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초, 모처럼 3박 4일의 일정으로 포르투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포르투 일정을 마치고 더블린행 비행기(Ryanair) 기내에서 뜻밖에 아일랜드 현직 대통령(Michael D. Higgins)을 만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포르투(Porto)에서 개최된 EU회원국 대통령 회의를 마치고 10월 7일 우리 가족이 타고 있던 비행기에 동승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대통령 전용기도 아니고 국적기도 단지 아일랜드 국적의 CEO가 운영하는 게 ‘라이언 에어’라는 사실이었다. 기내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필자 일행은 ‘저가항공기를 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약 한 시간이나 기다리는데 승무원이 “잠시 후 President가 탑승하십니다”고 방송했다. President라는 말에 이때까지만 해도 라이언에어 항공사 사장 정도로 생각했는데 승객들이 갑자기 환호하며 박수치는 게 아닌가? 눈을 들어 보니 익숙한 대통령이 만면의 미소를 띄고 손을 흔들며 영부인과 나란히 탑승했다. 라이언에어는 B737-800이 대부분이며 당연히 first class, business class가 따로 없는 저가항공사이다. 그런 비행기에 일반 승객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승객들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항공기 출발시간 변경을 포함,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했는데 그 장본인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승객들은 환호와 함께 너나없이 박수치며 환영해 주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보다 자국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라 봐야 할 것이다. 마침 딸이 기내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곁눈으로 대통령을 봤는데 칠순이 넘은 대통령이 두꺼운 책을 들고 깨알 같은 글을 읽고 계셨다고 한다. 권위란 스스로 과장하며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가운데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국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는 소박한 대통령 모습은 국적 항공기를 이용하고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는 일반적인 국가수반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필자는 옆에 앉은 아이리쉬 승객에게 대통령이 민간항공기를 타면 테러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는 “누가 아일랜드를 적국으로 볼 것인가? 현재 아일랜드는 어느 나라에게도 적대적이거나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테러를 자행하지 않을 것이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평화와 안보는 힘과 무기를 확보하거나 사용함으로써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처럼 EU 회원국으로 인권을 실천하고 회원국의 의무를 다하며 이웃 나라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에서 얻는다는 교훈도 얻게 되었다. 한편으로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우리와는 지정학적으로 너무나 다른 아일랜드의 현실에서 부러움을 느꼈다. 한편 라이언에어의 성공비즈니스 모델은 아일랜드 국민들의 근면 절약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Ryanair의 모든 위탁 수하물, 기내에서 제공하는 모든 음료와 음식, 좌석 선택, 빠른 체크인 또는 탑승 등에는 반드시 추가요금이 붙는다. 낮은 항공료를 지불하는 대가로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들이다. 이밖에 체크인 웹을 통해 탑승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제대로 준비해가지 못하면 규정대로 수수료 폭탄을 물 수도 있고 자칫 탑승이 거절될 수도 있다. 이동 그 자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에 추가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 이처럼 항공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운용경비 절감을 통해 유럽을 대표하는 초저비용 항공사(Ultra low-cost carrier)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탑승률도 전체 노선 평균 93% 수준을 유지해 유럽 제1의 저가항공사로 우뚝 섰다. 대한민국 정부가 9월 말 국무회의에서 일반 예비비 329억원을 추가로 승인했다는 최근 보도가 있었다. 이 경우 올해 정상 외교 예산은 578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물론 정부와 대통령실의 입장은 부산 엑스포 유치 등 국익수호를 위한 우리 대통령의 활발한 외교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납세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일부 비판 여론도 공존한다. 국회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경우 보좌진에 운전수, 인턴 직원까지 열 명에 가까운 직원이 의정활동을 보좌하고 관용차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필자는 아일랜드의 시장, 국회의원이 개인 운전기사(chauffeur)를 고용, 관용차를 몰고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허장성세로 권위와 권력을 앞세울 게 아니라 실력으로, 진정한 주권자의 대리인으로 겸손하게 다가서는 지도자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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