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삼 년 만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쌍둥이의 태명은 오드리, 헵번이다. 나는 연예인을 동경하지 않았다. 연예인을 향한,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입덕을 스스로 제어했다. 그들의 무대 위 화려함을 동경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배울만한 어른을 찾았다. 생업에 바빠 부모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나에게, 동경하고 배우고 싶은 어른은, 무대 위의 화려함보다는 인간적으로 훌륭함, 배우고 싶은 인격, 그런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해, 그 흔한 연예인을 향한 팬심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때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아프리카 친구들을 돕는 오드리 헵번은, 올바른 어른의 모습이었다. 명화극장 <로마의 휴일>의 아름다운 여자, 엄청난 인기를 경험했음에도 흔들리지 않은 가정생활, 훌륭한 여인이자 어른의 모습, 거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낮은 곳을 찾아 봉사하는 모습 그 자체는 내가 찾던 어른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우리 쌍둥이의 태명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오드리’, ‘헵번’이 된 것이다. 내 인생의 첫 멘토였던 오드리 헵번은,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이라서 그녀의 이야기는 책이나 언론을 통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스무 살의 어린 대학생은, 어느새 세 아이를 둔, 반백 년을 살아온 아줌마가 되었다. 어릴 적 반백의 아줌마를 보면 세상을 다 알고, 인생을 다 산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막상 반백(물론 염색의 힘으로 까만 머리나 갈색의 머리를 유지하지만)의 아줌마가 되어보니, 여전히 나는 배우는 중이고, 아직도 많이 모자람을 안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를 보면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믿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들키기보다는, 미리 자수를 선택했다. 어른이라고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모르는 게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님을,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이 더 큰 부끄러움임을 매번 이야기한다. 너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삶도 배우면서 너희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그 말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줌마는 깨달았다. 자식을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자식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한다는 말이, 정작 나 역시도 정답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줌마는 오드리 헵번 이후, 다양한 멘토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 책을 통해 그들을 만났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연예인 중에서 훌륭한 가치관과 행동을 보이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는, 엄마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데, 그 친구가 평소에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참 멋진 친구구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고 싶을 정도였다. 어떤 연예인은 인기를 먹는 연예인으로서 타국에서 홍보 일정 중, 양국에 다소 민감한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한 기자에게 다가가 펜을 뺏고서 “당신의 기분이 어떠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는데, 기자는 곧 사과했다. 평소에 그의 연기력은 인정했지만 별로 관심이 안 가던 사람이었는데 그 일화 하나로,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평소에 개성 있는 연기로 좋아했던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예능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말들은 나를 이미 매료시켰었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배우, 윤여정 님. 한때 목소리가 이상하다느니, 이혼녀를 TV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항의 전화가 방송국으로 오게 했던 사람이,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아줌마는 고백한다. 아줌마는 나이만 먹은 어른이다. 아줌마는 누구의 멘토가 될 정도의 그릇도 철학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지 없는데 있는 척 안 하고, 모르는데 아는 척 안 하며 십 년 전보다, 오 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했거나 노력 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다. 아줌마는 오늘도 열심히 익어가고 있다.
베토벤은 고전파 작곡가로서 엄격한 음악 형식을 만들어 냈지만, 말기에는 그 형식을 스스로 깨고 낭만파로 가는 가교가 되었다. 5번 교향곡은 정해진 형식에 따라 음표들을 조합했을 뿐이다. ‘운명’이란 표제는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반면, 6번 교향곡에는 전원에서 느낀 감정이 실려 있고, 9번 교향곡은 아예 4악장에 실러의 시를 넣고 성악을 실었다. 음악 외에는 어떠한 예술적 장르가 혼재되지 않은 음악을 절대음악이라고 부른다. 미술로 치면 ‘무제(untitled)’인 셈이다. 고전파 작품들은 대체로 절대음악이다. 오늘날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2악장)은 ‘엘비라 마디간’이란 영화 덕에 사랑을 노래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차르트는 사랑을 표현하려고 이 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아름다운 곡일뿐이다. 반면 낭만파에서는 음악과 타 예술장르(또는 인간의 감정)의 혼합을 시도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는 제목 그대로 작곡가 본인의 환상체험이 녹아져 있다. 리스트가 창시했다고 알려진 교향시도 음악과 시(문학)의 결합이다. 따라서 낭만파 작품에는 대체로 곡명이 있기 마련이다. 낭만파 음악을 표제음악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은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음악을 양분했다. 이는 베토벤의 양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베토벤 음악의 절대성과 표제성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전자는 멘델스존, 슈만, 한슬리크, 브람스 등 보수파가, 후자는 베를리오즈, 리스트, 브루크너, 바그너 등 진보파가 주요 인사다. 두 세력의 대표자는 브람스와 바그너였지만 이들이 직접적으로 대립하진 않았다. 브람스는 기악을, 바그너는 성악을 주로 다루어 장르 자체가 서로 다르고, 브람스는 20살 연상의 바그너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향곡 분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와 브루크너(Anton Bruckner/1824-1896)가 정면충돌했다. 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브루크너는 9개(0번, 00번을 포함하면 11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둘 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1번 교향곡을 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도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었기에 베토벤을 계승하는 작품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바흐(Bach)와 베토벤(Beethoven)의 뒤를 있는 세 번째 B가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브람스와 브루크너 모두 B로 시작되는 성을 갖고 있었기에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리스트의 사위이자 바그너의 제자로 진보파의 심장에 있다가 보수파로 전향한 한스 폰 뷜러(Hans von Bülow/1830-1894)는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을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라고 했다. 브람스가 세 번째 B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반면, 낭만주의 교향곡의 전형을 보여준 브루크너는 베토벤과 말러 사이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았다. 