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기준이 변하기도 한다. 40대 이후에는 그 기준이 더욱 복잡해 진다. 대개의 경우 행복한 기억보다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무척 많다. 그만큼 만족은 어렵고 불만족이 다반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사회가 다양화되고 자본에 따른 계급화가 형성되면서 계층 간 비교 등이다. 불행의 이유는 다양하며 간단한 이유로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 다양함이 사회의 건전성을 해치기도 하고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럼 그 다양함은 어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금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지도)층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일반 사람들의 평범한 삶은 주변을 제외하고는 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리더층은 여러 곳을 통해 접하기가 쉽다. 방송, 언론, 요즘 대세인 유튜브에서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도층, 성공한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매순간 그것을 접하는 우리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형성되고, 그 형성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되고, 그것들을 현재 나의 상황에 대입시키기도 한다. 정치의 경우에는 내가 지지하지 않는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듣고 싶은 것만 가려서 듣게 되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다. 자본의 경우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의 출연료, 계약금이 얼마며 재산이 얼마라는 것에 부러움과 함께 허탈감, 박탈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에 대한 뉴스에는 현재 나의 소득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의욕마저 상실한다. 물론 그러한 생각들이 오래 머무르지는 않고 잠시 스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방송 등에서 계속 나온다면 반복 학습 효과처럼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결국 이겨내지 못해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피해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눈 앞에 펼쳐진 것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 이외의 세상은 주로 방송 등에서 접하는게 일반적인데 거기에는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들만 보이는 것이다. 물론 가끔은 아닌 경우가 있지만, 특히 요즘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자기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더욱 혼돈의 세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면서 더욱 불행을 생각하는 횟수가 늘어가기만 한다. 방송 등에서 보는 것들은 대개 화려하고 당당한 삶, 그리고 신데렐라 같은 인생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는듯 하다. 정치만 하더라도 예전의 룰은 없다. 자극적이고 정쟁도 치열하며 거의 전쟁 수준이다. 니편 네편도 없고 의리도 실종됐고 도덕도 사라졌다. 얼마 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우리는 잘 보았다. ‘저 사람들이 같은 편이 맞을까?’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로 치열했다. 그리고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신데렐라 같은 인생 스토리도 방송 등에서는 초창기 시절과 성공했을 때까지의 모습만 보여준다. 예를 들어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코흘리개 순박한 시골아이가 방송국이 개최한 노래 경연대회에서 입상 하면서 자기 노래 하나 없이 그냥 노래만으로 짧은 시간에 전과는 다른 수십억짜리 아파트, 명품시계, 수억대의 승용차를 굴리는 화려한 삶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들은 보통의 청소년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 어른들은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까? 필자는 이런 현상이 정상일까 하고 의문도 가져봤고 부작용도 생각해 봤다. 그리고 과연 신데렐라 같은 인생스토리가 해피엔딩일까? 그렇게 신데렐라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그 이후의 모습도 계속 관찰하고 정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림자가 있다면 우리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성공의 기준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척도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도 행복이 무엇인지를 헷갈려하며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불행을 떠올린다. 만족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세상이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돈이 있어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보다 못하고 건강을 잃으면 만사가 무용지물! 로또의 행운보다 하루에 수만, 수십만이 불의의 사고 등으로 다쳐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하게 되는데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행운이라 여겨야 한다. 정당한 댓가, 소득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요즘이다. 정당함을 바탕으로 댓가, 소득을 재평가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대한민국이 유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그것을 누가 해야 하느냐? 당연히 소위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확하고 균형 잡힌 것들을 방송 등을 통해 전달해 행복의 기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지도층은 그동안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고 해서 비판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 아무나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본인 생각 속에 있으며 불평을 줄이고 만족하는 것을 늘이는데 있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항생제는 몸에 해로운 세균들의 번식을 억제하거나 죽인다. 문제는 그 세균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거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super) 세균으로 거듭나 기존의 항생제를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세균들의 반격인 셈이다. 항생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면 이건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인류 생존의 10가지 위협’ 중에서 항생제 내성 문제를 꼽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에도 안 보이는 세균한테 무릎을 꿇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돌파구(breakthrough)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인류는 늘 그랬듯이 어디선가 반격의 카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 IT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쪽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딥페이크 사진이나 영상을 퍼트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막으려 한다. 딥페이크는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의미의 AI 기술 ‘딥러닝(deep-learning)’에다가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를 합성한 말인데, 재미난 건 딥페이크가 딥러닝의 한 종류인 ‘생성형 대립 신경망’(GAN)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립이라는 단어에서 눈치챘겠지만 생성자와 판별자라는 두 신경망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상호 진화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즉 생성자는 가짜 이미지를 진짜처럼 보이게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고, 대척점에 있는 판별자는 생성자가 만든 이미지 중 가짜처럼 보이는 걸 솎아내는 식이다. 어느 전문가의 비유처럼 지폐 위조범은 계속해서 가짜 지폐를 만들어 내고 경찰은 즉각적으로 막아선다. 