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사 석굴의 북쪽으로는 2개의 바위가 있고 그 사이는 틔어져 있다. 그중에서 동쪽의 바위에는 주불이 있고 서쪽의 바위에는 반가사유보살상, 여래입상 3구, 보살입상 1구, 공양인물상 2구 등 모두 7구의 불보살상 등이 있다. 북쪽 바위 바깥쪽 위 미륵불에 가장 가까운 쪽에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있다. 정면상으로 연화대좌와 원형 두광을 구비하고 있다. 삼면관을 쓰고 앳된 표정이며 목에 삼도는 없고 상반신은 벗은 몸이다. 오른손을 꺾어 오른쪽 뺨에 대어서 사유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쪽 발의 무릎 위에 얹어서 반가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 발은 연꽃 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광배와 대좌 등을 구비한 고신라 유일의 마애반가사유상이다. 전체높이 109cm이며 얇게 조각되어 있다. 신라시대 화랑은 미륵의 화현(化現)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이 바위 면에 새겨진 미륵불과 반가사유상을 김유신장군 관련 설화와 관련지어 바로 화랑의 수련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반가 사유상의 왼쪽으로 3기의 여래입상과 보살상이 있는데 양쪽 손을 모두 주불인 미륵불 쪽으로 안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이채롭다. 반가사유상 우측의 여래입상은 보주형 두광이 있으나 밑의 대좌는 바위 면의 탈락으로 분명하지 않다. 머리 정상에는 육계가 있고 법의는 편단우견이며 그 아래로 상의(裳衣, 치마) 주름이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었으며 왼손은 몸의 측면으로 나가서 석굴의 안쪽 즉 미륵불이 있는 쪽을 가리킨다. 정면상이며 전체 높이는 116cm이다. 반가사유상 우측 두 번째는 보살상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머리에는 삼각보관(三角寶冠)을 쓰고, 천의(天衣)는 두 어깨에 걸쳤으며 배 아래에서 U자형을 이루고 다시 두 팔에 걸쳐서 아래로 길게 내렸다. 오른손은 복부에, 왼손은 굴 안쪽 주존을 가리킨다. 둥근 두광과 연화좌를 지니고 있는데 몸의 높이는 102cm이다. 반가사유상 우측 세 번째 여래입상은 이곳의 세 입상 중 조각이 가장 선명하다. 보주형 두광에 대좌는 단판복련좌를 지니고 있는데 연화문에는 자엽(子葉)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둥글고 큰 상호에 비해서 육계가 매우 적은 것이 특이하다. 두 눈은 부어오른 듯하며 두 귀 또한 길고 삼도는 없다. 법의는 편단우견이며 왼손에 걸쳐서 아래로 내려뜨렸으며 신체 하단에는 상의(裳衣)가 보인다. 두 손 모두 손가락을 펴고 오른손은 가슴 위에 올리고 왼손은 왼쪽으로 향하여 동쪽 끝에 있는 반가사유상과 나아가서는 굴 안쪽 주존을 가리키고 인도하는 듯하다. 몸의 높이는 105cm이다. 이 불상의 아래에 있는 인물상은 동쪽 굴 안쪽을 향하고 있는 공양자 상이다. 앞쪽 공양자는 두 손으로 자루달린 향로를 잡고 있다. 머리에는 버선 모양의 독특한 관모를 썼다. 얇게 조각되어 있으나 두 눈은 뚜렷하다. 몸의 높이는 122cm 이 석굴을 조성할 때 발원을 한 인물로 추정이 된다. 왼쪽 공양자 상은 오른쪽 상에 비해 약간은 작으나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점과 자세와 의복이 동일하다. 다만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것이 앞의 상과 다르다. 최하단에 자리 잡은 불상은 가장 작은 입상으로서 편단우견이다. 육계가 뚜렷하고 목이 짧아 삼도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몸의 높이는 57cm이며 조각연대는 다른 상에 비하여 늦은 감이 있다. 보조지눌의 수심결에 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모르는 줄 알면 곧바로 견성’이라는 의미이다. 모르는 줄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것 같다. 보조국사께서 심하게 칠책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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