오페라 탄호이저에 감명 받아 바그너 빠로 입문하여 한슬리크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브루크너를, 바그너는 진정한 세 번째 B로 생각했을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결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세기 말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던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의 연이은 죽음으로 보수파와 진보파의 싸움은 음악사의 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국가라는 집단을 만들면서부터 개인의 삶은 훨씬 종속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국가가 만들어진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거대집단의 강력한 힘을 통해 보호받으려는 다수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욕구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보다 강력한 지배체계가 존재함으로써 걸핏하면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낯선 침입자들로터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망이 씨족과 부족 사회를 거쳐 국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태평성대를 이룬 것은 지극히 일부일 뿐 국민들은 수시로 전쟁의 위험에 내몰리기 일쑤였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세금을 내기 위해 뼛골 빠지게 일해야 했다. 다행히 개인이 그 국가에서 지배적 위치에 올랐다면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국가의 덕을 보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지만 반대로 피지배적 위치에 있다면 그 삶은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가나 지배적 위치의 사람들은 피지배적 위치의 대중들에게 대해 대놓고 지배적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국가의 존재가 안정과 희망을 줄 것이라 가르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여하한 경우라도 충성하라고 강조한다. 이 국가 이데올로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교육’이다. 유사 이래 교육은 개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순기능적 매개체로 존재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국가를 떠받치는 ‘세뇌’를 전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교육의 주체가 국가이거나 그 국가와 함께 지배력을 공유한 기득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매우 당연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그 희생을 훌륭하고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교육을 계속함으로써 지배자들을 위한 무지한 국민의 희생을 조장해왔다. 이런 국가주의에 가끔씩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따지고 보면 그들이 성인으로 추앙받는 대철학자나 종교의 태두들이다. 부처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같은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짧은 노력은 절대다수 정형화된 교육을 받은 기득권자들에 의해 다시 악용되어 이번에는 국가는 물론 종교까지 국민과 신도들을 속이고 줄 세우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국가에 대한 과한 충성은 전체주의를 양산하고 과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계급화된 거대종교를 만들었을 뿐, 피지배층들의 고난과 가난은 아직도 지구상의 절대다수의 국가에 고쳐지지 않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경주사람들은 이런 국가주의에 가장 자주 노출된 국민들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삼국통일의 대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화랑 관창의 희생과 용맹에 매료되어 너나없이 화랑의 후예임을 자랑삼아 살았다. 그런 와중에 고작 15~6세밖에 안 된 어린 아이들을 사정없이 전쟁터로 몰아넣은 어른들의 파렴치는 털끝만큼도 비판되지 않았고 삼국통일로 인해 수십 년간 이유 없이 싸우다 죽은 수십만 병사들과 그보다 훨씬 많았을 백성들의 기구한 삶은 역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 무지렁이들이 국가와 왕을 위해 싸우다 죽을 때 과연 그 시대 국가와 왕은 얼마나 백성 개개인의 안녕과 안전을 지켜주었을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그나마 신라왕조와 귀족들은 관창과 반굴을 영광스럽게 포장해 자손 대대로 칭송이라도 했으니 아직도 우리는 오로지 국가에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고 믿은 채 살고 있다. 국가의 가장 숭고한 존재 이유인 ‘단 한 사람의 국민일망정 국가가 책임지고 지키고 살려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대전제는 잊어버린 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맹신마저도 무너지게 되었다. 최근 군에서 일어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되는 것으로 결정 난 것은 ‘국가에 대한 개인의 숭고한 희생을 책임져주지 않는 국가를 위해 국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역설을 여지없이 일깨운 꼴이다. 이것이 영화 ‘봉오동 전투’를 제목으로 걸어두었을 뿐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은 이유다. 다행히 이제는 그 많은 세뇌교육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이 국가에 우선한다는 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졌다. 그 시민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 가족을 희생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반대하는 모습을 지금의 정권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경주시립도서관이 10월 한 달간 한글날 추천도서 목록 배포 등 다양한 행사를 운영한다. <사진> 먼저 한글날을 맞이해 지난 6일부터 31일까지 ‘한글 또는 우리문학 그림책’ 추천도서 목록을 배포한다. 또 오는 17일부터 31일까지 ‘TRICK OR TREAT! 책 읽었으니 간식 주세요’ 행사를 실시한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민속신앙, 상상속의 괴물 주제의 도서관 추천도서를 읽고 간식을 받아가는 행사다. 프로그램으로는 △할로윈 특별 영어그림책 활동 △할로윈 특별 체험형동화구연 등을 실시한다. 할로윈 특별 영어그림책 활동은 5~8세를 대상으로 영어 그림책을 배워보는 활동이다. 오는 29일 오후 2시부터 40분 동안 실시되며, 당일 11시부터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현장접수로 활동 인원을 모집한다. 기존 운영되던 체험형 동화구연 프로그램도 할로윈을 맞아 할로윈 관련 그림책을 읽어주는 ‘할로윈 특별 체험형 동화구연 프로그램’으로 변경 운영 예정이다. 오는 28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0분 동안 실시되며, 이달 24일부터 27일까지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실 10월 행사에 대해 보다 자세한 사항은 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시립도서관 관계자는 “10월을 맞이해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실의 변화를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안강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품앗이’가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추억의 가설극장이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경주 안강청소년문화의집 활동장에서 지난달 23일 열린 추억의 가설극장에는 100여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찾아 추억을 달랬다. 추억의 가설극장은 품앗이가 지역 어르신 섬김을 위한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할매 할배 손잡고’라는 정감 있는 소제목을 달고 지난 5월부터 운영했다. 1960~70년대 1년에 한두 번씩 강가에 설치한 무대 위에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상영했던 추억을 재현한 무대다. 이날 영화 상영 전 국궁, 한궁, 터링 부스 등을 체험하고 흥겨운 노래로 정겨운 시간이 됐다. 마지막 오프닝 공연은 경주향가낭송문화예술원 단원과 배만식 울림예술원단장이 향가와 대중가요로 어르신들을 맞았다. 매회 이 같은 공연과 영화 상영이 입소문을 타면서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평균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찾았다. 특히 추억의 가설극장 운영을 위해 경주교육발전협의회와 사단법인 한국청소년화랑도연맹이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지원했다. 또 안강향토청년회 등 북경주지역 약 20여개 단체와 종교기관은 팝콘, 솜사탕, 떡·음료, 의자, 안경(돋보기) 등을 후원했다. 