창과 방패의 무한 싸움에 과연 끝은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강력한 스매싱은 더 강력한 블로킹을 부르고 바이러스 침투나 해킹은 백신과 업그레이드된 방어벽으로 이어진다. 끊이지 않는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어쩌면 분리와 대립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소통하고 발전해 나간다. 여기서 잠시 다리(bridge)를 한번 떠올려 보자. 다리의 본질적 기능은 무엇인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영역을 이어주는 것이다. 예컨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는 기본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섬, 즉 분리를 전제로 한다. 소통은 그 분리에서 시작되고 소통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토함산 그 꼭대기 절에 파란구름다리[靑雲橋]와 흰구름다리[白雲橋]가 존재 이유를 가지게 된다. 산꼭대기에 다리라니 무슨 강이나 바다가 있겠나 싶겠지만, 무지한 중생들이 사는 세상과 부처들만 사는 정토를 ‘구분하면서 동시에 이어주기’ 위해 기어이 다리를 그 사이에 세워 둔 거다. 이 담론에는 분리라는 허무주의도, 그렇다고 소통이라는 낙관주의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서 진리를 마주하고,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저 진리를 실천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다리(계단)를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진화이며 발전이다. 사찰 내 다리는 그 자체로 부처의 수인(手印)이나 입보다 침묵하듯 진리를 토해내는 다리고 계단이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른 양상이다. 미국 대학스포츠협회(NCAA)가 주관한 수영 대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누가 봐도 남자고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머리통 하나는 족히 커 보이는 선수가 여자 자유형 500m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그는, 아니 그녀는 생식기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으로 성(性)을 바꾼 트랜스젠더 선수란다. 트랜스젠더 선수라도 경기에 참여할 권리는 있겠지만 남성부 소속일 때 462등 하던 선수가 여성부에 출전해서 바로 1등을 한다면 이건 좀 정상적이지 않다. 차이가 있기에 소통도 있는 거지, 차이를 기어이 소통시켜야 할 명분은 없지 않을까! 미국 매사추세츠 어느 농구 경기장에서는 누가 봐도 우람한(?) 트랜스젠더 선수가 휘두른 팔에 그를 막아서던 세 명의 여자 선수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을 깎아서 강을 메우는 것이 제일 어리석다고들 한다.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그 하모니(harmony)가 제일 아름다운 법이다.
월지는 과학적으로 조성되었다. 월지의 규모는 동서 약 200m, 남북 약 180m로 전체 면적이 1만 5658㎡(4738평)이다. 호안 석축의 길이는 1005m이고, 섬을 포함하면 1285m이다. 서쪽은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게 5.1m의 높은 대(臺) 위에 건물을 짓고 남·동·북은 1.2m로 낮게 호안을 조성하였다. 건물이 있던 서쪽과 남쪽은 호안을 직선으로 처리하고 직각으로 꺾어 못 안으로 돌출시키고, 동쪽과 북쪽은 절묘한 굴곡으로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연못의 어느 쪽에서 보아도 전체를 볼 수 없도록 하여 바다를 연상하도록 하였다. 명나라 문인화가 동기창은 ‘소중현대(小中現大)’라고 하여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월지라고 하는 작은 연못을 조성하면서 바다를 표현한 신라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동기창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신(神) 즉 자연은 곡선을 만들고 인간은 직선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 당시 신라인들의 안목에 할 말을 잃는다. 연못 바닥은 두께 50cm 정도의 점토와 자갈 등을 섞어 강회다짐을 하여 물이 새지 않도록 하였고, 바닥 전체에는 굵은 모래와 자갈을 깔았다. 연못 한가운데에 한 변이 120cm인 정(井)자형의 나무곽을 만들어 그 속에 연꽃과 같은 수초를 심어 못 전체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연못의 동쪽과 북쪽은 낮은 언덕을 조성하여 중국 초나라 양왕이 선녀들과 노닐었다는 고사에 등장하는 무산12봉을, 그리고 연못 속에는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영주·방장·봉래의 세 섬을 만들었다. 따라서 이곳은 도교의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공 바다였던 것이다. 월지의 시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입수부와 배수부이다. 입수부는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를 한 곳으로 못의 동남쪽 귀퉁이에 있다. 동남쪽의 계류나 북천에서 끌어온 물을 거북이를 음각한 것 같은 아래위 두 개의 수조에 고이게 하였다가, 자연석 계단으로 흘러 폭포로 떨어져 연못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위 수조에는 용머리 토수구(吐水口)를 설치하여 용의 입으로 물을 토해서 아래 수조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 용머리는 없어지고 지금은 용머리를 끼운 자리만 남아 있다. 아래 수조에서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높이는 약 1.2m 정도이다. 또한 물이 입수부의 완충 수조를 지나 못으로 수직 낙하하는 지점에 판판한 돌을 깔아놓았는데, 이는 못 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심산유곡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을 재현한다는 미적 감각도 놀랍지만 수조를 거치는 동안 물속에 있던 찌꺼기가 걸러지고 그 물이 폭포로 떨어지면서 용존 산소를 높였을 것으로 생각할 때 당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또 못 안으로 들어온 물이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입수부 바로 앞에 섬을 배치하여 그 좌우로 물이 갈라져 못 전체로 물이 흐르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였던 것이다. 입수부를 통해 들어온 물은 연못 안의 곳곳을 돌아 동북쪽으로 나 있는 출수구로 흘려보냈다. 출수구에는 상하로 뚫린 3개의 구멍이 있는데 나무로 된 마개로 수위를 조절했음이 밝혀졌다. 정원(庭園)의 물은 성(聲)·류(流)·광(光)의 세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월지의 입수 부분에 폭포를 이루어 물이 떨어지니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聲), 입수구에서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고 앞에 있는 섬을 휘돌아 연못 전체 물이 흘렀을 것이며(流), 찌꺼기를 거르는 장치를 두어 항상 맑은 물을 공급하여 바닥까지 빛이 비치는(光) 등 이곳 월지는 정원수의 3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던 것이다.
사막의 사자* 강현덕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 지금은 만돌린을 타던 집시가 잠들었군 – 꿈이라면 집시의 것이 가장 순결하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만 가졌으니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기 전 재빨리 채취해야지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의해 발톱도 거친 이빨도 진즉에 다 뭉개졌으니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에 있는 사자. ‘사자’와 ‘집시’에서 ‘샤리아르’와 ‘세에라자드’를 떠올리다 연일 뙤약볕이 이글거리고 있다. 보름 전만 해도 장마 이재민들 뉴스가 나왔는데, 온 나라가 태양신전이 점령한 전쟁터 같은 열기에 휩싸이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은 아프리카 평원에 하얗게 남은 짐승의 뼈를 비추어준다. 이럴 때 이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라고 우리 어깨를 툭 치는 작품이 있다. 강현덕의 「사막의 사자」다.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영겁의 회의와 죽음만이 주인일 것 같은 황량한 사막! 하지만 사막이기에 오히려 환상은 작동한다. 『천일야화 Alf laylah wa laylah』가 바로 그 산물이 아닌가. 이 작품은 그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인은 이 작품이 앙리 루소의 그림 「잠자는 집시」에서 발상했다는 각주를 붙인다. 기실 강현덕의 작품은 앙리 루소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다. 하지만 루소와의 차별성은 첫째 수 초장에서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라는 출발부터 드러난다. 꿈 수집가 사자!