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삼 년 만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쌍둥이의 태명은 오드리, 헵번이다. 나는 연예인을 동경하지 않았다. 연예인을 향한,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입덕을 스스로 제어했다. 그들의 무대 위 화려함을 동경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배울만한 어른을 찾았다. 생업에 바빠 부모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나에게, 동경하고 배우고 싶은 어른은, 무대 위의 화려함보다는 인간적으로 훌륭함, 배우고 싶은 인격, 그런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해, 그 흔한 연예인을 향한 팬심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때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아프리카 친구들을 돕는 오드리 헵번은, 올바른 어른의 모습이었다. 명화극장 <로마의 휴일>의 아름다운 여자, 엄청난 인기를 경험했음에도 흔들리지 않은 가정생활, 훌륭한 여인이자 어른의 모습, 거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낮은 곳을 찾아 봉사하는 모습 그 자체는 내가 찾던 어른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우리 쌍둥이의 태명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오드리’, ‘헵번’이 된 것이다.
내 인생의 첫 멘토였던 오드리 헵번은,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이라서 그녀의 이야기는 책이나 언론을 통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스무 살의 어린 대학생은, 어느새 세 아이를 둔, 반백 년을 살아온 아줌마가 되었다. 어릴 적 반백의 아줌마를 보면 세상을 다 알고, 인생을 다 산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막상 반백(물론 염색의 힘으로 까만 머리나 갈색의 머리를 유지하지만)의 아줌마가 되어보니, 여전히 나는 배우는 중이고, 아직도 많이 모자람을 안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를 보면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믿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들키기보다는, 미리 자수를 선택했다. 어른이라고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모르는 게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님을,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이 더 큰 부끄러움임을 매번 이야기한다.
너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삶도 배우면서 너희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그 말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줌마는 깨달았다. 자식을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자식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한다는 말이, 정작 나 역시도 정답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줌마는 오드리 헵번 이후, 다양한 멘토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 책을 통해 그들을 만났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연예인 중에서 훌륭한 가치관과 행동을 보이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는, 엄마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데, 그 친구가 평소에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참 멋진 친구구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고 싶을 정도였다.
어떤 연예인은 인기를 먹는 연예인으로서 타국에서 홍보 일정 중, 양국에 다소 민감한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한 기자에게 다가가 펜을 뺏고서 “당신의 기분이 어떠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는데, 기자는 곧 사과했다. 평소에 그의 연기력은 인정했지만 별로 관심이 안 가던 사람이었는데 그 일화 하나로,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평소에 개성 있는 연기로 좋아했던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예능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말들은 나를 이미 매료시켰었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배우, 윤여정 님. 한때 목소리가 이상하다느니, 이혼녀를 TV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항의 전화가 방송국으로 오게 했던 사람이,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아줌마는 고백한다.아줌마는 나이만 먹은 어른이다. 아줌마는 누구의 멘토가 될 정도의 그릇도 철학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지 없는데 있는 척 안 하고, 모르는데 아는 척 안 하며 십 년 전보다, 오 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했거나 노력 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다. 아줌마는 오늘도 열심히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