추억의 가설극장이 열릴 때마다 왔다는 안강읍의 박모 통장은 “안강청소년문화의집이 지역 어르신들에게 추억의 선물을 선사해 고마울 따름이다”며 “영화뿐만 아니라 체험이나 공연, 간식 등을 제공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어르신 섬기는 마음의 발로로 시작된 추억의 가설극장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안강청소년문화의집은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을 지원함과 동시에 지역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안강청소년문화의집은 청소년들을 위한 정보·문화·예술 중심의 수련 시설로 청소년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이용 가능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등이 전하는 이차돈 순교 이야기는 디테일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야기 전반의 내용은 비슷하다. 아래는 옛 문헌을 참고해 구성한 ‘이차돈의 순교’ 과정이다. 죽음 앞 당당했던 이차돈의 순교 527년 법흥왕(재위 514~540)이 불교를 받아들일 작정으로 첫 번째 사찰인 흥륜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소 신료가 벌떼처럼 일어나 반기를 들었다. 임금이 “나와 동반할 자가 누구냐”고 탄식하자 손들고 나선 이가 있었다. 법흥왕의 측근인 사인(17관등 중 12~13등) 염촉(이차돈)이었다. 당시 22살(혹은 26살)이었던 염촉은 “‘왕명을 잘못 전했다’고 꾸짖고 신의 머리를 벤다면 만민이 복종할 것”이라며 순교를 자처했다. 물론 법흥왕은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염촉은 순교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대는 베옷을 입었지만 뜻은 비단을 품었구나” 법흥왕은 무장한 무사들을 사방에 배치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대소 신료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너희는 내가 불법을 믿으려 사찰을 짓는다고 여겨 반역을 꾀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이에 대소신료들은 “절대 반역할 뜻이 없다”고 앞 다퉈 맹세했다. 이 대목에서 문헌의 기록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삼국유사’는 “‘사찰을 조성하라’는 왕명을 고의로 늦춰 전달했다’는 이유로 염촉의 책임을 물었다”고 전한다. 반면, ‘삼국사기’는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염촉과 절대 안 된다는 신료들 사이에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법흥왕이 고심 끝에 염촉에게 죄를 묻는 모양새를 갖췄다”고 했다. ‘해동고승전’은 “염촉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대소신료 앞에서 ‘왕명을 사칭해서 사찰을 지었다’는 죄목을 자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화의 근원으로 지목된 염촉이 끌려 나왔다. 사형집행관이 모자를 벗기고 손을 뒤로 묶은 다음 참수 명령을 내렸다. 이때 염촉이 심상치 않은 유언을 남긴다. “부처님께서 만약 신통력이 있으시다면 내가 죽은 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과연 그랬다. 염촉의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다. 이때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이 여섯 번이나 흔들렸다. 기록 속 이차돈 순교 과정이다. 기세등등하던 귀족들도 목에서 솟구친 흰 피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모두가 이차돈의 죽음 앞에서 부처의 위신력(威神力)에 허리를 숙였다. 이처럼 신라는 ‘이차돈의 순교’라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차돈 순교 7년 뒤인 534년(법흥왕 21)에는 천경림에 신라 최초 공인 사찰인 흥륜사 불사가 재개됐고 10년 뒤인 544년(진흥왕 5)에 이르러서 마침내 완공을 보았다. 이로써 신라는 불교를 통해 백성들 염원을 하나로 모으고 그 힘을 기반으로 다시 삼국통일의 위업까지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게 후대의 평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차돈에 대한 기억은 대중에게서 점점 사그라졌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여년이 지난 헌덕왕(재위 809~826) 대에 이차돈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생긴다. 이차돈 순교 덕분에 조성된 흥륜사에서는 10명의 불교 성인 인물상을 흙으로 빚어 금당에 모셨다. 이들은 동서나 5명씩 나누어 배차되었는데 이차돈은 유일하게 승려가 아니었음에도 아도·혜숙·안함·의상 등 여러 고승과 함께 나란히 동쪽에 당당하게 자리했다. 흥륜사에서는 또, 매달 5일 신도들이 모여 이차돈을 기리는 법회를 열었다. 817년과 818년 사이에는 대대적인 이차돈 추모 이벤트가 펼쳐졌다. 불교 승직 중 최고위직인 국통 혜륭 등 불교계 고위 인사를 총동원해 이차돈의 옛 무덤을 고치고 그 앞에 큰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이차돈순교비’다. ‘이차돈순교비’ 끝부분엔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등장한다. 신라 제36대 혜공왕 즉위 2년인 766년의 일이다. 한 무덤에서 유혼(幼魂, 어린 혼백)이 나타났다. 노백(老魄, 늙은 혼백)이 ‘마치 꿈에 본 내 아들의 혼 같다’며 조문했다. 그러자 유혼은 ‘옛날에 어떤 왕이 불법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소. 나는 염촉(이차돈)이오’라고 했다. 순교한 지 200여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잊힌 존재가 된 이차돈의 혼백이 세상에 나타나 ‘나를 잊었냐’고 꾸짖었다는 것이다. 향후 나라 안에서 이차돈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고 마침내 순교비까지 건립된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순교비엔 ‘그날의 사건’ 오롯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순교비’엔 이 같은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이 비석은 무엇보다 이차돈 순교와 관련된 1차 사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뒷날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다른 사료에 비해 이 비석은 818년 신라인에 의해 제작돼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흰 피가 솟았다’, ‘꽃비가 내렸다’ 등의 이야기가 먼 훗날 가공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신라인들이 수백 년 동안 이차돈의 순교를 역사적인 사실로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순교 중 흰 젖이 솟구치는 장면을 비석 한 면에 조각(부조)로 표현한 것도 이 비석의 독창적인 부분이다. 부조로 새겨진 이차돈의 옷 역시 신라시대 복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마멸 때문에 읽어낼 수 있는 글자가 너무 적다는 게 ‘이차돈순교비’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렇다고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차돈 순교의 전모를 밝힌 이 비석의 대략적인 내용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등의 내용 속에 인용돼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교비’의 명문이 잘 보일 때 뜬 탁본을 토대로 내용을 베껴 목판본으로 찍어낸 서첩(書帖, 글씨첩)도 몇몇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탁본 자료와 글씨첩, ‘삼국유사’ 등의 2차 사료 등을 참고해 순교비 명문을 ‘추정 판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차돈순교비’와 관련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23년 8월 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차돈순교비’를 주제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분석한 최신 성과를 공개한 것이다. 비문을 RTI 촬영으로 읽어낸 새로운 판독문이었다. ‘RTI’(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는 360도 각도에서 빛을 쏜 뒤 글자가 가장 잘 보이는 순간을 읽어내는 첨단 판독 기법이다. 그 결과 79자를 새롭게 판독해내고, 그동안 형태를 잘못 표기했거나(오기, 誤記) 다른 글자로 잘못 읽은(오독, 誤讀) 64자를 고칠 수 있었다. 이로써 총 875자(7행 25줄, 총 5면) 가운데 새로 읽어낸 79자를 포함해 73.4%인 642자를 판독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판독의 핵심은 비문의 첫머리에 해당되는 ‘건립연대’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순교비의 건립연대는 ‘원화 13년(818) 무술 8월’로 알려져 있었다. 마멸이 심해지기 이전의 탁본자료를 판각한 ‘원화첩’ 등이 소개한 연대였다. 하지만 마멸이 심한 순교비 실물에서는 ‘원화 13년’이란 구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RTI 판독을 통해 비석의 둘째 면 맨 오른쪽 행 중간 부분에서 ‘십삼’(十三)이란 글자가 보였던 것이다. ‘원화 13년’이 적힌 비석 둘째 면 맨 첫 글자(비문의 맨 첫 글자, 비석 첫째 면은 조각 기법으로 순교 장면이 새겨져 있음)도 분명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규장각본 등에선 ‘위’(▶형님, <胃+犬>, 이 두 글자 조합해서 ‘위’자를 만들어야 합니다)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번 RTI로 읽어낸 비문의 첫 단어는 ‘염’(猒)이었다.