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오디션
박라연
첫눈이 온다
종일 처음이 내린다 하얀 눈송이 사이로
‘너의 무지개가 산다’는
문장이 내려온다 어디에
무지개가 사는지 여전히 모르지만
어둠의 아랫마을에 우리 이야기의 처음이 산다면
내려가는 어둠과 울음의 경사를
관객이 결정한다면
검은 밤의 어깨 위에 스무 살을 걸고 시작할래요
―뭐? 너, 무슨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니?
―응
따뜻한 색이잖아! 모두 다 보잖아
―스물은 너무 아련한데?
그 먼 기억의 숲을 모셔오려면 요절이 불가피해요
아련함이 숲마저 요절시키면? 늙은 요절을
어디에 쓰나?
관객은 또 숨죽여 지켜볼 텐데
벼랑 사이에 냄새를 뿌릴까 해요 나만의 냄새를요
몸의 화산이 폭발되도록
50가지 무지개로 나누어지도록
시, 그 요절의 오디션
코비드 시절, 길거리에 나갈 수 없을 때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것은 어느 방송사의 트롯 오디션이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생방송 오디션 현장은 심사위원은 물론 관객의 평가를 통해 등수가 매겨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두 다 보는 데서 공정한 링 위에 올라가 진행되는 오디션이라니!
시인은 시로써 이 세상과 싸워야 하는데, 시의 평가에 공명정대란 없다는 불신이 차오르던 즈음에 그 오디션 진행 과정을 티브이로나마 보면서,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무척 부러웠던 것.
‘붉은 오디션’이라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이 시에서 눈에 띄는 건 우선 빛깔이다. 그것은 설렘의 흰색(“하얀 눈송이”)과 암울의 검은 색(“검은 밤”)의 대비에서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가 되기 위한 경합의 붉은 복장과 내밀하게 연결된다.
시인은 관객이 숨죽여 보는 현장에서 “종일 처음이 내린다 하얀 눈송이 사이로/‘너의 무지개가 산다’는/문장”의 설렘을 환상으로 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일지도 모를 “어둠의 아랫마을, 그 암울한 곳에도 우리 이야기의 처음이” 살 것을 믿으며, 세상에 미만한 “내려가는 어둠과 울음의 경사를” 표현한 결과물, 시편들의 상상력과 미학성을 독자인 관객이 결정해준다면 기꺼이 오디션에 참가하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쩐다? 시인은 늦은 나이에 스무살을 걸고 오디션 참가해야 하니. 하루가 다르게 트랜드가 바뀌는 시단의 분위기 속에서 세월의 숲은 너무 아련해서 이 게임은 시작하자마자 죽는 요절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때 시인이 치는 배수진은 아찔한 벼랑 사이에 “나만의 냄새를” 뿌리고 마침내 “몸의 화산이 폭발되”어 걷잡을 수 없는 “50가지 무지개로 나누어지”는 것!
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진정한 시는 벼랑에서 만나는 게임일지 모른다. 벼랑에서 목숨을 걸고 하는 요절의 오디션일지라도. 시인들이 제대로 쓰고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