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승자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고, 패자는 일상이 망가진다.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 패배의 아픔은 일상을 포기하고 주변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돌봄 이야기다.
비교적 돌봄 수요와 공급이 여유로운 읍면지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돌봄 때문에 힘든 엄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가 좀 커서 여유로워진 부모들, 돌봄 전쟁이 끝났을까? 아니다!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병환이라도 찾아온다면 입원과 퇴원 이후, 아직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실 돌봄서비스가 또 필요하다. 나이가 좀 더 드시면, 주간 돌봄센터나 요양원, 요양병원과 같은 돌봄이 또 필요하다. 형제자매가 많다고 수월하고, 적다고 편하지도 않다. 집마다 상황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니 모두가 힘든 돌봄이다. 시간이 흘러 돌봄의 터널을 지나고 보면, 그 끝자락엔 늙은 내가 서 있지 않을까 두렵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그 미래가 밝지 않은 이유는 아이 돌봄과 부모 돌봄의 터널에 갇힌 우리의 현실이 조만간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없다고 어린이집, 유치원이 줄어들고 초등학교가 폐교하는 반면에 그나마 있는 아이들의 돌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으로 어렵게 이어가던 경제활동을 부모 중에 한 사람은 포기해야 하고 그로 인한 수입의 축소는 주택 소유 가능 시기를 더 늘린다. 그러니 아이를 더 낳는 것을 포기한다. 하나 낳아 키우는 것도 힘들고,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늘고 있다. 주변의 이야기나 모습을 보고,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부부가 적지 않다.
요즘 돌봄 관련 뉴스를 살펴보면 가장 큰 이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다.
초등 돌봄의 경우, 교실의 부족과 교사의 업무 가중, 안전사고의 책임 유무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공급은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유아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수족구와 같은 병이라도 걸리면 부모는 출근할 수가 없다. 아이를 맡아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불효자가 돼야 한다. 연차월차가 아무리 넉넉해도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는 여전히 모자라고, 부모님의 병환은 큰 병이 아니라면 뒤로 미뤄지기 십상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가정 돌봄의 형태도 필요하다. 만원이 넘는 최저시급으로 가정도우미를 쓰기가 무섭지만, 가능하다면 쓰고 싶은 것도 현실이다.
끝없는 돌봄 지옥, 답은 없을까?
싱가포르의 경우 내국인과 외국인의 시급 차이가 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입주 도우미 형식으로 오는데, 최근에 가사도우미를 심하게 학대, 영양실조, 폭력, 끝내 사망에 이르게까지 하여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앞서 산업일꾼 형식으로 농업, 공업 뿐만 아니라, 식당, 간병인과 같은 서비스직종까지 이미 외국인이 들어와 있다. 싱가포르처럼 저렴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가능할까? 불법이민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이미 다른 직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노동자와의 급여 차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법이민도 막고 산업에 필요한 인력도, 가정 돌봄의 수요를 국내인과 외국인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이 없다고 어린이집, 유치원이 많이 줄었다. 국내 관련 업종 경력자들이 많다. 자격증 보유자는 훨씬 더 많다. 종일 근무자가 아니라 대기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을 이어줄 방법은 없을까? 외국인 도우미는 문화와 언어적 차이가 존재한다. 자격증 보유자나 경력자인 국내인들과 의사소통도 안 되는 외국인 도우미에게 같은 임금을 주는 게 맞을까?
돌봄은 필수다.
어린이 돌봄이든 노인 돌봄이든 우리는 돌봄의 터널 중간에 서 있다. 돌봄 시스템을 지금부터 제대로 논의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저출생률은 지하로 더 내려갈 것이고 대한민국은 더 빠르게 소멸할 것이다.
수요의 대상인 엄마와 아빠, 아이들, 공급의 대상인 선생님들, 행정 담당자들이 같이 모여 의논을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려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치인의 선거 공약에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수요자도 공급자도 만족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