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자신을 이끌려면 머리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이끌려면 가슴을 사용하라.’고 하였다. 이를 ‘따뜻한 리더십’이라고 한다. 오래전 신라 때 화랑 죽지랑은 이와 같은 리더십으로 자신의 낭도를 대하고 있었다. 신라 효소왕 때의 화랑 죽지랑은 김유신을 도와 삼국통일을 완성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낭도 가운데 제17 관등 중 제9 관등인 급간 득오곡이 있었다. 득오곡은 화랑 죽지랑의 낭도로 매일 출근을 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아들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당전인 모량부의 익선 아간이 내 아들을 부산성 창고지기로 차출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죽지랑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지만 공사로 갔으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소”
그는 낭도 137인을 거느리고 떡과 술을 가지고 득오곡을 위로하러 갔다. 부산성에 도착하여 성문 문지기에게 득오곡이 있는 곳을 물으니, 익선의 밭에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죽지랑이 밭으로 가서 득오곡을 불러 술과 떡을 대접한 후, 익선에게 휴가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고지식한 익선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때 출장 온 관원 간진이 추화군에서 벼 30석을 세금으로 받아 성안으로 운반하다가 죽지랑이 그의 부하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하고 익선의 융통성 없는 태도를 딱하게 여겨 이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그 청을 들어주라고 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다가 제13 관등인 사지 벼슬의 진절이 말안장을 주자 그때서야 허락을 하였다.
화랑의 우두머리가 이 소문을 듣고 부산성으로 사람을 보내 익선을 잡아다가 벌을 주려고 했으나 그가 도망을 가버리니 대신 그의 아들을 잡아갔다. 매우 추운 날 이 아들에게 대신 벌로 성안의 못에 목욕을 시켰더니 이내 얼어 죽어 버렸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하는 자를 모두 내쫓고 다시는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 아울러 승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이미 스님이 된 자라고 할지라도 범종과 법고가 있는 큰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간진의 자손을 평정호장으로 임명하여 표창하였다. 당시 원측법사는 해동의 고승이었지만 모량리 사람이라고 해서 승직을 주지 않았다. 세금으로 징수한 벼 30석을 임의로 처분하려 했던 간진은 선의로 이를 사용하려 했다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공금 횡령의 죄를 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익선의 아들에게 벌을 주고, 고을 사람 전체에 대해 불이익을 준 사례 등은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연좌제로 처벌한 것이 된다. 먼 훗날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였던 죽지랑의 인품을 사모하여 득오곡은 이미 죽은 죽지랑을 위해 다음과 같이 ‘모죽지랑가’란 향가를 지었다.지나간 봄 그리워하니,모든 것이 시름이로세.아담하신 얼굴, 주름살 지시려 하네.눈 돌릴 사이에나마, 만나 뵙도록 기회 지으리라.낭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고 오는 길.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이 모죽지랑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편 중의 하나로 강인구 등의 『역주 삼국유사』의 해석을 위주로 필자가 현대의 문법에 맞추어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영관급 장교로 오늘날의 부대장급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