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물 세 사람 이상 모이면 단체라 했던가. 그 작은 단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 구성원을 잘 살펴보면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그 성질과 성품이 다르므로 잘 알아서 서로 상생상극(相生相極)을 조절함이 마치 세발 솥 같아야 한다. 어느 한 쪽이 어긋나면 사정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옛날 춘추시대 청나라 사람 자산이 태숙에게 말했다. "오직 대덕(大德)을 쌓은 사람만이 너그러운 방법으로 백성을 굴복시킬 수 있다." 강력한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만약 불이 강력하게 타오르면 백성들은 불을 무서워하게 된다. 그래서 불에 타죽은 사람은 적은 법이다. 물의 성격은 연약하므로 사람들은 물에 접근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너그러운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기란 자뭇 어려운 것이다." 그후 태숙이 집권하고 나서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결국은 온 장안에 도둑이 득실거렸다. 그제서야 태숙은 후회를 했다. 공자님이 말했다. "법이 너무 너그러우면 백성들이 태만해지고 그 태만을 고치는 방법은 강력함을 이용하는것이다. 법이 너무 강력하면 백성들이 쉽게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너그러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너그러움으로 강력함을 보충하고 강력함으로 너그러움을 보완해야 정치가 평행을 이룰 수 있다." 오나라 오자지는 형벌을 내릴때 죽은 송장마저 내버려두질 않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고 양무제는 사형수를 보고는 늘 눈물을 흘리며 놓아 주곤 했는데 이는 너무 너그러운 행동이다. 논어(論語)에서는 작은 잘못을 면제해 줄 것을 주장하였으며 춘추(春秋)에서는 큰 잘못을 내버려 두는 것을 비웃었다. 이 두가지의 강하고 부드러움의 장단점을 잘 다스리면 마치 든든하게 서 있는 세발 솥같이 안정되게 단체의 구성원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 오늘도 어김없이 창가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나의 작은 책상머리에 찾아오는데 유유히 그리고 묵묵히 성현들의 강유((剛柔)의 도(道)인 서예삼매에 심취되어 화선지에 강한 선과 부드러운 선을 한획 한획 써 내려가는 회원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바쁜 컴퓨터 시대에 한 걸음 늦추어서 옛 성현들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그 시대의 글씨를 접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가 라고 느끼면서 오늘은 부드러운 차(茶) 한 잔을 권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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