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물고기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생명체는 이 신비로운 요소에서 잉태된다. 작품 ‘하늘 물고기’는 이러한 물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물고기는 수많은 신화와 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 작품에서는 물고기를 매개체로 하여 인간 존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늘 물고기는 우주와의 연결을 상징하며, 본질과 근원으로의 회귀를 나타낸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연결을 통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나눌 수 있다. ‘하늘 물고기’는 그러한 동행이며, 보는 이들과 함께 우주 원천의 회귀를 꿈꾼다.
경주지역 내 노인학대 사례가 매년 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등이 공개한 2023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 노인학대 신고접수는 48건이었다. 2020년 37건, 2021년 31건, 2022년 48건 등으로 노인학대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또 최근 4년간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성적 학대, 유기 등도 있어 노인학대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노인학대가 주로 가족들 간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경주에서 지난해 총 48건의 노인학대 신고접수 중 45건은 가정 내에서 이뤄진 학대였다. 이중 학대 가해자가 배우자 17건, 아들 16건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배우자와 아들에 의한 노인학대가 전체의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통계로 잡힌 노인 학대는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자식에게 폭행을 당해도 외부에 알려지면 해가 될까봐 신고하지 않는 사례도 많아서다. 또 부부간 폭력 역시 흔한 부부싸움으로 취급하거나, 남이 알면 부끄럽다는 생각에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가 낮아지는데 여기에 더해 노인학대까지 증가하고 있으니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1년 6월 5일 법률 제3453호로 노인복지법을 제정했다. 누구든지 65세 이상 노인의 신체에 폭행을 가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노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폭행·성희롱 등의 행위,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노인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도록 돼있다. 또 2006년 UN에 이어 2017년부터 우리나라는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제정했다. 하지만 노인학대 사례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노인학대 예방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매우 중요한 현안이다. 순간에 그치는 노인학대 예방대책은 소용 없다. 사회 안전망 강화를 통해 노인들이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노인학대는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장기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 보호 및 학대 예방을 위해 이웃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신고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뿐만아니라 경찰과 보호전문기관들의 적극적인 연계 및 협업 강화도 절실하다.
올 여름 유례없는 무더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민족 최대의 명철인 추석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마트와 상가, 시장 등에서는 성수품을 비롯해 각종 선물세트를 내놓고 손님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올 추석은 사상 유례없는 폭염에 채소와 과일 등 장바구니 물가도 올라 차례상 차리기가 만만찮을 것 같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폭염까지 덮친 여름을 보내면서 추석을 지내야 하는 시민들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은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추석은 예로부터 넉넉함의 상징이었고 마음까지 풍요롭게 한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이웃과 함께하는 훈훈한 명절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에서 나는 농·축·수·특산물이나 제품들을 많이 팔아주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싶다. 폭염 속에서도 피땀 흘려 가꾼 농민들이 생산한 과일 등 농산물과 한과나 전통장류 등 상품들을 많이 구입해 줄 필요가 있다. 이에 맞춰 경주시는 오는 9월 30일까지 농·특산물 특별할인 행사를 열고 있다. 경북 고향장터 사이소도 9월 13일까지 소원 성취 할인쿠폰 이벤트를 통해 구매 금액에 따라 최대 5만원까지 할인쿠폰을 제공한다. 이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어 지역의 우수 농특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여기에 전통시장을 이용해 지역 상인들과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어렵더라도 조금만 신경써고 발품을 팔면 지역에서 생산한 최고 품질의 성수품과 농특산물로 넉넉한 추석을 만들 수 있다. 올해 추석 지역 상품을 많이 구입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정이 넘치길 기대한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단언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라는 표현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표현은 지극한 과장된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대개 광고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광고는 과장 광고이고 허위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에는 시대의 차이 그리고 그로 인한 환경의 차이가 존재한다. 부모 세대는 무조건적인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던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각 개인이 처한 환경은 달랐던 탓에 노력을 했던 모두가 성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녀 세대가 성장해가고 있는 지금의 환경은 더욱 다원화되고 있어서 무조건적인 노력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된다는 말에는 두 가지의 함정이 담겨 있다. 그 첫 번째는 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무시하고 적용되는 ‘누구나’이다. 한 개인의 흥미와 적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그의 선천성에 바탕을 두고 그 분야에서 노력하면 대개는 각자가 원하는 성과에 이르게 된다. 각자가 원하는 성과조차도 다를 수 있다. 노력을 통해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만족스러운 성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스스로 삶의 행복을 얻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라도 가능해지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것’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전제가 붙는다면 일리가 있는 표현이 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이 부여받은 달란트 혹은 소명에 맞는 일이라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무조건적인 노력만을 강요하는 말들은 개인의 흥미와 적성이 더욱 다원적으로 확장되어가는 이 시대에는 금기시되어야 하는 말이다. 두 번째의 함정은 노력 그조차도 인간이 타고나는 재능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는 그의 저서 ‘노력의 배신’에서 ‘노력도 타고난 재능이어서 노력하고 싶다고 누구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어떤 사람에게는 노력이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노력이 굉장히 쉬울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깊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이런 점에 근거해 우리는 노력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가져볼 필요가 있다. 