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전시뿐만 아니라, 한옥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다채로운 강연도 준비했다. 4일 오후 2시부터 개최되는 한옥 트렌드 컨퍼런스는 △다니엘텐들러 소장 △한옥스테이 숙박공유 플랫폼 ‘위홈’ 조상구 대표 △조인선 대표 등이 연사로 참석해 주거·상업·공공용 한옥의 주요 프로젝트 및 트렌드를 소개한다. 5일 오후 2시에 열리는 한옥 시공 컨퍼런스는 △경주건축사회 정대열 건축사 △로담신한옥 조정환 대표 △대보세라믹스 박효진 대표 등이 한옥 단계별 시공법부터 유지·보수까지 실생활에 도움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부대행사로는 한옥건축 시 필요한 건축비용, 자재 등에 대한 상담을 비롯해 참관객-참가업체 연계 등의 건축 상담회가 진행된다. 한옥과 어울리는 목공예, 규방공예, 테라리움(한옥 정원), 한식 디저트 등 트렌디한 ‘한옥문화 클래스’도 4일 동안 무료로 선보인다. 특히 유명 스냅작가와 문화해설사가 함께하는 경주 한옥명소 투어와 한옥배경 감성사진 촬영 프로그램은 체험해볼만하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경주에서 태어나거나 경주를 사랑했던 시인들의 노래 소리가 가슴에 와 닿는 감성의 계절이다. 1990년 초 경주신문 시비순례(詩碑巡禮)을 통해 세상과 가까워졌던 시인들의 시비와 우리 삶을 더 성숙하게 물들일만한 단풍은 가을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목월의 시비를 비롯해 청마시비, 고무신 시인과 이경록 시인의 시비다. 본지에 소개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봤다. 목월의 노래비 ‘송아지’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았네. 송아지는 유년 시절 누구나가 다 부르던 노래말이다. 경주 황성공원 내 김유신 장군의 기마상이 있는 獨山 서쪽아래에는 박목월의 송아지 노래비가 있다. 이 노래비는 1968년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경주의 뜻있는 어른들과 새싹회 후원으로 세워진 노래비다. 박목월은 ‘나그네’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경주의 시인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으로 1916년 1월 6일 경주군 모량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목월은 경주금융조합에 재직하던 1940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文章’지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 등으로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다. 문단에 등단하던 그해 결혼하고, 이듬해 휴직해 문학수업을 위해 2회에 걸쳐 일본으로 갔으나 문학은 홀로 공부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고 귀국했다. 해방이 되던 해 경주에서 대구로 이사해 4월 김동리,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두진 등과 조선청년문학가 협회를 결성했다. 이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했다. 1948년 서울로 이사, 서울대 음대 강사를 역임. 시문학(1950년), 심상(1973년)을 발행하고 1969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학장에 취임한 2년 후인 1978년 3월 24일 새벽 산책길에서 돌아온 뒤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영면했다. 시집으로는 청록집의 7권과 4권의 동시집, 20여권의 에세이집을 남겼다. 의지의 시인 청마 유치환 생명파 시인으로, 의지의 시인, 사상(思想)의 시인으로 불리는 청마 유치환의 시비가 불국사 남쪽 석굴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있다. 목 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 감고 앉았노라 시비에는 유치환 시인의 시 ‘석굴암 대불’의 앞부분을 새겨놓았다. 유치환 시인의 시비는 그가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한 이듬해인 1968년 가을 건립됐다. 유치환 시인은 경주와의 인연이 매우 깊다. 시인이자 교육자인 청마는 1908년 경남 충무에서 출생해 극작가인 형 유치진과 함께 잡지 ‘부여부’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고, 1931년 시 ‘정숙’이 문예월간에 발표되며 문단에 등단했다. 한 때 평양에서 사진업을 하기도 했고, 만주를 방랑하기도 했으나 해방 후 경주고·경주여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우리에게는 더욱 친숙한 시인이다. 유치환 시인의 대표작은 국정교과서에 실린 ‘깃발’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고무신 박종우 시인 ‘鐘’ 선도산 동남쪽 기슭에는 古無新 박종우 시인의 시비가 있다. 아직은 아직은 건드리지 말라 도사린 설움 설움을 터뜨리지 말라 그의 작품 ‘종(鐘)’의 일부가 음각으로 새겨져있다. 울주군이 고향인 박종우 시인은 많은 학교를 다녔으나 보통학교와 고대 경영대학원을 제외하고는 한 군데도 졸업증서를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고무신 시인은 1950년 시집 조국의 노래를 발표하고, 1957년 작푼 ‘나’가 사상계에 신인상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그의 아호인 고무신(古無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이에 대해 정민호 시인은 “그의 아호는 자기가 지었는데, 고무신이란 말은 ‘옛 것 뿐이요 새것은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며 “또 어떤 이는 ‘옛것은 없고, 모두 새것이다’고 풀이하는 이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아호에 걸맞게 항상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했으니 그의 아호는 그대로 고무신과 연관 있는 것으로 되어버렸다”고 전했다. 고무신 시인은 그의 호처럼 거무티티하고, 질기고, 마구잡이고, 구수하고, 인정미가 넘치는 일면과 천재같이 총명했다고 전해진다. 박종우 시인은 1950년대 후반 경주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경주공고 교사로 재직했었다. 시비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77년 5월 25일 고향만큼 사랑했던 경주에 세워졌다. 