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현주소 손경호 어머니란 아름다운 이름엔 힘이 있고 생각나는 말들이 참 많을 것 같다. 그것도 옛날과 요즈음을 나누어서 불러보고 싶다. 오래 전 어머니를 두고 말하자면 구멍난 속옷, 한숨, 고무신, 양말 깁는 일, 주름살, 옷고름, 거친 손, 괜찮다, 눈물, 머리수건, 몸빼이, 새벽밥, 누룽지, 회초리, 따뜻한 품 … 등이 생각나고, 요즈음의 어머니를 두고 말하자면 카네이션, 기도, 로션, 파마머리, 손톱, 거울, TV꺼라, 곗날, 전화, 아버지 눈치, 차조심해라, 일찍 오너라, 목걸리, TV연속극 컴퓨터 그만해라 등이다. 요즘 아이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무엇을 장만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아버지 선물은 일찍 정해서 준비했으나 어머니 선물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어머니께 직접 여쭈어 보라는 내 말에 모두들 수근 수근이다. "어머니도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신다는 데요, 뭘 "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편에서 평소 너희들이 어머니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탓을 돌렸다. 그러자, 학생들의 입에서 억울하다는 소리가 쏟아졌다. 고민 고민해서 선물 사다드리면 어머니는 "얼마 줬냐?"부터 물으시고는 쓸데없는데 돈 쓴다고 용돈 깍는다고까지 하세요. 솔직히 선물 사다 드리고도 기분이 안 좋아요. 주부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전해 주었다. 어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버이 날 받고 싶은 선물을 우선 순위로 다섯 가지를 채우지 못했다. “예전에 좋아하는 것이 많았었는데 다 잊어 버렸네, 생각이 안나요.” 이게 우리 나라 어머니의 현주소다. 지금껏 어머니라는 이름은 희생과 헌신의 대명사였다. 자기 존재를 완전히 잊고 살아가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아버지에게는 존대어를 쓰는 아이도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쓰는 현상에 주목하여 조사를 해 봤드니 40명 가운데 5명 정도에 불과한 숫자만이 존대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반말을 쓰는 이유는 친근감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더 캐묻자, ‘어머니에게 존대어를 쓰지 않았을 때 지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엄마에게 반말을 쓰기 때문에 나도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답이 나왔다. 어머니의 말은 아이들에게 ‘잔소리’로 규정된다. 그야말로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요즘 가정 교육이 형편없다고 은근히 비난의 화살을 가정에 있는 어머니에게 돌린다. 여러 가지 현상을 종합해 볼 때 어머니라는 존재는 감사의 대상이긴 하지만 존경의 대상은 아닌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감사하는 마음은 ‘당연한 어머니의 의무’로 희석되고 존경과는 점점 멀어진다.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는 실제로 아이들에게 힘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물론 어머니 자신에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 어머니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의 권위가 날로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어머니의 권위에 대한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과거에는 부모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저절로 부모 모시기를 배웠었다. 그러나 지금 집안의 어른은 오로지 부부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부부가 서로 존경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에게 부모공경을 가르쳐야 한다. 어버이날에 한 송이 꽃과 감사의 편지도 좋지만 ‘존경’을 가르치는 분위기기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에 대한 존경 없는 어버이날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머니하면 그리움의 대상이요, 보고 싶은 위인이다. 철학자 한샘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팍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요, 눈동자”라고 했다. 새 학기가 되면 어머니는 더욱 바쁘다. 새봄의 시작에 가정 살림이며 자녀 교육에 정신없이 뛰어 다녀야 할 분이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기다림과 준비의 대상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영원한 나의 얼굴, 떠나 신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하는 보고싶은 순간이면, 눈물이 글썽이다 그만 커지고 맙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거룩함에 더 큰 찬사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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