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은 중심상가 빈 점포 활용 사업이 침체된 상권을 살리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경주중심상가시장상인회는 지역상인의 재도약 계기를 마련하고자 ‘경주중심상가 빈 점포 활용 창업지원사업’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 사업은 경상북도와 경주시 공동으로 창업을 준비 중인 만 20에서 59세 이하 시민을 대상으로 중심상가 일원의 빈 점포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서류심사와 면접, 창업교육 등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15명(팀)에 대해서는 시설비와 간판정비, 임대료 등 최대 1600만원을 지원한다. 특히 이 사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침체 위기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 임대인과 상인회가 나서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기존 100~200만원에 달하던 임대료를 최대 70%까지 인하하는 등 임대료를 30~50만원으로 낮췄다. 또한 2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것은 물론 2년 후 임대료 인상시기에도 기존 임대료(100~200만원)의 5%까지 상승키로 협의했다. 정용화 경주중심상가시장상인회 회장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오랜기간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 저렴한 임대료로 점포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저렴한 임대료와 다양한 지원을 통해 중심상권을 살리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길거리의 무법자…
교비 횡령으로 물의를 빚은 경주대 전 총장이 대법원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업무상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순자 전 경주대 총장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교비를 빼돌리거나 교비회계 수입을 다른 회계로 돌린 혐의(업무상횡령·사립학교법 위반)로 기소된 이 전 총장의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전 총장은 2015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딸이 대표이사로 있는 호텔 임차보증금이나 월세, 리모델링 비용 등 5억5000여만원을 경주대 교비회계에서 지출하는 등 교비회계 운영과 학사관리 관련 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순자 전 총장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전과가 없고, 횡령한 교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점, 배우자인 김일윤 경주대 이사장이 10억원을 학교재단에 환원한 점 등을 참고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범들과 공모하거나 단독으로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을 다른 회계로 전출함과 동시에 교비를 횡령한 사실 및 그에 대한 고의가 넉넉히 인정돼 원심이 선고한 형이 너무 무거워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아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경주에서 4월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타 지역 확진자, 공기업, 외국인근로자, 골프장, 대학 등 감염경로도 다양해 방역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3시 현재까지 4월 확진자 수는 40명. 이에 따라 경주지역 누적 감염자는 총 279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4월 14일 이후부터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경주시가 긴장하고 있다. 14일 4명, 15일 4명, 16일, 4명, 17일 8명, 18일 5명, 20일, 1명, 21일 오전까지 4명이 확진판정을 받으며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 4월 확진자 40명 중 해외입국자 3명 외에 37명이 모두 지역에서 발생했다. 타 지역 확진자 접촉 19명, 지역 내 확진자 접촉 7명, 타 지역 확진자 2명, 감염경로 불명 9명이다. 지난 21일 4명의 확진자 중 2명은 타 지역 확진자와 접촉에 의해 감염됐고, 나머지 2명은 경주시보건소에서 검체검사를 받은 타 지역 확진자다. 앞서 15일 경주에 본사를 둔 공기업 직원 1명이 양성판정을 받은 이후 직원과 가족 등을 포함해 모두 6명이 감염됐고, 사업소 직원까지 포함하면 7명이 확진됐다. 경주를 찾은 관광객으로부터 감염된 택시기사발 확진자도 아내와 동료를 포함해 3명으로 늘었다. 지난 18일 외동읍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 3명이 잇따라 확진판정을 받아 업체 근로자에 대한 전수 검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또 집이 울산인 위덕대 학생 1명이 몸에 이상증상을 보여 주소지에서 검사한 결과 확진판정이 나와 경주시는 같은 학과 학생 85명과 기숙사를 사용하는 140여명에 대해 검사를 실시했다. 대학도 이날부터 일주일간 재학생과 교직원 3500여명에게 등교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당초 이번 주로 예정됐던 중간고사를 연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들 대부분 확진자들은 타 지역에 거주하는 가족, 친지, 지인 등으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방역당국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주시보건소 관계자는 “최근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우려될 수준만큼 늘고 있는 만큼 타 지역에서 가족과 만났거나 수도권을 방문했을 경우 일정기간 외출이나 만남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유행 우려 ‘생활 방역’ 고삐 다시 죄야 경주에서 4월 들어 21일 오전까지 4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지난해 12월 한 달 간 96명이 발생한 이후 최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급속도로 확산된 이후 1월, 16명, 2월 4명, 3월에는 7명이 양성판정을 받으면서 확산세가 주춤하다가 4월 들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4월 6명이 확진판정을 받은 것에 비하면 무려 7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무엇보다 감염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지역 내 확산 우려뿐만 아니라 방역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까지 지역 내 감염이 대부분인데 비해 올해 들어 특히 4월에는 타 지역 확진자 접촉에 의한 감염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4월 확진자 6명 중 해외입국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확진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전파됐다. 하지만 올해 4월 확진자 40명 중 19명이 타 지역 확진자 접촉으로 감염됐다. 서울, 울산, 수도권 등 타 지역에 거주하는 가족과 지인들과 접촉에 의해 감염됐고, 또 이들의 가족과 직장 동료 등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4월 이 같은 지역 내 감염확산은 본격적인 행락철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일상 공간을 고리로 한 감염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느슨해진 방역 분위기 속에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다시 생활 방역의 고삐를 죄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최근 경주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타 지역 확진자 발생 사례도 늘고 있어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의심 증상이 있으면 외출하지 말고 즉시 진단검사를 받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정규직 신입사원 6명, 청년인턴 20명 등 총 37명을 공개 채용한다.정규직은 신입직 6명(일반직 4명, 연구직 2명), 변호사 실무경험자 등 경력직 2명을 채용한다. 또 총 20명의 청년인턴, 휴직 대체 근로자 9명 등 총 29명의 비정규직을 채용한다.4월말 지원서 접수를 시작해 6월말 최종 임용 예정으로..
경주시는 환경미화원 6명(예비인력 포함)을 신규 채용한다.응시자격은 공고일(19일) 현재 경주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1년 이상 계속 거주한 자로 만18세 이상 만60세 미만이면 학력·경력·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응시원서 교부 및 접수기간은 이달 27일부터 30일까지다. 경주시 자원순환과 또는 읍·면·..