천재 요절시인 이경록 ‘사랑歌’ 그대 며칠 전 八百里(팔백리) 밖 阿火(아화) 안말에서 띄워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오늘 아침 東南風(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오다. 흘러 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心臟(심장)의 피 덥히며 온몸을 흐르다. 八百里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 길로 또 내 말을 보낸다. 오늘밤 錦江(금강)이나 秋風嶺(추풍령) 上空(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떠 헤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 29세 아까운 나이로 요절한 시인 이경록 시비에 새겨진 그의 대표작 ‘사랑歌’다. 이경록 시인은 1948년 1월 8일 경주군 강동면 다산리에서 출생해 경주중·고교를 거쳐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고교시절부터 문학적 재질을 널리 떨친 이 시인은 1973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달팽이’와 이듬해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 ‘이분법’이 각각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등단 후 1977년 지병인 백혈병으로 요절할 때가지 4년여간 많은 시를 발표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시비는 그와 함께 활동했던 ‘자유시동인’의 발의로 경주중 24회, 경주고 15회 동기회가 추진해 1986년 1월 진현동 우정의 동산에 건립했다. 이후 2015년 황성공원으로 시비를 옮겼다. 이번에 찾은 이들 시인들의 시비와 주변 환경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다. 경주에는 이들 시인 외에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다수 있다. 경주는 문화·관광도시이자 문학도시이기도 하다. 이 비들 간을 연계할 수 있는 문학지도나 문학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주시보건소는 지난달 26일 임산부의 신체·정서적 안정을 위해 숲태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사진> 숲 태교는 산림의 음이온과 피톤치드를 이용해 임신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태아와의 애착 형성을 돕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다채로운 꽃과 나무 등 우수한 산림자원으로 유명한 경북 천년 숲 정원에서 출산을 앞둔 부부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천년숲애 사회적협동조합과의 연계로 펼쳐진 이번 교육은 요가, 명상과 숲 테라피, 허브 식물테라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 예비 부모들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를 만들어 태아와 부부가 서로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가졌다. 최재순 보건소장은 “예비 부모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프로그램인 만큼 부부와 아기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 보호를 위한 ‘2023년 경주시 시각장애인 복지증진대회’가 지난달 27일 경주시장애인체육관에서 열렸다. <사진> (사)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경주시지회는 이날 제44회 흰 지팡이의 날을 기념한 행사를 열고 회원들과 소통·화합하는 장을 만들었다. 흰 지팡이는 자립과 자존 의지를 가진 당당한 시각장애인을 비유하는 상징물이다. 1980년 10월 15일 세계시각장애인엽합회에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를 이끌어내기 위해 흰지팡이의 날을 선포했다. 행사에는 김성학 부시장, 이철우 시의장, 배진석·황명강 도의원 등을 비롯해 기관·단체 관계자와 수상자 등 370여명이 참석했다.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흰지팡이 헌장 낭독, 유공자 표창 수여, 축사 및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화행사로 이어져 상호간 친선과 화합을 도모했다. 또 시각장애인들과 참석자들은 2025 APEC 경주 유치 퍼포먼스와 100만인 서명운동도 함께 펼치며 경주 유치활동에 힘을 보탰다. 한편 (사)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경주시지회는 시각장애인 노인의 집, 재활증진사업, 정보화교육 지원사업, 경주시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각 장애인들의 활발한 사회참여와 권익 향상을 도모해 오고 있다. 김성학 부시장은 “시각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더욱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정책을 강구해 사회인식개선과 장애인복지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채수근 상병 순직과 관련해 해병대에 대한 다양한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전역 해병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상죄 고소에 따른 입장문이 SNS상에서 일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해당 전역 해병은 채수근 상병과 함께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다 급물살에 휩쓸려 가던 중 가까스로 헤어나온 장본인이었다. 밤마다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던 수근이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역 병사는 군에서 자신의 말이 사단장에게 보고되는 것이 두려워 심리치료도 받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선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정치인들을 보았고 그 수행원들은 비 맞고 도열해 있는 해병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의원 우산을 좀 들어달라고 한 뒤 유가족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진만 찍었고 그 뒤를 장성들이 따라다니기 바빴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실종자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고 결국 사고가 났다고도 썼다. 