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은 그 내막을 살펴보면 다분히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와 관련 깊다. 시온주의는 조상 전래의 가나안 땅을 찾아 모든 유대인이 모여야 한다는 유대민족의 절대적 신념이다. 그러나 이 가나안 땅은 모세 때부터 격렬한 분쟁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모세가 출애급을 계획하기 휠씬 이전부터 팔레스타인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땅이었다. 그것을 40년 동안 가나안을 찾는답시고 황야를 헤매던 모세가 야훼의 결정이라 선언하며 전쟁으로 빼앗은 것이다. 구약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불레셋 사람들은 구약 성서만 놓고 보면 야만스럽고 더러운 종족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칭하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그 골리앗도 팔레스타인 전사인 것이다. 결국 구약에 나오는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같은 성서의 영웅들은 기존의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유대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침략자들이다. 그 이스라엘이 AD70년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돌아오기까지 1600년 동안도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은 원래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땅이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막강한 경제력과 외교력으로 영국과 미국 등 연합국을 지원한 유대인들은 결국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그 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계속 몰아붙인 끝에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빼앗고 험준한 산악지대 일부와 가자지구만 달랑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남겨주었다. 그 결과 가자지구에 몰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경주시 면적(1324㎢)의 4분의 1수준인 360㎢에 복닥거리며 살게 되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은 그 내막을 살펴보면 다분히 네타냐후 총리의 독재적 전횡과 연결되어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가자 지구에 이번에 포크레인으로 무너뜨린 철의 장막을 세우고 각종 첨단 감시장치를 세워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열악한 생필품과 식수, 전기시설 등 인간 이하의 삶으로 고립시킨 장본인이다. 더구나 이 네타냐후 총리는 세 번이나 총리가 된 인기를 믿고 온갖 부정축제를 일삼고 가족들까지 비리에 연루되어 탄핵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사상초유의 헌정유린으로 법까지 바꾸며 사법권까지 어지럽혔다.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몰랐다는 이면에 네타냐후 정권의 방임 의혹이 강하게 드는 것은 내적 치부를 외적으로 돌려 정권을 유지한 무수한 독재자들의 행태를 이미 보아왔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대 신화인 구약성경을 마치 인생의 필독서처럼 배우며 유대인들에 대한 친근감을 키웠고 대부분 학교 교육에서도 핍박받은 이스라엘 민족 특히 나치 치하 홀로코스트로 탄압 받은 유대인들에 대해 온정을 지닌 채 살아왔다. 당연히 그런 유대인들이 마침내 이스라엘을 재건한 사실을 영웅시하고 그 민족혼을 본받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반면 무슬림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 식으로 종교 자체를 폭력적으로 왜곡한 정보에 노출되어 왔다. 심지어 무슬림들은 지나친 종교 의식으로 인해 대부분 가난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비판도 들어왔다. 냉정하게 보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일제 강점기 우리가 일본에 항거해 싸우는 독립전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사방이 철벽으로 막힌 채 생필품 보급조차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탈출구를 만들기 위한 전쟁 뿐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관련한 서방 세계의 방송이나 그 방송을 보는 시각은 다분히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편견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역시 거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가자지구에 대한 올바른 사정을 알아야 지금 벌어지는 가자지구 전쟁을 좀 더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다수가 아는 것이 늘 올바른 것이 아니기에 그 이면의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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