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오르다 보면
감추고 싶은 듯
누워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 없이 못 살겠다고
사람 손길 듬뿍 받고 살았는데
지금은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며
발자국만 선명히 남긴 채
일렁이는 바람에 더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지며 실룩실룩
우리들을 비웃으며 가고 있다
내 가진 것 다 주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옷 벗는 저 낙엽 바라보면
너 뿐만이 아니라고 토닥토닥 어깨 어루만져 주며
내 옆에 슬쩍 다가와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어디 있느냐고
못다한 말 나무등걸에 또박또박 새겨놓고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게 떠나고 있다
------< 시 평 >-------
떨어지는 낙엽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이 다함을 그대로 노래하지 않고 그 의미를 심도 있게 부여해주고 있다는데 이 시는 그 묘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진수가 보인다.
또한 다분히 풍자적이라는데 이 시가 껴안고 있는 두께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다시 말하면 한 생애를 나뭇잎으로 살아온 이 낙엽의 생애는 그야말로 눈부시며 그 정성과 노고, 역할은 한 생명을 지탱하는데 지대한 에너지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잎이 없는 나무가 어찌 나무의 구실을 하며 꽃을 달고 열매 맺을 수 있으랴. 그러나 화사했던 단풍잎으로서의 생애를 마지막 고비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오면 아무 쓸모없는 남루처럼 버려진다.
바로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어디 있느냐고 / 못다한 말 나무등걸에 또박또박 새겨놓고 /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게 떠나고 있’는 낙엽의 비애를 통해 이기적인 인간세상을 넌지시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 없이 못 살겠다고 / 사람 손길 듬뿍 받고 살았는데 / 지금은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며 / 발자국만 선명히 남긴 채 / 일렁이는 바람에 더 머물지 못하고 / 여기저기 흩어지며 실룩실룩 / 우리들을 비웃으며 가고 있다’는게 그 대목인데, 이 시는 낙엽 그 자체의 생애 뒤에 깔리는 인간세상의 그늘진 면을 떠올려줌으로서 시적 긴장감뿐만 아니라 우리네 사회상까지를 반추해주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들도 나뭇잎의 생애를 깊이 인식하는 안목으로 미덕을 겸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도 해보는 것이다.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없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