경주에서 16일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14일부터 이날 오후까지 사흘 연속 4명씩 모두 12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나오면서 지역 내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주시는 16일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주지역 누적 환자는 261명(주소지 기준 260명)으로 늘었다. 경주시..
경상북도 동해안상생협의회(이하 협의회) 5개 시·군은 15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경상북도 동해안상생협의회는 경주시·포항시·영덕군·울진군·울릉군 5개 시·군이 상호간 공동발전과 특색 있는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20..
천년의 기다림 세월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흔적과 함께 그리움이 아련하게 밀려온다. 시간을 초월한 애절한 사랑이 생명력 있는 따뜻한 서정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서지연 작가 / 010-2821-7585 / lok002@daum.net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 동 대학원 석사 졸업 개인전 10회, 해외전시(일본, 중국, 미국, 벨기에, 스페인, 멕시코) 및 초대전, 단체전 250회 무형문화제 118호 석정스님 불화장 이수자, 대한민국 여성 미술대전, 서울 한강미술대전, 서울 환경미술대전, 포항 불빛미술대전 초대작가 현 경주대 평생교육원 교수, 건천읍 평생교육원 강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민화협회 이사, 경주여류작가협회 회원, 불화돌샘회원, 한국미술협회경주지부 부회장, 경주은광민화대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차별 없는 사회적 환경 정착이 우선 되어야 한다. 특히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를 베푸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언제나 함께하는 이웃, 친구, 동료라는 시민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경주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주위에서 벌어져 온 장애인 시설의 반복적인 인권유린과 비리 문제가 제기돼 왔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았지만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은 최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고 시설에 격리수용하는 시설정책은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지속해온 제도적 학대”라도 주장하면서 시설만을 위한 정책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수용시설이 유지돼 왔으며 장애를 가진 시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대신 민간시설에 예산을 지원해 시설이 그 돈으로 재산을 불리고 기업처럼 운영권을 세습하는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다. 장애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학대공간에 내몰리지 않도록 근본적인 탈 시설 대책을 수립하고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한 개인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정책과 환경을 바꿔야 할 몫이 경주시에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당연하다. 경주에서는 한 장애인시설 원장이 입소자를 폭행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의혹으로 사퇴하고 법적인 문제까지 확산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같은 시설에서 또 다시 거주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같이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경주시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장애인들이 우리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체로서, 인권을 보장받고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것은 인간의 행복권 추구 차원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지난 3월말 기준 경주지역 장애인은 1만6609명이 등록돼 있다. 경주시 인구 100명당 6.5명 수준이며 이중에 중증장애인만 6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경주시는 25만여명의 경주시민 모두가 동등한 환경에서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뒷받침은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근 경주지역 주요 도로 인도에 주차돼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전동킥보드’의 안전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전동킥보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리한 이동으로 젊은 층이 많이 선호하고 있다. 전동킥보드를 대여해주는 업체도 전국적으로 생겨나게 됐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경주에도 최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여 전동킥보드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대여 전동킥보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업체에서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인근의 전동킥보드를 잠금 해제한 후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하고 최종 금액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경주지역에는 현재 2개 업체가 전동킥보드를 대여하고 있으며 300여대가 넘는 대여용 전동킥보드가 경주 주요 관광지에 배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도 위 주차는 업체에서 주요 거점에 여러 대의 전동킥보드를 배치해 놓은 경우나 이용자가 사용 후 주차해 놓은 경우다. 문제는 이 두 방법 모두 보행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의 입장에선 전동킥보드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 좋을 수도 있지만 인도 위 불법 주차나 인도·횡단보도 주행으로 인한 보행자 위협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으로 인한 보행자를 보호하기위해 5월 13일부터 개정 도로교통법으로 경찰의 단속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작 인도 위에 무분별하게 놓여 있는 불법 주차는 단속 규정이 명확치 않은 상황이다. 경주시도 불편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민원을 제기해도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어 업체 측에 인도에 무분별하게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정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경주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역사문화관광도시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한 업체들의 다양한 상행위가 오히려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전동킥보드 이용에 대한 관리 대책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이로 인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경주의 이미지만 나빠지게 된다. 경주시는 전동킥보드 운행에 의해 관광객과 시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살펴 보완하고 업체 측에 제대로 된 상시 관리 요청과 함께 이용자들에게는 안전운행과 주차에 대한 지도와 홍보를 철저히 하길 바란다.
경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음을 반성한다. 두어 주 전 서울 사는 어느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남산 관련 글을 읽고 느낀 바가 컸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 온 친구가 남산 사진만 코스별로 60여 종이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산만 가지고도 그만큼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데 경주를 다 모으면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을까? 가늠해 보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 친구를 보며 나는 경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내가 경주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음을 겸허히 고백한다.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는 그것까지도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학창시절까지 듣고 배운 것에서 머물러 있었지만 중력보다 강한 망각의 힘에 의해 상당부분 잊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두 달에 한 번 꼴로 경주신문에 ‘첨성대’ 칼럼을 쓰다 보니 더더욱 반성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무지한 상태에서 경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에 답해온 것을 되돌려보니 두려움이 몰려온다. 애써 변명하자면 그나마 내 전공분야의 이야기를 경주에 대입했다는 안도감이 부끄러움을 약화시켜주는 핑계일 뿐, 마음 전면에 흐르는 무지함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가슴을 짓눌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경주를 떠난 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서울사람이 다 되어버렸다. 떠나온 경주는 잊어도 불편하지 않았지만 생활저변이 된 서울에 대해서는 알아야 살 수 있었기에 한쪽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경주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면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 곳곳을 찾아가며 하나라도 더 알고자 한 노력에 것에 비해 그렇게 자랑하고 자부하고 온갖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마지 않았던 경주에 대해서는 얼마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알고자 노력하는 정성이 있었던가? 솔직히 털어놓자면 일 년에 3~4회 경주를 찾고 서울 동기회에 몇 번 참석하는 것이 경주에 관련된 내 애정표현의 전부였다.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정작 내 마음의 고향인 경주의 비전과 가치, 동정(動靜) 등에 대한 관심에는 너무나도 부족했음을 자인한다. 고향이 경주랍시고 서울에서 사귄 지인들이 경주에 대해 묻거나 방문할 만한 특별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할 때 인터넷에 나오는 이상으로 대답해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 잠시 당황하며 ‘공부 좀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돌아서면 경주에 대한 공부는 금방 잊어버린다. 수시로 반복되는 나의 모습이었다. 큰 그림(Big picture)과 디테일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자신감과 애정이 더 강해지는 법이다. 내가 경주에 무지했었던 것은 내 마음에 경주를 위한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고 말로만 경주를 사랑하노라 외쳤던 것은 경주의 디테일함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과 가끔씩 암송하는 면장(免牆)의 교훈이 가슴에 사무친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명구는 고향 경주에도 똑 같이 적용할 만한 멋진 구절이다. 자세히 보아야 경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 수 있고 오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현안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다. 흔히 속담으로 말하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 할 때의 면장(免牆)은 익히 알다시피 면사무소 책임자인 면장(面長)이 아니다.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당시 수신과 제가의 생활지침서라 할 수 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냐 묻고는 ‘사람이 되어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바로 담장(牆)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눈앞에 담장이 가로막혀 아무것도 안보이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다시 말해 담장과 마주함을 면하려면 어떤 일이든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시와 글이 경주에 대한 나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글이 되어준다. 경주신문 칼럼 요청을 받았을 때 큰 부담과 막막함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몇 차례 기고하면서 내가 경주에 대해 가진 관심과 아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며, 칼럼을 쓰라고 한 것이 이를 깨닫고 경주를 자세히 보고 경주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라는 것이었음을 거꾸로 깨닫는다. 이런 기회를 준 경주신문에 감사하며 이 글 읽는 분들과 함께 경주에 대해 면장(免牆)하기를 제안한다.
