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능력 손경호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수없이 생각해 왔고 또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하는 수없는 질문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그 대답은 천태만상이지만 또 쉽게 잘 바뀌기도 한다. 이것은 나이에 따라 차츰 동경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내아이 같으면 어릴 때는 교통 순경이나 스타급 운동 선수나 권총 찬 헌병이 동경의 대상이 되고, 여자아이는 간호원이나 선생님이나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꿈의 대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바뀌게 되는 것은 꿈이란 우리 미래의 이상이지 참된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조그마한 칭찬 한 마디가 과학자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고 한 장의 재미나는 우표나 그림이 만화가의 꿈을 영글게 하고 야구장에 가서 본 멋진 경기 장면이 아이들에게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의 이러한 꿈은 다소 이상적인 면도 있지만 어딘가 구수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어 우리를 더욱 즐겁게도 해준다. 세월이 감에 따라 차차 우리의 이상도 실제적인 것으로 변해 가기 마련이다. 한낮의 허황된 개꿈처럼 우리가 바라던 일들이 스스로의 노력과 판단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면 ‘케 세라 세라’ 하며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을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 자신에게 이기지 못한 자가 어떻게 남에게 이기겠는가? 그들은 뼈를 깍는 고통을 감내한다고 한다. 하여튼 이러한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우선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어른들로부터 꿈과 희망, 포부를 가지라고 종종 강요당한다. 꿈이나 희망이나 포부가 다 비슷한말이긴 하지만 좌우간 이런 말이 지닌 의미는 큰 뜻을 가지라는 말로 요약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해서 ‘꿈이 없는 인생은 창문이 없는 집과 같고, 희망과 포부없이 사는 것은 빈 집에 사는 것’이라고 선인들은 강조해 왔다. 사실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목표나 포부가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에게는 이 나라의 장래가 다 ?은이들의 부단한 도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이상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부정한 채 방황하고 있는 이들이 간혹 있어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런가 하면 목표가 너무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것들도 있다. 꿈을 야무지게 가지자. 대통령의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모두다 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나 자신을 먼저 알고 자신에 합당한 꿈을 가져야 하겠다. 장애자 올림픽 대화가 열리던 날, 척추장애로 생후 6개월만에 허리의 아랫 부분을 절단 당한 채 살아온 미국의 16세 소년이 생각난다. 비록 TV에서 보기는 했어도 엉덩이가 없는 상체만을 스케이트보드에 싣고 다람쥐처럼 달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인간 승리의 감동을 안겨 주지 않았던가. 발 대신 손으로 또는 손 대신 발로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로 도전할 때 인간에겐 산을 옮길만한 엄청난 일도 능히 해낼 수 있음을 실증해 주었다고나 할까. 손과 발의 역학적 기능이나 특성으로 볼 때 손은 발을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손의 뼈는 27개, 발의 뼈는 25개로 서로 비슷한 숫자이지만 114개의 인대와 20개의 근육이 부착된 발에서 내는 힘과 역학적 특성은 손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한다. 인간의 신체적 위치로 볼 때 머리, 어깨, 팔, 몸, 발 의 순서로 중요도가 이어진다고 보면 손이 발보다는 훨씬 상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성이 증명되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 두 팔을 잃은 불구 여대생이 유수한 대학교 동양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만으로 유학간다는 얘기가 소개되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두 팔이 없는 그 여대생은 발가락으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남이 잘못한 것을 가리켜 ‘발가락으로 해도 그보다는 낫겠다’라는 발가락 멸시의 속담을 무색케 하는 인간 승리였다. 뜻과 이상을 가지고 꿈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그리고 신념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기적같은 힘이 나타나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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