채수근 상병 영결식 이후 대대장이 보직 해임되었고 중대장도 교체되었단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는 과정도 보았다는 말에 전역 병사의 박탈감이 전해져 온다. 그는 사고의 당사자이자 사고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군에서 이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일을 했다며 “수근이 앞에서 당당한 나라일 수 있기를, 해병대가 떳떳할 수 있는 조직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런 사람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며 끝을 맺었다. 보도자료 전문보기 : https://mhrk.org/notice/press-view?id=4891 댓글 단 사람들의 마음들은 위 링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전역 병사의 부모 세대로서 아직도 이런 군에 보낸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하남시에 새로 조성된 신도시 공원들을 걷다보면 눈에 띄는 나무들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는 다 비슷하지만 나무마다 달린 이름표들이 눈에 띈다. 이름표를 단 나무는 미사 신도시 한강공원과 호수공원 주변, 위례 신도시 인근 공원, 감일 신도시 예정지구 등에 모두 심은 540여 그루다. 나무 종류는 왕벚나무, 메타세콰이아 등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뛰어난 나무들이다. 이들 나무들은 2021년 집중적으로 심어져 지금은 건강한 나무로 자라고 있다. 당시 하남시는 시민들과 함께 도시에 숲을 조성함으로써 미세먼지를 줄이고 시민들의 휴식처를 가꾸기 위해 이런 행사를 벌이며 시민들의 참가를 위해 지역 언론을 이용하기도 하고, 도시밀집 지역에 현수막을 걸거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 단지에 협조공문을 발송해 시민들이 참여를 유도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 한 그루가 광합성을 통해 흡수하는 연간 이산화탄소 양은 약 9.1㎏으로, 이는 승용차가 56.2km 주행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남시는 나무심기에 참가한 시민들의 이름표를 나무에 붙여 자신이 심은 나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민의 숲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나무에 이름표를 단 것에 대해 하남시민들은 대체로 좋은 반응이다. 나무심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이름표를 단 나무들에 각별한 애정이 가기 때문에 가끔씩 나무가 잘 자라는지 확인차 찾아와 사진도 찍고 나무의 건강 상태를 살피기도 한다. 공원을 거니는 시민들은 이름표가 붙은 나무를 보면 단순한 가로수나 시가 심은 나무가 아니고 누군가 주인이 있는 것처럼 보여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인다. 나무에 이름표가 달린 것을 본 한 어린이는 “이름표를 보고 나무마다 자기 이름이 있는 줄 알았다”면서 앞으로 이런 나무 심기행사가 열리면 꼭 참석해 자신의 이름표도 달고 싶다고 말했다.
앞장에서 예고했듯 최언경 공 부자는 향교, 다시 말해 유림과 화합하기 위해 파격적인 계획을 제안한다. 그것은 만만히 보아 넘길 일이 결코 아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향교에 대한 조선의 정책적 배려를 잠깐 살펴보면 향교는 제도적으로 국가에서 그 규모에 따라 교수를 배정하고 토지와 노비를 지급해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자료에 따르면 향교가 융성한 성종대에는 성균관을 비롯 주·부·군·현 등에 각각 400결·10결·7결·5결씩을 정해 지방 수령이 각 지역에서 거둬 해당 향교에 지급하도록 조치되었다. 경주는 ‘부’였으므로 10결의 세수만큼을 할애받은 셈이다. 조선시대 1결은 농민 한 명이 혼자서 지을 수 있는 평균적인 땅 넓이로 요즘 평수로 하면 약 3000평에 해당하는 넓은 땅이다. 10결이면 3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이니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후대로 내려올수록 적어진 것은 물론 도처에서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향교가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숭유했다고 할 수는 있을까? 절 수리 잦았던 조선이 억불했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조선이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절대적 다수의 백성이 떠받드는 불교를 함부로 괄시할 수 없었다. 얼핏 봐도 태조 이성계부터 무학대사를 가까이했고 경복궁 내에 불교행사를 여는 함원전(咸元殿)을 지어둔 것,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가장 먼저 편찬한 서적이 석가모니의 집안과 관련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이었다는 것을 봐도 불교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경주의 유적을 봐도 가장 유명한 절인 불국사의 경우 세종, 성종, 중종, 명종대에 대웅전, 관음전, 자하문, 극락전 등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후에는 광해군, 인조, 효종 대를 거치며 보수한 기록이 있다. 석굴암도 숙종대와 영조대에 중수한 사실이 있다. 참고로 항간에 잘못 알려져 있듯 석굴암이 오랜 기간 사라졌다가 일제강점기 우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속설과 달리 겸재 정선의 화첩에도 나오고 조선말기 울산병사 조예상에 의해 중수된 기록도 있다. 분황사 역시 광해군 때 보광전을 중수하고 약사여래를 주조·봉안한 기록이 있고 숙종 대에 다시 보광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중창이나 수리, 봉안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불교 유적들이 조선시대 전반에 수시로 꾸준히 중창되거나 보수된 사실들을 두고 본다면 불교의 재정이 그다지 궁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활발한 중창이나 수리를 한 불교가 억압당했다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교가 국교로 여겨지던 통일신라나 고려에 비해 승려의 신분이 낮아지고 권위도 떨어진 것은 사실일 테지만 흔히 상상하듯 막무가내로 억압당하지는 않았을 성싶은 것이다. 