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은 다 적었다."
신라부터 조선조까지 약 1천5백여 년간의 역사인물 7천여명에 대한 별호(아호, 자, 시호, 관직 등)를 정리한 `해동별호집`을 발간한 박한우(朴漢禹 69세 경주시 배동 958)할아버지의 일성이다.
"40년전 `해동별호`라는 필사본을 빌려 본 적이 있다. 약 100여명의 역사인물에 대한 별호를 적어 놓은 책이었는데 얼마 후 확인해보니 그 책이 없어져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별호집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별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그 배경을 말하는 박할아버지는 시골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집 할아버지이자, 평생을 농사일에 찌들며 열심히 살아온 평범한 촌부이다.
해방직전까지 일본에서 소학교를 5년간 다닌 게 학력의 전부, 해방 후 무일푼으로 이곳 배동에 정착해 남의 농사, 남의 일을 하면서 6남매를 훌륭히 키워냈고, 지금은 2천평 규모의 농사를 경영하는 중농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은 별호를 최초로 집대성한 쾌거로 역사적으로 대단한 가치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농한기나 농번기에도 틈만 나면 책과 씨름하기를 40여년 그 무서운 집념의 결실이 `해동별호집`이다.
학자도 이루기 어려운 역작을 만들어내기까지 그 고초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40년 전이면 먹고살기조차 힘든 세월이었다. 흔히 한탄하고 비관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그는 후손들에게 값진 선물을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별호 찾기에 주력했다.
주위의 눈총이나 비판은 말할 것 없고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조차도 "책만 봐도 몸서리가 친다. 그놈(책)만 잡으면 잠도 안자고 빠져있으니 속 많이 썩었지요"라고 말할 정도로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한평생을 일관했다.
삼국사기, 유사, 조선왕조실록, 이조오백년사, 고려사 등 수백권의 역사서를 뒤지고, 남의 집안의 문집이나 족보까지 참고가 될만한 자료는 모두 봐야 직성이 풀렸다.
곳곳에서 수집된 자료를 밤새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할아버지가 내 놓은 원고가 대학노트로 수십권 분량이었다.
"그간의 노력을 생각하면 책 한권에 수십만원을 받아도 모자란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책은 자비로 출판해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란다.
역사학자도 넉넉한 형편도 아닌 그렇다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평범한 한 시골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세운 뜻을 위해 40여년을 한결같이 노력해 이룩한 결실은 `해동별호집`이라는 한권의 책이기 전에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한 인생 그 자체였다.
김헌덕 발행인 (사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