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사자의 이야기로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시인은 우선 자신의 경험하지 않은 일을 시로 형상화함에 있어, 자신을 대신해서 발화해 줄 만한 화자를 내세우는데, 놀랍게도 ‘사막의 사자’가 자아를 연기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독자들은 사자로 나타나는 화자의 언술 때문에 상위주체는 시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 정서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중장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의 주체는 사자일 수도, 만돌린을 연주하며 방랑하다 잠든 집시 여자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초원’이라는 생활공간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사자는 찬찬히 집시를 보다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으로 가득한, 가장 순결한 꿈을 채취할 생각에,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어 말라버리기 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면서 하늘에 뜬 만월을 향하여는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이라는 말을 남긴다. 시의 공간성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천지를 호령하는 사자의 용맹을 벗어버렸다는 선언이다. 이미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적신 영혼으로 상승되어 있는 것이다. 아라비아 설화 『천일야화』에는 어떤 아내든 첫날밤을 지낸 뒤에는 죽이겠다고 맹세하는 술탄 샤리아르와, 첫날밤 재미있는 이야기로 술탄의 관심을 끌어 목숨을 보존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술탄이 자신의 맹세를 포기하게 하는 세에라자드가 나온다. 이 시를 찬찬히 읽다보면 꿈 수집자 사자는 어느새 술탄으로(특히 “발톱도 거친 이빨도 진즉에 다 뭉개졌”다는 표현에서), 세에라자드는 집시 여인(가장 순결하다는 꿈 이야기를 뿌린다는 의미에서)으로 화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의 미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기념 경주국제서예명가 초청전 및 제5회 삼호서숙전이 오는 1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3층 갤러리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대한민국천진서화협회가 주최하고, 행복만당서화평생교육원이 주관, 경주시, 경주시의회, 홍콩 예술망이 후원한다. 경주국제서예명가 초청전에는 한·중·일 등 총 14개국의 국가급 서예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중국서법가협회원, 중국 광저우청년미술가협회 회장, 홍콩서법가협회 회장, 일본 대동문화대학 서예학박사, 대만 국립대만예술대 서화예술학과 교수 등 초청 작가들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또 제5회 삼호서숙전은 경주 행복만당 서화평생교육원에서 수학하는 순수 아마추어 서예동호인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재)경주문화재단 지역예술인지원사업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전시 지원 프로젝트 ‘공유’에 선정돼 전시장을 후원받아 열린다. 김상지 대한민국천진서화협회장은 “‘가훈과 함께 떠나는 필묵 SHOW캉스 40選’을 주제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예술 서예가 다시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예전 집마다 거실에 걸려있던 가훈을 매개체로 활용했다”며 “관람자의 옛 향수를 자극하고 부담 없이 서예 작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작품을 한 점 한 점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천진서화협회는 경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순수 서예 단체로, 서예교육 정상화와 서예 계승 발전을 위해 창립됐다. 그동안 세계 아동·청소년 화랑 서화 페스티벌,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경주국제서예명가초청전 등을 개최했다. 올해는 월성원자력본부의 지원을 받아 경주국제화랑청소년서예대전(국제교류전)을 9월 개최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감로를 차로 달려가다가 문무대왕면을 지나 감포 초입, 전촌으로 들어서니 안개가 자욱하였다. 아침 시간에 날이 덜 밝았나 착각할 정도였다. 바다 해무였다. 바닷가에 놀러다니곤 했지만, 경주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바닷물도 보이지 않고 파도도 치는지 안 치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온 세상이 하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 안개를 뚫고 감포공설시장으로 가니 주차장에 차보다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 펼쳐놓은 옷 난전이 많았다. 여자들 옷, 남자들 반바지, 꽃 치마, 여자 통바지, 남자 웃옷 등등. 옷 파는 가게만 7~8개 정도 되었다. 현대식으로 잘 만들어진 공설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감포는 항구답게 생선 파는 상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징어, 아구, 대구, 새우, 조개 등 내가 모르는 여러 종류의 생선들이 각 점포마다 주류를 이루었다. 파리를 쫓기 위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장치도 처음 보는 것으로 신기했다. 어떤 가게는 선풍기를 세게 틀어놓고 오가는 손님들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한 바퀴 돌아 감포항 쪽으로 나오니 이곳에는 할머니 50여 분이 각자 자기 밭에서 키운 호박잎, 상추, 부추, 호박, 산나물, 풋사과, 복숭아, 고추, 가지, 오이 등을 전을 펼쳐 팔고 계셨다. 모두가 할머니였고 할아버지나 아저씨는 한 분도 없었다. 이 또한 신기한 광경이었다. 보통은 남자들이 일하고 여자는 가정일을 하는데 장사는 여자가 잘하는 모양인 것 같다. 아주머니 한 분은 갓 잡아 온 홍합을 한 바구니 팔고 있었다.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또 한 바구니 가져와서 옆에 놓고 간다. 손질되지 않은 아주 거칠었고 바위에 붙어 있던 생긴 그대로 모습으로 장터에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멍게도 팔고 있었는데 갓 잡은 듯 아주 싱싱해 보였다. 여러 손님들이 가격을 물어보고 사려고 하였다. 다시 잘 정돈된 49개의 점포가 있는 감포공설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저곳을 살피든 중 미주구리 말려서 뼈를 다 추려낸 건포를 보았다. 먹음직해 보였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 판에 2만원이라고 한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만원 정도 하면 사고 싶은데 어떻게할까 잠시 머뭇 주저했다. 상점 주인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한 개를 주었다. 먹어보니 냄새도 나지 않고 생선을 먹는 기분이었다. 고향에 조금 덜 송금하고 나도 맛난 것을 한번 먹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판을 샀다. 집에 가서 구워먹고 고추장에 찍어 먹고 살짝 조려 먹고 감자 넣고 찌져 먹어야겠다. 상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감포의 연혁을 기록한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6촌 중 금산가리촌에 속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현종 때 장기현에 포함되어 경주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경주군 동해면이 되었다가 장기군에 편입됐다. 일제 강점기에 장기군의 폐지에 따라 경주군 양북면에 편입되었다가 양북면에서 분리되어 1937년 감포읍으로 승격됐다. 이후 경주시제의 실시로 군명칭이 월성군으로 개정됨에 따라 월성군에 소속되었다가 경주군으로 명칭이 바뀜에 따라 경주군에 속했다가 경주시군 통합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감포라는 명칭은 지형이 甘자 모양으로 생겼고 또 감은사가 있는 포구라 하여 감은포라 부르다가 음이 축약되어 감포라고 칭하게 되었다. 동해남부의 어업전진기지로 9개 법정리, 20개 행정리, 22개 반으로 구성되었고 52개 자연부락이 있다. 31번 국도 남쪽 32km 지점에 울산광역시가 있으며, 북으로는 32km 지점에 포항시가 위치해 있고, 4번 국도의 서쪽으로는 보문관광단지가 있으며 전촌, 나정, 오류해수욕장과 횟집으로 유명하다.’ 감포공설시장은 시설면에서 아주 잘 갖추어진 전통시장이다. 나의 고향 스리랑카에는 이처럼 현대식으로 잘 만들어진 전통시장이 없다. 대한민국이 경주가 부럽다. 경주에서의 나의 삶도 이제 20여년이 넘었다. 나도 경주사람이다.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어서 기분이 좋다. 경주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외국인들도 찾아오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산, 바다, 숲, 이색체험 등 일상에 지친 심신의 힐링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바로 경주다. 인파로 북적대는 곳이 아닌 자연 속을 걸으며 가족과 함께 힐링이 가능한 곳.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청정 동해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드라이브가 가능한 곳. 역사 유적지 속에서 스토리텔링 체험이 가능한 곳. 밤에는 환상적인 야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 경주에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숨은 휴양지가 있다. 여름휴가 시즌, 누구나 한 번쯤 방문했을 여행지가 아닌 경주의 숨은 관광명소, 핫한 이색적인 장소를 소개한다. 