반면 유학이 국시인데다 과거가 관료진출의 등용문이고 향교가 그 과거를 지지하는 국책교육기관인데도 불구하고 재정적 지원이 불안해 제대로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것은 숭유(崇儒)의 나라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심지어 향교의 담장이 무너져 오랜 기간 보수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최언경, 최기영 부자는 이런 향교의 재정적 후원을 자청했다. 향교를 전격 수리하고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고 책과 문방구를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향교를 다녀보면 경주 향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큰 규모다. 이런 향교의 규모를 감안하면 쉽게 지원할 대상이 아닐 텐데 향교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니 유림이 내심 반가웠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사마소(司馬所)를 함께 지원한 것도 눈에 띈다. 사마소는 16세기 초인 성종말~연산군 시대의 사마시(司馬試-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 소과라 불렀다)에 붙은 선비들이 자기들 나름의 지방향권을 주도하기 위해 만든 사설 시설이다. 처음에는 학문과 정치를 토론하는 듯했지만 지역의 터줏대감 노릇으로 전락한 곳이 사마소다. 최씨 부자는 사마소를 전면 수리하는 것은 물론 이때 병촉헌(炳燭軒)을 새로 짓고 책과 문방구를 전격 지원했다. 이를테면 주요 명분상으로는 유학을 숭상·장려하고 토호세력화 된 지역 선비들과 두루 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참고로 사마소는 기자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기자의 부모님이 젊은 시절,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병촉헌에 몇 년 세들어 산 적 있었다. 그런데 당시 계약을 최염 선생님의 부친이신 최식 선생님과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미루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마소의 실질적 소유권을 최부자댁이 가지고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사마소는 지금의 월정교 북측에 있던 것을 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월정교 복원을 대비해 1984년 300미터쯤 서쪽으로 옮겨 지금의 자리로 잡았다. 기자의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던 시기였다. 대문과 집은 낮고 안채는 부잣집 답지않게 초라해 보인다. 이게 경주최부자댁의 차별점이다. 이쯤에서 그쳤다면 그럴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두 부자분들은 경주의 유림들에게 단순히 보여주기가 아닌, 감동을 주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면 비록 벼슬을 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유학도임을 자부하고 있었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아래 조치들이 교촌 시대를 연 최부자댁의 진면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언경, 최기영 두 부자는 집을 옮기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결행한다. 첫째, 향교를 존중해 집터를 석 자 이상 깎는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어떻게 땅을 낮추어 집을 지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향교는 그냥 학교일 뿐이다. 요즘 같으면 학교 건물 옆에 집을 짓는다고 터를 일부러 낮춘 것이다. 그러나 두 부자분들은 향교를 단순히 건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배향된 유학의 성현들을 우러러본 것이다. 향교에는 성균관과 똑같은 이름과 기능의 ‘대성전’이란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중국 유학의 성인들과 우리나라 유학 성현들을 모신 사당이다. 향교에 배향된 선현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집터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향교와 맞닿은 최부자댁 터를 보면 향교보다 좀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깎아낸 흙을 최부자댁 후원 뒤쪽에 가산(假山)으로 쌓았다는 이야기는 역시 7편에서 했다. 둘째, 집의 위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지금 최부자댁은 그 옛날 이조리에서 옮겨온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게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한옥은 ‘가구식’이라고 해서 위에서부터 하나씩 드러내면 해체와 이전을 쉽게 할 수 있다. 지금도 경주에는 전국 각지에서 옮겨온 한옥들이 많고 안동에는 안동댐으로 인해 수몰된 지역에서 많은 한옥을 옮겨 간 사례가 있다. 여하간 최기영 공은 이조에서 집을 옮겨올 때 모든 기둥들을 두 자씩 깎아 집의 높이를 스스로 낮추었다. 또 일부러 대문도 작게 만들었다. 최부자댁을 방문하는 분들은, 그래서 최부자댁을 좀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문가를 방문해 보면 지붕이 높고 대문도 솟을대문이라고 해서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대문을 달고 특히 문짝 위로 지붕을 올려 엄청난 위용을 부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남 일대 가장 소문난 부자인 경주최부자댁은 어딘지 모르게 집도 좀 포근하고 대문도 낮아 다른 명가에서 보는 위엄이나 위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안채는 영남일대 최고의 부잣집치고는 얼핏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터를 낮추고 기둥을 깎았다는 것은 단순히 터를 낮추고 집을 낮춘 것이 아니라 유학과 향교, 성현에 대한 마음으로의 겸양을 나타낸 것이다. 