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글자는 ‘촉’(觸), ‘염촉’은 이차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번 판독을 통해 ‘위촉’을 ‘염촉’으로 고쳐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문 첫 두 글자 ‘염촉’ 뒤 한 글자 건너 ‘당기’(幢記)란 글자도 확인했다. ‘이차돈순교비’는 다른 이름으로 ‘백률사석당기’(石幢記)라고도 불려왔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염촉□당기’의 ‘□’는 ‘석’(石)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猒觸□幢記□□□□□□□□□□元和十三秊戊戌八月日佛…. ‘염촉□당기 원화 13년(818년, 헌덕왕13) 무술 8월 일에 부처가….’ 이번 RTI 판독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이차돈순교비’ 머리글이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달 27일 2층 교육장에서 2023 장애인식개선공모전 시상식을 가졌다. <사진> 이번 공모전은 2월 6일부터 8월 31일까지 사진 7건, 시 5건, 표어 4건, 그림 1건이 접수됐다. 시상식에서는 대상 1명, 최우수상 2명, 우수상 2명, 장려상 3명 총 8명에게 상장과 부상을 전달했다. 대상에는 김승훈(프리랜서), 최우수상 김도현(대학생)·권서림(프리랜서), 우수상 김세진(장애인활동지원사)·권경욱(중증장애인), 장려상 송정숙(장애인활동지원사)·김동민(가사)·최은영(교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을 수상한 김승훈 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인 것을 알게 됐다”며 “사진작은 개인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2006년 경북지역 최초로 설립한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자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실현하고,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경주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은 지난 4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7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 맞춰 행사장에 참여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전문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사진> 치매에 관한 의료상담을 통해 치매 질환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경주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은 신경과 전문의를 비롯해 감염병 예방 전담간호사, 환자 안전에 관한 전문간호사 등 공공의료 전담팀이 참여해 시 보건소, 경주소방서 119 안전요원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어르신들의 안전 활동에도 적극 협조했다. 또 기념행사 중간 중간 참여자 혈압과 혈당 체크를 시행해 의미있는 행사 진행에 일익을 담당했고, 치매 예방과 가족 돌봄에 관련 서적인 ‘치매 바로알기’, ‘치매! 돌봄의 지혜’를 배부해 주위의 호응을 이끌었다. 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은 신경과를 포함해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노인 가정의학과 등 진료과목과 해당 전문의를 갖추고 지역사회 공공의료사업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지역의 노인 환자를 일일 평균 180여명, 연인원 월평균 5475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특히 한방재활의학과를 개설해 양·한방 협진체계를 구축하는 등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회장 구승회)는 노인 회원들의 건강안전망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난 2020년 12월 병원과 협약체결을 맺어 놓고 있다. 지회는 시립노인전문 요양병원과 더불어 지역 내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다니며 의료에 취약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꾸준한 의료활동과 치매인식에 대한 개선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8일 경북궁 옆 북촌에서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다. 이름도 선명한 ‘경주 우리쌀 십원빵’ 가게가 북촌 초입에 떡하니 생긴 것이다. 그냥 ‘십원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경주’가 딱 찍힌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십원빵 가게 앞은 줄까지 제법 길게 늘어서 있다. 어쨌거나 고향 이름 단 빵 가게라 기자도 함께 줄을 섰다. 앞의 서너 팀이 빠지고 기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 대뜸 물어보았다. “아니, 경주 십원빵이 경주에 안 있고 왜 북촌에 나타난 겁니까?” 뜬금없는 물음에 사장님이 대답했다. “아. 저 경주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고향 이름을 써야지요!” 그런데 말씨가 완전히 서울 말씨다. 다시 물었다. “경주분 말씨 아닌데요. 사실은 저도 경주 사람이라서 반가워서 묻는 겁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안강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후 계림고를 나왔다고 알려주며 활짝 웃는다. 진짜 경주 사람이다. 이름은 이재윤 씨! 말씨에 경주 억양이 없는 것에 대해 서울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써 고쳤지만 친구들 만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이재윤 사장이 십원빵 가게를 연 것은 만 3개월 전. 황리단길에서 히트 친 경주십원빵이기에 서울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서 문을 열었고 특히 주말이나 휴일, 북촌에 사람이 몰리는 날에는 매출이 좋아 쉽게 정착했다며 안도한다. 직접 사서 먹어보니 빵이나 빵 속에 들어가는 치즈가 황리단길에서 사먹은 경주십원빵과 다를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십원빵의 모든 재료들은 황리단길 본점에서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 대부분의 경우 중앙의 음식이 지방으로 가기 쉬운데 경주십원빵은 황리단길을 벗어나 서울까지 온 것을 보면 특징 있는 먹거리가 지역을 떠나 대중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원빵이 또 다른 경주의 명물로 서울의 요충지에서 성공하고 있으니 기분 좋을 수밖에 없다.
남양주에 있는 석담 박물관이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의미 있는 전시회를 진행했다. 우리나라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 선두기업인 ‘코아주얼리’ 초청 특별전시회를 연 것이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공학기술로 만든 다이아몬드란 뜻으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완벽히 같아 전문가들조차 구분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획기적인 보석이다. 랩 다이아몬드는 공학적 환경만 충족되면 크기나 빛깔까지 조절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면 소비자 욕구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귀금속이다. 그러나 생산단가가 낮아 천연 다이아몬드에 비해 5분의 1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된다는 점, 생산이 자유로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 등의 원인으로 기존 다이아몬드 시장에 일대 파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소식을 꾸준히 알린 석담 박물관 남강우 관장은 “앞으로 랩 다이아몬드는 귀금속업계의 도덕성을 확인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며 랩 다이아몬드가 미칠 악영향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기왕 생산에 탄력이 붙은 랩 다이아몬드라면 소비자에게 올바로 알려 긍정적으로 시장을 형성하도록 저변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특별전을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랩 다이아몬드는 휘황찬란한 자태가 두드러져 천연 다이아몬드와 구별되지 않았고 함께 전시된 지르코늄과 비교해 확연히 구분될 만큼 영롱한 광채를 빛내고 있었다. 이미 랩 다이아몬드가 시판에 들어간 이상 경주도 랩 다이아몬드 시장이 열려 있거나 앞으로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다. 경주 소비자들이 충분히 이를 알고 대응해야 구매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석담박물관은 설립자 최팔규 회장이 우리나라 귀금속업 발전을 꾀하고 전통 세공 명장들의 기술을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신념으로 세운 박물관이다. 이 뜻에 전국의 명장들과 귀금속업계 독지가들이 동참해 작품을 기증하거나 전시를 허락해 명실공히 우리나라 귀금속업계 최고의 전시장으로 탄생했다.
