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질서와 안정, 문화창달에 기여함은 물론, 좋은 글귀를 통해 인성을 기르는 교육적 효과도 뛰어나다” 청송 신영식 선생은 지난 80년 남강 이종원선생과 함께 동명서도회를 만들고, 86년부터는 회장을 맡아 15년간 이 모임을 이끌었다. 그간 동명서도회는 서실을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 무료강습을 실시해 후진양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동명서도원 사옥건립이 꿈”이라는 선생은 지난 20여년간 동명서도회에 몸담아 오면서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한국서예협회 경주지회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선생은 1944년 기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했다. 60년대에는 경주에서 성암 최종락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사사 받고, 손수 필사본을 만들어 한문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서예를 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서예공부는 지난 80년 남강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사사 받으면서부터다. 서예 외에도 선생에게는 자동차정비라는 본업이 따로 있다. 69년부터 자동차 전기배터리 일을 시작으로 71년에는 자동차정비 기능사 자격을 취득, 80년에 월성자동차정비공장을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안강 제일초등학교 서편에 자리한 정비공장을 경영하면서 틈틈이 서예를 공부해 한국서화예술대전 특선을 비롯한 경북서예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구경북미술대전 등 각종 서예전에서 수차례 입상했으며 한국서화예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이기도하다. 선생의 독특한 서법은 이조말엽 조선석학의 제 1인자로 꼽히던 석제 서병오 선생으로부터 그 연원을 찾아야한다. 계전 최현주(안강출신)선생과 남강 이종원(안강출신)선생으로 이어지는 석제선생의 서풍의 맥을 이은 정통서법이기 때문이다. 선생의 대작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95년, 포항-안강-영천을 잇는 28번국도의 시티재(안강휴게소)에 세워진 `남북통일염원비’의 제자를 비롯한 풍산금속 ‘신한국창조’, 포항역의 ‘고객만족’ 등의 작품들이 있다. 조용한 성품의 선생은 부인 이상화(55)여사와의 사이에 3형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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