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꽃은 어떤 꽃일까? 신라시대 국제도시인 경주의 가을에는 어떤 꽃이 피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경주의 가을을 기억나게 할까? 최근 지인으로부터 경주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었다. 1박 2일 동안 경주의 멋과 맛을 즐긴 후 경주 방문을 적극 추천하는 지인으로부터 감동까지 받았다. 지인의 대화 중 특히 지인의 가슴 속에 강하게 각인된 경주의 몇 컷이 첨성대 야경과 그 근처 핑크뮬리 및 야생화 꽃단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가본 적 없는 야경과 첨성대 주변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는 지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경주 출신인 내가 경주의 가을과 밤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경주다운 꽃에 대해 자문해보았다. 신라시대 꽃에 대한 기억은 선덕여왕과 모란꽃에 대한 것이 전부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함께 나오는데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3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온 것을 보고 꽃에 나비가 없다는 이유로 선덕여왕이 향기가 없을 것이라 말한 내용이다. 그런데 모란꽃은 정말 향기가 없을까? 아니다. 모란꽃은 향기가 있다. 모란꽃에는 나비도 찾아든다. 화투 6월에 나오는 꽃이 모란꽃이고 거기에는 두 마리의 나비도 날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4년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宮內穿池造山 種花草 養珍禽奇獸)’라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그때 동궁과 월지에 심은 화초는 무엇이었을까? 외래종인 핑크뮬리는 분명 당시 경주의 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핑크뮬리가 2023년 경주의 가을을 대표해야 할 수 있을까? 보이는 자체로만 평가하면 핑크뮬리는 가을을 맞아 정말로 아름답게 군락을 이루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문제는 이를 선택한 사람들이 핑크뮬리를 제대로 알고 가꾸었는가이다. 핑크뮬리는 꽃 한 다발에 씨앗이 약 7만∼8만 개 들어 있어 그 번식력은 놀랍다고 한다. 또, 한 번 뿌리 내리면 제거도 어려워 토종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엄청난 번식력이 우리 고유의, 경주의 풀, 야생화를 없애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환경부는 2019년 핑크뮬리를 생태계 교란에 따른 위해성 2급 식물로 지정했고 일부 지자체는 핑크뮬리 군락지를 제거하고 동백나무 등으로 대체하는 실정이다. 물론 핑크뮬리는 아무런 죄가 없고 핑크뮬리를 탓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많은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핑크뮬리를 심어 주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관광객을 유치하려 노력하는데 그것 역시 탓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꽃만 고지식하게 고집하는 국수주의자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단지, 무엇을 하더라도 전략과 핵심가치, 비전과 미션을 먼저 구체화하고 이와 연계해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시행하였으면 한다. 그 옛날 동궁과 월지를 조성하고 희귀한 화초를 찾아 심을 때 어떤 분명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경영지침에 정책 선택 시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로 ‘유행에 휩쓸리지 말라’는 것이 있다. 다른 나라, 다른 회사에서 한다고 전략, 핵심가치, 비전, 미션과의 정합성을 파악해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 않고 그냥 따라 하거나 훅 쓸려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많은 지자체에서 핑크뮬리 군락지를 만들었다가 다시 없애는 것을 보면서 왜 이 같은 우를 반복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인다. 그렇다면 신라의, 경주의 백화방초(百花芳草)는 고유성과 세계성을 함께 하고, 오늘을 사는 사람과 내일을 살 사람들이 즐기며 관광자원으로 승화되는 꽃이어야 할 것이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차별화된 경주의 황리단길을 만들어 경주의 특성을 살리면서 국내외 명소로 자리매김했듯이 경주의 가을꽃 군락지도 그런 특성을 안기 바란다. 그때는 내게 경주를 되새겨주신 지인분을 모시고서 경주의 꽃길과 밤길을 함께 거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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