내가 교촌에 살았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아주 큰 혜택이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리 사물이나 현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데다 탐구심까지 강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교촌과 최부자댁에 대한 많은 의문들을 내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그게 내가 최부자 관련 책을 쓰면서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 준 것도 사실이다. 내가 혼신을 기울여 쓴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어쩌면 그런 호기심과 탐구의 결과일 것이다. 그 호기심과 탐구가 4년 가깝게 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선생님을 모시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들은 동력이었다. 그 질문과 대답의 기간 동안 최염 선생님이 가장 자주 하신 말씀 중의 하나가 “아니, 그런 걸 다 물어보는가?”였고, 그런 다음에는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런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네!”라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이를테면 선생님 기억 속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었기에 기억의 어느 구석에 갈무리하신 채 잊어버리신 옛날 이야기들을 내가 하나씩 하나씩 찾아서 기억 밖으로 꺼내드리는 작업을 한 셈이다. 토르에 나오는 바이프로스트가 교촌의 곳곳에 널려 있다니, 믿을 수 있는 말인가?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교촌에만 있는 최부자댁 ‘웜홀(worm hole)’이다. 독자들은 전통적인 한옥 마을에 웜홀이 있다고 하니 이게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의아해하실 것이다. 웜홀은 우주현상을 말할 때의 용어로 빛의 속도 보다 빠르게 우주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최단 거리를 말한다. 인기 마블 SF영화 중 하나인 ‘토르’에 보면 우주의 중심 아스가르드의 관문을 지키는 헤임달이 ‘바이프로스트(Bifrost)’라는 다리를 만들어 아스가르드와 다른 우주 공간을 연결시키고 그 다리를 통해 순식간에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바이프로스트 역시 웜홀의 한 가지인 셈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웜홀은 우주가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 있는 3차원적인 평면이나 공간의 기준에 있지 않고 불특정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가정에서 성립하는 이동 통로다. 기왕 웜홀 이야기가 나온 걸음에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보겠다. 막대 고무풍선을 둥그렇게 말아서 끝과 끝을 서로 마주 보게 해 두었다면 우리가 아는 일상의 우주는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가기 위해 한 방향, 이 고무풍선에서 본다면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가기 위해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웜홀은 a와 b 사이인 c 지점만 건너뛰면 된다. 때문에 아무리 멀리 있는 곳이라도 웜홀을 통하면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웜홀이 한옥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 교촌에 있다고 하니 이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말인가? 그러나 실제로 교촌에는 웜홀이 있다. 그것도 교촌의 오래된 기와집들의 집집마다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과 통한 작은 아버지댁 뒷담에 나 있는 쪽문을 통해 자주 뒤솔밭으로 다녔다. 이 쪽문을 열고 나가면 뒤솔밭으로 가는데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대문을 열고 동네를 돌아 뒤솔밭으로 가려면 최소한 5~6분은 걸렸다. 이런 쪽문이 우리 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동네 큰 기와집들에는 어김없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응당 옛날 큰 기와집에는 뒤로 통하는 쪽문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한옥 마을을 방문해 보니 쪽문이 이렇게 일괄적으로 달린 마을이 한 곳도 없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안동이나 강릉의 큰 기와집들도 유심히 살펴본 바 이런 쪽문이 달린 곳이 없었다. 심지어 경주의 큰 기와집들을 둘러봐도 집 밖으로 난 쪽문을 달고 있는 한옥은 없었다. 내가 불민해 쪽문 있는 집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쪽문을 둔 집이 없었고 집들이 이렇게 일괄적으로 쪽문을 가지고 있는 마을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쪽문에 대해 최염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더니 최염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셨다. “그건..., 친척들이 빨리 모이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문이었지. 무슨 회의를 하거나 급히 전할 일이 있으면 그 쪽문으로 나다니면 쉽지 않았겠나?”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 쪽문들이 웜홀의 기능을 정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최염 선생님은 그런 내가 좀 이상하게 보이셨는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되물어보셨다. 내가 그 쪽문이 경주 교촌에만 있는 ‘웜홀’이라 말씀드렸더니 재미있는 비유라며 허허 웃으셨다. 지금까지 다소 우스개처럼 말했지만 이 쪽문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다. 먼저 최염 선생님 말씀처럼 이 문은 집안의 급한 일을 전하기 위한 최단거리 웜홀이라는 점에서 교촌의 기와집들이 모두 최부자댁 가솔들이 살았다는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점이다. 이미 몇 차례 언급했듯 교촌의 오랜 기와집들은 모두 최부자댁 나름의 댁호가 붙어 있을 만큼 어느 집 하나 빼놓지 않고 최부자댁 가족과 친인척들이 모여 살았다. 집과 집이 남이 아니고 언제건 드나들 수 있는 가족이고 친척이니 서로 왕래하기 편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쪽문이었던 것이다. 만약 최부자댁 본가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이런 쪽문을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쪽문 하나만 봐도 교촌 전체가 최부자댁이었다는 말이 성립한다. 최부자댁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쪽문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신비의 문이다. 또 하나 중요하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최부자댁 사람들이 얼마나 실용적으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옥을 관심 가지고 둘러보면 알겠지만 어지간히 큰 집이라도 담을 헐고 담 뒤나 옆에 쪽문을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 담을 헐어 문을 낸다는 것 자체가 꺼리는 일이기도 하고 보안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해도 돌아서 다니면 그뿐, 굳이 문까지 내겠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대문을 나와 길을 돌아다닌다고 가정한다면 대가족이 어울려 살고 가복들까지 드나드는 와중에 그 많은 식솔들이 겪는 불편들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쪽문은 대문이 남쪽으로 트인 곳은 동쪽이나 서쪽 혹은 북쪽으로, 대문이 서쪽으로 트인 곳은 북쪽이나 동쪽으로 나와 있는 등 편의에 맞게 뚫어놓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러니 이 쪽문이 있음으로 해서 절약되는 이동 시간의 총합은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지난번 경주에 갔을 때 일부러 이 쪽문들을 둘러보았다. 몇 군데 집의 쪽문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곳곳에 쪽문, 그 나지막하고 좁은 웜홀들이 남아 있어서 적잖이 반가웠다. 빛바랜 작은 문으로 200년 넘게 드나들었을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빨리 감기’로 머릿속에 감아 보았다. 아마 수백만 번의 왕래가 이 작은 문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이 쪽문을 통해 어쩌면 조선 후기의 내로라 하는 유생들과 전국의 이름 높은 과객들이 드나들었을 것이고 또 어쩌면 독립운동하던 열사들도 몰래 드나들었을지 모른다. 그런 한편으론 대문으로 드나들기 어렵거나 민망한 일들이 이 문을 통해 이루어지지도 않았을까? 이쯤 생각하니 쪽문이 그냥 쪽문이 아니고 엄청난 비밀을 품은 신비한 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살던 구새댁, 우리집은 오래전의 위용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고 작은 아버지댁은 집 주인이 오래 비워둔 탓인지 마당에 풀이 우거지고 집도 조금 내려앉아 예전의 위용을 찾아보기 어려워 안타까웠다. 한옥은 아무리 고대광실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주저앉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크고 위용 있던 집이 옹색하게 퇴락하는 모습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SF영화 토르에 나오는 바이프로스트는 세상의 종말, 나그나로크를 겪으면서 사라졌다. 그 덕분에 토르는 먼 길을 갈 때마다 수고스럽게 묠니르 망치를 휘둘러서 날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다행히 지금도 교촌의 웜홀, 최부자댁 바이프로스트는 곳곳에 남아 있다. 세상 바람들이 그것을 몰라보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말이다.
