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하늘 덧바르는 바람의 입에서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난다
목백일홍 꽃 뗀 자리마다 박아넣는 옹이들
뜨거운 오한 살이 떨린다
눈이 온다
붉은 꽃살같은 저 떼거리 멍청한 그에게
찰나 그늘 빠져나간다
角을 향해 떨어지는 이파리들의 중심 받아내며
무얼 더 벗으려고 애쓰는 걸까
어떤 무게도 줄여놓지 못한 생살 너머
엎어지는 눈발, 나는 가지에 걸린 바람일 뿐이다
불쑥 돌아와 때리고 가는 서른의 광기
그 광기들에 얼마나 많은 꽃망울들 알약처럼 분해당했던가
이제 세상 하나 매어놓고 마음껏 벙그는 눈발이고 싶다
그가 내 안에 가지를 집어넣는다
내가 터진다 후생 속으로 꽃물 들이치는 몸살
길도 더러는 제몸 잠그는데 이 한겨울
나를 뚫고 걸어나가는 저 꽃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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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는 조지훈의 시가 생각난다. 미당의 떨어져내리는 의 동백꽃도 연상된다. 필자가 쓴 `무겁게 내려앉는 붉은 꽃잎이 아니라 / 스민 것은 모두 버리고 가볍게 흩날리는 / 저 무명적삼같이 바람에 날리는...` 이라는 시가 있듯이 말이다. 그뿐이겠는가. ‘’하롱하롱 꽃잎이 지고 있다‘는 이형기시인의 시도 이 자리에 놓여야 하리라.
그처럼 이 땅의 수많은 시인들은 저마다의 사유로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한세상을 살다갔거나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위에 소개한 이 시는 퍽 관조적인 입장에서 지는 꽃을 노래하고 있다. 아니 지는 꽃 자체만의 심상 그것만이 아닌, 그 ‘꽃 뗀 자리’에 흰 ‘눈발’을 대입시킴으로서 품격이 한층 고조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꽃진 자리는 상처이며, 그 아물지 않은 흔적 즉 ‘어떤 무게도 줄여놓지 못한 생살 너머’에 비집고 들어오는 건 ‘덧바르는 바람의 입’이며 ‘세상 하나 매어놓고 마음껏 벙그는 눈발’이다.
꽃의 세상에서 눈발의 세상으로 건너오는 시인의 아픈 ‘꽃물 들이치는 몸살’이 그만큼 혹독하다. 누구나 생의 고비나 전환에서 오는 ‘오한’같은 삶의 상처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시인은 극기로 잘 다스려내고 있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이제 세상 하나 매어놓고 마음껏 벙그는 눈발이고 싶다’고 화해와 긍정의 입장에 선다. 그러나 ‘나를 뚫고 걸어나가는 저 꽃’에 대한 회한은 어쩌지 못한다.
떨어져서 멀어져 간 화사한 꽃잎의 과거시간과 싸늘하게 몰아치는 눈발의 현재시간이 교차하면서 이뤄내는 대비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오며 더욱 아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