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은 경주 내남 화곡의 아름다운 산수를 벗 삼아 유유자적 글을 읽고 참된 선비의 길을 걸으신 산림처사(山林處士)였다. 그는 자연에 묻혀 지내며 가난과 부유함은 하늘의 명에 달렸고, 구복(口腹)을 채우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려하지 않았다. 또한 『맹자』 「진심(盡心)상」의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그리고 평소 거문고를 통해 영욕(榮辱)과 시름을 멀리하였고, 맑은 정신으로 마음의 바름을 얻고자 하였다. 가난은 간난(艱難: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에 어려움이 닥친 상황 즉 수입이나 재산이 적어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어려운 처지를 말한다. 선비로서 시와 음악을 가까이하면서 자신을 수양하지만, 그의 삶은 늘 넉넉지 못하고 곤궁한 생활에 아내와 자식들이 고달파하기 일쑤였다. 그가 남긴 시작품 가운데 ‘가난’에 관한 자신의 소회를 읊조린 부분이 종종 나타난다. 경주부윤 조명정(趙明鼎)에게 보낸 시에 “집이 가난해 손님은 적어 문은 늘 닫혀있고, 몸은 병들어 즐겁지 않아 독서도 손을 놓았네(家貧少客常關戶 身病無悰亦廢書)”라며 가난해서 찾아오는 이 적은 벽촌에 몸은 병들고 좋아하는 독서마저 내려놓았다. 손님이 찾아오면 주안상과 식사조차 어려운 궁핍한 처지가 눈에 선하다. 포도나무를 보며 지은 시에 “큼직한 꽃 무더기를 마음껏 차지하니, 선비의 생활 온전히 가난하지는 않다네(大宛芳叢能擅有 書生活計未全貧)”라며 비록 가난하지만 자연이 주는 꽃의 아름다움에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다는 지조의 마음이 느껴진다. 조상의 무덤을 옮기려는데 사정이 어려워 친구의 도움을 받은 시에 “가난한 몇 해 혀로 밭을 가는 비용을 지불하였는데, 촌 늙은이 지금까지 되레 부러웠다네(螢雪幾年費舌耕,到今還羡老田更)”라며 생활을 영위하고자 학문을 가르쳐 주고 곡식 등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설경(舌耕)의 표현을 하였다. 그는 후학양성을 위해 화계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평소 그는 가난에 대해 자득(自得)하였는데 “졸렬함이 처세임을 진작에 알았지만, 가난을 따지지 않는 가업을 전하고 싶다(已知處世爲謀拙 更欲傳家不計貧)”라며 세상을 향한 소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은 가난 때문에 도를 벗어난 일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한다. 그리고 평소에 “술을 좋아하지만 가난해 취하기 어렵고, 늙어도 독서하는 삼여(三餘) 아깝지 않네(愛酒貧難謀一醉 看書老不惜三餘)”라며 독서의 즐거움과 가난으로 좋아하는 술을 즐겨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독한 굶주림에 대해서 “부엌에서 솥을 씻는 야윈 아내와 앉았는데, 동문 열리니 아이가 밥 달라고 울어댄다(洗鐺厨下坐羸婦 索飯門東啼小兒)”라며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는데도 공연히 솥을 씻어대는 아내와 아침이 되자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의 모습에서 곤궁한 삶이 절실하다. 이 외에도 화계는 가난과 질병으로 더욱 힘든 노년을 맞이하였다. 늘 거친 밥과 굶주림은 일상이 되었고 대장부로서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였다. 『장자(莊子)』 「도척(盜跖)」에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를 소유하였지만, 자손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었다(堯舜有天下 子孫無置錐之地)”라 하였는데 화계는 송곳조차 없으니 송곳 꽂을 땅을 묻지 말고, 칼이 있어도 탄협가(彈鋏歌:더 나은 대우를 원하며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호소하는 노래) 부르기조차 부끄럽다며 참으로 어려운 처지를 문학적으로 표출해 내었다. 화계는 가난하였지만, 학문과 수양의 끈을 놓지 않았고, 평생을 학문하는 선비로 일생을 마쳤다. 공부하는 필자 역시 가정유지와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부유하면 공부가 게으르고, 가난하면 독서조차 힘이 드니 적당한 중도(中道)의 경제사정이 필요하다. 지난날의 화계 선생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적당한 경제사정은 어느 정도의 부유함을 말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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