노력한다는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우선 바꾸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연구를 통해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했을 때 재능이 없는 사람이 노력한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열심히 한 사람이 그것을 잘하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그것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더욱더 열심히 그것에 집중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할 때에 동기를 가지고 임하면 훨씬 성과가 좋아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청소년들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맹목적인 노력을 해왔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가진 꿈과 자신이 그간 들여왔던 노력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상관관계를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그 상관관계를 깊이 인식해야 노력의 값어치가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즉, 흥미와 적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식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서 자신의 몸에 맞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조건적인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무조건적인 노력보다는 ‘그는 무엇에 노력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난 6월 27일 2025년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주시는 인천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와 경쟁을 벌여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에 성공했다. 21개 나라 정상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행사 선정에서 광역자치단체를 제치고 경주시가 유치한 것은 지역발전을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유치추진위원회가 노력한 결과다.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유치추진위원회와 협력하여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각계각층의 지지 선언이 이어진 배경에는 지역주민들이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개최에 거는 기대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지가 경주로 발표되면서 시가지 곳곳에 환영하는 현수막이 나붙는 등 축제 분위기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북도는 전국적으로 약 1조80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은 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알려 국제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에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주민들이 기대하는 지역발전 효과는 2025 APEC 정상회의 성공에도 포함된 과제다. 2025 APEC 정상회의 성공을 위해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현장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현장점검 결과, 21개 나라 정상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에 걸맞은 도시 환경 정비와 정상 회의장으로 지정한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를 비롯한 보문단지 시설과 공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보문단지는 조성한 기간이 50여 년 가까이 지나 정상급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낡고 미흡한 점이 많은 탓이다. 낙후된 시설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21개 나라 정상들이 머물 숙소 개선과 더불어 비어있는 보문상가와 폐업한 채로 방치된 숙박 시설, 신라밀레니엄파크 등은 시급히 정비하여 활용방안을 찾아야 할 과제다. 정비와 개선할 대상이 대부분 민간 소유로 운영되고 있어서 지원을 위한 제도개선과 협력이 필요하다. 경주시는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위한 국비지원과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9월 중에 준비지원단과 지역주민 참여와 협력을 위한 민간협력조직을 구성할 예정이다. 2025 APEC 정상회의 준비에서 정상급 손님맞이 못지않게 주민 생활과 밀접한 도시 환경 정비와 개선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내실을 가져올 수 있다. 도시 환경을 정비하면서 폐철로 인해 방치된 북천철교와 같은 시설물 철거보다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보기 흉하다고 북천철교를 철거하는 것보다 보기 좋게 단장해서 북천 좌안과 우안을 연결하는 산책로 활용이 대표적이다. 머지않아 중앙선과 동해선이 완공되면 북천철교는 도심과 광역철도망을 신교통수단으로 연결하는데 활용될 수도 있어 철거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25 APEC 정상회의 성공을 위해 보문단지와 도시 환경을 정비하고 개선하는 동시에 유치 효과가 실속을 거두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회의가 지역에서 개최될 수 있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APEC 의장국에서 개최되는 정상회의는 불과 2, 3일에 불과하지만, 고위관료회의, 합동각료회의와 분야별 장관회의, 경제인자문회의(ABAC) 등이 연중 분산되어 개최되고 있다. APEC 의장국에서 연중 개최되는 회의가 지역에서 최대한 많이 열릴 때, 경제적 효과와 도시를 널리 알리는 내실을 기대할 수 있다. 2008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페루(Peru)에서 개최하는 2024 APEC 정상회의는 지난해 12월 4일부터 비공식 고위관리회의(ISOM)를 시작으로 정상회의까지 이미 열렸거나 예정인 21차례 회의는 수도 리마(Lima)를 비롯한 5개 도시에 분산되어 개최되고 있다. APEC 의장국에서 열리는 회의가 분산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경주에서 정상회의만 열리고 연중 개최되는 회의가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진행된다면, 경주는 실속을 챙기기 어렵다.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 효과에서 내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최대한 많은 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2025 APEC 의장국으로서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공식회의도 가능한 많이 열려야 하고, 과학기술,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민간교류의 중심 역할을 경주가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경주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재해석하고 활용하여 세계인이 즐겨 찾는 역사문화 도시로 발돋움하는 기회가 되어, 내실 있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기대한다.