건강검진에서 자주 발견되는 지방간은 알코올 섭취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아무런 증상이 없기에 평소처럼 지내다가 더 큰 병으로 발전되기도 하므로 주기적인 간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성인을 대상으로 복부초음파 검사를 직접 하다 보면 식생활과 생활습관의 변화로 인한 지방간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질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비유하자면 마음의 감기는 우울증이고 간의 감기는 지방간이다. 지방간의 정확한 정의는 지방이 간에 침착되는 비율이 5% 이상인 경우를 의미하며, 대개는 검진을 목적으로 하는 복부초음파 검사에서 진단된다. 대부분의 지방간은 아무런 증상 없이 검진 등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며 과한 음주,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에 동반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부신피질호르몬제나 여성호르몬제 등의 약제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심한 영양부족에 의해서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음주 여부에 따라 분류 지방간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술을 들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알코올성 지방간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분류한다. 하루에 술을 4잔 이상 마시는 경우는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분류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분류한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방간은 대개 증상을 동반하지 않으나, 일부의 경우에는 피로감과 권태감, 우상복부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으며, 간기능검사(AST, ALT)나 복부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진단된다. 주기적인 ‘간’과의 소통 현재까지 지방간을 치료하는 약물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기에 지방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기저상태에 대한 진단과 파악이 중요하다. 침묵의 장기인 간은 선제적 검사를 통해서 질환으로의 발전을 예방할 수 있기에 주기적인 ‘간’과의 소통이 꼭 필요하다. 또 지방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다른 질환에 대한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되므로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은 꼭 갖춰야 할 생활습관이다.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 치료는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우선 술이 원인이 되는 경우에 음주가 지속되면 지방간을 넘어서 간염, 간경변 등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이 원칙이다. 사회생활로 인해 완전한 금주가 어려울 경우 일주일에 1~2회 정도로 횟수를 줄여야 한다. 비만이 원인인 경우에는 총 섭취칼로리를 낮게 유지해야 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과 신선한 채소를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운동을 통해 체내에 축적된 지방질을 제거해야 한다. 식이요법으로는 금식이나 단식보다는 세 끼 식사를 꼬박 챙겨 먹으면서 섭취 칼로리를 줄이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고루 갖춘 식사를 하되, 야식이나 간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운동요법으로는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유산소운동이 크게 도움이 되며 최소한 일주일에 3회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진행하는 것이 좋다. 당뇨병과 고지혈증이 원인인 경우에는 기저질환의 관리가 각별히 필요하다. 지방간 진단의 가장 기본! 혈액검사 지방간 진단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검사는 혈액검사다. 알코올성 지방간에서는 AST가 ALT보다 높은 경우가 많고, 비알코올성 지방간에서는 ALT가 AST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GGT(gamma GT)는 알코올, 비알코올 지방간에서 모두 증가하며, 특히 알코올 지방간에서는 음주량과 비례해 GGT 수치가 올라가므로 경과 관찰에 도움이 된다. 글: 오민석 한국건강관리협회 인천광역시지부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공기 중에 묵직한 유화의 향기와 가볍게 움직이는 붓질이 조화롭게 섞여 깊고 풍성한 가을 경치를 만들어낸다. 생명이 넘실거리는 숲이 전경을 이루며, 그 뒤편으로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오는 평온한 들판의 모습이 연속된다. 반혜경 작가의 특별한 색채와 향기, 그리고 감성으로 가득 찬 ‘계절의 숨결’전이 오는 23일까지 복합문화공간 로드22 내 갤러리 미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과 시점을 담은 작품이 전시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 속에서 발견된 아름다움과 복잡함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독특한 관찰력과 예술적인 해석력을 보여준다. 세심하고 깊은 관찰력으로 캔버스 위에 담아낸 자연의 모습은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잊혀져 있던 순수함과 설렘이 다시 한번 상기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유화로서만 가능한 짙고 묵직한 색감과 부드럽면서도 강렬한 붓질로 계절별 변화하는 자연 풍경을 담아내며 독특한 감성적 접근법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깊이 있는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반혜경 작가는 “이번 전시회는 저의 관점으로 바라본 자연과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특히 겨울의 눈 내린 풍경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의 복잡함과 잡음에 오염된 자연이 하늘의 축복인 첫눈으로 가려져 깨끗해지고 정화되면 마치 태초의 상태로, 혹은 어릴 적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라며 겨울 풍경에 대한 그녀만의 해석과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이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사색과 함께,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아름다움과 순수함, 설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풍경 한 폭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미지 관장 역시 작가와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며 “작가의 시각을 통해 재구성된 자연 경치와 그 안에 담긴 의미로 인해 일상에서 잊혀진 순수함과 설렘이 다시 상기될 수 있길 바란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연과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체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며 지역민들의 관심과 관람을 바랐다. 부산 출신 반혜경 작가는 개인전 3회와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으며, 부산미술대전에서 다수 입상했다.
2023 경주국제뮤직페스티벌이 15일 저녁 6시 월정교에서 특설무대에서 막을 올린다. <사진> 이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인 폴포츠와 국내에서 사랑받는 하현우, 차지연 등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며, 특히 폴포츠와 지역의 소프라노 이민정과의 협연이 진행돼 지역 예술가와 시민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방성호 지휘자가 이끄는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가 출연해 러시아의 유명 트럼펫터인 알렉스 볼코프와의 협연을 진행한다. 경주국제뮤직페스티벌 관계자는 “올해도 시민과 관광객들은 월정교와 교촌교 사이에 설치된 수상무대에서 물 위에 비치는 월정교 야경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경주만의 정취에 작품성, 대중성을 겸비한 연주를 더해 국내 주요 국제음악제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경주국제뮤직페스티벌은 모든 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약 2000석의 객석이 준비돼 있다. 관람객 입장은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선착순으로 가능하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www.garts.kr) 혹은 전화문의(054-777-630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선희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옻칠과 도자의 반란’이 황리단길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 란에서 15일까지, 그리고 이어서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경북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지속 가능한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의 환경 친화적 접근법을 통해 형성된, 옻칠과 도자를 중심으로 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우리 문화와 예술성을 더욱 격상시키려는 노력을 작품에 담고 있다. 17점에 달하는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도자 쌀독으로 제작됐다. 