낭만 있는 차박&노지캠핑 성지 나정고운모래해변은 편의성과 접근성이 좋아 차박 성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변 바로 앞 넓은 주차장이 조성돼있어 주차를 하고 바로 차박지를 꾸밀 수 있다. 해변과 가까운 주차 스팟들은 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한 편이다. 인근에 편의점, 슈퍼 등이 있고 관리가 잘 된 화장실도 있어 편리하다. 경주 동해 최남단에 있는 관성솔밭해변도 차박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멋진 해변의 송림이 아름다운 곳이다. 송림 안으로 차량 진입이 가능해 송림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해변을 바라보며 차박을 즐길 수 있다. 맑고 푸른 바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뒤편의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솔밭은 자연 그대로의 휴식처를 선사하기에 소나무 숲에 자리를 잡고 낮에는 바다를, 밤에는 별빛을 보며 캠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경주의 지붕 단석산과 이웃 산들을 넘고 넘어 산내면 동창천에 닿는다. 동창천은 산내면에서 발원해 경북 청도군까지 이어지는 하천이다. 산내면행정복지센터, 산내 전통시장과 멀지 않은 곳에 물놀이하기 좋은 스팟이 있다. 절벽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지는 인공폭포인 ‘청룡폭포’가 조성된 동창천 둔치다. 이곳 둔치에서 노지 야영이 가능하다. 자연과 문화, 이야기가 함께하는 숲과 길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양남 주상절리는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 해안을 따라 형성돼 있다. 조망공원 내 우뚝 솟은 전망대에 오르면 자연이 연출한 조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비경, 주상절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감상하며 걷는 주상절리 파도소리 길은 1.7㎞ 구간의 여유로운 트레킹 코스다. 파도소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읍천항 벽화마을을 만난다. 운치 넘치는 어촌 갤러리에 시선을 뺏기며 조금만 더 걷다 보면 탈해왕길 해수 트레킹 로드가 기다린다. 경주 동해바다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감포 깍지길이 단연 압권이다. 깍지길의 ‘깍지’는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의미다. 혼자가 아닌 함께 손을 잡고 걸어야 제맛이다. 편백숲내음길은 경주의 서쪽 건천읍 오봉산의 초입에 위치한 편백나무 산책길로, 오봉산 트레킹길로 이어진다. 500m 가량의 길지 않은 편백나무 숲길은 나무 데크와 경사지지 않은 흙길로 조성돼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왕복 30분 정도 산책할 수 있는 장소이며, 더 걷기를 원하면 숲 주변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산책할 수 있다. 수령 50여년 된 1만여 그루의 편백나무 숲은 1년 내내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수로 사계절 늘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치유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경주바다 이색 포토존 2곳 경주 동해안에는 이색적인 포토존으로 인상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먼저 추천할 곳은 경주 양남면 하서항. 율포 진리항이라고도 부르는데 작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아담한 포구다. 방파제 끝에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빨간색의 커다란 자물쇠 모양 조형물이 있다. 연인, 가족, 친구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소원하는 일명 ‘사랑의 자물쇠’ 포토존이다. 자물쇠 몸체가 하트 모양으로 음각돼있는 모습으로 조형물이 멋진 프레임을 만들어준다. 붉은 자물쇠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인공 조형물 포토존을 만났다면 이제는 자연이 빚어낸 천연 포토존을 만날 차례다. 전촌항 방파제 쪽에 내어져 있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10~15분 정도 이동하면 신비로운 해식동굴이 나타난다. 시간과 파도, 바람이 만들어 낸 자연의 작품, 전촌용굴이다. 동굴 이름에서 알아차렸겠지만, 이 동굴에는 용과 관련한 구전이 있다. 감포 앞바다에는 뱃사람과 포구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네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사룡굴’,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단용굴’ 등 두 곳의 포인트가 있다. SNS상에서 주목을 끌며 핫한 인생 사진 명소가 됐다. 사룡굴은 산책로 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만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단용굴은 갯바위를 타고 넘어가야 해 접근 난이도가 있는 편이니 통행에 유의하도록 하자. 오감만족 산림욕 ‘토함산 자연휴양림’ 경주 토함산은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다섯 산, 오악 중 동악(동쪽 산)이라 불렸다. 토함산에서도 남쪽 기슭에 조성된 토함산 자연휴양림은 녹색 자연이 그 빛깔을 한껏 뽐내는 여름철에 방문하기 좋은 숲속 힐링 명소다. 특히 10~20㎡의 다양한 크기의 목재 데크 사이트가 40면 조성돼 있다. 야외 물놀이장도 여름철엔 꼭 방문해 보자. 숙박 시설 이용객을 위한 편의시설로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 약 한 달 동안 운영된다. 휴양림의 가장 큰 장점인 삼림욕과 숲길 트레킹은 필수 코스다. 휴양림 곳곳에는 숲길 구간(A~D)과 삼림욕장이 있다. 양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나무 그늘은 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숲의 짙은 초록은 오감을 만족시켜 준다. 주낙영 시장은 “이번 여름 휴가철 경주를 방문해 폭포와 계곡에서 지친 심신 달래기, 인생사진 남기기 등 좋은 추억 남기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본지가 지난 1992년부터 ‘孝子, 烈女碑(효자 열녀비)’를 제목으로 연재한 고 함종혁(咸鍾赫: 1935~1997) 선생의 기사를 토대로 그 현장을 다시 찾아 점검한다. 함 선생은 1963년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경주에 부임해 경주의 문화재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함종혁 선생이 본지를 통해 전했던 경주지역의 효자, 열녀 이야기를 재편성해 선조들의 충효사상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현재 효자·열녀비에 대한 관리 상황도 함께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자신의 살 도려내 남편 살린 열부 이야기, 영일정공시홍지처 열부김해김씨정려비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도려낸 열부 이야기가 담긴 비(碑)가 있다. 영일정공시홍지처 열부김해김씨정려비(迎日鄭公時洪之妻 烈婦金海金氏旌閭碑)다. 이 비에는 열부 김해김씨 신기(新基) 부인의 남편에 대한 존경과 희생이 새겨져 오늘날의 교훈으로 전해오고 있다. 김씨 부인은 광무제(고종) 때 판임관 정시홍의 아내다. 김씨 부인은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정에서 마음 착하게 자랐다. 특히 효심이 강해 착한 어린이라는 말이 이웃을 통해 관청에까지 널리 알려져 주위 모든 사람들이 크게 탄복했다고 한다. 김씨 부인이 17세 되던 해 영일정씨 집안으로 출가했다. 이후 시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봉양해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뜻밖에 당시의 유행병이던 학질에 걸려 몸져 눕게 됐다. 그러자 김씨 부인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늘과 같은 내 남편의 목숨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허벅다리 깊은 살을 칼로 잘라 푹 달여 먹였다. 남편에게는 학질에 특효약이라고 속이고 자신의 살을 달여 먹게 한 것이다. 그렇게 먹인 것이 효험이 있었고, 남편은 오랜 병석을 털고 일어나게 됐다. 이 같은 소문은 입소문을 타고 이웃으로 번져 관이 알게 됐다. 당시 내남면의 관리(내남면장)는 보고서를 올리면서 이 같은 훌륭한 효행은 포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감은 자신의 살을 베어 달여 남편에게 보약이라고 먹여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되살아나게 한 사실을 적은 상소를 조정에 올렸다. 상소를 보게 된 황제는 김씨 부인을 열부로 판정하고, 극진히 치하했다. 광무 8년(1904년)에 나라에서 청동과 고기를 하사했다. 또 교지를 내려 남편인 정시홍을 판임관(判任官, 고종 시절 7품~9품)으로 승진시키고, 열부 김씨는 숙부인(淑夫人)으로 교시했다. -고종 정려 후 90여년만에 정려비 세워 이 정려비는 지난 1992년 8월 10일 비가 세워진 이 자리에서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김재완 경주군수를 비롯해 군향조사연구회장 김석호 씨 등 100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개최하고, 김씨 부인의 열행을 기리는 추모식도 가졌다고 한다. 정려비가 당시 고종의 열부 판정 이후에도 90여년이 지난 뒤 세워진 이유는 이렇다. 