경주 강동면 다산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옥구(沃溝)이씨 성인당(成仁堂) 이희룡(李希龍,1549~1592)과 그의 아들 이문진(李文軫) 그리고 며느리 김씨에 대한 충(忠)․효(孝)․열(烈)의 삼강(三綱)을 기리기 위해 1709년에 건립된 삼강묘비가 있고, 그 옆에 절효(節孝)·충렬(忠烈)·삼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정려문이 우뚝하게 자리한다. 그 주변으로 후손이 마련한 삼송재(三松齋)가 있고, 그 뒤편에 사당이 있었다. 이희룡은 선조 9년(1576) 28세에 식년시 병과에 합격해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의주까지 호위하였고, 경주와 울산 사이 적의 동향을 엿보고자 내려가다 충주의 달천(獺川)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에 그의 아들 이문진은 충주에 이르러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고, 불행히도 영천 신녕에서 왜놈에게 잡혀 살해된다. 이 소식을 접한 이문진의 아내 역시 남편과 시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시체 더미를 뒤지고, 심지어 손수 바느질한 옷감을 비교하며 3개월을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농수(農叟) 최천익(崔天翼,1712~1779)은 「삼강비명(三綱碑銘)」에서 “이희룡의 자는 사휘(士輝)이고, 선대는 옥구사람이다. 훗날 경주에서 집안을 이루었다. 병법을 좋아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잘 쏘았으며, 무과에 합격해 사헌부 감찰에 보임되었다. 선조 임진년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의주에 왕을 따라갔다가 영남에 적을 정탐하는 명을 받았다. 이때 적이 충청도와 경상도에 넓게 주둔해 있었고, 천리에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공은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경주와 울산 등지에 출몰하였고, 허실과 완급의 상태를 살펴 다 얻었다. 왕이 계시는 행재소(行在所)로 돌아가다가 충주에 이르러 적을 만나 나아가지 못하게 되자, 공은 ‘왕명을 받은 몸이라 몸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앞에 나아가 적과 싸워 죽음으로 임금에게 알리겠노라’하고는 마침내 홀로 힘써 싸우다 죽었다”고 언급한다. 1709년에 어사 박봉령(朴鳳齡,1671~1718)이 일을 조정에 보고하고, 이듬해 이희룡은 통정대부 참의, 이문진은 도사(都事), 며느리 김씨에게 종9품의 단인(端人)에 추증되었고, ‘節孝忠烈三綱俱備之門’의 정려문이 내려졌다. 삼강은 유고 윤리의 세 가지 근본으로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벼리를 말한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로 벼리를 촘촘히 당기면 안의 고기가 나가지 못하고, 반대로 벼리가 느슨해지면 안의 고기가 모두 달아나 낭패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마음속에 군신, 부자, 부부 이 세 가지의 벼리를 잘 단속해 사람의 도리를 펼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 대제학을 지낸 뇌연(雷淵) 남유용(南有容,1698~1773)은 「이씨삼강묘비명(李氏三綱廟碑銘)」에서 “한 집안에서 신하가 임금을 위해 죽고,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죽고, 며느리가 남편을 위해 죽어서 삼강의 온전함을 얻은 경우는 세상에 견줄 만한 것이 없이 가장 뛰어날 것이다(若一家之內 臣死於君 子死於父 婦死於夫 得三綱之全者 亦天下一而已矣)”라고 높이 평가하였으니, 조정과 옥구이씨 집안의 큰 자랑이 된다. 영조 17년(1741)에 올린 장계의 의하면, “단구사사(丹丘社祠)는 증 참의 이희룡, 학생 권복흥(權復興), 도사 이문진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경술년(1730) 2월에 창건하였습니다. 그때 재임한 감사는 박문수(朴文秀)이고, 부윤은 이중관(李重觀)이며, 그 일을 앞장서서 주도한 유생은 이석표(李碩標)입니다”라고 전한다.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 역시 단구향사에 임란의병장 이희룡, 권복흥, 이문진을 제향하는 봉안문을 지었다. 이희룡에 대해서 『영남인물고』,『여지도서』 및 다수의 문인들 글에 전한다. 그런데 남유용의 「이씨삼강묘비명」 글에 의하면, 이희룡의 자를 응서(應瑞)로 기록하였고, 앞서 최천익이 지은 「삼강비명」에는 자를 사휘(士輝) 등으로 표기하였으니, ‘이희룡’ 동일인물에 대해 정확한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내남 고곡리 전투에서 사망한 이희룡[자 운로(雲老)] 의병장도 있다. 게다가 1972년 강동면 오정길에 건립된 우애당(友愛堂)은 형 이변룡(李變龍)과 동생 이희룡(李希龍)이 부친 이응백(李應百)의 상을 당하자, 형제가 여막을 짓고 3년 시묘(侍墓)한 일로 ‘우애당’이라 편액하였다. 그로 인해 예로부터 효막동(孝幕洞)으로 불렸고, 우애당 안에는 유연재(惟湅齋), 성인재(成仁齋) 현판이 걸려있다.
2019년 코로나가 발생했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대한민국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천만다행으로 코로나의 치사율이 급격히 낮아졌고 위험단계가 내려가면서 격리조차 없이 마스크만 제대로 착용하고 외출도 가능하다. 그렇게 역사가 되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2024년 여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코로나는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면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싶다. 동네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검사하면 99.9% 코로나 확진이란다.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사람, 일부러 검사를 안 하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며 확산세가 무섭단다. 결국 아줌마네 집에도 코로나가 들어왔다. 큰 딸아이가 코로나로 확진되더니 삼 일이 넘도록 열이 계속 나서 폐렴 검사를 했더니 폐렴이란다. 기침과 가래, 네다섯 시간마다 열이 나고, 아이는 몹시나 힘든 기간을 보냈다. 아줌마도 나머지 두 아이에게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폐렴도 뒤이어 찾아왔다. 옛날 드라마에서 폐병 걸린 사람이 피를 토하듯이 기침을 하는데, 딱 그 모습이다. 폐에 염증이 생긴 것이 폐렴이니 폐렴도 폐병 중의 하나이리라(다만 옛날 드라마에서 폐병은 폐렴이 아니라 폐결핵이다). 몇 주간을 병원을 드나들면서 느낀 것은 이번 코로나는 합병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물론 코로나만 확진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코로나에 백일해, 코로나에 폐렴, 코로나에 장염이 이어서 온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독감 환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걸려서 다 나았다고 방심하면 독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의 말은 마스크 없이 지내는 것은 당분간 힘들 것 같다고 한다. 큰 딸이 코로나에 폐렴이 걸려서 완치되었다고 마스크 없이 등교할 수 없다. 독감의 위험이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학교를 보냈다. 병원에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으면, 기침으로 돌림노래를 부르는 수액실의 상황이 웃프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도 없다. 어린 손주와 함께 오신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링거를 맞고 계시거나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맞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집에서 일단 누군가 시작되면 결국엔 온 가족이 힘든 병원나들이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동네 병원에서 12시 30분까지 하는 오전 진료는 11시가 되기 전에 마감되기 일쑤고, 병원문을 여는 순간부터 문을 닫는 순간까지 병원은 북새통이다. “대기실에 50명이 없는데, 53명째라는 건 뭔 소리야?”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왔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 진료받아요?” “오후 진료는 왜 접수 안 돼요?” 일일이 응대하는 간호사님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아줌마는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한다. “선생님, 저희 순서 지났나요?” 병원 오픈 전에 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삼사십 분 있다가 병원에 다시 오는 길이다. 역시나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접수가 제대로된 것이 맞냐는 질문을 하는 어르신께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차근차근 설명드렸다. 대기시간이 너무 기니, 댁이 멀지 않으시면 댁에 계셨다가 한 시간 30분 정도 있다가 오시라고, 저도 그랬다고. 지금 여기 코로나 확진자랑 폐렴환자들이 너무 많다고.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 중인 와중에도 또 다른 불만들이 간호사들을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 이번 코로나는 몸살이 함께 와서 지난 코로나보다 확실히 더 힘들다. 다행히 아줌마가 사는 동네에는 동네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어서, 약도 해열제도 제대로 처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런데 아줌마는 조금 무섭다. 이것이 곧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독감이 유행하고, 코로나는 여전히 변이를 계속하고, 원숭이두창 소식과, 만년설이 녹으면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아줌마의 걱정이 오지랖으로만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성악가였지만, 아들이 음악보다는 법학을 전공하길 원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이 사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법학을 그만두고, 당대의 거장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의 수제자가 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20세기 초 활동무대를 당시 첨단 유행도시였던 프랑스 파리로 옮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드디어 행운이 찾아온다. 