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은 웰빙, 건강,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work-life balance)과 같이 삶의 질에 관심이 높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에 있어서 도시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필자는 지난주 출장을 통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를 다녀왔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도 매우 여유롭고 평온한 도시로 ‘킨포크(kinfolk)’의 도시로 불린다. ‘킨포크’라는 말은 원래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현상적으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2011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작가, 화가, 사진가, 농부, 요리사 등 40여명이 모여 ‘킨포크(KINFOLK)’라는 계간지를 발간하였는데 이 잡지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소소한 그들의 일상을 담았다. 일상 속 행복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철학을 담은 잡지 ‘킨포크’는 킨포크 라이프, 킨포크 스타일, 킨포크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로까지 확산하여 느림 속 여유로운 일상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합쳐져 스몰 웨딩, 셀프 인테리어와 같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킨포크 문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포틀랜드는 도시환경 자체도 여유와 느림의 미학에 맞게 조성되어 있다. 심지어 도시를 걸어 다니는 것이 휴식과 힐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포틀랜드가 예전부터 지금의 살기 좋은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포틀랜드의 혁신은 미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디트로이트와 종종 비교된다. 두 도시 모두 제조업 쇠퇴라는 산업구조변화를 맞이했지만, 포틀랜드는 도시공간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함으로써 도시혁신을 달성하였다. 포틀랜드의 도시혁신은 도로를 줄이는 대신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하고 주차장이 들어설 공간을 공원과 광장으로 만든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도로를 줄인 사례는 포틀랜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월라멧 강변의 산업도로를 시민을 위한 수변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수변공간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운동, 여가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였다. 산업시설이 쇠퇴함에 따라 필요성이 낮은 공간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공간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큰 힘을 발휘했다. 주민들은 고속도로를 놓을 돈으로 대중교통시설을 확충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결국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MAX(Metropolitan Area Express)로 불리는 노면전차가 건설되어 현재 포틀랜드 광역권을 대상으로 연장 96km에 6개 노선이 운영 중이다.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다 보니 주중에도 도심에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도심의 도로 폭은 2차선 정도로 일방통행으로 운영되고 있어 보행자가 건너기에 안전하고 편리했으며 특히 횡단보도의 신호주기가 매우 짧아서 크게 기다리지 않고도 블록들을 건너다닐 수 있었다. 두 번째 혁신인 공원과 광장의 조성 또한 자동차 중심의 환경을 바꾸는 것과 관련이 깊다. 한때 도심 중심부에는 백화점 소유의 넓은 주차장 부지가 존재했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자동차가 늘어남에 따라 백화점 측에서는 주차장 부지에 주차타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주차 공간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요구했고, 결국 주차타워 건설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 주차장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포틀랜드의 거실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광장인 ‘파이오니어 코트하우스 스퀘어(Pioneer Courthouse Square)’가 만들어졌다. 차량이 아닌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도시 곳곳에 있고 시민들은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도보로 도시를 활보하고 있다. 이전보다 상권은 더 활력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도심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큰 녹지대를 조성하고 그곳에서 주말마다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을 열고 있어 도시 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경주는 킨포크를 표방하는 최적의 도시가 될 수 있다. 넓지 않은 도로를 활용하여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도시로 만들고, 도처의 보석 같은 공간들을 엮어내어 시민들을 위한 광장으로 조성해야 한다. 외곽지역은 맑은 물과 공기를 자랑하고 친환경 농산물도 생산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충분히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 있는 이웃과 함께하는 도심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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