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솔바람이사 한 손으로도 잡아나 볼 수 있겠제 그자
뒷산 해거름에 오시는 길을 왜 이즉지 망설이고 있는기요
아른아른 어리는 그대 가벼운 발걸음 돌아서면 내 어쩔고
별 하나 데불고 가는 구름이사 앞 안 보고도 따라갈끼라
소용돌이치는 서천 갈밭에서 속울음을 물소리로 풀어내는데
어둠은 마음꺼정 자물리도록 바위같이 막아 썼는기라
오늘 죽는다 해도 이름 안 잊히는 그대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천지간 캄캄하게 저문 어툼 탓이제 정말 어툼 탓이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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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듯 정감을 풀어내는 문체가 어느 시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거기다가 구어체의 적절한 방언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부드러움을 건네주고 있다.
우리 말을 어떻게 잘 구을리는가에 시인의 사명이 있다면, 이러한 토속적인 정감의 시에서 그 빛은 더욱 발휘되며 신뢰감을 준다고 하겠다.
이 시는 자연의 서정을 전체분위기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찐한 인간냄새를 잘 가미함으로서 시의 울림을 퍼내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읽힌다.
즉, 기다리는 대상은 그리운 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다림의 정서가 ‘발걸음 돌아서면 내 어쩔고’이며 ‘그대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 천지간 캄캄하게 저문 어툼 탓이제’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스스로 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기다림의 정서로 일관된 한국적 정한이 바로 그러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주 좋은 비유가 있는데‘앞산 솔바람이사 한 손으로도 잡아나 볼 수 있겠’지만 그밖에는 스스로 그 무엇도 내세우거나 적극성을 내 보일 수 없는 소박한 심성이 한국적 정한의 모태가 아닌가 말이다. 여리고 순박하고 착하고 안 오면 그뿐 혼자서 탄식하며 눈물 흘리며 아무말도 못하며 끝내는 회한으로 남는 것이다.
‘별 하나 데불고 가는 구름이사 앞 안 보고도 따라갈끼라’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은 남성이지만 이 시는 한국여인의 기다림의 정한을 잔잔하게 풀내고 있는데 소월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천지간 캄캄하게 저문 어툼’이라는 상황을 암울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시인은 스스로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런 것 또한 우리 민족정서의 표본이라면 틀린 말일까.
오랜만에 한국인의 정서를 잃지 않은 숨결의 시를 만난 기쁨은, 요즘같은 세상에 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