기록에는 김 숙부인이 돌아가신지 4대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대동아전쟁, 10·1폭동, 6·25전쟁과 화재 사건 등 파란곡절을 많아 열부비 건립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다 1987년 경주군 향토사연구회장 김석호 씨가 군사(郡史) 편찬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차에 광무 5년(1901년) 국왕이 내린 열부정려에 대한 교지를 발견하면서 비 건립에 원동력을 찾았다. 당시 경주군과 열녀 후손, 향토문화연구회 등은 현 사회상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윤리도덕이 퇴보할 뿐 아니라 인도에 위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부부간 윤리도덕과 청소년들의 생활지도 자료로서 교훈이 될 것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경주군의 유적보존비 285만원을 지원 받아 3층으로 된 기단 위에 높이 5척, 너비 2척의 오석으로 된 정려비를 세우게 됐다고 전한다. 남편 잃은 슬픔 딛고 시아버지 정성으로 모신 열부, 효열부증숙부인월성이씨지비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백석암 입구를 지나 내남면 부지리 방향 200여m 지점 도로 우측에 한옥 구조의 아담한 비각이 나온다. 이 비각 속 비는 남편을 잃어버린 슬픔 속에서도 시아버지를 위로하고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부 이야기가 담긴 효열부증숙부인월성이씨지비(孝烈婦贈淑夫人月城李氏之碑)다. 이씨 부인은 월성인으로 유교인 엄격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품은 곧고 유순하며 하는 일이 자상한데다 예법을 존중하는 부덕(婦德)을 익힌 현숙한 부인이었다. 월성인 최상악(崔尙岳) 씨와 결혼했다. 두 부부는 정성을 모아 늙으신 시아버지를 성의를 다해 봉양해왔다. 그러다 남편이 괴질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씨 부인은 남편의 죽음에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소생한 이씨 부인은 자신의 슬픔을 삼킨 채 오히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시아버지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씨 부인은 시아버지에게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생각하지 마시고 억지로라도 음식을 드시어 저로 하여금 의지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했고, 시아버지를 오랫동안 지성으로 받들어 모셨다. 이 같은 이씨 부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45년 8.15 해방 다음해인 1946년 효열부비(孝烈婦碑)를 세웠다고 전한다. -효자 있는 집안에 효자 난다 이씨 부인의 효행은 이를 보고 배운 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효열부 이씨 부인의 아들 최덕수 또한 어머니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아 공부도 열심히 해 종2품에 올랐다. 특히 부모를 모시는 효성은 어머니 못지않게 지극했다. 이 때문에 아들 또한 효자로 이름났다고 전해진다. 1992년 12월 14일자 본지 147호에서 함종혁 선생은 이씨 부인과 아들 최씨에 대한 후기를 덧붙였다. 함 선생은 이씨 부인의 효행에 대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평범한 진리는 외면하지 않는다”고 했다. ‘효자 있는 집안에 효자 나고 열녀 있는 집안에 열녀 난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바꿔말하면 핵가족제와 산업사회로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 청소년들의 각종 범죄 증가와 탈선행위는 삼강오륜 등 윤리관이 퇴폐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정이나 사회나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백년대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윤리교육에 치중해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지키며 평화로운 사회건설을 이룩하는데 다 함께 노력해야 되겠다”고 강조했다.
경주푸른마을은 지난달 23일 영화감상 프로그램을 성건동주민자치센터 교양실에서 진행했다. 경주푸른마을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성건동행정복지센터와 주민자치센터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사진> 성건동주민자치센터는 이날 영화감상을 위해 모처럼 외출한 경주푸른마을 이용 장애인들에게 준비한 간식을 전하는 등 온정을 나눴다. 김상규 성건동주민자치센터 위원장은 “주민자치센터에서 경주푸른마을 이용장애인들이 원하는 영화를 선택해 관람하게 돼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영화 감상을 위해 교양실이 필요하다면 일정을 조율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성건동주민자치센터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헬스, 요가, 다이어트댄스, 스포츠(라인)댄스, 탁구, 풍물, 단전요가,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주시가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마을’ 우수 선도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기반 치매 서비스를 강화하고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치매안심마을 우수 선도사업’을 공모해 전국 48개 치매안심센터의 사업을 선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일원으로 존중받으며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읍면동 단위로 지역 특성에 따라 ‘치매안심마을’ 조성·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마을 우수 선도사업’은 지역사회를 발전적인 치매안심마을로 선도하기 위해 지역 특성에 기반한 우수유형을 발굴해 확산하고자 지난 2022년부터 실시됐다. 올해는 △실종예방 안전망 △치매환자 사회참여 △안전 환경 조성 △조기 발굴 체계 구축 등 4가지 유형으로 심사했으며, 경주시는 ‘꼬꼬무 기억다방(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이 머무는 다양한 방법)’을 운영해 치매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주민, 아동돌봄센터 아동들과 함께 카페 소품, 커피 등 카페운영에 필요한 비품을 만들면서 치매환자의 사회참여를 지원해 큰 호응을 얻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우수 선도사업 선정은 치매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치매에 친숙한 환경을 강화하고자 추진했다”며 “치매에 더욱 친숙하고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치매안심마을’은 지역주민의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치매환자와 가족이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과 보건복지 서비스 역량이 확보된 마을이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지난 19일 전남 순천시지회에서 4대 도시 지회와 우수사례 교류를 위한 자매결연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은 구승회 경주시지회장, 김영수 순천시지회장, 부산 곽용근 동래구지회장, 김영주 금정구지회장 등 4개 도시 지회장을 비록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대한노인회 전국 245개 지회 가운데 4개 지역 이상 다자간 자매결연은 매우 드문 사례로, 이번 자매결연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 주목된다. 이번 협약은 각 지회 간 자매결연을 통해 협력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공동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요 협약 내용은 각 지회 발전과 업무추진에 대한 정보교류, 노인권익증진 및 사회참여 지원을 위한 상호협력, 기타 각 지회 경로당 활성화를 위한 의견교류 등이다. 전남 순천시지회는 웰다잉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부산 동래구지회는 전체 경로당 미디어 게시판 설치·운영, 금정구지회는 경로당 예술프로그램 발표회 등이 우수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경주시지회는 지난해 임직원과 경로당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희망나눔 성금 9335만원 기탁, 경로당행복선생님 지원사업,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등이 우수사례로 공유됐다. 구승회 경주시지회장은 “4개 지회가 우수사례를 공유해 지회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면서 “다른 지회에서 성공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 지회의 특성에 맞게 도입한다면 서로 동반 성장하는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여러 차례 말했듯 ‘경주최부자’라고 할 때 이 집안의 뿌리를 파시조인 정무공 최진립(1568~1636) 장군에서 시작한다. 정무공은 가암(佳岩)이라는 호를 썼기에 최부자 가문을 따로 경주 최씨 가암공파라 부른다. 실제 부자는 그로부터 2세대 지난 최국선(1631-1682) 공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정신적 지주 겸, 명가의 품격을 더하기 위해 정무공의 영향을 부각시켰을 것이다. 