아마 이런 부자는 단연코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다.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아간 부자들은 많지만 멀쩡한 자기 집 기둥을 깎아 낮추고 집터를 일부러 깎아낸 부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그게 경주최부자가 다른 부자들과 확연하게 차별화된 출발점일 것이다. 나는 종종 최부자댁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만나면 반드시 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최부자댁은에서는 육훈이나 육연 등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최부자댁 집 자체다. 낮은 대문과 위압적이지 않은 지붕 높이, 일부러 낮춘 집터를 돌아보면 세상과의 조화를 꾀한 최부자댁의 현명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방광은 우리 몸에서 생성된 소변을 저장 및 배출(배뇨)하는 기관이다. ‘배뇨장애’란 요로계통의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배뇨의 이상증상을 의미하며 빈뇨, 급박뇨, 배뇨통, 배뇨곤란 등이 그에 해당된다. 그중 배뇨곤란은 배뇨를 원하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으로, 흔히 남자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녀노소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으며 원인에 따라 치료법이 다양하다. 원인도 다양한 배뇨곤란 배뇨곤란의 주요 원인으로는 요로감염, 방광의 기능 저하, 전립선비대, 약제 부작용 등이 있다. 요로감염은 신장, 요관, 방광, 전립선 등 요로계통에 세균이 침입하여 감염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감기처럼 일상생활에서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며, 의사들은 문진을 통해 이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조사, 여행, 고강도 운동 등 무리한 활동을 한 후에 잘 나타난다. 전립선염의 경우 전립선이 부으면서 요배출이 방해되어 배뇨곤란이 발생하고, 방광염의 경우 소변이 충분히 차지 않았는데도 요의(소변이 마려운 느낌)를 느껴서 소량의 소변을 억지로 배뇨하려는 증상을 보인다. 방광기능 저하도 배뇨곤란의 원인 중 하나다. 이는 신경 손상, 노화, 당뇨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데, 특히 노화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다. 원활한 배뇨를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요도괄약근은 이완되고 방광근육은 수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광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은 대부분 이 방광수축력이 저하되어 있어 충분한 배출이 되지 않으며 잔뇨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의 특징은 방광의 감각 역시 저하되어 본인이 배뇨곤란의 상태에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하며, 오히려 팽창된 방광에서 소변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을 ‘빈뇨’로 착각해 이를 주로 호소하며 병원에 오기도 한다.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전립선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비대해지는데, 이는 서서히 소변의 흐름을 압박해 요배출을 방해한다. 매체의 영향으로 모든 배뇨곤란의 원인을 전립선비대로 생각하고 단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매우 편협한 생각이며 다른 원인이 있는지 충분히 검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뇨곤란을 유발하는 약제들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감기약에 포함된 항히스타민제가 이에 해당하며, 정신·신경계 약물 역시 약제부작용으로 배뇨곤란을 일으킨다. 만성 암 환자나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투여되는 아편류 진통제도 방광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음주 후에도 배뇨곤란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배뇨곤란 배뇨곤란의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약해진 소변줄기, 잔뇨감, 하복부 통증이 있다. 일부 환자들은 배뇨가 원활하지 못해 외부의 힘을 이용한다. 억지로 배에 힘을 주거나 혹은 손으로 아랫배를 눌러 배뇨하는 식이다. 두 경우 모두 정상적인 배뇨양상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는 가까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심한 배뇨곤란의 경우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는 ‘급성요폐’로 따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방광의 압력이 요관 신우에 압력을 가하게 되고 나아가 신기능의 급성 손상이 야기된다. 일반적으로 방광에 300~500cc의 소변이 축적되면 요의를 느끼고 배뇨하게 되는데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급성요폐가 일어나면 방광이 1000cc 가까이 팽창할 때까지 배뇨를 못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배꼽 아래 하복부에 주먹만 한 크기로 팽창된 방광이 만져지며 심한 경우 식은땀과 호흡곤란 등의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가급적 빨리 응급실에 가야 한다. 증상에 따른 적절한 치료 방법 배뇨곤란의 치료 방법은 그 원인에 따라 다양하다. 일시적인 요로감염에 의한 배뇨곤란이 의심된다면 가까운 병원에서 소변검사를 받고 항생제 치료를 단기간 하면 증상이 호전될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약물이 배뇨곤란을 유발한다고 의심되는 경우엔 의사와 상담하여 약제의 감량이나 부작용이 적은 다른 약제로의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 기존 신경·정신계 약제를 복용하다가 용량을 늘리거나 약제를 바꿨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최근에 처방을 변경한 이력이 있다면 담당 의사를 찾아가 상담하도록 한다. 