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경 경주시벤치마킹시찰단의 일원으로 이집트, 터키, 그리스 등 지중해 지역의 고대유적지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세계문명의 발상지이며 유럽문명의 요람인 이 곳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부푼 기대감으로 여행에 임했다. 그러면서도 벤치마킹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가슴에 안고 갔기 때문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카르낙신전, 왕가의 계곡, 이스탄불의 성소피아성당,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등 세계적인 역사유적들을 돌아보는 동안 내내 경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그곳의 유적들에 비해 경주는 접근성이나, 홍보에서도 어려움이 많지만 역사성이나, 예술성에서도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고 특히 규모면에서는 비교 그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의 냉엄한 현실 앞에서 솔직히 기가 질렸으며 가슴이 답답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졸정원을 보았을 때에는 경주가 비록 규모면에서는 좀 부족해도 역사성이나 예술성은 훨씬 뛰어나지 않느냐고 위안할 수 있어 그래도 이처럼 가슴 답답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중해지역의 고대유적지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자위마저도 무참히 깨어지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평소 우리 경주의 정체성에 대해 ‘천년고도이자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자부심이 지나쳐 자만하기까지 했었던 나로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오랜 역사와 엄청난 규모, 빼어난 예술성을 간직한 세계적인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들 고대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생각에 빠져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우리 경주시민들 가운데 이러한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경주시민을 모두 모시고 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젠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어 이들과 당당히 겨루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와 분심을 일으키도록 하고 싶었다.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라는 지나친 자긍심으로 스스로 자만에 빠져 마치 ‘네놈들이 경주에 오지 않을 수 있어’하는 억하심정으로 바가지와 불친절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과거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없이는 더 이상 경주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래서 경주가 거듭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열흘간의 일정을 통해 보았던 많은 문물 가운데 특히 역사문화관광유적에 대한을 내용을 대체로 소상하게 엮어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었다. 조금도 거짓 없이 본 대로 사실대로 기술함으로써 많은 경주시민들이 유수의 세계유적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유럽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번 일정을 정리하면서 특히 두 가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 세계유적들의 실상과 우리의 현주소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고대유적에 대한 내용들을 소상하게 보도하겠다는 것. 둘째, 한 왕조가 1천년 동안 도읍지로 사용한 세계 유일의 역사고도 경주가 세계적인 유적지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규모면에서 세계적이어야 한다. 경주에 세계적인 규모의 유적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동양최대의 건축물이었던 황룡사와 1천년간 유지했던 신라왕조의 요람이었던 신라왕궁, 경주읍성 등은 가히 세계적인 규모의 유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막연하다. 그러나 황룡사의 경우는 지난 76년부터 83년까지 8년간 발굴하여 4만여점의 유물을 찾아내고 그 경역과 규모 등 많은 부분이 이미 밝혀져 있어 현실적으로 가장 쉽게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따라서 황룡사 복원문제를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또한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경주신문은 황룡사복원에 대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이며 이 글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