지난 4월 9일의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끝이 났다. 여야가 총력을 기울인 탓에 지방선거임에도 이곳 경주를 포함한 전국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아쉽게도 지독한 네거티브 선거로 시종했다. 왜 여당후보들이 그토록 큰 표차로 졌을까? 언론에서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현 정부 들어서서 집값이 너무 올랐고, 전세나 임대차 시장이 교란되었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LH공사 직원들이 직무상 지위를 이용하여 무분별한 투기를 벌인 소위 'LH사태'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약간 의견을 달리한다. 물론 부동산 정책의 실패나 LH사태가 하나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정책의 실패 하나로 이토록 집권당이 선거에서 처절한 패배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LH사태는 하나의 창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 창을 통해 현 집권층이 가진 과도한 권력욕의 무차별한 실현, 내로남불의 위선, 그러면서 현실 문제의 해결을 거의 하지 못하는 무능함 같은 풍경들이 그대로 내다보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검찰개혁’이리고 내세운 것의 본질은 권력핵심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노리는 ‘중수청’의 설립법안은, 이 세계 어느 나라건 검찰제도를 둔 나라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배제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다는 점에서 강성친문의 뻔뻔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외쳐댔던 ‘적폐청산’이란 정치보복의 성질이 강했다. 한편으론 현 정부 출범 후 시도 때도 없이 현란한 정치쇼가 벌어져 왔는데, 드디어 국민들은 여기에 완연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K방역‘의 요란스런 성과 홍보 뒤에 백신확보의 참담한 실패가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조금씩 눈을 떴다. 백신을 제대로 확보 못하여 백신접종률이 세계 110위권이다. 이를 숨기고 마치 우리가 코로나 대응을 아주 잘하고 있는 듯이 꾸몄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마저 토론회에서 한국의 백신접종률이 세계 4위라는 근거 없는 사실을 말하였다. 우리는 지난 해 여름과 가을에 걸쳐 세계 각국에서 백신확보전쟁을 벌이는 동안 어찌 된 셈인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12월로 접어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가지 요금을 덮어쓰며 부랴부랴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백신구입계약을 가까스로 체결했다. 엄청난 예산의 낭비가 당연히 수반되었다. 그래도 그 양은 많이 부족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가 가진 백신을 테러단체에게 탈취당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탈취방지훈련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하는 희한한 작태도 서슴지 않았다. 없는 백신을 어떻게 누가 빼앗아 가는가? 뭉뚱그려 말해, 그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국민들의 믿음을 점점 잃었다. 이 정부는 수시로 국민들을 속였다. 그러면서 진실을 ’가짜뉴스‘라고 일방적으로 규정지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성난 민심의 광풍이 휘몰아치며 선거판을 휩쓴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먼저 나는 이번 선거에 여당후보들이 당선되면 현 정부의 핵심을 이루는 몰염치한 ‘진보귀족’들의 명운이 유지될 것이고, 또 그들은 더 나아가서 내년 대통령 후보의 선두권에 선 인사들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소위 ‘친위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고 일찍부터 예측했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를 도와서 야당후보들이 당선되었다. 그래서 진보귀족들의 반민주적인 야욕이 힘을 얻지 못하고 점점 시들어버릴 것으로 본다. 거의 틀림없이, 이번 선거로 그들의 음흉한 욕망의 추구는 중단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인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뚜렷이 부각된다. 그런데 이재명은 공정가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폭넓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에 윤석열은 박근혜, 문재인 양 정부의 유약하고 무능한 리더십에 실망을 느낀 국민들이 높이 사는 강한 지도자 상을 확실히 갖췄다는 점에서 이재명보다 조금 낫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국민이 대통령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요체이다. 그래서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들이 당선된 것은 강성친문들이 벌일 더 이상의 패악질을 막고 정상적인 대통령 선거절차를 담보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극히 다행한 일이다.