동향의 다재다능한 공연기획자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 1872-1929)를 만난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단번에 스트라빈스키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자신이 운영하는 발레뤼스(러시아발레단)의 레퍼토리를 위한 발레음악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의뢰하는데, 이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불새(fire bird, 1910)다. 불새는 파리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스트라빈스키는 일약 파리의 스타 작곡가로 등극한다. 불새의 성공으로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에게 두 번째 발레음악을 의뢰한다. 두 번째 작품은 페트로슈카(Petrouchkah, 1911)다. 이 작품도 성공을 거두자 스트라빈스키는 차기작에서 전례 없이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1913)이란 작품이다. 봄의 제전은 타악기의 강력한 리듬으로 원시주의를 표방했다.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 모두 흥행을 점쳤으나 이 생경한 작품의 결과는 처참했다. 공연장은 폭동이 일어난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 장면은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도입부에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연은 분명 실패였다. 하지만 봄의 제전의 유명세는 오히려 커져 갔고, 오늘날에도 무용가들의 중요한 창작 원천이 되고 있다.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이어서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스트라빈스키는 (1962년에 소련의 공식 초청을 받기 전까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음악가로 평가받았지만, 제1차 대전 이후에는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새로운 파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작품들은 3대 발레음악으로 불리는 불새, 페트로슈카, 봄의 제전을 비롯한 초기 작품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생애 후기에 작곡된 쇤베르크식 무조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성 짙은 초기 작품들의 아우라는 대단했다. 스트라빈스키는 1934년 프랑스에 귀화하고, 1939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미국에 귀화한다. 대부분의 망명 작곡가들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스트라빈스키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교류할 정도로 사교적이었다. 1962년(80세)에는 소련 작곡가 연맹의 초청으로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조국의 땅을 밟는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머무는 동안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 1906-1975),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 1903-1978)과 같은 걸출한 후배들과 만나 교류했다.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가 죽은 후 스트라빈스키는 현대음악의 독보적인 거장으로 존경받았다. 1971년(89세) 뉴욕에서 사망했고, 베네치아 산 미켈레 성당에 잠들어 있던 필생의 은인 디아길레프의 곁에 묻힌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앞에는 스트라빈스키 조각분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가 프랑스 파리에 미친 영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한국청소년화랑도연맹은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울릉크루즈를 이용해 울릉도 일원 탐방 및 임원 워크숍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워크숍은 울릉도의 풍부한 자연과 역사적 명소를 체험하며 연맹의 향후 활동을 논의했다. 워크숍 주요 안건은 공익사업 활성화 방안 논의, 교원 연수(활쏘기)강사 역량강화 교육일정 협의, APEC 성공개최 기원 퍼포먼스 협의, 국궁(활쏘기) 활성화 방안 협의 등 연맹의 발전과 관련된 주요 안건이 논의됐다. (사)한국청소년화랑도연맹 김윤아 이사장은 “이번 워크숍을 통해 임원들과 함께 연맹의 비전을 공유하고, 중요한 사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며 “특히 APEC 성공개최를 위해 연맹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전통 국궁의 활성화와 공익사업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은 지난 21일 지회 3층 강당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개최했다. <사진> 아나바다 장터는 행복선생님으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남은 물품과 많이 사용했지만 현재 활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나누고 교체하는 자리였다. 장터가 열리기 전 탄소중립 교육이 동영상으로 진행됐으며, 짧은 토론도 진행됐다. 이번 아나바다 운영은 탄소중립 실천의 최종 의제로 선정돼 개최하게 됐으며, 가정에 남아 있는 의류, 생활소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2차 아나바다 행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물품 나눔 이외에도 선생님들의 탄소중립 실천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새로운 의제 발굴을 위한 기부물품 장터도 열렸다. 이날 가장 인기 있는 물품은 와인과 핫팩이었다. 특히 실생활에서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서로의 약속과 이야기 나눔은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탄소중립포인트 에너지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가정, 상업 등에서 전기, 상수도, 도시가스의 사용량을 절감하고 감축률에 따라 탄소포인트를 부여하는 전국민 온실가스 감축 실천 제도다. 이에 행복선생님들은 포인트 제도를 활용해 인센티브를 지급받고 있다. 행복선생님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 함께한 아나바다 장터는 화합의 장이 됐다”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탄소중립 실천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실천 방법을 찾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동균 사무국장은 “앞으로 탄소중립 실천 및 아나바다 행사가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선생님들과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 명산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시즌2 프로그램이 시행 1개월 만에 참가자가 1만1000명을 넘어서며 제작 기념품 92%가 조기 소진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탬프 투어는 경주국립공원사무소와 경주시가 공동 기획·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부터 경주를 방문하는 탐방객에게 경주국립공원의 주요 관광명소를 여행하며 스탬프를 찍어 오면 기념품을 제공한다. <사진> 당초 10월 말까지 진행 예정이었던 스탬프 투어가 참여자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기념품이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되자 예산을 확보해 기념품을 추가로 배부하게 됐다. 또 인증 완료했지만 기념품 소진으로 받지 못한 참여자에 한해서는 방문 또는 택배배송(착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기존 4개소였던 기념품 및 스탬프 북 배부처를 효율적 운영을 위해 경주국립공원사무소(경주시 천북남로 12)에서만 운영한다. 궁금한 사항은 경주국립공원사무소 전화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1647호 경주 사천왕사 터(上)에 이어 문두루비법으로 나라 구한 밀교(密敎) 승려 명랑(明朗) 명랑은 632년(선덕여왕 1)에 당나라로 건너가 비밀 불교인 밀교(密敎)의 비법을 배우고 635년(을미년, 선덕여왕 4)에 신라로 돌아왔다. 