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이 엎어진 채로 발견된 것은 지난 2007년 5월이다. 오뚝한 콧날과 아래쪽 바위 사이 간격이 불과 5cm 떨어져 불상 원형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돼 ‘5cm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애불은 1430년 발생한 규모 6.4의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북유형문화재 제113호 열암곡 석불좌상 일원을 조사하던 중 발견돼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발견된 지 16년을 훌쩍 넘겼지만 마애불상 주변 정비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동안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넘어진 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국립문화재연구원이 공개한 ‘2022년 중점 관리 대상 문화재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마애불상은 주의관찰에 해당하는 C등급을 받았다.
열암곡 마애불상을 지지하는 암반이 침하하고 있어 보존대책이 필요하다는 검토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구원은 마애불상이 있는 암반의 상·하부와 중심에 센서를 설치해 수치를 측정한 결과 암반 침하 또는 미끄러지는 현상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9∼2022년까지 3년간 계측 결과 암반의 중간부가 수직 방향으로 최대 6.5㎜까지 침하했고, 상부는 경사면을 따라 최대 3.1㎜가량 미끄러진 상태라고 밝혔다.
또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암반 상부(불상 하부)에서 최대 21㎜가량, 하부에서도 9㎜ 내외의 침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최근 주변 정비 등이 이뤄졌지만, 향후 지진 등으로 큰 폭의 침하 또는 미끄러짐이 발생할 수 있어 근본적인 보존 방안을 수립해 안정적인 상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점검 결과를 보면 마애불의 침하 정도가 현재 눈으로 관찰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지만, 외부 요인으로 충격이 가해질 때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마애불상을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도 많았다.
경주시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 5일까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입불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해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2017년 4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은 지반이 연약해 작업 시 파손위험이 예상되는 만큼 모의실험 뒤 입불작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모의실험을 위해서는 당시 24억여원의 예산이 들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면서 입불작업 추진은 흐지부지됐고, 또 다른 용역도 진행됐지만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최근 들어서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적극 나서면서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한 불씨가 다시 지펴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취임 첫 일성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지난 4월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천일기도 입재법회를 봉행하면서 입불 작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경주시와 문화재청도 지난 7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암곡 마애불상의 보존관리 방안 연구 성과를 점검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학술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애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열기가 뜨거워진 시점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진단 결과에 따르면 암반 침하가 지속되고 있어 마애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해졌다.
그간 입불과 현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양론이 있었지만, 마애불을 지지하는 암반 침하 사실이 밝혀지면서 향후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높이 5.6m, 무게는 무려 80t에 달하는 대형 불상을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남산에서 각종 장비를 투입해 입불 작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다.
육중한 무게의 마애불이 산비탈 중턱에 엎어진 상태로, 자칫 불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미끄러진다면 파손 우려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한 경주 남산에 작업을 위한 장비 반입도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그렇다고 마애불상의 암반 침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내년에는 불상과 같은 크기의 모형으로 모의실험을 거쳐 2025년 입불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젠 과거처럼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온 만큼 안전하고도 신속한 입불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열암곡 마애불상을 바로세우는데 있어 행정당국과 조계종, 경주시민,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와 역할에서 십시일반 힘을 모아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