첫밥 스무 살의 너에게 문성해 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 어느 늦가을 어둑어둑한 목소리의 부름을 받는다는 거, 집에 밥이 없으면 식은 밥통에 슬슬 눈이 가는 나이야 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 희게 재잘거리는 쌀들 속에 보드라운 너의 손을 꽂아본다는 거 너의 이름을 밀어 넣는다는 거, 너는 이제 밥이 그냥 오는 게 아님을 아는 나이 비 갠 여름 오후의 그늘에서 밥이 이팝꽃처럼 스르르 풀려나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너와는 상관없이 온다고 알았던 신비스러운 나이가 이제 너에게는 없단 거 슬프지 않은가, 밥이 없는 초저녁의 쓸쓸함을 아는 나이가 된다는 거, 그래서 유리창에 어둠의 고함소리가 닥치기 전에 슬픔을 휘젓듯 쌀을 씻고 푸푸 밥이 되는 소리에 조금씩 안도하는 나이가 된다는 거 이제 밥은 구름이나 바람, 적어도 너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저 둥글고 깊은 구형 전기밥솥의 동력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린 너는 이제 딱딱한 지구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 무엇보다 이 세계의 신비한 마술쇼가 끝났다는 거
원원사지에는 북서쪽에 1기의 부도가 있고 북동쪽에 3기의 부도가 있다. 북서의 부도는 용당을 지나 200여m 지점에 있는데 계곡으로 난 길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컴퓨터로 출력하여 코팅을 한 표지판을 걸어 두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북동의 부도는 절터의 북동쪽이라고 해서 동탑의 옆 좁은 산길을 무작정 찾아가는데 도중에 길 왼편으로 밭이 있고 산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망을 치면서 길까지 막았다. 그 망을 헤치고 계속 나아가는데 같이 갔던 아내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한참을 헤메는데 산비탈에 가건물이 보이고 그 옆으로 3기의 부도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절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운동기구가 있는 광장이 있는데 계속 계곡을 따라 400여m를 더 올라가면 북동의 부도에 이르게 된다. 먼저 찾은 북서의 부도는 석종형으로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사각 지대석 위에 3중의 사각 대석(臺石)이 있는데 맨 아래 대석에는 상단에 안상(眼象)과 유사한 문양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대석에는 각 면마다 4개의 꽃송이와 그 사이에 3자의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다. 맨 위의 대석은 낮고 조각의 흔적은 보이나 마모가 심하여 식별이 되지 않는다. 3단의 대석 위로는 각각 앙련과 복련이 조각된 상대석과 하대석이 있는데 중대석은 멸실되었는지 없다. 몸돌은 종 모양인데 하대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종의 꼭지 형상이 모각되어 있다. 북동의 부도는 모두 3기인데 역시 석종형이다. 맨 오른쪽 부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앙련과 복련을 조각한 상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렸는데 상대석에 비해 하대석이 빈약하다. 몸돌 하대에는 돌대를 마련하고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목 부분에도 연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위로 굵고 가는 형태의 테두리를 둘렀다. 상륜은 보주형이다. 이 오른쪽 부도의 몸돌은 북서쪽의 부도와 유사하다. 가운데 부도는 각형의 지대석 위에 앙련이 조각된 상대석을 놓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렸는데 상륜부가 확인되지 않는데 별도로 만들어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3기의 부도 중 가장 소박한 형태이다. 왼쪽 부도는 자연석 암반 위를 둥글게 깎아 하대석을 삼고 그 위에 반구형(半球形)의 상대석을 놓고 별다른 조식이 없는 몸돌을 올렸는데 상륜부는 오른쪽 부도와 유사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안혜 등 4분 큰 스님 유골을 모두 이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었다고 했으나 이곳 원사지의 부도는 통일신라 당시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복발형 부도는 고려시대 말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부도의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이 부도들은 고려 말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원사의 동쪽 봉우리에 4분 스님의 유골을 묻었기에 사령산 조사암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4분 스님의 유골을 안치했다면 이곳 북동쪽 부도는 4기여야 하는데 현재 3기뿐이다. 그리고 사령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없고 이 위치에 있는 산은 봉서산(鳳棲山)이다. 4분 스님의 유골을 모셔둔 부도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봉서산을 올랐다. 봉서산이라는 산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봉황이 깃든 산이다. 봉황이라는 새는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드는 것으로 알려진 전설 속의 새이다. 북동쪽 3기의 부도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우거진 왕대밭을 지나니 조릿대밭이다. 혹 봉황이 서식할 오동나무가 있을까 이리저리 살피면서 1시간 30여분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그루도 찾을 수 없었다. 4분의 스님과 관련된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봉서산 정상은 고도가 571m이고 정상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면 입실,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삼태봉에 이르게 된다.
어느 걸그룹의 역주행이 세간의 화제다. 역주행이란 말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지 못한 가수나 노래가 뒤늦게 인기를 끄는 현상을 말한다. 4년 넘게 정산(定算) 한 번 못 받은 ‘브레이브걸스’가 그 주인공이다. 유튜브에서 대박이 난 바로 그날, 꿈에도 상상 못 한 이들은 소속사 대표와 해체를 이야기할 예정이었다고. 우리는 절대 당신들을 곱게 보내줄 수 없다며 팬들이 무명 걸그룹을 시쳇말로 ‘혼쭐’ 낸 사건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어느 배고픈 꼬마 형제에게 따뜻한 공짜 치킨을 대접했다고 치킨집 사장님을 혼쭐 내는 나라다. 도저히 이런 사장님은 가만둬서는 안 된다고 전국에서 돈과 응원(!)으로 혼쭐을 내버린다. 치킨 사장님조차 이젠 제발 그만하시라 해도 절대 말을 안 듣는다. 하기야 유명 외국인 가수들이 내한 공연을 하면 하나같이 ‘떼창(합창의 순 우리말)’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이야기한다. 가수를 불러놓고 자기들끼리 더 크게 노래 부르고 논다. 나도 노래 좀 하자고 가수가 엄살을 부리지만 듣는 척도 안 한다. 그리고는 한국 사람들은 공연 잘 봤다고 행복해하더란다. 정말 희한하다. 한국인들의 떼창 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걸그룹 역주행 해프닝의 주체는 로맨틱하게도 예비역 병장들이다. 