정무공은 숙종대인 1711년 3월 정무공을 배향한 용산서원이 ‘숭렬사(崇烈祠)’로 사액되면서 ‘불천위(不遷位)’로 봉해졌기에 조상대대로 제사를 거르지 않고 지낸다. 최부자 댁에서는 이 제사를 대제(大祭)라고 부르는데, 이 대제에는 지금도 가암파의 중요한 인물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무공에 대한 제사가 끝날 무렵 아주 신기한 장면이 펼쳐진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제에 참석했다는 최염 선생님의 회상은 신기할 정도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죽은 노비를 위해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 지내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다. “제사를 다 지냈으니 마땅히 제를 마치고 음복을 해야 할 것인데 사랑방에 모셔진 제사상을 대청으로 가지고 가서 제상에 놓인 정무공 신주를 내리고 거기에 또 다른 신위를 올리고는 다시 제사를 지냅니다!” 그 두 번째 제사가 바로 충노(忠奴) 기별과 옥동의 제사다. 두 노비는 평생 무장(武將)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정무공을 모시고 다녔고 급기야 병자호란 당시 험천(옛말의 머흐내 / 지금의 성남시 죽전동 어름)전투에서 정무공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충복이다. 아마도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제사가 선뜻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반상이 엄격한 시대에 노비의 제사를 양반가에서 지낸다니 그것도 자손 대대로 지내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오는 최부자 가문, 정확하게는 최부자집안의 정신적 뿌리인 정무공 가암파 종가댁의 오랜 전통이다. 아울러 조상대대로 그 제사에 참여하면서 뜻을 익혀온 최부자댁에서도 이런 정신을 공유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사연을 알고 나면 이 전통이 얼마나 각별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무공은 병자호란 때 전쟁에 나가서 순국했다. 그때 정무공을 모시던 노비 옥동이 함께 죽었고 기별이 부상을 입은 몸으로 경주까지 돌아와 정무공의 전사 소식을 전했다. 집안사람들은 두 노비를 가상하게 여겨 정무공 제사를 모실 때 두 노비의 제사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 뒤에 나라에서 정무공을 불천위로 봉한 후로 노비들 제사도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정무공 종가댁에 가면 종가댁 근처에 충노각이라는 비각이 있다. 이 충노각은 바로 옥동과 기별의 행적을 기린 곳으로 여기에는 기별이 정무공과 함께 참전하여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정인보 선생과 최남선 선생이 경주에 와 있으면서 만든 동경지(東京志)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주인이 충신으로 나라에 몸을 바치려는데 어찌 충노가 되지 못 하리오!’ 기념비석에 새겨진 글귀가 숙연하게 느껴진다. 반면 동경지에 따르면 정무공이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교전할 당시, 정무공이 소수의 부하들과 숲에서 쉬고 있을 때 왜군 부대가 쳐들어오자 옥동이 크게 소리치며 내달아 왜군들을 유인한 일화도 전하고 있다. 또 장군이 전국의 전장을 떠돌며 집안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집안 형편도 알지 못할 때 두 충노가 번갈아 집과 내왕하며 집안 돌보기와 소식 전하기를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나는 최부자 가문의 많은 이야기들 중에 특별히 이 충노에 대한 부분에 유별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사와 세계사를 통털어 상전과 함께 전쟁에 나갔다가 죽은 노비나 노예가 어디 한둘일까. 그런데 주인과 함께 죽은 노비를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 지내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풍습이 최부자댁에만 내려오는 것은 정무공과 두 노비, 정무공의 자식들과 두 노비 사이에 신분을 초월한 의리와 교감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더구나 이는 신분에 대한 최부자댁의 독특한 관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충노각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경주시에서 이런 뜻 깊은 일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뜻에서 ‘충노각(忠奴閣)’이라는 비각을 세워 두 노비의 충절을 기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최부자댁에서 이런 특별한 전통이 없었다면 충노각이 세워지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신분에 관용적인 최부자댁 정신은 최치원 선생에서 다분히 영향, 한 집안 최제우 선생의 동학에 영향 끼치기도. 그런데 최부자댁을 오래 취재하면서 이러한 내력이 단지 정무공 당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경주 최씨의 실질적 시조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1857~미상) 선생 역시 신분의 차별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진 분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최치원 선생은 어려서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 사람으로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유학생을 위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율수 현위직을 거쳐 회남 절도사 고병의 종사관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바로 이때 황소의 난을 맞아 ‘격황소서(檄黃巢書-흔히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라 한다)’를 지어 문명을 떨치고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황제의 신임을 얻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당나라의 많은 문인들과 교류한다. 뒤에 신라에 돌아온 최치원 선생은 헌강왕부터 진성왕 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정치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방 태수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한 골품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선생이 건의한 여러 가지 현실 개혁방안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선생은 마침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상소하고 정계를 은퇴, 전국을 유랑하며 유교와 불교 신선도를 통섭한 대학자가 되었다. 학자들은 바로 이 ‘시무십여조’를 당나라에서 배우고 익힌 폭넓은 정책들을 제안한 것이라고 보고 그중의 하나로 골품제 폐지에 대한 주장을 했을 것이라 가정하곤 한다. 선생은 당시로서는 그래도 상위 신분이라고 할 수 있는 육두품이었고 벼슬도 육두품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아찬’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찬은 신라 17관등 중 여섯 번째에 불과했기에 자신의 경륜을 제대로 펼만한 직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비해 당나라는 유학생인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할 만큼 개방적이었고 소금 장사를 하던 황소(黃巢) 같은 이가 사회 저변을 이끌어 반란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니 신분차별에 대한 비판의식이 남달랐을 것이다. 한편 정무공은 문반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무반의 길을 걸은 분이다. ‘문무양반’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로 무반에 대한 차별이 심했음을 알면서도 붓을 던지고 칼을 잡은 것은 신분의 귀천보다 나라의 안위를 훨씬 중하게 여긴 때문일 것이다. 신분의 벽을 넘어 국가를 중흥시키려 했던 최치원 선생이나 문무를 가리지 않고 나라를 구하려 했던 정무공의 뜻은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궤적을 그린다. 충노의 제사를 모신 바탕에는, 비록 기록에는 없지만 정무공이 살아생전 미리 이런 부탁을 해 놓았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엄정하던 신분사회에서 후손들이 이런 한 제사를 지낼 엄두를 못 내었을 것이다. 정무공이, 나라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함께 전장을 누빈 노비들을 위해 제사 때 밥 한 그릇 더 올리라고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당부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그런 부탁을 양반사회의 관행을 깨면서 후손들에게 대물림 한 가암파 후손들의 결심도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부자댁 집안의 이런 기질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동학사상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선생은 처음 동학을 열 때부터 신분제도 타파를 자신을 통해 먼저 보여준 분이다. 