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잘 마무리하고 12월 계획과 2024년 새해 계획 확정을 동시에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와 함께 달려온 한해를 격려하고 새로운 한해를 축하하는 문학과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단어처럼 문학과 음악이 나에게 큰 위로와 응원을 준다.
이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시 한편이 있다. 바로 나태주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라는 시이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 11월이다 /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로 시작해서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로 끝맺는다. 이 시가 11월 하순에 내 머리와 가슴에 도꼬마리 열매처럼 딱 달라붙는다. 조금은 추워진 날씨에 내 머리가 맑아지는 만큼 영감을 주는 시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지금의 시기에 신라인들은 어떠한 시(노래)를 함께 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신라시대 고유의 노래인 향가(鄕歌)를 다시 찾아보고 읽어보게 된다. 참고로 향가는 삼국시대 말엽에 발생하여 통일신라시대 때 성행하다가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까지 존재하였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定型詩歌)이며,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등 도합 25수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연결되는 신라의 향가는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10구체 향가, 충담사 지음, 삼국유사)’이다.
학창시절 배운 찬기파랑가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찾아본 향가는 이렇다. ‘흐느끼며 바라보매 / 이슬 밝힌 달이 /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 모래 가른 물가에 / 기랑의 모습과도 같은 수풀이여 / 일오내 자갈 벌에서 / 랑이 지니시던 / 마음의 끝을 따르고 있노라. /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김완진 해독) 달, 물가, 자갈, 잦나무 등 기파랑을 비유하는 자연에서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의 솔직함, 청결함,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현대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천 년 전 경주의 지금쯤 자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신라의 음악가인 우륵(于勒)과 백결선생(百結先生)은 이 시절에 어떤 음악을 짓고 가사를 부쳤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11월과 12월은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절이자 새롭게 시작하는 시절이다. 이 시절에 문학과 음악이 함께 하는 경주, 신라의 문학처럼 경주만의 것이자 대한민국의 것, 세계인이 함께 할 문학과 음악의 축제는 불가능할까?
최근 방송에서 경주 관련 내용을 자주 접하게 되어 출향인으로서 매우 기쁘고 고맙다. 다만 문화재 관람, 먹는 것 중심으로만 일관되어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K컬처의 소프트 파워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새로운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날에 K컬처의 K가 경주의 K도 상당 부분 비중 있게 점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와 함께 최근 ‘2025년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 100만명 서명운동’에서 120만6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추측하건데 이런 동력의 이면에는 추측하건데 국민들의 정서 속에 숨어 있는 한 편의 시와 노래가 더 위대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경주에는 이와 같은 자원이 있고 이를 기획하는 의지와 전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11월과 12월에 신라의 문학과 현대문학의 멋진 상봉을 만들고 이 속에서 지음(知音)의 친구와 함께 경주의 산천을 걷고 싶다. 11월 초에 친구와 함께 걸은 하남시의 한강, 강으로 날아가 물에 안기는 나뭇잎은 정말 좋았다. 경주인 둘이 걸으면서 든 생각은 이게 바로 ‘지음’아닐까였다. 다가오는 12월, 크리스마스 이전에 그 친구와 ‘내가 사랑하는 계절’과 ‘찬기파랑가’를 흥얼거리며 경주의 서천변을 오래 걷고 싶다. 서천을 훑고 지나는 긴 바람과 천년 넘게 뒹굴어 온 조약돌에게 우리의 시와 말을 들려주고 싶다. 올 한해 나는 무심했지만 언제나 나를 기억하고 사랑해준 경주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