어느 유튜버가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조회수 1,600만 이상)을 올렸다.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평범하고 사소하다. 그들 공연이나 방송 장면을 편집한 영상인데 댓글이 재미나다. “전쟁 때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인민군도 신나서 흔들 어제 낌”, “ㅋㅋㅋ 통일되겠네ㅋㅋ” 군인들이 썼을 법한 댓글들이다. 감동적인 것은 “(본인은) 18군번인데 16군번들한테 (이 곡을) 인수인계받고, 전역할 때 20군번들한테 인수인계해줌” 류의 댓글이다. 선임한테 인수인계받을 정도의 곡이라면 이건 뭐 거의 군가(軍歌) 아닌가! 불러주면 어느 부대이건 달려가 최선을 다해 춤과 노래로 군장병을 응원하던 브레이브걸스를 강제 소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이 시점에 생뚱맞지만, 불교 경전에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 부처로 태어날 보살(菩薩, 부처의 전신(前身))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석가족 혈통과 국토 및 부모가 될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한 다음, “정반왕이 다스리는 카필라 왕국의 마야왕비 태에 들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이다. 쉽게 말해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불교식 태교론(胎敎論)이다. 이게 맞는다면 이제 새 가정을 계획하는 신혼부부들은 특히나 공을 들여야겠다. 와인과 꽃 등 로맨틱한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예쁘고 건강한 아기가 우리에게 와주십사 더 운동하고 좋은 책과 건강한 음식을 가까이해야 한다. 아기에게 선택받으려면 말이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평면적이지가 않다. 트로트가 대중의 인기를 끌자 〈막걸리 한 잔〉이란 멋진 과거가 더욱 세련된 현재로 탈바꿈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아기 부처의 역주행(?)으로 시작된 불교는 선(禪) 불교로 꽃을 피운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를 주장하는 선불교에 따르면 과거는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지금, 여기서 추억되기 때문이다. 미래도 없다고 한다. 미래도 지금 여기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주 토요일 발표될 로또 영수증을 만지작거리며 ‘1등이 되면 차부터 바꿔야지... 빨간 스포츠카가 좋겠지?’ 상상만으로도 기쁘다. 미래의 일인데 지금 내 입꼬리가 활짝 올라간다. 지금, 이렇게 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덩어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인식 내용이란 이야기다. 걸그룹의 역주행은 당연하고 상식적이란 말을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해 봤다. 곱씹어볼 대목은, 춥고 덥지만 불러주는 군부대라면 어디든 최선을 다한 그들의 프로정신이다. 심지 굳은 팬심은 또 어떻고. 20대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 평균 연령 30세가 넘는 아이돌 그룹이라면 핸디캡이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을 지켜왔던 팬들에겐 말뚝(!) 신심의 절대 시간이기도 하다. 현재는 과거 행위의 결과이지만, 현재는 미래 결과의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에 지난 결과와 새로운 원인이 동시에 들어 있다. 평범한 일상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철이 든다고 느꼈을 때, 사람마다 그 시기도 다르고 그 계기도 제각각 다르다. 10대가 지나고 20대가 돼서 돌아보면 10대때의 고민은 고민도 아니게 느껴지듯이 나이가 들수록 고민의 보따리가 점점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고 느끼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미칠 만큼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상처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넘어서는 트라우마 한두 개 정도는 다들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우리사회를 분노 사회 또는 울분 사회라고 진단하고 있다. 분노는 공격을 준비하기 전의 심리상태로 여러 가지 공격 행동으로 표출된다. 분노 대상자를 향한 다양한 수준의 신체적, 언어적, 사회적 공격 행동으로 나타난다. 또한 직접적 공격이 어려운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방해하거나 좌절시키는 수동적 공격, 나약한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대리적 공격행동으로 표출된다. 요즘 현대인들은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해당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을 뜻하는 PTSD의 본래 의미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우 심한 고통을 느끼며 일반적인 스트레스 대응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기억들은 실제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좋은 기억, 아픈 기억 모두가 강렬한 감정적 작용이 증폭되어 뇌의 신경망에 장기 기억화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언급한 고정관념과 습관이 뇌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면 뇌 속에 형성된 부정적인 정보들은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뇌는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기억을 저장할 때 그 정보와 에너지를 함께 받아들여 저장한다. 인간관계속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을 때, 그러한 정보는 단순한 사실적 정보로서 입력되지 않는다. 그때의 체험이 하나의 에너지 형태로 함께 저장되어 오랫동안 당신의 뇌 속에 자리하게 된다. 당신의 뇌 속에는 그러한 숱한 정보들이 쌓여 있으며 부정적 정보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건강한 뇌기능의 발현을 막고 있는 것이다. 뇌정화하기 단계에서 사용하는 주된 기능은 상상이다. 뇌가 가진 고차원의 기능일 뿐 아니라 상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 뇌의 특성상 고도의 집중력을 기반한 상상력은 뇌의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때 뇌의 변화과정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미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를 정화하기 위한 뇌체조(Brain Gym) 3가지 1.뇌파진동 음악, 액션, 메시지 3종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리듬감 있는 음악과 함께 머리를 좌우로 도리도리 하듯이 흔들어서 뇌파를 편안하게 낮춰주는 액션을 5분정도 하고 익숙해지면 점점 더 시간을 늘려간다. 