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Graz)에는 외계인 비행체같이 특이한 건축물이 있다. 이 괴상한 건물은 쿤스트하우스(Kunsthaus)로 불리는 현대미술관이다. 그라츠는 붉은색 지붕이 많은 고풍스러운 역사 도시인데, 문어 빨판처럼 생긴 촉수가 달린 기괴한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80% 이상이 반대했다고 한다. 도시의 역사적 공간 한복판에 외부 돌기가 튀어나온 외계 생명체 같은 건물이 생기는 것에 당연히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건물이 가진 매력으로 인해 그라츠 시민들뿐 아니라 이곳을 들르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친근한 외계인’이라는 별칭으로 그라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쿤스트하우스는 사실 새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다. 기존 건물을 구조와 뼈대를 활용하여 외관을 증축한 것이다. 밤이 되면 외벽에 조명들이 빛을 내고 정해진 시간에는 특유의 외계음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당연히 이 신기하고도 특색있는 건축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고 주변은 활성화되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의 진가는 지역 활성화와 통합에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라츠를 관통하는 무어(Mur)강을 기준으로 도시는 동편의 역사지구와 서편의 상업지구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지역 모두 쇠퇴하여 도시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그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건물을 짓게 된다면 해당 지역의 중심지에 새로운 시설이나 건물을 짓기 마련인데, 그라츠의 쿤스트하우스는 무어강 서편에 지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양측 지역 모두를 활성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쿤스트하우스가 강변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쿤스트하우스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 건너 동편의 구시가지가 되었다. 특히 서측 구시가지에 그라츠의 상징인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로 불리는 언덕이 있어 쿤스트하우스의 외벽을 통해 발산하는 조명을 활용한 미디어 쇼를 관람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대학과 수도원, 박물관 등이 입지한 역사 도심인 동편의 구시가지에 비해 산업시설, 병원, 기차역 등 기능적인 시설 중심으로 조성된 강 서편지역도 쿤스트하우스로 인해 주변에 고급 식당과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전보다 도시가 발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무어강 동편의 구시가지도 쿤스트하우스를 감상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면서 동서지역이 함께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경주의 구시가지에서도 쿤스트하우스와 같은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경주 구도심은 현재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동측의 황리단길과 대릉원 일대, 중앙의 중심상가와 금리단길, 그리고 경주읍성과 그 주변 지역이다. 일명 황리단길, 금리단길, 읍리단길로 불리는 이 세 곳의 활성화 정도는 익히 알다시피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지역활성화를 위한 기폭제가 필요하다면 바로 쿤스트하우스와 같은 상징적인 건축일 것이다. 새로 건물을 지을 수도 있지만, 쿤스트하우스처럼 기존 건물을 활용하거나 일부 증축하여 경주에 필요한 기능을 담을 수 있으면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옛 경주역 앞의 도로인 화랑로는 중심상가와 읍성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로 볼 수 있는데 이곳에는 공실이 된 건물도 있고 규모 있게 지은 업무시설도 있다. 또 경주역 부지도 앞으로 개발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 건물 또는 부지 한 곳을 이용하여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은 두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을 조성하는 것이다. 내부 용도는 아직 경주에 없는 도시역사관과 소규모 회의를 위한 컨벤션 기능을 담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2022년 봄 본지를 통해 도시의 역사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역사관 건립의 필요성에 대해 이미 기고한 바 있다. 소규모 회의장 또한 도심지역의 부족한 컨벤션 기능을 강화하여 보문단지에서의 대규모 행사와는 다른 외부 수요를 구도심 지역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역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랜드마크 건축은 도시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확보할 수 있고 상징적인 경관 형성을 통해 지역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그간 한옥과 기와지붕으로 상징되는 고도 보전의 틀 속에서 벗어나 한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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