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에 몇 달은 과거에 일어난 일의 선연한 기억과 함께 한다. 3월이면 기미년의 3·1운동, 4월이면 4·19의거, 5월이면 무엇보다 광주민주화운동, 6월이면 호국보훈의 포괄적 헌신이라는 식이다. 8월이면 뭐니 뭐니 해도 1945년의 해방이고, 또 1948년의 정부수립이다. 아울러 이 달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하는 논쟁이 일어난다. 올해는 특히 광복절 행사가 반쪽으로 치러진 것처럼, 정부와 광복회 및 야당이 전면적으로 대립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독립기념관장 인사의 적절성으로 들끓었으나, 속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일련의 대일자세에 관한 정당성이 물어졌다. 격렬하게 일어난 이 논쟁을 보며 논쟁의 주제에 관하여 조바심을 감출 수 없었다. 주로 야당 측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반일의 슬로건이 다시 한번 힘을 떨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에 입각하여 일본이 여전히 팽창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식의 논리가 그 슬로건 안에 숨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올바른 주장일까? 나는 1989년 한국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해는 일본의 ‘헤이세이’(平成)원년으로 당시 일본은 가히 욱일승천의 기세로 국력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곧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에 ‘일본의 평화’(Pax Japonica)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며, 세계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일본을 배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로부터 36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이 흐른 올해 아이들의 권유에 못 이겨 8월 15일 전후로 일본여행을 하였다. 내가 받은 강렬한 느낌은, 아, 옛날에 내가 보았던 일본이 아니었다. 그때는 거리마다 활력이 가득가득 넘쳤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건 좀 쓸쓸한, 쇠락의 느낌마저 주는 나라로 변해있었다. ‘낭까이(南海) 대지진’의 공포가 사림들의 머릿속을 누르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미소를 잃어버린 꽉 다문 얼굴에는 고난을 이겨내려는 인내의 마음이 새겨져 있는 듯하였다. 그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의 인상을 내게 주었다. 만물의 법칙에 따라 한 국가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밟는다. 한국과 비교하여 일본은 지금 미래를 치고 나갈 힘이 많이 부족하다. 30여 년의 길고 긴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첨단산업의 기반이 약하다. 사회에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려는 진취적 기운을 지금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사회도 여려 병폐를 안고 있으나 사회의 활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단연 일본보다 낫다. 전반적 상황을 종합하면, 한국이 일본을 앞서가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내 말이 아니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뛰는 젊은이들은 이 점을 확신한다. 이 예측과 확신이 지금 한일 두 나라를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광복 후 무려 79년이 지나고 더욱이 우리가 앞서가기 시작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일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일본을 무서워하는 ‘공일증’(恐日症)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식민지배가 다시 재현될 것처럼 말을 하며, 매국(賣國)을 경계한다. 단순한 오해나 착각에 의한 정세판단의 오류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인 왜곡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과거에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 장기체류를 하며 연구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리가 일본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친일파이며, 중국과도 완전히 마찬가지로 생각하니 친중파이다. 또한 세계의 중심인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야 한다는 친미파이기도 하다. 그런 다중적 입장을 가진 나는 이번 광복절을 일본에서 보내며, 향후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을 생각해보았다. 2024년의 8월에 서서 내다보는 안목이다. 일본이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해 통렬한 사죄를 하고, 한국은 한국대로 현실과 맞지 않는 ‘공일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양국간의 대등하고 건전한 관계수립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과제가 실현되어야 우리의 국운이 순조롭게 뻗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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