뇌파진동을 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미안하다, 용서한다, 고맙다, 사랑한다등의 긍정메세지를 자신에게 들려준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오롯이 내몸에 집중해서 뇌파진동을 하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마음의 균형감각도 되살아난다. 2. 전신두드리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두엽이 과하게 작동하여 혈액이 머리쪽으로 몰려 몸의 에너지 균형이 깨어진다. 이때 전신 두드리기를 해서 에너지의 분포를 골고루 분산시켜준다. 양손으로 머리부터 손, 팔, 어깨, 가슴, 오장육부, 엉덩이, 다리, 발끝까지 골고루 위에서 아래로 두드려준다. 묶은 때를 털어 내듯이 몸과 마음속의 탁한 에너지와 부정적인 정보를 두드려서 밖으로 빼낸다는 마음으로 몸을 두드려준다. 전신두드리기를 하면 몸이 편안할 때 나타나는 멜라토닌 분비로 스트레스가 완화된다. 전신을 두드려주면 머리쪽으로 치우쳤던 혈액이 온몸으로 골고루 분산되면서 머리가 시원해지고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전신두드리기를 하면서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정보-분노, 화, 피해의식, 짜증, 스트레스, 통증도 함께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의념을 하면서 털어낸다. 3. 브레인 스크린으로 상상하기 아픈 상처와 관련된 기억에서 객관적 사실과 감정 에너지를 분리한다. 종이가 불에 타서 재로 사라지는 것처럼 부정적 감정에너지는 종이처럼 태워 없애는 상상을 최대한 강렬하게 해 태워 없앤다. 아픈 기억에서 객관적 사실만 인식한다. 부정적 정보, 피해의식,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기억, 감정을 정화한다. 감정, 기억, 욕망, 이기심은 정보에 따른 뇌의 현상이다. 모든 것은 정보다. 정보처리기관인 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부정적인 정보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 몸의 감각을 깨워 내몸에 집중하게 한다. 몸의 감각을 깨워내고 부정적인 정보가 나로부터 탈수되어 빠져나가는 것처럼 브레인스크린(영화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상상함)으로 강력하게 상상을 하여 뇌를 정화한다. 3단계 뇌정화하기는 여러 가지 나쁜 습관, 과거의 상처들, 죄의식과 같이 뇌발달을 막는 정보들을 정화하고 뇌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뇌운영시스템 5단계의 핵심단계이다. 자신의 뇌속에 있는 부정적인 정보, 선입견,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며, 앞으로 다가올 문제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단계, 내 마음은 내가 아니라 내 것임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순수한 상태의 뇌를 회복함으로써 뇌기능 발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뇌의 상태를 최적화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관리의 끝판왕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생활화 됐지만 그만큼 마스크에 대한 부담은 커지기만 한다. 날씨가 추울 때는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고 날씨가 더워지면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려니 답답함이 커진다. 남산 동남편 기슭에서 한옥민박을 운영하는 이경미씨가 이런 마스크의 부담을 확 날릴 만한 포스팅을 올려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혜리원에 숙박한 손님이 선물로 주고 간 마스크에 모든 눈길이 쏠린 것. 치과용 일회용 마스크로 보이는 마스크에는 빨간 열매와 노란 꽃을 수놓아 누가 봐도 공이 많이 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경미씨가 쓴 글이 더 눈에 띈다. “바늘에 찔려도 아픈지 모를 정도로 손에 감각이 없으신 분이 한 땀 한 땀 수놓아 선물해 주신···” 글 내용으로 보면 몸이 불편해 손 감각이 퇴화된 분이 정성껏 수 놓은 마스크를 선물한 것으로 보인다. 무감각해진 손으로 수 놓았을 정성을 생각하면 마스크가 단순한 마스크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 그래서인지 이경미 씨도 ‘쓰고 버리는 것이 아까워 보관하려다’ 손님에게 일부러 보여 주기 위해 마스크를 골라 썼다는 말을 올렸다. 한옥 주인과 투숙객이 나누는 정 치고는 한참 생각하게 하는 울림이다. 이런 정성어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호흡이 갑갑하지 않을 듯하다. 마침 부군인 한용석 씨 페이스북에도 뜻밖의 선물이 전달됐다. 며칠 전 근처 맛집인 ‘호박 고을’ 사장 김성대 씨가 나눠준 ‘두릅’이 그 주인공! 그런데 이 두릅이 청도에서 김성대 씨 부모님이 따서 보낸 것을 또 다시 나누어준 것이라 이걸 받은 한용석 씨가 더욱 감격하며 ‘산타가 다녀갔다’며 기뻐했다. 부모님에게 받은 귀한 두릅을 더욱 가치 있게 나누어 먹은 김성대 씨의 마음이 글을 통해 느껴진다. 그런 한편 며칠을 틈으로 부부가 모두 귀한 선물 받은 것으로 보면 이들 선물 준 이웃과 손님도 대단하지만 이처럼 이웃 및 손님과 진신으로 소통해왔을 법한 부부의 마음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이를 두고 한 페이스 북 친구분이 “요즘 산타는 화사한 봄에도 오나요?”라는 댓글로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하면 산타가 아무 때나 오기도 하겠지만 이미 스스로가 산타 아닐까?
▲우리 ‘론다’로 갑니다 세비야에서 출발 2시간 후, 자그마한 론다 기차역을 나왔어요. 주변에 오렌지 나무들이 둘러 서있고 굵은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마침 한국 여학생 3~4명이 이곳 관광을 마치고 역 마당 그늘에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가워 먼저 말을 걸면서 그들에게서 론다 관광의 주요 포인트를 얻어 들었어요. 구경거리, 숙소, 맛집 등 여러 가지를 잘 가르쳐 주더군요. 론다는 해발 800여m 절벽위에 세워진 인구 약 3만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타호협곡이 가르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해주는 누에보다리로 유명하죠. 절벽위의 하얀 마을, 헤밍웨이의 산책길, 오래된 투우장등이 이 도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 입니다. 더구나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도시요, 집필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 극찬한 도시이기도 해,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를 찾습니다. ▲협곡위에 세워진 론다의 ‘누에보 다리’ 론다 여행의 가장 핵심적인 곳이 여기예요. 론다역에서 15분정도 걸어 나오면 이 다리가 보입니다. 시내가 좁아 별도의 교통수단 없이 걸으며, 거리를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 좋습니다. 옛 부터 과다레빈 강이 타호 협곡으로 흘러 마을을 두 개로 갈라놓았는데 이를 이어주는 120여m 높이의 다리로 아찔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다리입니다. 두 시가지를 연결하는 3개의 다리중 제일 늦게 건설된 다리, 즉 가장 새로운 다리라는 뜻에서 ‘누에보(새로운 것)’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합니다. 다리높이 120m, 길이 30여m 정도인데, 협곡아래로부터 벽돌로 쌓아 올렸어요. 