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루어 오던 송선리 마애불을 찾아 집을 나섰다. 과거에는 이 마애불의 소재지가 건천읍 방내리로 알고 방내리 마애불이라고 하다가 이후 송선리로 밝혀져 이름이 바뀐 듯하다. 김밥 한 줄, 약간의 간식과 카메라를 챙겨 넣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삼십 수년 전 친구와 함께 우중골에서 신선암을 거쳐 단석산 정상에 오른 후 방내리 쪽으로 하산을 하다가 길을 잃어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때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 마애불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 이후 2015년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지인의 소개로 찾았는지 이정표에 의존했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새 천주암이 천주사로 승격?을 하였다. 그런데 이정표 등에서는 천주암으로 표기된 곳이 많다. 천주(天主)는 천주교에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사는 천주교 소속의 수도원인가? 아니면 어느 성당의 분당? 분원? 어찌 사찰 암자에 천주라는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암자 입구의 현액을 보고는 오해가 풀렸다, 천주사의 천주는 ‘天主’가 아닌 ‘天柱’였다. 즉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천주사 맞은 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고 이정표가 보인다. 단석산 정상까지는 3.3km이다. 9년 전 기억을 더듬고 등산 지도에서 확인한 바로는 마애불까지는 정상의 절반 정도의 거리이다. 경사가 급하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길가 진창에는 멧돼지 발자국이 어지럽다. 다소 긴장을 하면서 10여분 걸려 500여m를 올라가니 두 번째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더욱 심해진다. 700여m를 더 올라가면 세 번째 이정표, 다시 400여m를 더 오르면 등산로가 두 갈레로 갈라진다. 이곳에서 단석산 정상 쪽으로 오르지 말고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아뿔사 마애불 쪽 길을 막고 “샛길 출입금지. 비법정 탐방로로 출입하면 자연공원법에 따라 과태료 처분”이라는 커다란 경고문을 걸어두었다. 여기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할 수 없이 그동안 메모해 둔 내용과 9년 여 전의 기억에 의해 송선리 석불상에 대해 이야기를 정리할 수 밖에 없다. 이 갈림길에서 마애불상이 있는 곳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30분 쯤 더 가면 공동묘지인 듯 민묘가 여러 기 있다. 이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면 바로 큰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이 보인다. 마애불이 새겨진 이 바위는 단석산에서 신선암 다음으로 큰 듯한데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배의 뱃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배바위라고도 한다. 바위 석질은 입자가 매우 거친데, 불상이 새겨진 부분은 다소 입자가 고운 편이다. 전면을 고르게 손질한 후 머리 부분은 부조로, 나머지는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높이 솟은 육계에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대의는 편단우견의 착법을 하고 있다. 가부좌를 하고,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있는데 손가락의 모습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엄지와 중지 또는 검지를 맞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손가락 부분은 마멸이 심해 분명하지 않다. 불상의 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있고 양손의 손갖춤으로 미루어 아미타구품인 중 하품상생인이 아니면 하품중생인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 불상의 존명은 아미타불일 것이다. 우뚝한 코,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에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가끔 작은 산새가 영롱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멀리 계곡의 물소리가 잔잔히 귓가를 스친다. 마애불을 마주하고 가부좌를 틀면 바로 선정에 들 것 같다. 불상 앞에는 도자기로 된 일부분이 깨어진 촛대와 잔이 놓여있다. 옆으로는 제법 높이 돌탑을 쌓아 두었다. 이 마애불은 아직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제작 시기는 신라 말이나 고려 초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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