《삼국유사》 신주(神呪) 편에는 명랑이 환국할 때 기이한 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랑은 환국하는 길에 해룡의 청을 받아 용궁에 갔다. 명랑은 비법을 전수해 주고, 금 천냥을 받았다. 명랑은 이걸 가지고 땅속으로 와서 신라 본가 집 우물 밑 명치에서 솟아 나왔다. 이어 자기 집을 절로 만들고 용왕이 시주한 금으로 탑과 불상을 장식하니 유달리 빛이 났으므로 금광사(金光寺)라고 하였다’ 명랑의 어머니는 자장율사의 누이동생 남간부인이고 아버지는 신라 사간(沙干, 신라 17관등 중 8등) 재량(才良)이다. 재량에게 아들이 셋이었으니 맏이가 국교(國敎) 대덕이요, 둘째가 의안(義安) 대덕이고, 셋째가 명랑(明朗) 법사다. 문무왕은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명랑법사를 불러 당나라 군대를 막을 계책을 물었다. 명랑은 낭산 남쪽에 신유림이 있으니, 거기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님의 힘을 빌려 보자고 했다. 그때 정주(貞州, 지금의 개성)에서 급히 보고하기를 이미 당나라 군사가 국경 바닷가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랑은 곱게 물들인 비단으로 절의 형태를 흉내 내고 오방신을 만들어, 유가명승((瑜伽明僧) 12명에게 문두루비밀지법(文豆婁秘密之法, 만다라)을 쓰게 했다. 무슨 연유인지 당나라 군대는 큰 풍랑을 맞고 모두 침몰하였다. 문무왕은 낭산 남쪽 기슭에 절을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 했다. 그 뒤 671년 당나라 군사가 다시 신라를 침범했지만 예와 똑같이 문두루비밀지법을 행하니 모두 침몰하였다. 당 고종이 이를 알고 당시 옥중에 있던 신라 한림랑(翰林郎,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던 한림대(翰林臺)의 우두머리) 박문준과 김인문 중 박문준을 불렀다. 신라에 무슨 비법이 있기에 대군을 보냈는데 두 번이나 모두 살아 돌아오는 자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박문준은 당나라에 온 지 10여 년이 되므로 본국의 일을 잘 알지 못하지만 듣건대, 귀국의 은혜로 삼국을 통일하였으므로 그 은덕을 갚기 위하여 절을 짓고 법석을 열어 황제의 만수무강을 빈다고 했다. 황제가 기뻐하며 예부시랑 악붕귀를 신라에 보내 사천왕사를 살펴보게 했다. 문무왕은 당나라 사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사천왕사 인근에 새로운 절을 지었다. 신라 대신들은 악붕귀를 새로 지은 절로 인도했다. 약붕귀는 사천왕사가 아닌 것을 알고 ‘망덕요산지사(望德遙山之寺)’라며 노여워하며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들이 황금 천 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아가 신라가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더라고 아뢨다. 이후 문무왕은, 강수에게 명하여 당 고종에게 김인문을 사면해 줄 것을 간청하는 표문을 쓰게 했다. 이는 당 고종이 신라를 의심할 때 옥에 있던 한림랑 박문준이 잘 아뢴 것에 황제가 감동하여 너그럽게 사면할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표문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 김인문을 사면하고 위로하여 신라로 돌려보냈다. 복원한 서탑 기단 벽면에 사천왕의 생생한 모습 담은 녹유신장상 사적 8호로 지정된 사천왕사 터에 올라 본다. 좌우에 단을 돋운 동탑과 서탑 터가 먼저 눈에 띈다. 사천왕사 터는 신라 최초의 쌍탑 가람 터로 알려졌다. 풀과 풀 사이에 석조물이 엎어져 있다. 동·서탑 터를 지나 금당지를 지나 회랑 터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시간을 살면서 풀들은 또 얼마나 쓰러지고 일어섰을까. 사천왕사는 신라 문무왕 19년(679년)에 경주 낭산 기슭 신유림(神遊林)에 세워진 호국사찰이었다. 1915년인 일제강점기에 첫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 조각이 나온 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재발굴하여 녹유신장상 파편 여러 개를 발굴했다. 녹유전(綠釉塼)은 녹색 유약을 칠한 벽돌이다. 신장상은 모두 3명으로, 신라 최고 조각가 양지가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서탑 터에는 탑 기단 벽체를 복원해 놓았는데 벽면에 녹유 신장상을 복제해 붙여 놓았다. 큰 눈과 콧수염, 날개 달린 투구와 화려하고 세밀한 갑옷, 신발을 신거나 맨발로 칼이나 화살을 들고 있는 무장한 신장은 험악하거나 때로는 여유로운 표정마저 지니고 있다. 하나같이 악한 것들을 밟거나 깔고 앉아 보는 이에게 악한 마음을 품지마라 이르는 것만 같다. 세밀하게 빚어낸 솜씨가 경지에 다다른 듯하다. 불교의 세계에서는 중심에 수미산이라는 어마어마한 산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수미산 꼭대기에 도리천이 흐르고, 주변 대륙 네 곳을 지키는 천부의 왕들을 사대천왕(四大天王),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조금 큰 절의 입구마다 천왕문(사천왕문)이 있는데 절에 따라 해탈문이나 금강문이 있기도 하다. 천왕문에 들어가면 사천왕 조각상이 왼쪽에 2좌(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오른쪽에 2좌(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있는 구조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하늘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므로 보통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근육질로 묘사하며 자세도 위압적이다. 크기도 사람을 압도하도록 거대하게 만든다. 마구니, 잡귀를 발로 밟고 있는 모습도 있다. 문무왕릉비(碑)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천왕사 귀부 절터 앞 산업도로 아래 풀밭에는 두 기의 거북이 형상의 비석 받침대(귀부)가 동서로 하나씩 엎드려 있다. 비석은 신라 멸망 후 어느 시기 파손된 채 잊히다가 조선 정조 20년(1796) 경주부윤 홍양호(洪良浩)가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청나라 유희해(劉喜海)가 한반도의 각종 금석문의 탁본을 모아 1832년에 편찬한《해동금석원》에 실었다. 상단부의 소편(小片) 1개는 2009년 경주문화원(舊 박물관) 옆 주택가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문무왕릉비는 사천왕사 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비(碑)에는 삼국통일을 이뤄낸 문무왕을 기리는 내용으로 비문은 급찬(級飡, 신라 9등 벼슬) 국학소경(國學少卿)이었던 김??(마모로 알아볼 수 없음)이, 글씨는 대사(大舍) 한눌유(韓訥儒)가 썼다고 기록했다. 풀밭에 동서로 놓여있는 귀부 중 동쪽에 있는 것은 사적비의 받침돌, 서쪽에는 문무왕릉비의 받침돌로 추정한다. 당대의 다른 왕의 비는 왕릉 앞에 세워졌지만, 문무왕은 동해에 불교식으로 장사를 지냈기에 왕릉이 없다. 사천왕사 터의 귀부 2개가 문무왕릉비 크기와 크기가 맞아떨어진다고 하니 어쩌면 여기 있는 거북이가 짊어지고 있던 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무왕릉비는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재위 2년(682) 7월 25일에 세웠다. 부왕이 나라를 위해 세운 절에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는 가설이 낯설지 않다. 일제가 개설한 동해남부선 광궤 폐철길과 지금은 산업도로가 된 경주, 울산 간 신작로가 옛 절터의 강당 터 일부를 파괴하면서 사천왕사 터를 옥죄고 있는 듯하다. 사천왕사는 없지만 풀밭에 서서 호국사찰의 위엄을 상상해 본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전장으로 나가기 전 사천왕사 앞에 도열한 군사의 사기를 돋우던 문무왕의 위엄이 들리는 듯하다. 저 무성한 풀밭에 엎드린 채 천년 동안 꿈쩍 않는 저 거북이는 언제 풀밭을 기어 나올까.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22일 경주시취업지원센터와 지역 장애인 일자리창출 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이번 협약식은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귀룡 센터장을 비롯해 경주시취업지원센터 김경수 센터장, 김성수 과장 등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지역 장애인의 취·창업 지원을 위한 인적·물적 정보교류 △취업지원 프로그램 공동주최 △상호발전과 설립목적 달성을 위한 협력 △장애인 구인정보 상호교류 및 취업지원센터 특강 안내 등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지역장애인의 효과적인 취업 지원과 함께 취업 활성화 및 일자리창출 등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경주시취업지원센터는 만19세 이상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를 위해 성공적인 취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 컨설팅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경주시가 지난 26일부터 맘(MOM) 편한 24시 다함께 돌봄센터 이용 아동을 모집·운영한다. <사진> 맘편한 24시 다함께 돌봄센터는 맞벌이, 자영업, 교대근무 등 출·퇴근 변수가 많은 가구의 아동을 돌보는 사업이다. 운영 종료시간은 기존 오후 6시 30분에서 24시까지 연장했다. 학기 중은 10시부터 24시까지, 방학 중은 8시부터 24까지 운영된다. 