건축시작 8개월 후 공사 중인 다리가 무너져 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다시 짓기 시작한지 43년만인 1793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다리는 스페인 내전당시 감옥 및 고문장소로 활용되면서, 포로들을 창문에서 골짜기 아래로 내던져 사형을 시키는 잔혹한 장소였다고 합니다. 아찔한 절벽사이의 근사한 비유(view)와 아름다운 모습의 다리이지만, 이런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비운의 다리이기도합니다. 더불어 헤밍웨이가 쓴 소설의 탄생지요. 그와 많은 예술인들이 사랑했던 도시이며 투우의 최초 발생지입니다. 평소 투우를 좋아했던 헤밍웨이의 흉상과 기념비가 근처에 있어 세계적인 유명관광지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산책로’를 거닐다. 헤밍웨이가 걸었던 산책로는 누에보 다리에서 ‘론다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입니다. 전망대에서 멀리, 아래로 넓은 평원과 농촌마을을 바라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여요. 그는 이 길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사색하면서 스페인 내전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37세 때 스페인 내전에 참전 했고 그 전쟁과 론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지요. 그 대표적인 자리에 누에보 다리가 있고 이런 대문호의 생전 실화와 그를 기리는 기념물들이 있는 주변에서 그가 걷든 산책로를 거닐어 본다는 사실이 정말 영광스럽고 감격 했습니다. ▲누에보 다리 아래의 특별한 비경(秘境) 누에보 다리의 보통 관광 코스는 다리 위를 걸어가, 구시가지 주변을 둘러보고 되돌아오는 정도인데, 우리는 좀 달랐어요. 다행히 다리 옆쪽 가까이에 숙소를 정하는 바람에 다리측면 부분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밤에는 불빛 찬란한 그 주변의 근사한 야경도 잘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특별한 것은 다리를 건너가 구시가지에서 아래 계곡까지 200여m의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계곡바닥과 다리를 생생히 올려다보았어요. 그러고 론다의 절벽아래 마을에서 오렌지, 올리브 숲 등 평화스런 농촌풍경까지도 구경했습니다. 누에보 다리는 다리위에서 보는 경관도 좋지만 다리 아래서 다리와 절벽을 쳐다보는 경치도 좋더군요. 두어 시간정도 일상코스를 벗어나, 모처럼 맑은 공기와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애들과 함께 유명한 누에보 다리 밑의 시골길을 걸으며 그 아래 전개되는 별도의 전원비경도 보았다는 것에 뿌듯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날고 엮고 뒤집는다’는 의미의 번(飜)과 ‘기와’의 와(瓦)를 써서 기와를 이는 장인을 뜻하는 번와장. 이 분야 최고의 장인이 우리 지역 안강에 살고 있다. 70여 년간 전통건축 현장을 누빈 최고령 현역 와공(瓦工) 이진도(85)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87년 번와 와공 925호로 문화재수리 기능보유자이기도 한 선생은 66년간 연마한 기와 이는 기술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전통건축의 현장에서 아직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구현해내고 있다. 한평생 기와와 함께 한 선생은 문화재수리기능자로서 주로 기와를 해체, 보수하거나 제작하는 일을 해왔다. 전통 건축의 정수를 잇는 일 중에서도 기와를 이는 번와장으로서 선생은 그 업적과 수많은 작업에 비해서는 유명세가 덜한 와공이었지만 이 시대 진정한 고수였다. 선생의 손을 유심히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유난히 크고 억센 손을 가졌고 기골 또한 장대한 편이었다. 전통건축물 시공의 다양한 분야에도 능통한 선생은 지붕재료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기와를 잇는 번와 와공으로서의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하다. 기와를 어떻게 잇느냐에 따라 목재가 대부분인 한옥에서 집의 수명을 결정하는 기능적인 역할은 물론 지붕의 곡과 전체적인 비례에서 지붕이 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결정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선생만한 대가는 보기 드물다. 봄비가 차분하게 내리던 지난 12일, 안강읍 산대리 자택에서 선생을 만나 기와공장 일과 전통건축 번와 일을 하며 살아온 평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았다. 선생은 85세 고령임에도 혈기왕성해 보였고 최근까지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 년 동안 집에 못 올 때도 많았어요. 기와일 하느라. 추석에나 한 번 올까 뭐..., 하하. 선생을 찾던 그날도 안강읍 기계리 사가(私家) 일을 마치고 온 직후였다. 올 한 해도 많은 번와 작업들이 선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했다. 기와를 이는 것은 오랜 경험과 함께 한옥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는 번와 와공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선생은 “지붕 기와공사가 부실하면 다른 공사를 아무리 잘해도 건물이 상하므로 기와를 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답니다. 견고하게 기와를 이는 것은 그 집이 오래도록 구조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한다. 이진도 번와장의 손을 거친 전통건축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공사한 내역과 기록 등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너무 일에 집중하다보니 작업에 대한 기록 관리나 자료 보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은 ‘경주유교문화유적(경주향교, 2010)’에 실린 전통건축물 대부분의 일을 해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온 건축물 중 옥산서원, 장산서원, 덕산서사, 삼괴정, 취담재, 영모정, 한강재, 직천서원, 호계서원, 덕산서사, 표충각 등 제가 한 작업이 대부분입니다. 불국사 극락전, 경주향교, 강화향교, 영천향교, 용산서원의 일부, 사찰, 서원 등의 개보수 공사도 많이 했습니다. 장산서원의 담장과 지붕기와 작업을 내 손으로 다 했습니다. 기와 한 장도 딴 사람에게 안 맡겼어요.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건물 담장 공사와 기와일 전부도요. 양동마을 내에도 상당 부분의 일을 담당했고요. 어려운 공사였던 초가지붕의 이엉을 엮는 일도 했습니다. 기와에 관한 일은 다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생은 맞배지붕, 가적지붕, 다각지붕, 괄모지붕, 팔작지붕, 눈썹지붕, 구(口)자집 지붕 등 여러 지붕의 일을 두루 섭렵했다. -“열아홉 살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66년 간 이 일을 해왔습니다. 세월이 언제 가버렸는지 바쁜 것도 몰랐고 아픈 것도 몰랐어요” “지정문화재 일은 물론이고 사가의 일을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일이 너무 밀리고 바빠 여타 자격증 심사에 응할 시간적 여력이 없었어요. 틈이 나질 않았지요” 이는 화려한 경력에 비해 선생을 수식하는 명칭이 단출한 이유였다. 그럼에도 선생의 업적에 아무나 필적하기 어려운 것은 장인으로서의 완벽함과 성실함에 근거한다.