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산책(56)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어느덧 고운 단풍마저 떨쳐 버리고 차디찬 바람을 견디기 위한 채비를 하는 초겨울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찬서리를 맞으며 11월∼12월에 걸쳐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향기가 있고 키가 나즈막한 깨끗한 나무가 차나무이다.
차나무는 지난해에 맺어 놓은 열매가 여무는 즈음 한 쪽에서는 또 다른 꽃을 피우니, 꽃과 열매가 같이 달려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 하여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도 한다.
차나무는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자생식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라의 왕자 김교각(金喬覺)이 당나라의 구화산에 절을 세울 때 신라에서 가져간 차나무의 씨를 가지고 차밭을 일구었다는 기록과 신라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겸이 돌아오면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도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실 지리산 기슭의 화개를 비롯하여 양산 통도사 부근이나 남해의 금산 등에서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는 차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튼 차나무의 고향이 어느 곳이든 간에 오랜 옛날부터 우리와 인연을 맺으면서 자라왔으며, 생활 속에서 많이 애용하였다.
차나무는 기후가 따뜻하고 습도가 많은 기후에서 잘 자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일부 남부지방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잎은 연 4회 정도 따는 것이 보통이며, 그 제조방법에 따라 녹차와 홍차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홍차는 발효 가공한 것이고,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것, 오룡차(烏龍茶)는 두 가지의 중간 방법을 취한 것이다.
홍차는 옛날 동·서양으로 교역을 할 때, 동방에서 귀한 녹차를 배에 싣고 서양으로 가져가는 동안에 푸른 차잎이 변질(발효)되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먼 바닷길을 오가는 선원들이 비타민 C의 부족으로 괴혈병을 앓고 죽어 갔으나 녹차를 실은 배의 선원들만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는 녹차의 진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차나무의 어린 잎은 차의 원료로 쓰이고 씨앗은 기름을 짜서 공업용 및 동백기름 대용으로 쓴다. 한방 및 민간에서는 이뇨·부종·강심·심장병·수종 등에 다른 약재와 같이 처방하여 쓴다고 한다. 오늘날 녹차의 성분은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좋은 건강음료의 하나로 입증되고 있다.
신라의 충담스님이 경덕왕에게 차를 달여 바쳤는데 그 맛이 훌륭하고 향이 기이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차 문화는 불교를 통해서 이어져 보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 혼례식을 끝낸 신부가 친정에서 마련한 차와 다식을 시댁의 사당에 드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봉차(封茶)라고 하였다. 지금도 결혼 전에 시댁에 예물을 보내는 봉채(封采)라는 풍습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