전립선비대의 경우, 병원에서 충분한 검사를 통해 전립선비대 및 이로 인한 요배출 저하가 확인되면 우선 약제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약제치료를 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요속검사를 시행해 요배출의 호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오랜 기간 약제치료를 했음에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전립선 압박을 물리적으로 해소하는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경요도적 전립선 절제술, 홀뮴레이저 전립선 절제술 등이 일반적이며 최근에는 전신마취 없이 가능한 전립선결찰술(유로리프트)이 개원가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전립선 크기 및 모양 등 상황에 따라 치료법도 다르니 비뇨의학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수술법을 안내받는 것이 좋다. 간혹 전립선 크기가 정상인데도 배뇨곤란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중 전립선이 안쪽으로 압박하여 요배출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필요시 요속검사 외에 경요도 내시경 검사도 시행한다. 방광기능의 저하로 인한 배뇨곤란이 검사를 통해 확인된 경우, 약제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짧은 소변줄을 하루에 4~6회 요도에 삽입해 물리적으로 방광의 소변을 주기적으로 제거하는 ‘자가도뇨법’이 권장된다. 이 방법은 환자들의 거부감과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수축력이 감소하거나 수축을 아예 못 하는 방광을 효과적으로 회복하는 약제는 아직 없다. 흔히 의사들이 ‘방광은 재활이 안 되는 장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병원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자가도뇨로 치료하려는 의사와 이를 최대한 피하려는 환자들 간의 실랑이가 일어난다. 급성요폐의 경우는 원인 파악에 앞서 치료가 우선이다. 급성 요폐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면 신기능 보존을 위해 먼저 소변줄을 넣어 소변을 제거한다. 추가적인 검사 후에 급성요폐 외 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퇴원 절차를 밟는데, 이때 많은 환자들이 소변줄을 삽입한 채로 귀가할 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상당히 우려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강한 힘을 주어 뽑지 않는 이상 소변줄은 우리 몸에서 빠지지 않게 하는 일정한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급성요폐가 일시적인 원인에 의해 유발됐다면 약 1주일 뒤 외래에서 소변줄을 제거하고 다시 배뇨를 확인한다. 일회성 배뇨곤란에 의한 급성요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반복적인 배뇨곤란으로 인한 급성요폐는 여러 원인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환자 및 의료진의 주의 깊은 경과 관찰과 원인 치료가 필요하다. 배뇨곤란은 우리 일상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한 경우에는 의학적으로 위급한 상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배뇨곤란 증상을 완화하는 많은 약제, 수술법 등이 마련돼 있다. 배뇨곤란을 겪고 있다면 가까운 비뇨의학과를 찾아가서 정확한 원인 진단 및 치료에 대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공고번호 : 경북-경주시-2023-1069 10월 24일 경주시 건천읍 원실길 87-2 부근에서 발견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귀여운 아기강아지 믹스견 / 남아 / 1차 접종완료 / 중성화x / 2개월경 / 760g 입양문의 054)760-2883 반려동물이 실시간 입양됐을 수 있으니 확인 전화바랍니다.
그림의 섬세한 선들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고요하게 펼쳐진 수묵의 세계에 서양화의 기법과 정신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수묵 기법과 서양화의 관점이 조화롭게 융화된 작품이었다. 소산 박대성 화백의 화업과 그가 동시대 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조망하는 전시 ‘소산수묵 : 개방과 포용’이 경주솔거미술관 박대성관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소산 박대성 화백의 9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한데 모아진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또 임서와 소산체 연구를 통해 이뤄낸 수작들과 올해 석굴암과 불교 최고의 교리를 통해 그려낸 미 발표작 ‘인드라망’도 함께 선보인다. 박 화백은 과거의 법도와 기법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수묵 기법을 지키면서도, 창조를 위해 서양화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녹여낸다. 그림의 모든 선과 면, 그리고 색상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작가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실험적인 정신인 것. 전통을 지키되 창조를 위한 개방과 포용,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동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박 화백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보는 이는 그 풍경을 통해 작가의 끊임없는 창조력과 개방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박대성 화백은 명필가와 명화가의 먹선을 따라가며 호흡과 흐름을 배우는 하도 작업을 통해 자유로운 필치로 붓을 운용하는 방법을 오랜 시간 동안 연구했다. 