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세상은 세계를 가깝게 했지만, 개인은 서로 멀어지게 만들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톡을 하고, 목소리를 듣고 말하는 것보다 문자가 편하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모두가 적절한 핑계로 스마트폰을 택한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할까 말까 난감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그냥 핸드폰을 보며 무시한다. 어색한 소통의 시작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소통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지금 당장보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가 더 걱정된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의견이 나뉘고 불화가 생기고 그걸 조정하고 화해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이들끼리 금방 풀릴 문제도 어른들이 나서면서 문제가 더 커지는 것도, 없지 않아 보인다. “낄끼빠빠 -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야 한다” 아줌마는 이 말이, 요즘 부모들이 잘 알고 실천해야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줌마들 모임에서 아이들이 하루종일 노는 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있으니 놀다가 다치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는 폭력적인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아이들끼리 서로 조정하도록,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관여하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을 이행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다가 서로 다투며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부모님이 개입했고 어느 정도 조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한 시간쯤 흘렀을까, 이상한 광경이 아줌마 눈에 들어왔다. 부모가 폭력 사태로 끼어들어야 할 정도로 투닥거리던 두 남자아이는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이 친하게 놀고 있는데, 그 아이의 부모님들은 편치 않은 안색이었다. 나중에 아이들 무리에서 가장 큰 중학생 형에게 의견을 물었다. 정리하자면, 두 아이의 입장은 각자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었고 상대방을 각각 오해한 부분이 있었고 그로 인해 감정이 상했고 때리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이 정도 일은 우리가 지낸 시간이 있고, 앞으로 지낼 시간이 더 있으니 아이들 자신도 정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끼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론이 명확하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뼘 더 자라있다는 말을 다시금 기억하게 한 날이다. 이런 이해와 공감이 되려면 우리는 서로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말하기보다 몇 개의 문자에 의존한다. 소통의 기본 능력은 상호작용을 통해 익혀 나간다. 내가 말했을 때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도 소통을 통해 익힌다. 누가 말을 못 한다고 따지는가? 아줌마는 자신 있게 답한다. 말 못 하는 사람이 많다. 말만 할 뿐이지 내용이 없거나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말꼬리를 잡고 이야기는 엇나가고 감정만 상한다. MBTI의 문제도 아니다.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것과 별개다. 각종 인터넷방송에 익숙한 청소년과 대화를 해보면, 난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에 따라, 관계에 따라 말은 달라져야 한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하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모든 청소년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을 보면 어디에서 제대로 된 소통을 배울까 심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마주하자. 상대의, 아이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자. 공감과 배려가 가득한 세상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온 가족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만들자. 우리 가족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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