수운 선생을 최부자 가문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수운 선생 집안이 정무공의 아들인 최동량 공 대에서 갈라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정무공은 모두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인 동윤 공이 지금 이조의 종손 집안을 이루었고 최부자댁 직계인 동량 공은 셋째 아들이다. 넷째 아들인 동길 공은 정무공의 형님이 후사가 없어 양자로 갔는데 바로 이분이 바로 수운 선생의 직계 조상이다. 수운선생은 정무공의 7대손이고 최부자 종손이신 최염 선생님의 방계 6대조이다. 기왕에 동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학에 대해 잠깐만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흔히 동학을 서학에 대한 대항의 개념으로 동학이라 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최치원 선생은 벌써 신라 때부터 ‘동(東)’자를 넣은 이름을 자주 써왔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은 우리나라를 동쪽에 위치한 나라라 생각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동인(東人)이라 표현하기를 즐겼다. 또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고 모든 것의 발상지라는 뜻으로 매우 신성시 여겼다. 그래서 최부자댁에서도 조선 사람들을 ‘동인’이라고 표현해왔다는 것이 최염 선생님의 증언이었다. 이런 사상을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최제우 선생이었기에 ‘동학’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썼다는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동학에 대해 굳이 서학의 대응 개념으로 포장했지만 최부자댁의 오랜 사상적 기반을 고려할 때 그런 대응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은빛 달이 하늘을 수놓으며 고요히 떠오르고, 그 앞을 스쳐 지나가는 비행기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우리 인생사를 투영하는 강은정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미지에서 강은정 작가의 기획초대전 ‘바다이야기’전이 오는 2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바다와 파도를 독창적인 해석한 유화작품을 선보인다.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에서 변화무쌍한 삶의 단면을 발견했다는 작가. 작품 속 파도는 부서지고 사라져도 다시 희망의 메시지로 작가에게 돌아왔다. 이는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파도를 통해 끈기와 생명을 노래하고, 작가로서의 꿈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생명과 희망을 포착하며, 세상과의 교감을 통해 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작가의 창작 과정은 지속적인 탐구와 자기 발견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것. 작가는 빈 그릇에서 채움을 발견하듯, 작업을 통해 그 시간을 찾고 꿈꾸며 기다린다. 그렇게 그녀는 창작의 과정이 개인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삶과 그리기의 행복이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붓에 색을 입히고 장난스럽게 그리는 행위 속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막연히 그리면서도 즐거워했던 작가의 모습은, 그리기와 읽기, 그리고 삶 자체가 하나의 연속체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삶에 덧칠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작가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다고 한다. 이러한 갈등과 욕망이 그녀의 작품에 더욱 깊은 감정을 부여해 관람객에게 강력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미지 관장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과 함께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증한 가치를 되새기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과 관람을 바랐다. 강은정 작가는 이번 개인전 외에도 다수의 초대전, 교류전, 단체전 등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BAMA, 부산, 대구 국제아트페어 등 국내외 유명 아트페어에도 다수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양화구성 부문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남포문고, SD지엔텍, 연제구청 등에 그녀의 작품이 소장돼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으면 여러 가지 수치를 확인하는데 이때 조금씩 올라가는 간수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음주를 즐기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수치가 있다면 경각심을 갖고 되돌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간수치는 간 기능이 정상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수치를 말한다. 혈액검사로 알 수 있는데, 주요 검사는 AST, ALT, ALP, GGT, bilirubin 등이다. 간수치 상승은 급성간염, 만성간염, 알코올성간염, 지방간염, 약인성 간손상, 간경변증, 간암, 전격성 간염, 심근경색 등에서 나타난다. 간수치를 체크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만성’이다. 만성 간질환 환자는 간수치가 정상 범위일 수 있으므로 간수치가 정상이라고 무조건 안심해서는 안 된다. AST, ALT 정상 범위: 0~40 IU/L 간세포 내에 존재하는 효소들로, GOT와 GPT로 알려져 있다. 간세포가 손상되면 혈중으로 방출되어 혈중 수치가 증가한다. 급성 간세포 손상 초기에는 간세포 내 농도가 높은 AST가 ALT보다 더 많이 증가하지만 24~48시간 뒤에는 반감기가 더 긴 ALT가 더 높아진다. 다만 알코올성간염에서는 AST가 더 증가한다. 만성 간세포 손상에서는 ALT가 더 높은 경우가 흔하다. 그 외에 약물 복용, 비알코올성지방간, 비만 등으로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 ALP(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 정상 범위: 20~130 IU/L 간세포 내 쓸개관(담관)에 존재하는 효소로, 주로 쓸개즙(담즙) 배설 장애에서 빠르게 상승한다. 간 이외에 뼈에도 많이 존재하므로 여러 뼈 질환에서도 증가할 수 있다. GGT(γ-GT) 정상 범위 : 남성 11~63 IU/L, 여성 8~35 IU/ 간세포 내 쓸개관(담관)에 존재하는 효소로, ALP와 함께 쓸개즙(담즙) 배설 장애를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만성 음주자에서도 상승할 수 있다. 총 빌리루빈(bilirubin) 정상 범위: 0.1~1.2 mg/dL 철결합 생소성분인 헴(heme)의 대사 산물이다. 지라(비장, spleen) 등에서 빌리루빈이 만들어지면 간으로 전달되고 간세포에서 쓸개즙(담즙) 형태로 바뀌어, 쓸개(담낭)에 저장되어 있다가 창자(십이지장)로 배출된다. 빌리루빈생성 증가(용혈), 간세포 대사 장애(Gilbert 증후군, Crigler-Najjar 증후군, Dubin-Johnson 증후군, 급성간염, 만성간염 등), 쓸개즙(담즙) 배설 장애(담석증, 담관염) 등에서 빌리루빈의 혈중 수치가 증가한다.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글/참고 :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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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G아트마켓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4층 갤러리해에서 개최됐다. 경주시가 주최하고 (재)경주문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G아트마켓에는 총 649점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이 중 148점이 판매됐다. 총 판매액은 약 4500만원에 달한다. 관람객 수는 총1929명으로 집계됐으나, 중복 체크 가능성으로 인해 실제 관람객 수는 다소 적을 수 있다. G아트마켓은 지난 2년 동안 경주미술협회의 주관 하에 자생적인 시장 형성을 목표로 한수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다. 올해는 한수원의 후원이 없어 G아트마켓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으나, 경주문화재단이 G아트마켓의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의 일부 예산을 활용해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G아트마켓의 가장 큰 성과는 지역 미술인들 간의 활발한 교류다. 평소 잘 알지 못했던, 혹은 시간 부족으로 인해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던 미술인들 간 작품에 대한 상호 소통과 교류의 시간이 마련된 것. 그러나 미술인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은 그만큼 관객 수가 적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총 판매액의 25%에 해당하는 성과를 거둔 작가가 있다. 바로 동양의 미학적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동서양 미술의 조화로운 융합을 추구하는 이현주 작가다. 이현주 작가는 “특별한 것은 없다. 자유롭게 작업하고, 자유롭게 판매했다. 