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8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지하도시 지하도시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는 이스탄불에서 약400km 떨어진 터키의 중앙고원지대에 있다. 에르지에스(3,900m), 핫산(3,200m), 괼류(2,143m) 등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평균 1천m의 분지다. 약 300만년전 주변 산들에서 차례로 뿜어져 나온 용암들이 약400㎢ 넓이에 쌓인 각기 다른 성분의 지층들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를 겪는 동안 기기묘묘한 아름다운 형상들의 바위모양을 만들었다. 자연의 조화가 빚어낸 아름다움의 극치와 신비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카이세리공항에서 카파도키아까지 이동하는 약 1시간 동안 차창을 통해 펼쳐진 소아시아 고원지대의 끝없는 초원은 10월말이라 비록 푸른빛은 잃었지만 넉넉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씩 만나는 농가의 작은 마을의 집들조차 대부분 대리석을 소재로 지었다. 이곳은 나무보다 대리석이 훨씬 싸다고 한다. 응달진 곳에는 벌써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카파도키아에 가까워지자 빼곡하게 구멍이 뚫린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원래 사암지대였는데 화산재가 쌓이면서 응회암으로 바뀌어 바위집이나 지하 동굴집이 손쉽고 편했을 것이리라. 응회암은 공기와 접촉하면 딱딱하게 굳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표면은 딱딱하지만 그 속은 모래처럼 잘 파진다. 하지만 다시 공기와 접촉하면 딱딱해져 동굴을 파기에 손쉽고 또 별다른 기둥이나 지지대 없이도 지하70m 이상까지도 쉽게 파내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는 카타도키아, 신라의 대상들도 이 길을 거쳐 이슬탄불 까지 갔을까? [교회, 포도주공장까지 갖춘 2만의 지하도시 ] “지하도시?” 그 실체를 보기 전까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었다. 도대체 지하도시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참 궁금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서 본 지하도시는 파기 쉬운 응회암석을 지하로 파 내려가며 통로를 만들고, 가족단위로 생활했을 방과 부엌, 일종의 다락방 같은 창고를 만들었으며 환기통, 우물, 학교, 포도주공장, 교회, 지하무덤 등을 갖춘 하나의 완벽한 지하도시였다. 특히 데린쿠유(Derinkuyu)는 지금까지 발견된 36개의 지하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완벽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원전 2~3천년경 히타이트족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깊이 70-80m, 길이 약 20km에 약 2만명이 살았다고 한다. 주변지역 땅이 비옥해 이곳을 생활공간으로 이용한 듯 하다. 지난 63년 발굴 직전까지도 사람들이 생활했다는 이곳은 관광객들을 위해 통로를 임의로 만들기 전까지는 입구를 찾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또 주변의 다른 지하도시들과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안내자 없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돌아 나올 수도 없다고 한다. 지하는 공기가 아주 상쾌했다. 불을 지펴도 그 연기가 밖에서 관측되지 않을 만큼 특수한 환기시설이 되었다고 한다. 공동시설물에 인접한 폭 2~3m정도의 넓은 통로에서 한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큼 좁은 통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연자방아 같은 둥근 바위를 통로 곳곳에 설치해 적의 침입을 대비해 두기도 했다. 지금은 지하 8층까지 개방하고 있었다. 8층에는 십자가형태로 판 교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죄인들을 채벌하는 일종의 감옥시설도 있었다. 두 손을 머리위에서 묶도록 고안된 기둥 2개가 이채롭다. 찬바람이 나오는 환기구 옆에 설치한 기둥은 30분만 묶어 두면 추위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하에서 암석을 파 내려가 우물도 만들었다. 수맥을 어떻게 찾았는지 참 신기하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시신을 밖으로 운반하는 통로도 있다. 주검을 바깥에서 말려서 도로 갖고 들어와 구덩이 같은 자연 석관(?)에 차곡차곡 모아서 합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똥은 어떻게 했을까? 볼 일을 보고 흙과 섞어서 붙여 놓았다가 밖에 나갈 때 가져나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포도주 만드는 공장은 지하 1층에 있었다. 수확한 포도를 구멍을 통해 지하로 떨어뜨리면 그곳에서 포도를 장만해 술을 담그는 편리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크리스찬 학교와 세례를 했던 목욕통 같은 성수, 양과 당나귀 등 짐승들을 지하로 데리고 들어와 길렀던 방도 1층에 있었다. 