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61개 단원의 글을 쓰면서 최부자댁 조상님들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백성들과 상생 공존하는 묘리를 터득하고 이런 지혜를 대물림하며 살아왔음을 살펴보았다. 연구자로서 이런 최부자댁 선현들의 생활철학은 최근 논란이 되어왔던 우리 사회의 갑질논란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준다. 갑질의 근원적 이유는 권력과 부를 올바로 사용하는 교육이 없기 때문. 세계적인 백과사전에도 ‘갑질’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큼 전방위에서 드러난 갑질 행태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 정부가 기업에 자행하는 갑질, 이윤 극대화를 노린 대기업이 중소협력기업에 가하는 갑질, 권력을 쥔 공직자들이 그 대상인 국민을 위협하는 갑질, 문어발식 경영으로 일상의 골목상권까지 탈취한 재벌기업들의 갑질, 기업의 대표나 임원들이 고위직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갑질, 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갑질, 고객의 점원에 대한 갑질, 심지어는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교수의 학생에 대한 갑질, 채수근 상병의 죽음에서 보았듯 군사령관의 병사에 대한 노예식 갑질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 행태는 도를 넘어서다 못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들은 아무리 무서운 권력도 오래가지 못하고 아무리 거센 힘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지만 이런 냉엄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혹은 기업가는 흔치 않다. 조금만 높은 자리에 있거나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그 자리와 힘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고 아랫 사람들을 막 대한다. 수익이나 출세를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윗사람에게는 무조건 복종하고 아부하는 반면 아래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착취하고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행태가 만연한 사회는 결코 바른 사회가 아니다. 여기에는 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한 이유도 크다. 힘을 가졌을 때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알게 가르치는 교육과 바르게 사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없는 것은 우리 교육의 큰 병폐다. 권력의 관점에서는 모든 권력이 다수의 공통된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가르치지 않기에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자기가 잘 나서 권력을 잡았고 그래서 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돈을 버는 기술만 가르칠 뿐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에 돈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돈값을 못한 채 산다. 세상의 많은 경영 관련 서적들은 어떻게 사업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고 자본을 축적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상세하게 기술할 뿐이다. 그러나 정작 기업을 키우고 부를 이루고 나서는 어떻게 그 구성원과 공유하고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우리나라 유사 이래 상생과 나눔을 몸소 실천한 개인이나 가문, 기업들이 없지 않을 것이고 세계사에서도 그런 인물과 기업들이 적지 않을 것인데 아무리 교과서를 살펴봐도 이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의 밑바탕에는 성리학의 발전 이래 아직도 돈을 천시하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청렴결백과 안빈낙도를 최고의 덕목인 양 강조할 줄 알았지 정당한 방법으로 돈 버는 가치를 가르치지 않았고 그것이 초등학교부터 교육을 통해 은연중에 전파되어 왔으니 돈을 천시하는 그릇된 관념이 지금도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 있다. 그 반면 실제 생활에서는 인생 최고의 덕목이 오로지 권력과 돈뿐이라는 절박함이 팽배해 권력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건 하는 행태가 가득 찼다. 권위(權威)도 마찬가지다. 사회 대부분에서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판치는 풍토가 깔려있다. 어느 교과서도 권위의 중요함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권위에서 권은 ‘저울추’를 뜻한다. ‘위’는 ‘두려워 한다’는 뜻이다. 저울추란 것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의 공통된 가치를 의미한다. 사람들의 공통된 가치를 높이는 것이 권위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진심으로 따르고 공감하는 사람을 일러 진정하게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착각하여 거꾸로 자신이 가진 저울추를 철퇴인 양 알고 휘둘러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권위주의다. 우리 사회전반에서 일어나는 갑질논란은 올바른 권위가 실종되고 잘못된 권위주의가 팽배하기에 일어나는 기현상이다. 최부자댁 선현들은 다른 부자들과 달리 돈 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자손들에게 충분히 가르쳐 왔다. 한편으로는 돈 버는 것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다는 것을 철저히 가르쳤다. 그래서 안으로는 먼저 가복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가깝게는 소작인들을 우대했으며 밖으로는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돌보고 과객 맞이에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최부자댁 정신이 자손대대로 이어진 이유 : 어릴 때부터 쉼 없이 되풀이 하는 조상님들 이야기! 최국선 공이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돈 버는 일에 의미를 찾은 것이나 화적당들의 습격을 받고 대오각성한 이후 장리 문서를 태우고 곳간을 열어 빈민들을 구제한 것은 바로 그 첫 깨달음의 실천이었다. 나아가 그 자신뿐 아니라 이 지혜를 후손들이 대대로 지키게 교육함으로써 이후 육훈이 만들어지고 육연이 이어지는 전통을 세웠으니 그것이 10대를 넘게 부자로 살게 된 근원적 힘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최부자댁에서 이런 모범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정신이 꾸준히 교육되고 실천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경주최부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부자댁 조상님들은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윗대의 가르침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최염 선생님은 의외로 간단하게 답하셨다. 최부자댁 어른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쉼 없이 되풀이해서 조상님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나만 해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사랑채에서 먹고 자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육연을 쓰기 시작해 많은 시간을 할아버지 곁에서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고 할아버지로부터 더 윗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무수히 반복해서 듣곤 했어요. 할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증조할아버지 곁에 서서 증조부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모습과 증조부님을 통해 더 윗대 할아버지들에 대한 말씀을 매일 들으며 자랐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큰 묘리가 있다. 어른들로부터 바르게 사신 조상님들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듣는 것은 단순히 조상을 후세에 알리고 자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누누이 반복되는 조상님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자신에게서 아들과 손자로 대물림되는 단단한 신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부자댁의 이런 삶의 모습은 내가 최염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최염 선생님은 같은 이야기를 이야기의 소재를 바꾸거나 상황을 달리하면서 때로는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어떤 형태로건 반복해 들려주셨다. “내가 조상님들의 삶을 강조하는 만큼 적어도 나 자신, 조상님들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철저히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염 선생님 이후 이제는 최부자댁의 이런 이어짐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핵가족화된 가계 구조와 교육의 학교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 탓에 조상님들의 장점이던 구전(口傳)학습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비단 최부자댁의 단절에 그친 것이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명맥이 유지되던 대가족 사회는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무너져 거의 대부분이 핵가족화 되었다. 한 집에 대여섯 명은 기본이던 자녀도 하나 혹은 둘만 낳게 되었고 그렇게 되고 보니 대부분 부모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녀들이 경쟁우위에 서는 교육에 치중하게 되었다. 인성교육은 뒷전인 채 오로지 학교 공부 잘하기와 점수 잘 받기에 올 인(All in)했다. 귀하게 자란 덕분에 사회구성의 가장 기본적 출발점인 집에서부터 철저히 갑으로 자라난 세대, 반면 한쪽에서는 부모의 결정에 저항 없이 끌려다니는 로봇이 된 세대에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여기에 학교조차 전인교육보다는 무한경쟁만을 반복해서 강요하니 이런 교육실태에서 상생과 나눔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라도 더욱 경주최부자를 알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최부자댁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시대를 떠나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매우 구체적인 지침서다. 특히 권력이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 권력과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아름답게 이끌어가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들어 있다. 경주최부자의 상생철학을 깨닫는다면 우리 사회에 갑질은 사라질 것이다. 세계백과사전에 갑질이란 말이 수록된 것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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