이는 옹기제작 기법인 타렴의 기법에 의해 완성됐다. 작품은 깊이 있는 색감과 옻칠로 마무리돼 공예와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동국대 미술학과 출신인 김선희 작가는 일산 선생으로부터 전승받은 타렴 방식으로 만든 독 형태를 입체적 공간 속에서 창조적으로 표현하며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구축했다. 경주박물관 별관에 보관 중인 저장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그녀의 작품은 옻칠과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연에서 얻은 친환경 재료들로 제작된 이번 작품은 쌀독의 예술성과 자연 친화성을 더욱 강조하며, 27년 동안 예술인으로서 경험한 여정을 풀어냈다. 김선희 작가는 “도자를 깨고 옻칠로 붙여 만든 도태칠기의 전통적인 면을 예술적 기법으로 재해석하며, 창작예술과 문화예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을 제작하고 싶었다. 더불어 친환경적 재료인 흙, 자연 옻, 물푸레나무, 감포바다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로 만든 손잡이, 종이 끈 등을 활용해 쌀독의 예술성과 자연친화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쌀독 작품은 오랜 시간과 공정이 필요한 작업으로서, 그 결과물들은 그동안의 경험과 시간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접근법이 바로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면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예술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선희 작가는 2027년에 세계 예술인 기구와 협력해 경주에서 10일간의 전시 및 공연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경주의 문화예술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제50회 신라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라예술제’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예술제는 공연, 전시, 제례 및 학술 행사 등의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어 종합예술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더불어, (사)한국예총 경주지회 7개 지부의 협력 정신이 결합해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진행 과정에서 몇 가지 개선점도 지적됐다. 이번 예술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는 뮤지컬 ‘세 그루 아래 만나다’는 처용, 홍도, 최준 등 지역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돼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정순임(국악), 이애자(연극) 등 지역 원로 예술인이 함께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전시회 ‘다시, 경주를 노래하다’는 지난 50년간 추억의 신라문화제 사진 30점이 전시돼 방문객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렸다. 또 문인화 30점, 미술품 40점도 함께 전시됐다. 뮤지컬 공연 전에 진행된 육부촌 풍물퍼레이드는 봉황대 인근 6곳에서 풍물패 300여명이 신명나게 축제를 알리며 봉황대 특설무대까지 풍물패 소리와 함께 인파를 몰고 왔다. 더불어 지역 작가들의 야외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만들어진 ‘경주를 담다’ 대형작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개선점이 지적됐다. 프로그램 시간이 일관되지 않아 관란객들은 행사일정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 리허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성돼 혼란스런 상황을 초래했다. 또 본격적인 공연이 진행되기 전까지 시민들의 참여형 활동의 부재 역시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경주예총 김상용 회장은 “이번 신라예술제는 우리 경주예총 소속 단체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무대에 올린 첫 번째 도전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신라예술제를 진행하면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수정하고 개선해, 앞으로는 모든 지역예술가와 시민들이 한데 모여 소통하고 참여하는 예술제로 발전시키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신라예술제 기간에 경주문화원 주관으로 펼쳐진 풍물경연대회와 무형문화재 풍류한마당은 총 9개팀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고, 신경주농협풍물단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무형문화재 풍류한마당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보존회, 도지정 문화재인 구미무을농악보존회, 진안중평굿보존회가 참여해 흥겨운 가락을 울려됐다. 더불어 6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의 ‘신라학술제’, 불국사의 ‘불교문화 영산대제’를 비롯해 8일 원학연구원의 ‘원효예술제’ 등의 다채롭고 풍성한 제례행사도 함께 열리며 관람객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 한편 ‘신라예술제’에 이어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는 화백제전, 실크로드 페스타, 달빛난장 등 시민들과 관광객의 오감을 사로잡을 축제 ‘신라문화제’가 진행된다.
동국대 WISE캠퍼스 CAMPUS Asia-AIMS 사업단은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말레이시아에서 Global Tourism Conference (GTC) 2023: Smart Tourism and Sustainability를 공동 개최했다. <사진> GTC 2023: Smart Tourism and Sustainability는 아세안 지역 내 스마트관광 산업의 전문가 양성 및 저변 확대와 신진 연구자의 발굴을 위해 마련됐다. 컨퍼런스는 특별 심포지엄, 학술 발표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스마트관광에 대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연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됐으며, 학교의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들이 Scientific committee로 참여해 CAMPUS Asia-AIMS 사업의 학술교류 확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됐다. CAMPUS Asia-AIMS 사업은 교육부가 한-아세안 대학 간 학점 상호인정, 공동 커리큘럼 개발 및 운영, 학술교류 등을 통해 아세안 지역 전문가 양성 및 대학 간 학술교류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속가능한 스마트관광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세안 호텔관광경영 대학들과의 학술교류의 필요성이 대두돼 공동 컨퍼런스를 주최했다. 권주경 사업단장은 “아세안 지역의 지속가능한 스마트 관광에 대한 연구가 확산 되어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는 자리가 되고 더 나아가 동국대 WISE캠퍼스의 지속가능한 스마트관광의 학술적 역량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국대 CAMPUS Asia-AIMS 사업은 호텔관광경영전공에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스마트관광도시로 선정된 경주를 배경으로 아세안 지역 내 지속가능한 스마트관광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에도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파트너 대학들과 함께 온/오프라인 컨퍼런스와 포럼으로 활발한 학술교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신철장학회(이사장 신철스님)가 우수 학생에게 졸업때까지 매 학기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진> 동국대 WISE캠퍼스 신철장학회는 지난 10일 장학생 37명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신철장학회는 화림정사 주지이신 신철스님이 지난 6월 동국대 WISE캠퍼스에 불교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장학금 3억원을 기부해 설립됐다. 동국대 WISE캠퍼스는 스님의 뜻에 따라 우수 학생 37명을 선발했다. 이날 장학생에게는 이번 학기 1인당 200만원의 장학금을 수여하며, 졸업 시까지 매 학기 장학금을 수여하게 된다. 이영경 총장은 “신철 스님께서 불교의 미래를 밝힐 인재 양성을 발원하며 우리 대학에 기부해 장학금이 마련됐다”면서 “신철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된 여러분은 자부심을 갖고 스님의 뜻을 늘 기억 하면서 스스로를 인재로 가꾸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불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은 엄격한 면접과 심사를 통해 선발됐으며 졸업때까지 매 학기 장학금을 받게 된다.