여기에 정기돌봄을 포함한 일시(긴급) 돌봄도 가능하다. 독서 및 학습지도, 코딩, 보드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집은 만 6세~12세 초등학생이 대상이며, 소득과는 무관하다. 위치는 용강동 아이신나마을돌봄터(승삼4길9-16)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역에서 시행되는 첫 24시 돌봄센터인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해 저출생 인구 변화에 대응하고 안전한 아동보호 체계를 구축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부자댁을 취재하면서 많은 의미 있는 의문들을 품게 되었다. 그 반면 굉장히 현실적인 물음도 생겼는데 그게 바로 최부자댁에는 어떤 값진 보물들이 전해져 내려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부자가 된 최국선 공부터 따져도 300년 넘게 부를 이어온 집안이니 남들보다 훨씬 눈에 띄는 가보(家寶)가 전해져 내려 올 것이란 추측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런 물음을 최염 선생님께 여쭈어보자 선생님도 매우 재미있는 질문이라며 웃으셨다. 그렇게 반기시는 것과 달리 선생님의 안색은 금방 어두워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질문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때부터 며칠에 걸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실로 가슴 뜨겁고 웅장한 이야기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최부자댁, 다시 말해 최염 선생님께 내려온 최부자댁에는 특별히 진귀하거나 값나가는 물건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최부자댁을 떠난 보물들은 가히 기록적이다. 그중에서도 최염 선생님이 직접 확인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한 가보가 한 점 있어 우선 이 이야기부터 들려드리기로 하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단계석 벼루’에 대한 이야기다. ‘벼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말일 것이다. 붓, 먹, 종이, 벼루를 통칭하여 부르는 이 문방사우 중에서 선비들이 가장 아낀 것이 있다면 단연 벼루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물품들은 소비성 제품이지만 벼루는 석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 장만하면 오래가는 ‘문방사우의 대장’ 역이다. 때문에 반가(班家)라면 한두 점쯤은 대물림하며 가보로 보존할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골동품을 모으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골동품을 가지고 있어도 벼루가 없다면 ‘대문 없는 집’이라고 할 만큼 벼루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벼루는 5관이나 되는 문양을 잘 살린 단계연이었고 벼루집은 오동나무를 통째로 파서 합으로 만든 최고의 명품이었지요” 벼루는 돌을 깎고 갈아서 만들지만 벼루용 석재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치는 것이 중국 광동성(廣東省) 단주(端州)에서 생산되는 단계석(端溪石)이다. 이 단계석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재에 비해 좋은 것은 무엇보다 돌 자체에 아름다운 문양이 스며 있어서이다. 이 자연상태의 문양을 단계석을 다루는 장인은 최고로 돋보이게 깎고 갈아 그 벼루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단계석이 벼루 만들기에 적합한 또 다른 이유는 재질이 단단하여 수분 흡수력이 낮은 반면 입자가 고르고 조밀해 벼루를 다듬을 때 정이나 조각도가 움직이는 대로 조각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단계석은 흑색, 청색, 녹색, 자주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을 띠고 있는데 그 중 자주색, 자갈색 나는 재료를 최상급 단계석으로 친다고 한다. 이 단계석 벼루는 다른 지방에서 나는 벼루와 차별되어 이름난 학자 문인들이라면 응당 단계석 벼루 한 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그런 단계석 벼루 중에서도 우리 집의 단계연은 특별했어요. 우선 무게가 자그마치 5관이나 되었으니 다른 벼루에 비해 단연 큰 벼루였지요. 내가 기억하기로 가로가 약 35센티에 세로가 50센티, 두께가 5센티쯤 되었지요” 요즘 단위로 1관은 3.75kg다. 5관이면 자그마치 19킬로다. 게다가 세로로 무려 50센티라니, 이런 큰 벼루는 어지간한 반가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큰 벼루다. “이렇게 큰 벼루가 품격도 아주 높았어요. 특별히 조각을 하지는 않은 대신 벼루에 스며든 원래의 문양이 마치 고사리가 뒤엉켜 있듯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최상품의 단계석을 최고의 장인이 다듬은 것임을 알 수 있었어요!” 보통 벼루를 논할 때는 질(質), 품(品), 공(工), 명(銘), 식(飾)이라고 해서 벼루의 석질과 벼루 재질 자체의 무늬, 돌을 다듬어 벼루를 다듬은 수준과 벼루에 새겨진 글씨의 품격, 벼루에 새겨진 문양이나 장식의 수준 등을 함께 보는데 최부자댁 단계석 벼루는 이런 미학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최염 선생님의 회고였다. 그런데 단지 벼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벼루를 보관하는 벼루집이 또 일품이었어요. 5관이나 되는 벼루를 보관하려면 벼루집도 당연히 그에 걸맞게 커야 할 것 아닌가. 더구나 최상의 품격을 자랑하는 벼루였으니 벼루집 역시 그에 합당할 만큼 아름답고 격조가 높아야 했겠죠” 이 벼루집은 특별한 위에 더 특별한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 목가구의 특징은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다하는 벼루집들 역시 대부분 짜맞추기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이 벼루집은 그런 일반적인 기준마저도 넘어서서 아예 오동나무를 통째로 파내어 그 자체로 합을 만든 최고의 명품이었다. 오동나무를 켜고 잘라서 짜맞추려고 해도 그만한 굵기의 나무둥치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이건 숫제 오동나무를 파서 합을 만들고 그 합 자체로 벼루집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장관이었겠는가? 예로부터 양가에서는 아들아이가 태어나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고 그 아이가 늙어 죽으면 아이 때 심었던 나무를 베어 관으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반면 딸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그 아이가 커서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를 베어 장롱을 만들어 보냈다고 할 만큼 오동나무를 중히 여겼다. 오동나무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는 목질이 가볍고 단단하며 켰을 때 문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동나무의 특성상 거목을 만나기 어렵고 최부자댁 단계석 벼루 정도를 담을 만큼 큰 오동나무를 찾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니 그 벼루집이 가지고 있는 품격과 가치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 자꾸만 대가를 지불하려 하자 학교만 잘 키워달라는 뜻에서 이 벼루까지 선물했어요!” 그러나 이 단계연과 벼루집은 1964년 여름 이후 최부자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야 했다. 문파 선생님께서 이 벼루를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선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벼루를 선물한 이유가 웅대하다. 문파 선생님께서 이병철 삼성회장에게 대구대 운영권을 넘겨준 후 이병철 회장이 할아버지께 자꾸만 무언가 대가를 지불하려 하자 ‘대가는 필요 없으니 학교만 잘 키워 달라’는 단호한 의미로 거꾸로 이 단계석 벼루까지 선물한 것이었다. 다시 최염 선생님의 회고! “그 벼루는 내가 직접 보자기에 싸서 할아버지와 함께 경주 우리집에서 서울의 삼성본관 이병철 회장 집무실까지 옮겨 갔고 할아버지께서 손수 보자기를 끌러 이병철 회장에게 주셨지요. 이병철 회장은 목조가구나 목각골동품에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유명한데 당시 벼루보다 벼루집을 더 꼼꼼히 살펴보며 한 10여 분 동안 눈을 떼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명품 벼루를 받은 이병철 회장이 반가와 환호라도 할 줄 알았던 예상이 뜻밖에도 매우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최염 선생님 기억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것은 대구대를 문자 그대로 사심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키우라는 무언의 거대하고 진실된 압박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벼루가 삼성 관련 박물관이나 이런 곳에 전시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아름다운 벼루라면 응당 국보나 보물처럼 다루어도 손색없었을 성 싶은데요!” 