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조용한 마을의 정적을 깨는 벨소리다. 현관문 외시경(peep hole) 너머로 더벅머리를 한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후 집주인이 묻는다. “무슨 일이니?” 문 안에서 반응을 보이자 12살 소년은 렌즈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한다. 잠시 쭈뼛거리던 녀석은 결심이 섰는지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혹시 주변에 11살이나 12살 정도 되는 아이를 알고 계세요?” 아직 변성기가 안 왔는지 미성의 목소리로 녀석은 떠듬거리며 “치... 친구가 필요해요... 정말로요”라고 고백한다. 영화 죠스 포스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셰이든 워커는 친구가 절실했다. 현관문 너머 집주인이 말을 이어간다. “저기 저 집만 해도 네 또래가 두 명 있잖니?” 하자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이쪽에 사는 애요? 아님 (다른 손으로 반대쪽을 가리키며) 저쪽 애 말인가요?” 하고는 또 쭈뼛거리다가 “사실 개네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에요. 저를 따돌리고 괴롭혔거든요” 문구멍 너머 녀석은 마을의 골칫덩어리처럼 생겼지만, 아무 집이나 벨을 눌러 친구를 구할 정도로 외로웠던 소년이었다. “오, 저런, 그거 참 안됐구나” 아저씨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기습적으로 묻는다. “아저씨네는 애들 있어요?”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듯 “근데 어쩌지? 이제 겨우 2살인데...” 했더니 워커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저 두 살짜리 아기 정말 좋아해요!” 무의식적으로 올렸다가 내리는 팔이 어색하고 말까지 더듬는 걸 보니 흥분한 상태임에 분명하다. 또래 친구를 찾던 초딩 녀석의 새로운 국면 전개다. 심각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기가 번진다. “아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거든요. 나는 여동생이 둘이 있는데요···” 녀석은 대화를 중단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많이 외로웠던 녀석이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집주인 아저씨가 야속하다. 기꺼이 문을 열고 두 살짜리 아기를 보여줄 만도 한데 말이다. 집주인은 사실 집에 없었다. 초인종에 설치해 둔 카메라를 통해 원격에서 녀석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두 살짜리 아기를 둔 부부는 또래 대신 기꺼이 워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죠스 티셔츠도 맞춰 입었다. 또한 문 앞의 대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그러자 7천만회 조회수가 말해주듯 전 세계 친구들과 삼촌 누나 형들이 녀석의 친구가 되었으며 그가 외롭지 않게 지켜주었다. 이쯤 되면 해피엔딩은 당연하고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미안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워커의 여자친구가 인공지능(AI)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젊은 남성의 60% 이상이 싱글이고 그 숫자는 점점 늘고 있다. 우리 한국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앞에 놓인 결혼과 출산 등 골치 아프고 값비싼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진짜 말고 가상의 여자친구를 선택할 조짐은 불가피해 보인다. 어느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5명 중 1명은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3년이라는 지리했던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친구와의 사회 활동 시간은 한 달 기준 20시간으로 확 쪼그라들었다. 새 친구를 만들 수도, 기존 친구들도 관계 지속도 점점 어려워진 오늘날이다. 여자친구를 만들어야 결혼도 할 것 아닌가, 아쉽게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아이를 낳는 여성 비율이 54.9%(2011~2014)에서 52.1%(2015~2019)로 줄었고 덩달아 아빠가 되는 남성 비율도 43.8%에서 39.7%로 줄었다고 보고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식구가 줄어들더니 이젠 한입 사이즈도 줄어들었다. 앞으로 일본에서는 라지(Large) 사이즈 피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기존의 라지(L)나 레귤러(R)보다 작은 크기의 1인용 제품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다보고 있다. 두세 명이 먹기 적당한 라지나 그보다 작은 레귤러 사이즈가 사라지고 소위 P 사이즈가 그 공백을 메꿀 것으로 보고 있다. 혼자(person)서 먹기에 딱 좋은 크기가 요즘 대세라는 거다. 일본 특유의 소식(小食) 문화보다는 아무래도 1인 가구의 확산이 더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외로움이 만들어 낼 미래 모습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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