그의 독창적인 수묵화법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됐으며, 그 중 ‘천년배산’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천년배산’은 수묵의 법도와 기법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 서양화의 관점과 동아시아 3국의 수묵기법이 융화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오랜 하도작업을 통해 얻어진 탄탄한 기초와 다양한 장르의 기법을 포용하고 적용하는 실험적인 작가정신이 반영돼 있다. 부단한 노력과 포용을 통해 현재의 소산 수묵을 완성한 박대성 화백은 한국 수묵화의 대가이자 대표 작가로서 유럽과 북미 등을 순회하며 소산 수묵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경북문화관광공사 김성조 사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소산 선생의 독창적인 수묵화법과 그 완성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관람객들이 소산 선생의 수묵에 대한 집념과 정신을 작품을 통해 느끼고, 스스로를 통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시는 내년 6월 16일까지.
전 경주시약사회장을 역임한 오관현<인물사진> 약사가 수필 ‘문지방’으로 제10회 이가탄한국약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그가 겪어온 어려움과 좌절을 글로 풀어내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데서 나온 결과다. 오관현 약사는 “이번 수상은 약사에서 수필가로 마치 한 단계 문지방을 넘어서는 경험과 같다”면서 “마치 숨이 차오르는 과정에서 한 모금의 청량한 물을 마신 것 같은 상쾌함을 느끼게 해줬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좌절한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대로 된 글쓰기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그의 본격적인 글쓰기 활동이 시작됐다. 오관현 약사는 “제가 쓴 글은 특별히 문학적이거나 감성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제가 지나온 험난한 경로를 기록하고, 특히 좌절한 사람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라면서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후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희망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우리가 도전해야 할 것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오르거나 노벨상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은 뒷동산을 오르는 것처럼 간단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 동산을 오를 수 있듯 수필 ‘문지방’은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고기가 계곡을 오르고 또 올라도 그곳에는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순간, 이 곳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삶을 즐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관현 약사는 현재 온누리부일약국 약사로 제10회 이가탄약사문학상 대상을 비롯해 창작산맥 신인상, 에세이포레 작품상을 수상했다.
서울 인사동 인사1010갤러리 지하1층에서 지난 25일부터 31일까지 경주와 포항의 펜화 보급에 기여해 온 허진석 작가 등 펜화 작가 14인이 참가하는 ‘한국펜화가협회가을기획전’이 열렸다. 허진석 작가는 이번 회원전에서 자신만의 자연주의적 성찰을 담은 여체와 달, 나무와 자연이 어울린 작품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허진석 작가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고 여체의 곡선과 자연을 오버랩시켜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신비로운 여체의 곡선을 산의 능선과 중첩된 능으로 묘사해 완연한 자연과의 조화를 시도한 것에 대해 그는 “펜화를 단순히 건물이나 풍경을 그리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를 뛰어넘어 펜화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싶어 반구상적 작품을 그려 보았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허진석 작가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의 공통점은 주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정밀하고 세부적인 묘사가 두드러져 보인다. 오직 펜의 선과 터치로만 표현해야 하는 펜화의 특성상 달빛 아래 은근히 빛나는 숲과 나무, 산의 능선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작업이 감탄을 자아낸다. 허진석 작가는 경주와 포항에서 무려 80여명의 펜화 제자를 길러낸 대표적인 펜화작가다. 허 작가는 펜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일단 시작해 보라’고 용기를 준다. “그림을 전혀 그려 보지 않은 사람들도 부지런히 배우다 보면 수준 높은 작품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제대로 그림 공부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조차 모르거든요.” 마침 이번 전시회에는 2023년 신라미술대전에서 입상한 김욱성 작가도 참여해 반가움을 더했다. 김욱성 작가는 다양한 색의 잉크를 이용한 컬러풀 한 펜화작품들을 선보여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이외에도 초가지붕의 눈을 과감한 선의 생략으로 처리해 감탄을 자아낸 김나현 작가, 신문지면을 활용해 놀라운 건축을 표현한 손상산 작가, 펜화와 먹의 과감한 조화를 보여준 김현석 작가, 여인과 도베르만을 이집트 벽화와 함께 표현한 대니 임 작가 등 14인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갤러리를 찾은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가람예술단이 전남 목포시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종합예술대회’에서 ‘신라고도가_여행’으로 종합대상을 차지했다. ‘신라고도가’는 경주의 명창 故장월중선 선생의 곡으로, 경주의 명소가 가사에 녹아있다. 