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목소리가 가슴을 친다
거꾸로 매달린 링거병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생체의 리듬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안간힘이다
홀로 누워 있는 아내의 반백의
머리카락 사이로는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끼어 있다
나는 잠시 나만의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함께 손잡고 숨가쁘게 걸었던 고갯길
우연히 들리던 그때 그 새소리에
다시 귀 열어두고 싶다
지루한 밤이 바람과 함께 지나간다
잠시 비운 자리 돌아와도
아내는 긴 잠에 들었는지
머리맡 거꾸로 매달린 채 링거액만
빗방울처럼 떨어진다
----------< 시 평 > ------------
생로병사가 없다면 이 세상은 극락이나 다름없을까. 생로병사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면 또한 틀린 말일까? 이런 끊임없는 물음을 안고 살아가는게 인간의 삶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노환의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간호하는 남편의 심사를 노래하고 있는데, 눈물겹다기 보다 부부연의 진한 정분을 읽을 수 있어 더욱 우리네 삶의 현장을 보는 듯 하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노환이라면 더욱 지나온 삶이 돌이켜 생각나는 그런 감동을 함께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바로, 아내와의 젊은날을 회상하는 대목으로는 ‘함께 손잡고 숨가쁘게 걸었던 고갯길/우연히 들리던 그때 그 새소리에/다시 귀 열어두고 싶다’는게 그것인데, 보라 늙고 병들면 인간은 누구나 지난날에 ‘귀 열어두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도 지은이는 병원침실에 누워있는 늙은 아내, 즉 ‘반백의 머리카락’을 한 아내를 간호하며 첫구절에서부터 ‘그늘진 목소리가 가슴을 친다’ 했으며, ‘거꾸로 매달린 링거병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라고 자신의 애끓는 심정을 이토록 절실하게 아니 절절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루한 밤이 바람과 함께 지나간다’고 공간적 표현도 아주 절묘하게 잘 표현하고 있거니와 거기다가 ‘머리맡 거꾸로 매달린 채 링거액만 / 빗방울처럼 떨어진다’고 했으니, 이런 심리현상을 이렇게 극치에 이르런 뛰어난 표현으로 구가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이토록 가슴 에이면서도 남의 일 같지않은 인간사의 어느 현장, 그러니까 병원 입원실에서의 노부부의 정분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며 빛나는 정신으로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