즐겁게 창작했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품을 설명할 때 컬렉터와 소통하며, 하나의 그림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또한 작품이 판매돼 부스에서 빠지면, 전체적인 부스 분위기에 맞게 다시 디스플레이를 조정했다. 그렇게 아트페어 기간동안 작은 공간 안에서 분주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아트페어에서 ‘차차프로젝트’는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 김차준 작가의 유작을 선보였다. 형과 그의 부부는 마치 피터팬과 같은 김차준 작가의 작품들을 지역민들에게 소개해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예술관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이들은 또한 작가의 작품이 지역 사회와의 깊은 연결을 형성하고, 고인의 예술적 유산이 지속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 많은 울림을 줬다. 더불어 하늘물고기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김종대 작가와 염색한 한지로 풍경화를 제작하는 엄창희 작가 등 지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이 아트페어를 통해 지역작가와 시민들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점도 매우 긍정적이다. G아트마켓을 방문한 가족 참여자는 “경주문화재단에서 발송하는 홍보문자와 SNS에 게시되는 전시 관련 글을 통해 G아트마켓을 방문하게 됐다”면서 “작가들이 직접 설명하는 내용을 통해 작품을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설명을 듣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는데 작가님이 자리에 안계셔서 아쉬웠다”며 “시민들이 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저렴한 소품 작품들이 더욱 많이 전시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이번 G아트마켓에 참가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트페어의 일정이 휴가철과 겹쳐 전시장 내에 외부 방문객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중적 이벤트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특히 어린이 도슨트 프로그램과 같은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전략과 이벤트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기업인들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나 네트워킹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G아트마켓이 보다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이벤트의 확장과 다양한 관람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경주문화재단 측은 “이번 G아트마켓의 주요 성과는 무엇보다 작가들 간의 교류다. 작품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작가들에게 상호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G아트마켓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개선 사항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더불어 G아트마켓이 활성화돼 경주를 방문하는 특정 시점에 그림 구매가 가능한 시장이 지속적으로 형성되길 기대하며, 지역 미술시장이 점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역작가들도 관심을 더욱 높여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 달 사이에 류춘호의 비석이 두 기가 세워졌다. 고종 19년(1893) 6월에는 [1]편에 소개된 철비 ‘영장류공춘호영세불망비’가 세워져 그의 덕을 기렸고, 7월에는 그의 청렴함과 지방 군사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을 추정할 수 있는 석비 ‘영장류공춘호청덕거사비(營將柳公春浩德去思碑)’가 세워졌다. 비석의 전면에는 ‘營將柳公春浩清德去思碑 惠懷屏翰操潔水玉 撫卒惠普 愛民恩篤 一規清價愼 萬姓歌頌 片珉不磷 氷寓釿誦’, 후면에는 ‘光緒十九年癸巳七月日立 都監李基元 色吏 金潤軾 光武七年癸卯十二月下澣 移改 立 重侈都監朴文植, 色吏 斐興述’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를 국역하면 ‘영장으로서 베푸신 은혜 지조는 빙옥처럼 맑았네. 군사를 어루만지며 널리 사랑했고 백성을 사랑하며 두터이 보살폈네. 한 법도를 청렴하게 행하자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였네. 여기 비석은 인멸되지 않아 영원히 우러러 흠모할 것일세’ ‘광서 19년 계사(1893) 7월 어느 날 세우다. 도감:이기원, 색리:김윤식, 광무 7년 계묘(1903) 12월 하순에 옮겨 세우다. 중수도감:박문식, 색리:배흥술’이다. 두 기의 비석은 본래 동일한 장소에 나란히 건립된 것은 아니었다. 1977년에 발간된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철비는 성건동 392-1번지에 위치했으나, 석비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석비는 1960년대 후반 소태고개 정상에 옮겨졌다. 도감을 맡았던 이기원의 증손자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도감을 맡았던 비석이 성건동 민가 인근에 방치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60년대 후반에 석비를 소달구지에 실어 소태고개 정상에 이건했다고 전한다. 이를 통해 류춘호를 기리기 위한 비석과 그 보존을 위한 후손들의 노력과 의지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위덕대학교에 위탁·운영하는 경주시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이하 경주시센터)가 지난달 25일 경주시청에서 2024년도 조리종사자 대상 집합교육을 실시했다. <사진> 이번 조리종사자 대상 집합교육은 총 70여명의 조리종사자가 참여했으며 1부 개인위생 및 건강관리 교육과 2부 여름철 식중독 예방교육으로 진행됐다. 1부 개인위생 및 건강관리 교육에서는 여름철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반복적인 조리 업무 시 발생할 수 있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밴드를 활용한 스트레칭을 함께 배웠다. 2부 여름철 식중독 예방 교육에서는 전문 지식을 갖춘 강사(청운대학교 김동청 교수)의 강의로 식중독에 대한 위험성과 조리실 위생관리를 통한 식중독 예방에 대해 교육했다. 참여한 조리종사자는 “평소에 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배웠으니 앞으로 열심히 응용하여 건강하게 조리 업무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보였으며, 식중독 예방을 위해 조리실 위생 및 식재료 관리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지현 센터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경주시 지역 어린이 급식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체계적이고 철저한 위생 및 영양관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2013년 12월에 개소한 경주시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10명의 전문영양사가 관내 어린이집, 유치원, 지역아동센터 등 영양사가 없는 어린이 급식시설을 대상으로 급식 위생·안전 및 영양관리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경주정보고는 지난달 29일 경북문화관광공사와 지역 사회 발전과 경북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은 경북지역 관광 인재 양성과 지역 교육 발전을 위해 마련됐다. 업무협약의 주요 내용으로는 △지역 교육 발전 및 경북 관광 활성화 협력 네트워크 구축 △지역의 우수 관광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지원 및 상호 교류 △취업프로그램 참여 기회 및 지역사업체 일자리 정보 제공 등이 포함되며 양 기관의 인적, 물적 인프라를 공유키로 했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식을 계기로 경상북도 문화관광 활성화와 지역 관광 인재 양성을 위한 상호 협업 체계를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상명 교장은 “학교의 질 좋은 교육과 취업 프로그램이 곧 지역의 경쟁력이다”면서 “지방 인구 소멸 시대에 지역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정보고를 비롯해 경주디자인고 등 지역 특성화고와 연계한 문화관광 인력양성의 동반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정보고는 1953년 경주상업고를 시작으로 설립된 상업·정보계열 특성화고로 관광서비스과, 유튜브창업과, 글로벌경영과 등의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늘품은 지난달 29일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방문해 소외계층 복지 증진을 위해 90만원 상당의 오리불고기 밀키트(60인분)를 전달했다. 이번 나눔행사는 무더운 여름을 맞이해 소외받는 지역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 김재섭 대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나눔실천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기탁한 오리로 다가오는 말복을 맞이해 장애인분들이 기력을 보충하고, 건강한 여름을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