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슷한 시간대에 안타깝고 위중했던 두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야당 대표가 불의의 피습을 받은 사건, 또 하나는 가까운 일본에서 항공기 충돌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다. 항공기 사고는 화재로 인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신속 대피가 절대 요구되는 급박한 상황! 더구나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출입문이 사용 불가능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슬기로운 대처로 신속대피가 이뤄지면서 한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거기다 항공기 기장은 모든 승객을 대피시킨 후 가장 늦게 탈출하는 항공기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감을 보여준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신뢰를 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기장과 승무원의 대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비슷한 시점에 일어난 대한민국 제1당인 야당 대표의 피습 사건! 괴한의 습격으로 출혈이 발생해 인근 부산대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고 수술도 예정이 돼 있었으나 응급환자용 헬기를 이용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자상으로 인한 출혈 과다는 혈액응고 때문이라도 신속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굳이 골든타임을 차치하고 시간이 소요되는 서울로 이동해 치료를 받았다는건 부산대 병원에 대한 불신과 서울대 병원에 대한 믿음이 작용했을거라는 추측이외에는 어떤 예상도 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생명이 소중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상황이란게 있고 상태란게 있다.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 아쉬움의 순간이었다. 하나의 사건은 미담이 쏟아지고 하나의 사건은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다. 피습이라는 사건의 본말은 사라지고 대처방식에서의 문제점만 부각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좀 더 의연하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역시!’ 라는 찬사가 있었을 것이고, 선거를 앞둔 야당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호재가 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참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어느 시대에나 훌륭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태평성대에는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 묻혀 지나가기 마련이고, 난세에는 책임감과 희생정신 등 능력을 보일 기회가 생긴다 해서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영웅들은 후손들로부터 영원히 존경과 추앙을 받는 위인으로 길이길이 남게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선진국으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나라로 온 세계인들에게 각인 되다시피 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노래, 한국 드라마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어 한국인으로서 큰 자긍심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우리는 분명 잘 살고 있고 선진국 수준만큼 소득도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삶의 질과 현재 생활의 만족도에서는 대다수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비교 대상이 많아지고 비교의 생활화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해서 이젠 대한민국에서는 웬만해선 만족하기가 힘든 사회구조이다. 행복의 기준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임을 질려는 의식도 옅어지게 되고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도 점점 팽배해져 자연스레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등 개인주의가 점차 확산돼 독신이 늘어나게 되고, 결혼도 미루게 되고 출산율도 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이 이제는 인구 소멸이라는 최대의 난제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점점 커다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큰 것으로 다가오면 발등의 불로 인식해 당장에 그 불을 끄기 위해 급한 움직임을 보이겠지만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는 위기이다 보니 반응의 속도가 느리고 느끼는 위기감도 미약해 그 대책도 속도감이 없고 현실감이 떨어진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꾸려 나가고 설계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국가를 국민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이 구성해 이끌어나간다. 결국에는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구조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작 본인의 위기에 지도자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확인되지 않은 인지성 좋은 것에 본인의 안위를 맡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신뢰 할 수 있을까? 위의 사례는 가장 최근의 한 예이다. 여야 정치 지도자는 물론 고위공직자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떤 믿음을 주었을까?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맡길만한 지도자가 있었는가? 2024년 선택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전에 접어들었다. 그 후보들자 중 대한민국을 책임질 지도자가 탄생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그들에게서 ‘왜? 이유!’를 볼 수 없다 인사하는 모습만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와 무엇이 틀리는가? 우리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라면 우리와는 차별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희생, 책임감을 보여줘야 하고 비전도 보여줘야 한다. 경주로 국한했을 때는 경주시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국가 재앙으로 다가오는 인구 소멸에 대한 대책에 대해 지역 실정에 맞게 어떤 대책을 강구 해야하는지 등의 고민과 비전과 희생과 책임감을 보여줘야 하는데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경주를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그들에게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선택!’의 요구는 잘 보이는데 현실감 있는 ‘왜? 이유!’가 보이질 않는다. 뭐든 때가 있다. 잘하고도 때를 놓치면 공염불이 될 것이고, 때를 잘 맞춰 어필하면 호응도 얻고 다수로부터 공감도 얻을텐데 여러 가지로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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