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김춘수
추석입니다
할머니,
홍시 하나 드리고 싶어요.
상강霜降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안행雁行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살아 생전에 따뜻했던 무릎,
크고 잘 익은
홍시 하나 드리고 싶어요.
용둣골 수박.
수박을 드리고 싶어요.
수박 살에
소금을 조금 발라 드렸으면 해요.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할머니,
어젯밤에는 달이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었어요.
오십 년 전 그 날처럼,
추석달, 손주가 보고 싶어 오신 할머니
무의미의 시인 김춘수에게도 이런 따뜻함이 있다. 시인은 차례상 앞에서 장손이었던 시인을 위해 새벽이면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외셨다는, 그의 말이면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는 할머니에게 가슴으로 말한다. “추석입니다/할머니”, “홍시 하나”, 그 중에서도 “크고 잘 익은 홍시 하나 드리고 싶어요”라고. 김춘수 특유의 반복과 변주가 돋보이는 시다. 추석은 중추, 그야말로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뜻이다.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이 소슬하고 청명한 계절의 높은 하늘을 쳐다보면 죽은 자의 영혼마저 떠오르기도 하는 법.
서리가 내리고 기러기떼가 먼 하늘 외로운 항로로 날아가는 늦가을 그 “상강霜降의 날” “안행雁行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시인에게는 “살아 생전에 따뜻했던 무릎”이었던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세상살이에서 오는 추위를 느끼고 있었던 것.
홍시는 할머니가 가장 즐겨 드셨던 과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익은 홍시의 바알간 색과 “따뜻했던 무릎”은 ‘정답고 포근하다’는 점에서 통한다. 속살이 붉기는 수박도 마찬가지. 통영에서는 아마 “용둣골 수박”이 가장 당도가 높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수박 살에 소금을 조금 발라 드리고 싶”다고 하니 그건 당도를 높이는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소화를 촉진하는 방법? 그의 자전적인 기록 『꽃과 여우』에도 “수박살에 소금을 얇게 바른 다음 그것을 나에게로 건네주셨다. 수박은 그렇게 먹는 것이 제일 맛있게 먹는 것이라 하셨다”(24쪽), “조모님은 수박을 잡수시면서도 눈은 내 이마빼기에서 한시도 떼지 않으셨다”(같은 쪽)는 구절이 나온다. 여름날 “화문 돗자리”에 앉아 “한산 모시의 치마 적삼 차림으로” 그렇게 맛있게 먹는 수박을 드시면서도 손주 쪽을 쳐다보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시인은 그 수박을 상에 올려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로부터 시작되는 이 시의 마지막 의미단락은 할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마음을 드러낸다. 둥글고 따뜻한 홍시와 수박의 외양과 빛깔을 포함하면서도 그 너머에 있다. 달이 “오십 년 전 그 날처럼,”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가르마를 내고 있었”다는 절묘한 표현 때문이다. 시인은 여기서 시를 돌연 끝내면서 시치미 떼고 침묵한다. 그러면서 기실은 어젯밤 봤던 그 달이 아직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하신 모습으로 손주가 보고 싶어 오신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추석은 우리가 조상들을 생각하고 기리는 날이면서도 그 조상들도 후손들이 보고 싶어 오시는 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