이 곡은 류자현 작곡가의 독특한 편곡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져 재해석됐으며, 가람예술단의 창의적인 무대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대한민국예술축전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전국규모 종합예술 경연대회다. 경북 대표로 출전한 가람예술단은 이번 대회에서 국악, 사진, 영화부문 종합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차지했으며, 부상으로 상금 1300만원과 트로피를 받았다. 2003년에 창립된 가람예술단은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 음악(악), 노래(가), 춤(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연 기획과 연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함께 호흡하는 예술 단체다. <사진> ‘가람’이라는 이름에 담긴,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처럼, 젊은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우리 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공연 그룹이다. 가람예술단의 이장은 단장은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큰 상을 받게 돼 더 의미가 크다. 그 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가능하다’, ‘즐기며 하자’는 의지를 가지고 계속해서 도전해왔다. 그리고 가람예술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가족으로서 함께 해왔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예선부터 본선, 결선, 그리고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목포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의상부터 동작까지 하나하나 신경써주시고, 끝까지 도와주신 김경애 한국국악협회 경상북도 지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지지와 애정이 이런 성과를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 가람예술단은 앞으로도 예술과 문화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향후 목표에 대해 이 단장은 “지역의 전문예술단체들이 연결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또 지역의 귀중한 문화적 가치를 예술적 재해석을 통해 더욱 빛나게 하고, 지역민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신라 고도 경주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설화 이야기를 춤, 노래, 연기를 통해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지역 문화 공연예술 콘텐츠를 발굴하고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불어 지역의 문화재와 연계된 체험과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해, 문화재의 가치확산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3 경주문화재야행이 지난달 27일부터 3일간 교촌한옥마을과 월정교 일원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경주의 신화와 문화재를 연계한 야간 문화재 활용사업인 제8회 경주문화재야행은 다양한 예술 공연과 감각적인 역사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8夜 19개 야간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주의 밤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선사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문화재의 야간 연장개방과 문화해설사와 함께한 문화재 나들이, 청사초롱과 남천의 풍광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징검다리 건너기,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아트갤러리, 문화재 미술 체험 교실, 만파식적 인형극, 기술과 문화재를 연계한 4D 큐브 증강현실 체험, 다양한 버스킹과 샌드아트 공연이 교촌 한옥마을 일원에서 운영되어 경주를 이해하며 지역 문화재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기후변화의 위기를 교육자료와 얼음 문화재 조각으로 선보인 아이스카빙 환경 퍼포먼스와 전문가들이 달, 목성, 토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천체관측 체험도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동국대 국사학과 22명의 학생이 경주의 역사 및 프로그램 안내와 보조 운영 등을 맡아 관광객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경주문화원 조철제 원장은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화를 주도해왔으며, 유네스코에 인정된 세계적인 역사 문화도시인 경주에서 그 화려한 날개짓을 함께 준비했다. 2023 경주문화재야행이 경주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되길 기대하며, 내년에도 경주문화재야행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교육지원청 이음학교지원센터는 지난달 27일 ‘2023 지역연계 사회참여동아리 청소년 도시재생·역사문화단 역사 현장 탐사’활동을 실시했다. <사진> 청소년 도시재생·역사문화단은 지역 7개 고등학교의 도시재생 및 역사문화 관련 동아리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사회참여 동아리 단체로, 2019년부터 시작되어 경주를 청소년의 시각으로 활기차고 살기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현안 문제 개선과 정책 제안 및 지역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활동은 6개 고등학교 도시재생 및 역사문화 동아리 학생 90여명과 운영위원 20여명이 월정교를 시작으로 월성A지구 복원현장, 해자지구, 월성C지구 복원현장, 동궁과 월지 및 월지 복원현장과 황룡사지를 걸으며 옛 신라와 왕궁터와 문화재를 복원하는 현장을 탐사했다. 권대훈 교육장은 “이번 탐사 활동을 통해 미래를 위해 과거에서 진리를 배우는 좋은 계기다”면서 “경주의 도시재생을 위한 청소년들의 활동과 노력에 지속적인 지원과 응원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