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위에 물구나무선 양말과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한 와이셔츠
은근히 달아오른 햇살 탓이었을까
첫눈에 마음을 섞는다
대추알같은 속삭임이라면
샛강도 수줍게 익어 간다고
바람이 부추기며 지나간다
잔주름 들이미는 길 위에서
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의
닳아빠진 비밀, 긴 팔이 감싸안자
양말은 웃음 되찾는다
온몸 물방울 빠져나가도
주저앉지 않으려는 하늘
날으고 싶은 그들
서로의 마음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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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옥상 위에 널어놓은 빨래 가운데 양말은 ‘물구나무’섰다고 표현하고 있고, 와이셔츠는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하다’고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배경효과로 바람의 이미지를 또 기발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부추기며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문장표현의 절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좋은 시란 완벽한 시란 한 구절도 한 단어도 쓸데없는 말이 없는, 모두 필요에 의해 앉혀있을 때 절창을 이루는 것이다. 핵심은 그 빨래, 즉 옷가지인데 지은이에게 있어서 그 옷의 개념은 ‘잔주름 들이미는 길 위에서 / 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의 / 닳아빠진 비밀’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게 놀랍다.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신선한 세계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처럼 지은이의 삶이 외롭고 쓸쓸했음을 잘 입증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무료했던 일상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을 씻어낸 새 기분전환의 빨래로 널려있는 것이다.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한 와이셔츠 / 은근히 달아오른 햇살 탓이었을까 / 첫눈에 마음을 섞는다`라는 구절은 그래도 우선은 잘 표백되어 말려지는 가뿐함을 실감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잘 말려진 빨래가 옥상에서 걷어와 봤자 역시 다시 때묻고 닳아가는 반복되는 일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번뇌를 벗어나는 일탈 즉, ‘날으고 싶은 그들’로 의미화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날아봤자 극락이나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새 사람을 만나 그의 옷이 된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 빨래들이 ‘서로의 마음’을 서로가 ‘달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읽었을 때 다가오는 명징함이 있어야 하듯 바로 이 시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이 평탄한 것이 아님을 빨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며, 인간의 고뇌나 업보가 잠시 씻겨졌다고 해서 그대로 유지되어 나아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특히 이 시에서 빨래줄이라는게 존재하는 한 빨래는 일상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