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한 달 앞이다. 신라가, 경주가 만들어 낸 가장 큰 문화유산 중 지금도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가족에 대한 정과 고향 사랑을 더해주는 최대의 브랜드인 한가위가 바로 저만치 앞에 있는 시기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도 4년 지나 맞는 추석이다. 올해는 유달리 4로 시작되는 숫자에서 의미를 찾는다. 며칠 전 대학 입학 40주년 행사 계획을 들었는데 대학 입학 40주년은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이자 경주를 떠나 주 생활지를 서울로 옮긴 지 40년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제는 경주에서 태어나 배운 기간보다 타지 생활이 두 배 이상 되고 내가 사는 지역의 성당이 더 포근하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40년과 4년, 파리올림픽이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다소는 소란스러운 시기지만 추석을 목전에 두어서인지 묘한 차분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1년에 경주를 방문하는 횟수가 얼마나 될까? 점점 줄어 왔고 지금은 1년에 5차례 정도이다. 제사와 차례를 서울에서 지내고 모친을 뵙고 병원 등 업무상 동생들과 함께 또는 번갈아 가면서 경주를 방문하고 있다. 이번에도 추석을 앞두고 8월 하순에 부친 묘소 벌초를 위해서 짧게 경주를 다녀올 예정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경주와의 인연을 무엇으로 이어가고 더 강하게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모친이 경주에 계시니 그 동안은 경주를 당연히 찾고 호흡해야 하겠지만 그 이후는 무엇이 나를 경주로 이끌어 찾게 할까? 핵가족보다 전자가족이라는 단어도 나오는 때이고 1인 가족이 40%에 육박하는 요즈음이라 예전처럼 일가친척 전체가 모여 벌초하고 함께 지내는 것도 점점 없어질 것이다. 어린 시절과 달리 고향도 정말로 많이 변했고 집성촌이었던 마을도 이제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져 오히려 고향보다 서울, 사는 곳에 더 정든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 지금에 경주와 나, 나와 경주를 이어줄 탯줄은 무엇일까? 그 가장 분명한 하나의 끈이 있다. 경주와 나, 나와 경주를 변함없이 이어주고 더 강하면서 더 아름다운 향기로 이어줄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는 바로 친구이다. 경주에 갈 때마다 괜히 마음이 허해지고 바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친구들과 바로 생각하지 못해서이고 그들과 흉금을 터놓을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나에게는 나와 경주를 억지로라도 이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따지고 보면 고향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져 가던 나에게 고향에 대한 열정을 불현듯 불붙여준 친구다. 바로 이 ‘첨성대’ 칼럼을 쓰게 해준 친구 박근영이다. 격월로 이 칼럼을 쓸 때마다 조금이라도 경주에 도움을 주고 싶어 각별하게 경주 관련 정보를 찾고 할 수 있는 한 내 전공과 관련된 조언을 하고 싶어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런 작업을 통해 다른 출향인들에 비해 지금의 경주 정황을 더 알게 되었고 그만큼 고향에 대한 마음도 깊어질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친구도 경주신문사를 떠나 야인의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고향 사랑하는 마음에 함께 첨성대 필진으로도 활동하고 경주최부자 이야기도 꾸준히 연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응원을 보내고 있다. 어느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는 날 함께 한강 둔치를 걸으며 우리의 남은 젊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보람있게 보낼 것이며 고향을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를 숙고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로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친구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지혜를 나누며 더 발전적인 경주 찾기와 경주의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가! 최근 읽은 글 중에 ‘인생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족과 친구다. 이들을 잃게 되면 당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다. 그동안 늘 좋은 친구 만나기를 바랐는데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내가 먼저 좋은 친구, 경주의 좋은 벗이 되고자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천년지기’라는 노래를 멋지게 불러준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내가 지쳐 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 준 친구. 천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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