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여타 공훈을 드러내는 일처리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언제 가버렸는지 바쁜 것도 몰랐고 아픈 것도 몰랐어요. 밤새도록 여러 일에 관한 연구나 고심을 하다 보니 새벽까지 뒤척일 때가 많았고 아침 되면 또 일을 가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를 대상으로 방송 촬영도 해갔는데 그 방송 한 번 챙겨 볼 시간도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이 일을 하던 처음에는 모르는 게 많아서 실수를 참 많이 했어요. 안배우고 저절로 알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이제는 저를 따르는 후계자, 후배들이 많습니다. 후계자들도 일을 꼼꼼하게 하고 칭찬받아서 제가 기분 좋아요. 저의 지나온 경험치를 책으로 한 권 정리하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이 일을 시작한 것은 포항에서 기와 제작하는 ‘황씨’ 라는 분의 기와공장에서였습니다. 그 기와 공장에 자주 가서 흙 만지는 걸 좋아했어요. 시골에 있어봐야 뾰족한 일도 없겠다 싶어 이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고요. 당시, 옥산저수지 쪽에 기와 제작공장이 있었는데 기와를 만드는 일부터 한 눈에 알게 돼 따로 배울게 없더라고요. 그대로 하루에 혼자서 400장씩 만들었습니다. 숙련공도 400장은 힘들다고 하는데 말이죠. 다시 황씨가 소개해 추풍령으로 옮겨 양와를 배웠고 한와 주문이 들어와 기왓장만 보고는 기와틀을 만들어 직접 만들어보았지요” 눈대중으로만 봤던 기와장과 똑 같이 나왔다고 하니 예사 눈썰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성주시 백진면 기와공장으로 추천돼 2년 정도 일하면서는 기와 만드는 전체의 공정을 완전히 숙지할 만큼 선생의 재능은 탁월했다. 수년씩 해야 하는 일들을 단숨에 익혀 버린 것이다. 기와 굽는 마지막 과정까지 숙지하게 된 선생은 이후 기와를 이게 된다. 기와를 굽고 나서 기와를 이는 기술이 최고의 과정이라고 한다. 처음 기와를 이게 된 것은 스물한 살 때였다. 성주 백진면의 사가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수년씩 걸리는 일이었지만 ‘손으로 하는 일은 배울 필요가 없었다’고 할 만큼 타고난 손재주였다고 한다. “숙련공도 3일 걸리는 일을 이틀 만에 해버렸죠. 초보자였고 배우지도 않았고 기와 이은 것을 보기만 했는데 말이죠. 몸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고향에서, 다시 대구와 경산의 기와공장으로 옮겨 기와를 이기 시작한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말구루마(선생의 표현)’에 기와를 실어 옮겼어요. 초가와 함석지붕을 벗기고 기와를 이게 됐는데 하루에 네 채씩 기와 이는 일을 혼자서 해냈습니다. 1970년대 경산의 기와공장서는 초가지붕을 거의 다 벗기고 기와지붕으로 교체하는 일의 대부분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후 다시 귀향해서는 기와를 굽고 기와를 이는 기와공장을 차렸는데 사라호 태풍으로 건물이 휩쓸려 참담한 실패를 겪는다. 이후 고향 안강으로 돌아와 기와공장을 차렸으나 다시 실패하고 영천에서도 차렸으나 또 한 번 실패를 경험한다. 토기와를 굽는 공장은 그에게 세 번씩이나 실패를 안긴다. 공장을 운영하면서도 기와 이는 일은 계속되었다. 이후 시멘트기와와 블록이 새롭게 출시돼 산대4리에서 공장을 운영하다가 다시 문을 닫게 된다. “기와 공장을 네 번 실패하고 나니 어지간합디다. 그러는 와중에도 와공으로 살았지요. 그나마 그 기술로 살림을 꾸렸지요” -“이 일이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단, 지붕에서 세 번 정도 떨어진 적은 있었어요” “공사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일하면 즐겁고 마치고나면 뿌듯하고 기분 좋았어요.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단, 지붕에서 세 번 정도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옥산 사가에서 약 4미터 정도 되는 제법 높은 지붕에서 미끄러워 떨어졌으나 다행히 바로 착지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떨어진 그를 찾고 있었는데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 아픈 것도 내색 않고 다시 원위치로 사다리를 타고 후다닥 올라가 일했다고 했다. 다음엔 경산 남천면에서 추락했는데 역시 작업을 이어가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세 번째는 안동 임하댐 수몰지역 공사할 때였는데 일 년 동안 집도 못 올 정도로 바쁠 때였지요. 역시 높아서 조심했는데도 떨어졌지만 또 착지를 잘해 똑바로 서 있었지요. 사람들이 놀라 뛰어와서 병원 가자고 했지만 갈일이 없었지요. 하하” 타고난 운동 신경에 강건한 체력이 뒷받침 됐던 까닭이었다. 이는 선생이 평소에도 달리기 등으로 체력을 단련한 결과였다고 한다. -“작업할 때 일을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고 일 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으로 열심히 일해 왔으니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사시작부터 마무리 될 때까지 사고 없이 마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또 아침부터 저녁 퇴근까지 일하는 사람끼리 다투지 않도록 합니다. 건축주와의 관계에서도 배려해주는 말 한마디 들으면 기분 좋게 일하거든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차별을 두지 않고 일하려고 합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 줍니다. 큰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일에서도, 베테랑으로서의 삶에서도 선생만의 자족적인 여유가 느껴진다. “기술로서 기와를 한 채 완공하려면 설계와 도면이 있어도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매(경사)가 져야 빗물이 잘 빠지는데 기와 자체가 경사가 너무 급하면 훑어져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시공할 때 최대한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책을 하지만 결국 1~2년 내로 와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상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걱정스럽지요. 건축은 항상 살아있으니까요. 정말 큰 스트레스입니다.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시공은 하지만 사후 안전 등을 고려한 설계와 시공이 필요합니다. 오랜 경험이 있는 와공들은 알고 있는 일인데 양심적으로 일하려고 하니 고민이 따른다는 거지요. 결국 기와 물매의 경사는 너무 심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설계 시 이런 점을 고려해주어야 합니다” “올 한해도 직천서사 담장 공사, 왜관 사찰 공사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이 예정돼 있고 지금까지 일을 찾아다닌 적 없이 주문이 밀려있어 자잘한 일들은 후계자나 관계자들에게 미뤄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변함없이 있어주면 늘 흐뭇하지요. 주변 경관과 함께 그 집의 유래가 어우러진 건축물은 정말 아름답지요. 그래서 기와 일이 더욱 즐겁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번와장 이진도 선생이 오늘도 건재하다. 진정한 장인 정신으로 일생을 기와를 만들고 이는 일에 전념한 선생의 삶의 태도는 경박한 직업관을 가진 우리에게 사표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