내 질문에 최염 선생님은 씁쓸히 웃으셨다. 안타깝게도 최염 선생님 자신도 그날 이후 이 벼루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고 삼성에서도 이 벼루를 일절 공개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나누었을 당시가 2017년 초였다. 당시 최염 선생님은 문파 선생님 정신을 되살리고 영남대의 정상화를 위해 법적인 조력을 해주고 있던 최봉태 변호사란 분과 이 벼루와 관련, 삼성에 소송을 제기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뒤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며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나는 당시 최염 선생님께 대구대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넘어가는 시기에 왜 이 벼루라도 내놓으라고 하지 않으셨냐는 참 어리석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때 선생님 대답도 처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할아버지가 이병철 회장에게 준 이후 이 벼루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어요. 아니,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전재산을 몽땅 희사하여 설립한 대학도 넘겨주신 할아버지신데 그 손자로서 벼루 하나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봉태 변호사는 이 벼루를 이병철 회장에게 주었을 때는 학교를 제대로 가꾸고 키워달라는 의미로 주었는데 결국 이병철 회장이 학교를 고스란히 박정희에게 넘겨주었으니 약속 위반이 된 것이고 따라서 벼루를 도로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나는 그 말에 타당함을 느끼면서도 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기왕에 줘버린 벼루에 대해서 가타부타 시비를 걸 생각이 없었지요” 나는 선생님 대답을 들으며 최부자댁의 후손들의 마음의 크기를 불현듯 깨달았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 재산, 심지어 선산과 살고 있는 집의 땅까지 모두 대구대학 설립에 희사한 문파 선생님의 넓고 깊은 정신세계와 그런 할아버지의 뜻을 지키고자 국보급 보물인 단계석 벼루를 깨끗이 단념했던 최염 선생님의 마음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경주최부자의 꿋꿋한 정신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염 선생님은 “이 벼루를 찾을 수 있다면 큰 뜻으로 학교 운영권을 넘겨주시던 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이 재확인될 것이고 앞으로 영남대가 정상화되면 영남대 내 할아버지께서 기증하신 방대한 서책을 바탕으로 만든 ‘문파문고’에 함께 전시하거나 경주 교촌 우리집에 할아버지 기념관을 지을 때 ‘조상님들 정신을 상징하는 유물’로 적합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쉽게도 최염 선생님께나 문파문고에 아직도 이 단계석 벼루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삼성가는 이 벼루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문파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이병철 회장도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 지났으니 단계석 벼루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 제빛을 발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바람일까?
경주시가 지난 20일 선도동 야척마을 회관에서 LPG 소형저장탱크 보급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사진> 시는 2017년부터 도시가스 미설치 지역을 대상으로 LPG 소형저장탱크 및 배관망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시와 LPG사업관리원은 이날 설명회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업 내용과 일정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선도동 야척마을은 현재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난방비가 높고, LPG용기 교환이 잦은 등 부담을 안고 있다. 또 심야 시간과 휴일에는 LPG용기 배달이 안 돼 큰 불편을 겪어 왔다. 이에 따라 시는 야척마을 LPG 소형저장탱크 보급을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편 이 사업은 지난 2017년 월성동 천원마을과 보덕동 대성마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8개 마을 461세대에 LPG배관망을 구축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LPG를 사용하고 난방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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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에는 기온이 떨어져 혈관이 수축돼 혈압상승 등에 의한 뇌출혈이 많이 발생하고 피가 응고되기 쉬운 조건이기 때문에 여름보다 뇌졸중 발생률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날과 비슷하게 뇌졸중이 발생하는데, 이는 폭염으로 인한 탈수로 혈액이 농축되고 혈관 스트레스가 증가해 기존 혈전이 더 커지거나 새롭게 생성되어 뇌졸중의 위험성을 올리기 때문이다. 뇌줄중은 뇌혈관에 이상이 생겨 발생되는 질환이다.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손발 마비, 언어장애,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을 말한다. 뇌동맥이 막히거나 갑자기 터져 출혈한 혈액이 굳어져 혈관을 막고 주위 신경을 압박하여 여러 가지 신경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뇌졸중의 원인 고혈압 혈압이 지속적으로 높으면 뇌혈관에 동맥경화가 발생하여 점차 딱딱해지고 좁아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막히면 뇌경색이 발생하며, 딱딱해서 탄력을 잃은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이 발생한다. 고혈압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뇌혈관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2~4배까지 올라가고 뇌출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당뇨병: 당뇨병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뇌혈관 장애 빈도가 2배 정도 높으며 사망률도 높다. 당뇨병 환자에서 동맥경화증에 의한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등 혈관 질환이 발병하는 빈도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2~4배가량 높으며 당뇨병 환자의 주된 사망원인이 될 수 있다. 심장질환 심장질환은 특히 뇌경색의 중요한 원인이다. 뇌혈관질환의 발생 위험률이 많게는 17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 고지혈증 혈액 속의 지방질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상태를 고지혈증이라 하는데, 특별한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콜레스테롤이 뇌혈관 내에 축적되면 동맥경화증이 생기고 뇌혈관이 좁아져 뇌경색이 생긴다. 흡연 흡연은 뇌혈관질환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니코틴은 끊임없이 혈관을 수축시키는데,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이 점점 딱딱해지면서 손상된다. 이와 같이 혈관 내부가 손상되면 쉽게 찌꺼기가 달라붙어 점차 혈관이 막히게 된다. 뇌졸중의 증상 뇌졸중 검사 뇌는 부위에 따라 각각 담당하는 기능이 달라서 특정한 부위가 손상돼 이에 해당하는 특징적인 신경 증상이 나타난다. 의사는 혈압 등 전신 상태와 의식 상태를 체크하고 다양한 신경학적 검사를 실시해 뇌졸중의 발생 여부와 손상 범위, 손상 위치 등을 확인한다. 컴퓨터단층촬영(CT)은 뇌졸중을 진단하는 데 가장 흔히 사용하는 검사법으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검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뇌출혈 여부를 신속히 감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뇌경색을 치료하기 위한 혈전용해제 사용에 앞서, 뇌출혈을 감별하는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자기공명영상(MRI)은 CT와 함께 뇌졸중 진단 시 많이 사용되는 검사이며, 자기장을 이용해 영상을 얻는다. MRI의 장점은 CT보다 초기 뇌경색이나 작은 크기의 뇌경색을 예민하게 잘 발견하고, 뇌종양 등 다른 진단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X-선을 투과시키지 않는 조영제를 혈관 속으로 주입하고, X-선 사진을 촬영해 혈관의 영상을 얻는 검사법인 혈관조영술도 있다. 