밖에서 망을 보던 사람과 신호를 주고받았던 구멍과 도망가기 위한 비밀통로, 통로차단을 위한 돌문 등은 이곳 생활이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으며 치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버섯바위들이 펼치는 요정들의 잔치] 카파도키아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일컫는 지하도시도 대단하지만 낙타계곡, 요정들의 계곡, 파노라마계곡 등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갖가지 형상들의 바위들이 즐비한 계곡들의 기이하고 현란한 아름다움은 이곳이 아니면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광이었다. 30여m 높이의 바위들이 머리에는 한결같이 모자 같은 바위를 이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형언키 어려운 황홀경이었다. 계곡과 구릉 등 가는 곳마다 수 백만년 동안을 비바람과 자연이 정성껏 다듬어온 수려한 예술품들의 전시장이었다. 마치 갖가지 모양의 버섯들이 피어난 듯한 골짜기도 있고,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의 형상을 한 동물원 골짜기도 있었으며 현란한 파노라마를 연출한 파노라마골짜기도 있었다. 저런 골짜기 하나쯤을 경주에다 옮겨 놓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천연소금으로 가득 찬 천혜의 호수] 카파도키아에서 앙카라까지 이동하는 4시간여 동안 계속 지평선만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차라리 기가 질렸다. 비좁은 땅 덩이에서 불과 몇 평의 땅으로 빈부를 가늠하는 우리들의 풍속도를 생각하니 그 부질없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호등이나 교차로조차 하나 없는 광활한 초원을 2시간정도 달렸을 때 소금호수가 나타났다. 해발 1천7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 호수는 반경이 약100km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로 그 규모나 염도를 생각할 때 바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그런 호수였다. 터키인들이 터즈(TUZ)라고 부르는 하얀 천연소금이 그대로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소금으로 가득 차있는 호수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장관인가? 호수에 내려가 보니 어제 그제 내린 비 때문에 호수물이 좀 차 있었다. 호수 가운데 군데군데에 하얀 소금덩어리들이 솟아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소금을 집어서 먹어보니 맛 또한 기가 막혔다. 고대왕국들이 이 소금호수를 서로 차지하기위해 수많은 전쟁을 했었다. 프랑스혁명, 미국의 남북전쟁 등 세계의 많은 전쟁이 소금이 그 원인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소금은 참 역사를 지닌 영물이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초라한 한국공원] 우리에게 앙고라(Angora)로 잘 알려져 있는 앙카라는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과 동시에 이스탄불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와 지금 터키의 수도이다. 인구 500만명의 앙카라는 이스탄불에 비해 초라한 도시였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로서 터키는 그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리적으로 터키의 중앙에 해당하는 앙카라는 동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이 있다. 구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로마시대성곽에 위치한 박물관은 본래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숙소로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신석기시대로부터 프리지아시대까지의 약 7천여년의 역사유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석기시대의 각종 돌 무기에서부터 토우, 토기, 금동장식 등 경주박물관에서 보던 것과 유사한 유물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전설로 전해오던 황금의 손 마이더스왕의 무덤에서 발굴한 각종 유물들이 눈길을 끈다. 앙카라에는 30년전 터키공화국 수립 50주년을 맞아 우리정부가 6.25참전용사들의 추모비를 세운 한국공원이 있다. 석가탑 모형을 본떠 만들었다는 추모탑은 시멘트로 좀 조잡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기단부에는 참전용사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국관광객들을 상대로 자신이 참전자라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터키는 광활한 초원을 지녔고, 천혜의 소금호수를 비롯한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축복 받은 나라였다. 또한 터키인들은 오스만투르크 후예라는 강한 자부심과 천성적으로 착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녔었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나라, 강한 인상이 남는 특별한 나라 터키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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