서울 동작구의 어느 유명 중국식당 사장님이 기자에 강력히 추천한 경주 맛집이 있었다. 감포읍 대본리에 새로 생긴 초밥 전문 일식당 ‘등 푸른 바다’다. 뒤에 경주로 간 기자는 관광객인 양하고 그 초밥집에 가보았다. 감포의 여느 음식점들에 비해 돋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어서 우선 느낌이 좋았다. 홀에 들어서니 깔끔한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바 테이블에 주방장으로 보이는 분이 신중하게 요리하는 장면이 보이고 창밖으로는 감포의 푸른 바다가 보인다. 그 주방장이 이상권 사장이었다. 바 테이블 앞에 앉아 ‘오마카세’를 주문한 기자는 이것저것 대화를 시도했다. 올해 초 감포로 왔다는 이상권 사장은 하나씩 초밥을 내주는 틈틈이 기자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초밥의 맛을 음미하면서 또 한편으론 이상권 사장의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래도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상곤 사장이 내놓은 초밥의 특별한 맛에 온통 신경을 빼앗겨서다. 여느 초밥들에 비해 차별화된 맛이다. 초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싱싱함과 풍미다. 이상권 사장의 손에서 하나씩 만들어져 나오는 초밥들은 이 요건을 온전하게 갖추었다. 여러 가지 초밥 중에서 특히 고등어 초밥이 특유의 향을 내며 입속에 녹는 기분이 좋다. ‘등 푸른 바다’의 간판 초밥이 될 듯하다. 이상권 사장이 처음 일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카와사키와 요코하마 등의 정통 명인들을 만나 정식으로 수련하며 일식의 정수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1994년 귀국한 이상권 사장은 서울에서 일식당과 호텔, 외식업체들을 중심으로 근무하던 중 2011년 마포구 연남동에서 자신의 실력을 전격 인정한 후원자를 만나 ‘시로구마’라는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를 열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식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로구마는 번창일로를 걸었다. 그러다 이상권 사장은 2016년 문득 여수로 발길을 돌린다. “당시 여수가 한창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였고 특히 퀄리티 높은 음식 문화로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마침 시로구마에서 송년회를 열었던 여수 ‘마띠유 호텔’ 대표님이 저의 솜씨에 감탄해 적극 권해 여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호텔 안에 200평 규모의 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한중일 코스요리를 만들어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매년 매출이 오를 만큼 대히트 쳤습니다. 이때 시로구마 사장님도 흔쾌히 지원해주셨고 그 호텔에 당신의 중국식 요리까지 전수해주셨지요” 이상권 사장은 말끝에 ‘그 깐깐한 여수에서 말입니다.’를 강조하며 슬며시 웃는다. 그러는 사이에도 초밥들이 연이어 나온다. 날치알과 연어알 쌈, 전복 내장과 전복 회, 숙성시킨 고등회에 잘게 쓴 파를 곁들인 초밥, 토치로 그을린 참돔, 멋진 장식을 곁들인 숙성 고등어 회, 소라와 연어알의 조합, 신선한 멍게, 신선한 야채 튀김, 각종 알들과 회들로 이루어진 회덮밥, 등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이상권 사장은 자신의 초밥이 일부 맛에 예민한 고객에게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하는데 입맛 까다로운 기자의 아내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잘도 먹는다. 기자는 대식가로 소문났는데 충분히 배부를 만큼 잘 먹었다. 다시 말해 맛도 좋고 양도 많았다는 말이다. 소중한 분들과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의 명소다. 왜 경주로 돌아왔느냐는 물음에 이상권 사장은 서울에서 일할 때부터 경주가 늘 마음속에 있었다고 술회했다. 특히 감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 특히 감포에서 잡히는 신선하고 싱싱한 수산물들과 경주 바다의 대명사가 된 삼치, 최근 수온 상승으로 어획량이 늘어난 동해산 참치들을 소재로 자신의 꿈을 키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밥 먹으면서 눈에 띈 장면 하나. 이상권 사장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몇몇 고객들이 초밥 포장을 요구하는데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한다. 초밥을 포장해 가다 보면 아무리 빨리 가도 초밥 특유의 맛이 변한다는 것. 돈 벌기보다 초밥은 만든 그 자리에서 먹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엄격하고 특별한 신념이다. 이상권 사장은 꿈에 그리던 경주로 돌아왔지만 그래서 더욱 겸손하게 고향 사람들을 모시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개업식도 하지 않았고 특별히 광고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단골 고객들도 늘었고 입소문도 조금씩 나기 시작해 어렵지 않게 안착하고 있다. 인구절벽에 코로나의 오랜 여파로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느는 와중에 자신의 실력 하나만 믿고 고향으로 돌아온 일식의 장인 이상권 시장. 초밥이라는 특별한 메뉴를 통해 새로운 경주의 맛을 열어갈 그의 포부가 ‘등 푸른 바다’처럼 푸르다.
이상기후 현상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작은 움직임으로 조금이나마 기후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일회용품을 줄이고 또한 갖가지 쓰레기의 발생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본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귀찮고 작지만 소중한 움직임을 하루하루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경주 비건 빵집, ‘Smells like Bread’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 동물을 보호하고자 동물성 식재료를 배척하며 채식주의를 강하게 주장하기에 일반적으로 좋은 이미지로만 비춰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비건은 또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건강을 위한 식물성 식재료 사용과 기후위기 상황에 탄소중립을 위한 동물성 식재료 지양 등 예전과는 결이 다른 방식의 음식문화로 퍼지고 있는 것. 용강동의 ‘Smells like Bread(스멜스 라이크 브레드)’는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한 비건 빵집으로 비건 문화의 올바른 문화 확산과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 7월에 문을 연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는 김민재 씨와 어머니 황숙향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빵을 매우 좋아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밀가루와 유제품 종류를 먹지 못하는 황숙향 씨는 아들 김민재 씨와 함께 비건 음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비건 빵을 만들었고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가 문을 열게 됐다. 가게 인테리어에 노란색을 많이 써 손님들에게 노랑빵집으로 불리기도 하는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는 비건 빵집이라는 이름에 맞게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다. 제빵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우유와 달걀은 물론, 백설탕과 식품첨가제물 등도 쓰지 않는 건강한 빵을 만들고 있다. 건강은 물론, 맛도 함께! 김민재 씨는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가 건강하고 맛있는 비건 빵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건강하고 맛있는 비건 빵을 통해 사람들이 비건에 대한 거부감이나 오해가 해소되길 희망하고 있는 것.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에서는 밀가루가 아닌 100% 쌀가루로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동물성 식재료를 대체하는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있죠. 우유를 대신해 두유를 사용하고, 콩고기 패티를 사용하는 등 오로지 식물성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건 음식은 일반 음식에 비해 약간 밋밋하거나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를 바꾸기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고자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손님들의 반응도 좋고 단골도 많이 생겼죠. 가게를 오픈한지 3년차인데 경주에서는 비건 빵집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합니다. 손님들 또한 비건에 대해 물어보시기도 하면서 관심을 갖는 모습에 비건 음식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에서는 최대한 경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주재료로 하고 있어 신선한 재료와 불필요한 재원 낭비를 최소화 하고 있다. 비건과 제로웨이스트의 작은 실천 일반적으로 비건 음식 문화는 동물 보호는 물론 탄소중립과 연관돼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동물성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기에 환경오염과 불필요한 재원 낭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건 빵집인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는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동시에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웨이스트 또한 실천하고 있다. 이는 어머니와 누나의 영향이라고 김민재 씨는 설명했다. “비건 빵을 연구한 어머니와 친환경 화장품을 판매했던 누나 덕분에 제로웨이스트라는 활동이 예전부터 낯선 단어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비건 빵집을 운영하며 비싸더라도 생분해 비닐, 종이 포장을 선호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플로깅에 수시로 참가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적인 삶,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의 김민재 씨는 친환경적인 삶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의식을 하고 행하면 오히려 잠깐의 행동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친환경적인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 많은 분들이 하나씩, 그리고 작은 부분에서 실천하고 있죠. 마트에 갔을 때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준비하는 것,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것들도 바로 친환경적인 삶의 일부입니다. 오히려 무언가 거창하게 하려고 의식을 하는 순간 그것은 족쇄가 돼 운신의 폭을 좁히며, 길게 봤을 땐 친환경 삶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거죠. 쉽게,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멜스 라이크 브레드’는 친환경 비건 음식 문화를 경주에 자연스럽게 알리는 곳이 되길 희망합니다. 비건이라는 다소 생소한 말에 얽매이지 않고 어렵지 않은 곳, 비건이라는 식문화를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곳, 또한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