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먹는 법                                                                   백무산 국수 먹을 때 나도 모르는 버릇 꼭 그렇게 먹더라는 말 듣는 버릇 아버지 짐자전거 연장통 위에 앉아 먼짓길 따라나선 왁자한 장거리 국숫집 공터에 가마솥 걸고 차일 친 그늘 긴 의자에 둘러앉은 아버지들 마차꾼 지게꾼 약초장수 놋그릇장수 고리체장수 삼밧줄장수 고무줄장수 바지게 괴어놓은 소금장수 허기 다 채울 수 없는 한그릇 국수 받아놓고 젓가락 걸치고 국물 먼저 쭉 바닥까지 비우고는 보소 여 메레치 궁물 좀 더 주쇼, 반쯤 채운 목에 헛트림하고 나서 굵은 손마디에 부러질 듯 휘어지던 대젓가락 천천히 놀리던 손톱 문드러진 손가락들 남매인지 부부인지 팔다 만 검정비누 봇짐 껴안고 둘이서 한그릇 시켜놓고 멸치 국물 거듭 청해 마시고 나서 천천히 먹던 국수 지친 다리 애간장에 거미줄처럼 휑한 허기 숭숭 뚫린 허기 다 메울 수 없었던 한그릇 국수 국수를 받을 때면 그 시절 허기 추모라도 하듯 두 손 받쳐 들고 후루룩 마시는 내 버릇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허기지던 국수 국수 받을 때면 저리도록 그리운 아버지 국수, 허기의 시절을 불러내는 그리움의 음식 아버지가 모는 짐자전거 연장통 위에 앉아 먼짓길 따라나선 유년의 기억을 따라 쓰여진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가슴이 메이는가? “숭숭 뚫린 허기 다 메울 수 없”어 “젓가락 걸치고 국물 먼저 쭉 바닥까지 비우고는/보소 여 메레치 궁물 좀 더 주쇼,” 하면서 먹었다는 가난한 시절의 아버지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허기졌으면 하나같이 육수 한 그릇을 먼저 먹어 배를 채워놓고 면발을 삼켰을까? 당시 장터에서 파는 식사는 국밥과 국수였는데 그 중에 국수는 국밥집에서 먹을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동으로 “손톱 문드러진 손가락들”을 가졌고, 심지어 사정이 더 어려워 “둘이서 한그릇 시켜놓고 멸치 국물 거듭/청해 마시고 나서” 천천히 국수를 청해 먹는 검정비누장수도 있었다 한다. “공터에 가마솥 걸고 차일 친 그늘/긴 의자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던 사람들! 마차꾼, 지게꾼, 약초장수, 놋그릇장수, 체장수, 삼밧줄장수, 고무줄장수, 소금장수. 요즘 사람들은 그런 풍모들을 기억도 하기 어렵겠지만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먹거리가 남아도는 요즘도 국수를 받아들면 “두 손 받쳐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나중에 면발을 먹는 “나도 모르는 버릇”이 나오는 건 가난에 대한 절실함일까? 아니면 그 시절 선한 얼굴들 때문일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