가는 카테터(도관)를 경동맥이나 쇄골하정맥, 상완동맥 또는 대퇴동맥 등을 통해 삽입하고, 촬영을 원하는 혈관 근처까지 전진시킨 후, 도관을 통해 소량의 조영제를 주사기로 주입하면서 사진을 촬영한다. 뇌졸중을 진단·평가할 때는 경동맥 초음파검사와 심장 초음파검사가 주로 사용된다. 또 심장부정맥을 확인하기 위해 24시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심전도를 시행하기도 한다. 뇌졸중 예방법 만성질환 관리 고혈압(140/90mmHg 미만), 당뇨병(당화혈색소 7% 미만), 고지혈증(저밀도콜레스테롤 100mg/dL 목표)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수치를 조절해야 한다. 금연 흡연은 좁아진 동맥에 혈전을 형성하는 급성 효과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만성 효과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흡연은 모든 나이, 성별, 인종에서 뇌경색의 중요한 독립적 위험인자로서, 비흡연자와 비교해 흡연자에서 뇌졸중의 위험도는 2배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하는 뇌졸중 환자는 금연해야 하고, 뇌졸중 환자는 간접흡연도 피해야 한다. 음주 소량 혹은 중등도의 음주, 특히 포도주는 뇌졸중 발생을 줄이지만, 다량의 음주는 뇌졸중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의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뇌졸중 일차 예방을 위해서는 과도 음주자는 음주량을 줄여야 하고, 음주하더라도 남성은 하루 소주 2잔 이하, 비임신 여성은 하루 1잔 이하가 적당하다. 뇌졸중을 경험한 환자는 최대한 음주량을 줄여야 한다. 식생활 개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면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칼륨 섭취를 늘리는 것도 뇌졸중 예방 효과가 있다. 이런 식이요법의 효과는 혈압 강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저지방 유제품(저지방 우유, 치즈, 요거트)의 섭취를 늘리고 포화지방 섭취량 또는 총지방량의 섭취를 줄이는 식이요법도 권장된다. 뇌졸중 환자가 육류를 피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뇌졸중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식습관은 적당한 육류를 포함해 균형 잡힌 식사를 싱겁게 하는 것이며,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 규칙적으로 신체활동을 하면 조기 사망과 심뇌혈관질환 사망이 감소하고, 이는 뇌졸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신체활동이 혈압을 낮추고, 혈당을 조절하며, 체중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뇌졸중의 일차, 이차 예방을 위해 신체활동을 늘려야 하며, 규칙적인 운동(매일 30분 이상의 중등도 운동)이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체중관리 비만 정도가 심할수록 뇌졸중의 발생 위험이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중을 줄이면 혈압을 낮출 수 있고, 혈압 강하 효과는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과체중 혹은 비만할 경우 적극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권장된다. 글: 배 홍 한국건강관리협회 강원특별자치도지부 건강증진의원 원장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물결 위에서 반짝이는 작은 점들이 일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별들이 수면 위에 흩뿌려진 듯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획초대전 최대진 작가의 ‘바라보다’ 전시가 갤러리 미지에서 9월 1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더라도, 그 풍경이 주는 감정은 개인의 고유한 감성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듯 이번 전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감정과 개별적 경험을 공유하는 전시다. 연필 작가로 널리 알려진 최대진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잔잔한 바다에서부터 포말이 이는 거친 바다까지, 각기 다른 바다에서 느껴지는 슬픔, 기쁨, 행복 등의 감정을 연필과 지우개로만 표현하고 있다. 오랜 기간 거리화가로 생활했던 그는 일때문에 찾은 제주에서 10여년간 머물며, 제주바다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새벽녘이나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제주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정말 특별하다. 아침의 햇살과 함께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두 시간대 모두 제 마음속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다를 보며 제가 계획했던 것들을 어떻게 진행할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했고, 내면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곤 했다”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지우개질을 최소화하고 강한 파도가 표현되는 여백은 그대로 비워두는 방식으로 흰 종이가 지닌 본연의 색깔과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했다.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이래 발표한 작품의 90% 이상이 제주 바다 풍경을 담고 있다는 작가. 제주를 떠나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매년 5번에서 6번 정도는 제주를 방문하고 있으며, 그곳의 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으며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깊다.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제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언젠가 다시 제주로 돌아가고 싶은 계획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생계를 위해 가족과 함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제주와의 연결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가 제 예술의 근원이며, 그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흑연과 목탄, 콘테와 같은 다양한 재료도 활용할 수 있지만 단일 재료인 연필로만 작업하는 작가에게 연필은 작가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국에서 연필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런점에서 제 작업은 독특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연필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관람객들이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되새기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이 되길 기대한다” 비록 일상에서 불안과 힘듦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에 관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는 작가. 때로는 작업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 몰입해 작업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는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도 작품을 통해 공유할 수 있길 바랐다.
부윤 김광묵의 공덕비는 외동읍 북토리 순지못둑에 위치해있었다. 이 비석은 부윤 김광묵이 외동 북토리 및 일곱 개 마을에 대해 환곡 등 세금을 감면해 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세운 선정비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公之嚴刑政綜事□ 乃一境之均化 至於全□ 田地□□□□稅 爲我七里民 粉骨難忘之 惠也 □立片碍 以報公萬一爾 乾隆四十九年甲辰八月日 栗村谷立’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를 국역하면 ‘공은 형벌과 정치를 엄격히 시행하고 사업을 잘 경영하니, 곧 한 고을이 두루 감화하였다. 그리고 경작에 따른 세금을 공정히 부과하는 데 있어 우리 일곱 개 마을 백성을 위해 주시니, 각골난망의 은혜이다. 여기 작은 비석을 세워 공의 은덕에 만분지일이라도 갚으려 한다. 건륭 49년 갑진년(1784) 8월 어느 날 율촌곡 주민이 세우다’로 해석된다. 이와 더불어 목비 김부윤공덕비가 정조 10년(1786)에 세워졌으며, 현재 경북문화재자료로 기림사에 소장돼 있다. 이는 김광묵이 기림사를 중창한 공이 지대했음을 보여주며, 더불어 그가 지역 사회에 기여한 헌신적인 관료이자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