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은 한때 우리의 혼과 국호, 태극기 등 모두를 일본에 빼앗긴 날이다. (국치란 나라를 빼앗기고 부끄럽고 울분함)명분은 허울좋게 합방이지만 우리의 모든것을 빼앗아가려고 폭언 폭행등 가진 만행을 다한 이것은 분명히 약탈(掠奪)이다. 그후 단발령 강제 노역 수탈 약탈 원폭피해 등 36년간의 설한 아니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식물인간처럼 마지막 생애를 기다리는 동포가 기천명이나 된다. 우리 관료나 사회인사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목을 베어가고 코와 귀를 잘라가서 일본땅에 묻어버린 이총(耳塚). 젊은 남녀들에게 강제동원령을 내린 후 잡혀가 갖은 학대와 강제노역 등 혹독함을 못이겨 죽어간 헤아릴 수 없는 징용(徵用) 동포들. 7~8세의 어린학생들도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수km 걸어가서 송진 농축액을 군병기에 넣어 윤활유 대용품을 사용하기 위해 관솔(소나무 옹이)을 따서 오라고 시킨 일본인들. 그들은 이토록 비도덕적인 일만 시키곤 했다.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에 남의 나라 어린이까지 동원했던 일본. 정말 가소로운 일로 그 시절은 지금과 비교하면 농토도 빈약하고 수리시설 영농기술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수확량이 1/3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추수가 끝나기 무섭게 곡식을 이런 저런 이유로 수탈하고 그나마 부족한 식량에다 나무껍질과 풀 뿌리를 캐어 배를 채우시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유교 문화국인 우리는 조상 섬기는 정신이 대단했다. 제사 뫼시려고 술을 담궜다가 일본 순사에게 발각돼 지서에 끌려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고 무거운 벌금에 실의에 빠진 우리 할아버지들. 역시 제사때에 사용하려고 집집마다 감춰 놓은 놋쇠로 만든 향로과 촛대, 밥그릇을 빼앗아 가려고 삼일이 멀다고 찾아와 협박하던 일본 순사들의 그 모습은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맞은 우리는 4만여명이 원폭으로 무참히 죽었고 한국에 남아 있던 생존자는 겨우 2천여명. 피폭 환자나 징용 생존자를 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면서 연락선에 승선시켜 결국 운항중 태평양 한 가운데에 수장시킨 당시 일본수뇌들은 광질(狂疾)에 걸렸는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우리는 그들의 노예도 아니고 죄인도 아닌데 하늘이 통곡할 일이다. 1882년 임오군란과 1950년 6.25동란에 대한 원인 제공은 모두 일본인이다. 우리 형제끼리 가슴에 총뿌리 겨누고 수백만명의 형제가 살상당하다니 그 누구가 보상할것인가. 우리 한반도 허리에 동여 매인 풀어지지 않은 쇠사슬. 우리 산야도 형제도 서로 왕래하지 못하는 기막힌 이 사연, 그 아픔을 일본인은 알아야 된다. 고이즈미와 일본 정부각료. 우익단체들은 우리의 소리와 인접 피해 국들의 소리를 잘새겨서 지난날 잘못을 하루 속히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이 마땅할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고 의기심 군주국의와 우경화에 현혹되지 말고 인간 존엄성과 의(義)와 도(道)를 알고 덕(德)을 베풀줄 알아야 할것이다. <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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